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보다 ‘이와아키’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단편집『뼈의 소리』
뼈 안의 바람, 부서져야 들을 수 있는 소리!
뼈 안의 바람, 부서져야 들을 수 있는 소리!
『기생수』로 대표되는 작가 이와아키 히토시의 초기 단편집이 발간되었다.
데뷔 이후, 수많은 금자탑을 쌓은 그이기에 『기생수』이전에는 어떤 작품을 그렸을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와아키 히토시는 무거운 이름이다. 하룻밤 사이 인간 몸속으로 기어 들어와 냉정한 조종자로 군림하는 괴생명체의 전율 『기생수』 칠월 칠석 까치의 전설을 이세계(異世界)와 관통하는 초능력자 마을의 이야기로 바꾼 『칠석의 나라』 고대 지중해 세계의 전쟁과 문화를 정교한 고증과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재현한 『히스토리에』. 어느 하나 만만하지 않으면서도 한번 집어 들면 마력의 긴장감으로 내달리게 하는 작품들이다. 이처럼 한 작가에게 연이어 휘둘리다보면 이런 생각까지 든다. 그 만화가는 처음부터 중견이 아니었을까? 애초에 ‘선생님’으로 태어난 게 아닐까?
이 정도의 무게를 지닌 작가의 초기 단편집을 들여다보는 일은 필연코 이중의 두근거림을 만들어낸다. 첫 번째는 물론 불안감이다. 데뷔작과 더불어 본격적인 연재 지면을 얻기 이전의 단편들은 그야말로 어설픈 필체와 풋내 나는 치기의 범벅이기 일쑤다. 괜스레 잘못 건드려 머릿속에 존재하는 대가의 초상에 실망의 스크래치를 만들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나 반대편의 설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세련된 장편으로 깎이고 다듬어지기 이전의 파릇한 원석의 생명력, 그것이야말로 작가의 개성적인 매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뼈의 소리』는 불안과 설렘, 양쪽의 두근거림에 공평한 대답을 해준다.
『뼈의 소리』는 한마디로 1980년대다. 당대에 빛나고 있는 작가의 멋 옛날을 돌아보며, 20년의 시간이라는 구태의연함을 감수하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이와아키의 본질 자체가 1980년대라고 생각한다. 그는 언제나 동시대를 관통하는 작품을 발표해왔지만, 절대로 현대적인 작가는 아니다. 『뼈의 소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그 시절에 얻어낸 시대의 정수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고, 바로 그것으로부터 20년 이상 ‘오래된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20년 전이든 현재이든, 책장을 넘길 때 눈 위로 떠오르는 이와아키 스타일이라는 게 있다. 평면적이지만 등신대를 지향하며 비례에 충실한 인물, 잔선이 많으면서도 감정 표현에는 서툰 얼굴 표정, 『북두신권』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벌어진 어깨와 반항적으로 보이려 하지만 경직된 헤어스타일, 큰 칼라의 셔츠와 딱딱한 재단의 청바지… 이 모든 것이 1980년대가 만들어낸 스타일이다. 「미완」의 미술 강사 「반지의 날」의 여동생, 「뼈의 소리」의 남녀 주인공은 외형은 물론이고 그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내면의 성격까지 그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들이며, 이는 이와아키의 만화 속에서 계속 재현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CG를 사용한 독특한 묘사나 디테일한 배경, 담백하면서도 서스펜스 넘치는 연출법처럼 세련된 표현들이 눈에 띠지만, 이와아키 특유의 ‘아저씨 만화’의 근간은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는 ‘구리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계속 구려주세요’라고 하고 싶다. 그 구닥다리의 인물들이 이와아키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 그리고 일본 만화의 1980년대는 항상 1970년대를 염두에 두고 말해야 한다. 1970년대의 고도성장, 전공투* 학생운동, 열혈 만화의 전성기라는 시대 지표가 1980년대 들어 차디찬 현실의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이와아키의 데뷔작 「쓰레기의 바다」는 좌절과 꿈 사이에서 파릇한 긴장을 유지했던 두 젊음의 서로 다른 추락의 방식을 보여준다. 더 큰 좌절로 바다에 몸을 던지려 했던 청년은 창밖의 풍경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엘리트 회사원으로 내려앉아 있다. 그러나 건너편 빌딩의 옥상에는 푸른 바다의 희망으로 시체들을 건져 올렸던 소녀가 대도시의 쓰레기 더미에 질려 스스로 몸을 던지려 한다. 회사원이 육탄으로 소녀의 죽음을 막아내는 무모한 모습은, 단편 자체만을 바라본다면 분명한 ‘작위’다. 하지만 나는 그 시대 자체가 작위적인 타협과 위안 없이는 지나갈 수 없는 때였다고 생각한다. 『시마 이사』가 아직은 ‘사회와 나’를 두고 고민하는 『시마 과장』이었고 『마스터 키튼』이 구체적인 일본에서는 한발 물러섰지만 그래도 추상적인 지구촌에서 정의를 찾아 헤매던 때다.
