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꽃님
[서울신문]신춘문예에동화「메두사의후예」로등단하여작품활동을시작했다.『세계를건너너에게갈게』로제8회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대상을받았다.지은책으로청소년소설『행운이너에게다가오는중』『당연하게도나는너를』『죽이고싶은아이』『이름을훔친소년』『B612의샘』(공저)『소녀를위한페미니즘』(공저),동화『악당이사는집』『귀신고민해결사』등이있다.
듣고싶지않은다른사람의속마음이들리는아이,유찬스스로태어나선안되었다고생각하는아이,하지오‘처음이다.어쩐지이아이앞에서는솔직해져도될것만같다.’이야기는‘경상북도정주군번영읍’이라는가상의마을을배경으로,두아이의시선에서번갈아가며서술된다.남들과조금다른아이,유찬은이유모를화재사건으로하루아침부모님을잃고,장례식장에서다른사람의속마음을듣게된다.그날이후,듣고싶지않은다른사람들의속마음에시달려이어폰으로귀를틀어막고공부에만몰입한다.그런데우연히같은동네로전학온하지오와가까이있기만하면고요가찾아오는경험을한다.처음엔단순한호기심이자작은희망이었다.끔찍한소음으로부터도망칠수있다는기대로하지오를찾지만,갈수록그이유만이아님을깨닫게된다.속마음이얼굴에다드러나는하지오를보면피식웃음이나기도하고,자신이아닌다른사람을걱정하는모습에화가나기도한다.아주오랜만에느껴보는다채로운감정이조금은낯설다.서울에서번영으로전학온하지오.평생엄마와둘이살아온하지오는엄마를지키겠다는마음하나로유도를시작했을만큼엄마를향한애정이각별한아이지만,엄마의병환으로평생있는지도몰랐던아빠를찾아가야하는상황에처한다.떠밀리듯아빠가산다는번영으로왔지만,여덟시면거의모든가게가문을닫고,외지인의인사는잘받아주지도않고,당근마켓에올라온건경운기와엔진분무기뿐인이곳에서보내는하루하루가끔찍하다.아빠라는사람도,아빠와함께사는아줌마도,마을사람들도,체계라곤찾아볼수없는유도부도,기차역에서마주친유찬이라는아이도불편하기만하다.앞길이캄캄한와중에유찬,이아이가자꾸마음에걸린다.독심술을한다고말하는이아이가,꼭자신을살려달라고하는것만같아서.“이작은마을에대단한일은언제나유도부에서일어났으니까.”가장외로운아이들이끝내외롭지않은곳,번영다소거칠어보이는번영사람들이유난스럽게좋아하는것은운동,그중에서도유도다.번영사람들에게유도는꿈이고자랑이다.이곳엔조금수상쩍은이유로,혹은인생을걸만큼절실한이유로유도를하는아이들이있다.‘유도부하이패스’를외치며농땡이와외상이일상인붙임성만렙유주.번영고유도부유망주이자어린동생들의유일한보호자로,유찬의비극과직접적으로얽힌새별.이유도부원들은등장만으로공기를바꾸며한사건에점점집중하게한다.바로5년전화재사건과관련해번영사람들이감춰온비밀에대해.번영에서오래경찰로일해온지오아빠남경사,진짜메달리스트인지의심스러운유도부코치,화마로자식을잃고손주를돌봐온유찬의할머니등마을어른들의사연까지하지오와유찬의시선에서다루어지며,아이들이자신의아픔을마주하고극복하는데중요한계기를제공한다.도시생활이익숙한,그리고엄마와의관계만이전부였던하지오와비극이후마음의문을닫아버린유찬이이작은마을에서만나서로를향해,또세상을향해조금씩움직이기시작하는과정은보는이의마음까지환하게만든다.겉보기와다르게정많은동네사람들,자신만의레이스를달리고있는아이들,돌아오는여름마다눈부시게빛날냇물의윤슬과한없이푸르른은행나무,끊이지않는매미소리……이꽃님작가가그려낸번영의여름은어쩌면잊고살았을지모를,나도모르게나를한뼘키워낸공동체와공간에대한향수를자극하기도한다.뜨거운여름이청량한여름이되기까지첫사랑으로인해새로쓰이는계절큰일이다.이제매미소리도모자라저태양만봐도지금이생각날테니까.그냥알것같았다.이아이와함께하는이순간이내가겪은여름중가장찬란하고벅찬여름이될거라는걸.마주하는순간마다그리워하게되는,유난히도더운여름이계속되고있었다.(187쪽)열일곱의소용돌이치는감정들과첫사랑의두근거림,강렬한햇빛에더도드라지는아이들의결핍과상처가여름이라는계절을만나절정에치닫는다.한계절을통과하는일이이토록치열했음을,어떤운명적인만남은한계절뿐아니라한인생을완전히새롭게쓰기도한다는것을,이이야기는보여준다.하지오와유찬의열일곱번째여름을함께지나오고나면,이계절의신비로움과매력에대해한껏말하고싶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