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 문학동네 시인선 197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 문학동네 시인선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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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문보영

시인.매니큐어가마를때까지잘기다리지못하는인간이다.1992년제주도에서태어났다.고려대학교교육학과를졸업했다.바람이많이부는제주도에선모자위에납작한돌을얹고다녔다.2016년[중앙일보]로등단했다.2017년시집『책기둥』으로김수영문학상을수상했고상금으로친구와피자를사먹었다.일상을사는법을연습하기위해유튜브채널‘어느시인의브이로그’를시작했으며,시와소설,일기...

목차

시인의말

1부
방한나무/위험한공/금방이라도터져버릴것만같은/적응을이해하다/재인식/소망/손실/거주자/천국에서는누가깨워주지않기때문에스스로일어나야한다/사람을버리러가는수영장/모두가사슴뿔모자를쓰고있는데

2부
나는나에게간직된다/10만개의느낌/화장실의신/모래비가내리는모래서점/새로운호흡법/친구의탄생/캐셔/정글과함정/직전의물병/몰로코후의책/옆구리극장

3부
시인의말/데포르메/후각이예민한사람들/친구의탄생/길쓰는사람들/제이슨/풍족한삶/상자들/화상연고의법칙/잘린손의시/모래밭에서주운의외의책/계속살기의어려움/계속살기의어려움/초행길

4부
귤/횡단보도앞에서/절망적인인간그리기/야간시력/굽은길의이야기/설치예술가올리비아페레이라“매일아침눈을뜰때기분이좋지않다”/야망없는청소/비상탈출시망치로유리를깨십시오/세상을느리게구하다/모르는게있을땐공항에가라

5부
지나가기

역자후기|문보영(번역가)

출판사 서평

“우리는도시전설확산자들이야.”

세계라는책을지그시누르는반구형크리스털문진
그안의산뜻하고가뿐한평행우주를노니는정답고귀여운친구들

2016년중앙신인문학상으로등단하고,이듬해『책기둥』으로김수영문학상을수상한이래엉뚱하고사랑스러운상상력으로한국시의특별한고유명이된문보영의세번째시집『모래비가내리는모래서점』이출간되었다.시의바깥에서도문보영은일상의다채로운조각들에이야기를덧입혀하루하루를새로살게하는산문과소설,시쓰기와독서의내면을고스란히속삭이는손편지를발송하는‘일기딜리버리’,시인으로서의삶을매력적으로채색한브이로그등을통해많은독자의사랑을받아왔다.그에게독자들이열광한이유는자유로운동시에세심하며,자기자신에게집중하면서도삶의여정에함께해줄동지들을찾아나서는산뜻한발걸음을보여주었기때문일것이다.이번시집에서도문보영은정교하게묘사된미니어처처럼귀여운존재들을등장시키고,그들의정겨운움직임과대화를통해자유롭고즐거운삶을연습하는소중한선례를보여준다.

앙뚜안서점인데책이없는데?
지말모래가책이야.
스트라인스시인도그런말은안해.
앙뚜안바닥을봐.
스트라인스책이왜바닥에있지?
지말(모래에파묻힌책을발끝으로툭툭친다)잘어울려.
_「모래비가내리는모래서점」부분

시집의제목‘모래비가내리는모래서점’은모래에파묻힌책위로모래비가휘날리는서점으로,사람들은이곳에서잘린손을잡고타인의인생을읽는다.서시의첫문장“있잖아,지금부터내가지어낼세상에는난방이라는개념이없어”(「방한나무」)처럼시집속존재들은일반적인현실세계와는다른논리를가진,놀랍고귀여운전환이가득한세계를살아간다.수영장은더이상수영을하는곳이아니라물을구경하는곳이되고(「사람을버리러가는수영장」),식당의음식값엔우리가다른평행우주에서시켰을수도있는모든음식의값이포함되며(「캐셔」),세상의모든질문은공항인포메이션데스크에서답해준다(「모르는게있을땐공항에가라」).

“그런데그런세상을왜만드는거야?”애인이물었다.“왜긴왜야,세상의평화를위해서지.”나는녹색불로바뀐신호등을가리켰다.애인은다음데이트도기대된다고말하고는꼬리달린동물처럼횡단보도를건너갔다.오늘도애인을보내주었다.
_「횡단보도앞에서」부분

문보영은왜이런상상에골몰하는가?그는“인간이조금더느리게살필요가있다고생각한다.”(「적응을이해하다」)인간은지금과는다른삶을살아야한다는것이다.“물고기인데사람인척하고있”(「사람을버리러가는수영장」)는이들.“늘뭔가를숨긴채홀로느끼고있”(「10만개의느낌」)는이들에게문보영은간절한마음을조심스레들고다가간다.마치서시에서사람들에게온기를전함으로써의지와공상을북돋우는‘방한나무’처럼.