세상을 빈정대며 주간지에 나체 사진을 싣는 여대생, 고교 동창회에서 엉뚱한 친구 때문에 곤경에 빠지는 젊은 직장인들, 언니의 반지를 잃어버리고 하수도를 첨벙이는 반항아 여학생… 이와아키가 카미무라 카즈오의 어시스턴트 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화풍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동거시대』가 보여준 도회적인 리얼리티 세계는 제대로 계승했다고 여겨진다. 단편마다 편차는 있지만 이와아키의 주인공들은 바뀌어가는 시대와 동화되지 못하고 문제 속에서 허덕인다. 섹스, 폭력, 반항, 예술…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물장구치는 금붕어』와는 서로 다른 빛깔이지만 그들이 함께 토해낸 1980년대 청춘 만화의 분위기는 일본 음악과 영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원석으로서 이 단편집이 보여주고 있는 광채는 시대정신만이 아니다. 이와아키의 만화가 끊임없이 우리를 탄복하게 만드는 기묘한 착상과 간담 서늘한 서스펜스는 이들 단편에서도 명료한 빛깔을 내보이고 있다. 에도가와 란포의 추리 소설과 낯익은 SF 테마를 섞은 듯한 「살인의 꿈」의 인상은 오히려 덜 강력하다고 생각한다(『기생수』와 연결되는 테마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흥미롭고 끝까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던 작품은 「와다야마」였다. 동창회에 번듯한 양복을 입고 나와 직장을 자랑하며 어른 행세를 하는 친구들을 초자연적인 힘으로 제압해 낙서를 하고 마는 와다야마. 목적 그 자체의 장난기가 만들어내는 순수한 공포, 그것은 작가가 느끼고 있는 이 세계의 불합리성, 불가해성을 그대로 나타낸다. 『기생수』『칠석의 나라』 그리고 아직 연재중이라 미지수이지만 『히스토리에』가 담고 있는 핵심의 테마 역시 바로 그것이 아닐까?
쓰레기가 넘실거리는 대도시라는 바다, 연쇄 살인범의 눈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끔찍한 살인의 장면, 자신의 알몸만을 탐내며 접근하는 싸구려 남자들… 20년이 지난 현대에도 그 끔찍함은 생생한 현실감을 지닌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와다야마를 붙잡아 놓고서도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뼈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내 몸 안의 단단한 것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부서져버리는 것들을.
문화 평론가 이명석
데뷔 이후, 수많은 금자탑을 쌓은 그이기에 『기생수』이전에는 어떤 작품을 그렸을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와아키 히토시는 무거운 이름이다. 하룻밤 사이 인간 몸속으로 기어 들어와 냉정한 조종자로 군림하는 괴생명체의 전율 『기생수』 칠월 칠석 까치의 전설을 이세계(異世界)와 관통하는 초능력자 마을의 이야기로 바꾼 『칠석의 나라』 고대 지중해 세계의 전쟁과 문화를 정교한 고증과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재현한 『히스토리에』. 어느 하나 만만하지 않으면서도 한번 집어 들면 마력의 긴장감으로 내달리게 하는 작품들이다. 이처럼 한 작가에게 연이어 휘둘리다보면 이런 생각까지 든다. 그 만화가는 처음부터 중견이 아니었을까? 애초에 ‘선생님’으로 태어난 게 아닐까?
이 정도의 무게를 지닌 작가의 초기 단편집을 들여다보는 일은 필연코 이중의 두근거림을 만들어낸다. 첫 번째는 물론 불안감이다. 데뷔작과 더불어 본격적인 연재 지면을 얻기 이전의 단편들은 그야말로 어설픈 필체와 풋내 나는 치기의 범벅이기 일쑤다. 괜스레 잘못 건드려 머릿속에 존재하는 대가의 초상에 실망의 스크래치를 만들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나 반대편의 설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세련된 장편으로 깎이고 다듬어지기 이전의 파릇한 원석의 생명력, 그것이야말로 작가의 개성적인 매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뼈의 소리』는 불안과 설렘, 양쪽의 두근거림에 공평한 대답을 해준다.
『뼈의 소리』는 한마디로 1980년대다. 당대에 빛나고 있는 작가의 멋 옛날을 돌아보며, 20년의 시간이라는 구태의연함을 감수하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이와아키의 본질 자체가 1980년대라고 생각한다. 그는 언제나 동시대를 관통하는 작품을 발표해왔지만, 절대로 현대적인 작가는 아니다. 『뼈의 소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그 시절에 얻어낸 시대의 정수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고, 바로 그것으로부터 20년 이상 ‘오래된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20년 전이든 현재이든, 책장을 넘길 때 눈 위로 떠오르는 이와아키 스타일이라는 게 있다. 평면적이지만 등신대를 지향하며 비례에 충실한 인물, 잔선이 많으면서도 감정 표현에는 서툰 얼굴 표정, 『북두신권』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벌어진 어깨와 반항적으로 보이려 하지만 경직된 헤어스타일, 큰 칼라의 셔츠와 딱딱한 재단의 청바지… 이 모든 것이 1980년대가 만들어낸 스타일이다. 「미완」의 미술 강사 「반지의 날」의 여동생, 「뼈의 소리」의 남녀 주인공은 외형은 물론이고 그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내면의 성격까지 그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들이며, 이는 이와아키의 만화 속에서 계속 재현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CG를 사용한 독특한 묘사나 디테일한 배경, 담백하면서도 서스펜스 넘치는 연출법처럼 세련된 표현들이 눈에 띠지만, 이와아키 특유의 ‘아저씨 만화’의 근간은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는 ‘구리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계속 구려주세요’라고 하고 싶다. 그 구닥다리의 인물들이 이와아키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 그리고 일본 만화의 1980년대는 항상 1970년대를 염두에 두고 말해야 한다. 1970년대의 고도성장, 전공투* 학생운동, 열혈 만화의 전성기라는 시대 지표가 1980년대 들어 차디찬 현실의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이와아키의 데뷔작 「쓰레기의 바다」는 좌절과 꿈 사이에서 파릇한 긴장을 유지했던 두 젊음의 서로 다른 추락의 방식을 보여준다. 더 큰 좌절로 바다에 몸을 던지려 했던 청년은 창밖의 풍경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엘리트 회사원으로 내려앉아 있다. 그러나 건너편 빌딩의 옥상에는 푸른 바다의 희망으로 시체들을 건져 올렸던 소녀가 대도시의 쓰레기 더미에 질려 스스로 몸을 던지려 한다. 회사원이 육탄으로 소녀의 죽음을 막아내는 무모한 모습은, 단편 자체만을 바라본다면 분명한 ‘작위’다. 하지만 나는 그 시대 자체가 작위적인 타협과 위안 없이는 지나갈 수 없는 때였다고 생각한다. 『시마 이사』가 아직은 ‘사회와 나’를 두고 고민하는 『시마 과장』이었고 『마스터 키튼』이 구체적인 일본에서는 한발 물러섰지만 그래도 추상적인 지구촌에서 정의를 찾아 헤매던 때다.
세상을 빈정대며 주간지에 나체 사진을 싣는 여대생, 고교 동창회에서 엉뚱한 친구 때문에 곤경에 빠지는 젊은 직장인들, 언니의 반지를 잃어버리고 하수도를 첨벙이는 반항아 여학생… 이와아키가 카미무라 카즈오의 어시스턴트 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화풍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동거시대』가 보여준 도회적인 리얼리티 세계는 제대로 계승했다고 여겨진다. 단편마다 편차는 있지만 이와아키의 주인공들은 바뀌어가는 시대와 동화되지 못하고 문제 속에서 허덕인다. 섹스, 폭력, 반항, 예술…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물장구치는 금붕어』와는 서로 다른 빛깔이지만 그들이 함께 토해낸 1980년대 청춘 만화의 분위기는 일본 음악과 영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원석으로서 이 단편집이 보여주고 있는 광채는 시대정신만이 아니다. 이와아키의 만화가 끊임없이 우리를 탄복하게 만드는 기묘한 착상과 간담 서늘한 서스펜스는 이들 단편에서도 명료한 빛깔을 내보이고 있다. 에도가와 란포의 추리 소설과 낯익은 SF 테마를 섞은 듯한 「살인의 꿈」의 인상은 오히려 덜 강력하다고 생각한다(『기생수』와 연결되는 테마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흥미롭고 끝까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던 작품은 「와다야마」였다. 동창회에 번듯한 양복을 입고 나와 직장을 자랑하며 어른 행세를 하는 친구들을 초자연적인 힘으로 제압해 낙서를 하고 마는 와다야마. 목적 그 자체의 장난기가 만들어내는 순수한 공포, 그것은 작가가 느끼고 있는 이 세계의 불합리성, 불가해성을 그대로 나타낸다. 『기생수』『칠석의 나라』 그리고 아직 연재중이라 미지수이지만 『히스토리에』가 담고 있는 핵심의 테마 역시 바로 그것이 아닐까?
쓰레기가 넘실거리는 대도시라는 바다, 연쇄 살인범의 눈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끔찍한 살인의 장면, 자신의 알몸만을 탐내며 접근하는 싸구려 남자들… 20년이 지난 현대에도 그 끔찍함은 생생한 현실감을 지닌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와다야마를 붙잡아 놓고서도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뼈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내 몸 안의 단단한 것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부서져버리는 것들을.
문화 평론가 이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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