일견상큼하고풋풋한상상에몰두하면서도문보영은존재사이에,세계의한가운데에뚫린깊은구멍을들여다본다.그에게“이상적인인간은다른사람들보다조금더지쳐있는존재”(「적응을이해하다」)이며,그가“아는인간의기본형”은“정말을절망으로발음”해“나는절망살고싶어요”(「절망적인인간그리기」)말하는존재다.문보영은그런존재들이홀로외롭지않도록일생동안일용할이야기들을도모한다.시집안에서인간은비인간에게온기를얻고,비인간은인간을신기해하며바라본다.그처럼존재와존재가모여이루는관계의모양을빚어내는문보영의시는혼자읽기에외롭지않고다정하다.

보이지않는인간을상상한다상상되어진인간의어깨에두손을얹는다그러면등과무릎을굽히게되고엉덩이는뒤로빠지며나의키는약간줄어드는것인데

이로써사람뒤에숨은사람의자세가된다

하나의낯선공위에서홀로균형을잡는방법이다

상상되어진사람이내무게를견디려면
그또한어딘가에두발을딛고있어야하기에
나는상상되어진사람에게도하나의커다랗고낯선공을만들어준다

공이우리를의아해해도
어쩔수없다
_「위험한공」부분

문보영의시를읽는다는것은“사람뒤에숨은사람의자세”를통해“하나의낯선공위에서홀로균형을잡는”것이다.쓸쓸하고막막한세계를적적하지않게,개운하고가뿐하게꿰차고나가는걸음법을배우는시간이다.‘시인의말’은독자에게“아직잠들지마/우리는현실을사냥해야해”라고당부한다.그리고또다른시인의말은이렇다.“꿈을꾸는동안에도나는바깥의나와맞물린다”(「시인의말」).문보영은정합성과개연성으로부터자유로운평행우주를무수히만들어낸다.시이기에가능한그의유희는읽는이로하여금주어진현실을당연하다고느끼지않게함으로써스스로를자유롭게하는힘을가지고있다.바나나걸이에걸린채자신이썩어가지않고있다고믿는바나나가“자신이썩어가는걸막지못하”더라도“바나나가상상하는쪽을응원”(「계속살기의어려움」)하는문보영의다정한격려는여기의세계에긴요하다.설령바뀌는건없어보일지라도,“이이야기를짓는내마음”(「세상을느리게구하다」)만큼은변할수있기때문이다.

시집의마지막에는시인의‘역자후기’가실려있다.문보영의시집을번역한역자문보영의후기를또다른번역가가2차번역했다는설정으로,‘시인의말’과시들이다르게인용되며설명된다.시라는예술은진위를판별하는법정보다는자유로운상상의장이됨으로써그상상력으로하여금모래에묻힌존재들의고유한쓸모와기능,그리고재미를발견하게할것이다.“회전책장의고유한기능은책을수납하는것이아니라책을돌게하는것이다.(……)책은스스로산책을할수없기에이렇게라도바람을쐐야”(문보영,「역자후기」)하듯이.혼돈과곤란이가득한멀티버스의세계에서진짜를가려내기위해소모되는우리에게문보영은이토록복잡한세계자체를즐기고,세계의겹과겹사이매력적인여백을누릴수있는상상력을선물한다.

‘예전에나도바나나걸이에걸어둔바나나는자기가죽은지몰라서오래산다는내용을쓴적이있는데,누가그거보고유사과학퍼뜨리지말랬어……심지어바나나는하늘을향해자란다며.찾아보니그사람말이맞더라고.’
‘유사과학!’
‘응,근데시는원래유사과학이아닌가……’
‘도시전설이라고하면좀나을까?’
‘도시전설?’
‘도시전설은유령나오는이야기아니야?’
‘그런가.’
‘뭐,어쨌든유사과학보다는도시전설이더멋진데?’
‘우리는도시전설확산자들이야.’
_문보영,「역자후기」부분

시인의말

아직잠들지마
우리는현실을사냥해야해

2023년6월
문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