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해상도로부터

낮은 해상도로부터

$17.00
Description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나는 너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1과 0, 존재와 비존재가 공존하는 우리의 세계
새로운 시대의 관계를 모색하는 정밀한 시선

젊은작가상, 오늘의작가상, 김만중문학상 수상 작가
서이제 신작 소설집
2022 젊은작가상 수상작 「두개골의 안과 밖」,
2022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 수록

서이제는 동시대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책은 경험이 불가능한 시대의 찬가다.
_정지돈(소설가)

서이제가 쓴 아홉 편의 소설은 새롭게 형성되는 문명의 구성체로서 우리가 우리의 시력을 측정할 수 있게 해주는 공인된 검사표이다. _박혜진(문학평론가)

서이제의 두번째 소설집 『낮은 해상도로부터』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서이제는 2018년 중편소설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으로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다채로운 소설 형식과 가독성 있는 서사를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해왔다. 우리 시대 청춘들의 모습을 그에 가장 걸맞은 문법으로 그려온 그는 문단에 등장한 지 불과 5년 만에 2021년, 2022년 2회 연속 젊은작가상, 오늘의작가상, 김만중문학상,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고, 문학과지성사에서 주관하는 ‘이 계절의 소설’에 세 차례 선정되며 현재 평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임을 증명했다.
첫번째 소설집 『0%를 향하여』에서는 주로 영화나 대중음악 등의 형식을 빌려 방황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낮은 해상도로부터』에서는 인터넷과 미디어, SNS 등의 디지털 매체를 중심으로 현시대에서 타인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핍진하게 그려냈다. 아이돌이 된 사촌형에게 질투를 느끼면서도 어느 순간 그를 ‘덕질’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백수(「#바보스타상자」), 벽간 소음에 시달리다 랩 가사를 끊임없이 인용하며 분노의 독백을 이어나가는 힙합 애호가(「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 매 순간 위시리스트에 물건을 담는 것으로 삶의 허기를 채우는 쇼핑 중독자(「위시리스트♥」), SNS로 만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끼지만 그의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연극배우(「●LIVE」)의 이야기 등 서이제의 소설들은 흥미진진한 외연으로 가득한데, 그것들은 단지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현시대 우리 삶의 중심을 관통하는 통찰로 이어진다.
서이제는 과감하게, 때로는 무심하게 전통적인 소설의 틀을 파괴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인터넷의 화면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텍스트들, 중간중간 삽입된 이미지와 기호들, 몽타주처럼 파편적으로 편집된 문단들 등의 활용은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픽셀, 비트 등 정보화시대의 근원적 단위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박혜진, 해설에서)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그려내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지돈 소설가가 “서이제는 동시대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책은 경험이 불가능한 시대의 찬가다”라고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이 시대를 선명하게 재현해내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저자

서이제

1991년서울에서태어났다.서울예술대학교영화과를졸업했다.2018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에중편소설「셀룰로이드필름을위한선」이당선되어등단했다.소설집『0%를향하여』등을펴냈다.젊은작가상,오늘의작가상,제45회이상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바보상자스타
출처없음,출처없음
벽과선을넘는플로우
위시리스트♥
낮은해상도로부터
●LIVE
영원에다가가기
자유낙하
두개골의안과밖
해설|박혜진(문학평론가)내면,기억,애정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존재하지않는사람을사랑하기위해,
나는너의메시지를기다리고있었다.”

1과0,존재와비존재가공존하는우리의세계
새로운시대의관계를모색하는정밀한시선

젊은작가상,오늘의작가상,김만중문학상수상작가
서이제신작소설집

2022젊은작가상수상작「두개골의안과밖」,
2022이상문학상우수상수상작「벽과선을넘는플로우」수록

전기electronic시대를살아가는청춘들의내면,기억,애정

이책을펼치면가장앞서만나게될「#바보스타상자」는어느날아이돌‘윤일오’가되어나타난사촌형재호에게묘한질투심을느끼는진호의이야기이다.천체관측동아리에서고요하게별을보는것을즐기던진호는대학졸업후주식투자에실패하고백수의삶을살고있다.그러다짝사랑하는예리가윤일오의열렬한팬이라는사실을알게되고,뜻하지않게그녀와함께이제는재호가아닌윤일오를‘덕질’하게된다.진호는그과정을통해재호를다시알아간다.넷플릭스다큐멘터리,유튜브,뉴스기사,온라인커뮤니티게시글,심지어고층빌딩전광판에서그는재호,아니윤일오를만난다.윤일오는그곳에각기다른방식으로존재하고,재호는그정보들을통해마치닿을수없는거리의별을관찰하듯윤일오를들여다본다.

이처럼실제공간에물리적으로존재하는한사람이디지털세계에서파편화된정체성으로존재하게되는상황은서이제소설의전반에걸쳐그려지고있는데,이어지는「출처없음,출처없음」에서는이러한정체성의분화가더욱분명하게보여진다.한메타버스플랫폼회사가만든가상현실게임〈로맨틱아일랜드〉에서개인은자신이원하는모습으로존재할수있다.‘나’의친구현호는현실과게임에서각각다른애인을가지고있으며,게임속에서‘루이16세’라는닉네임으로황금튤립농장을운영하는현호의또다른애인은각종루머에시달리다연예계를떠난아역배우출신남성배우신이정으로밝혀진다.SNS에서의관계를다룬「●LIVE」에서도이와같은정체성의혼재가나타난다.연극배우‘나’는인스타그램으로자신의팬이라고먼저인사를건넨사람과조금씩깊은마음을나누며관계를이어나간다.그는상대의얼굴도이름도모르지만독서취향과전공을알고,그가작업한미술작품을안다.하지만어느날그가작업물이라고올린작품들이사실은어느외국작가의작품임이밝혀지며,‘나’는얼굴도이름도취향도실제직업도알수없는,그러나수없이통화로마음을나눴던사람을자신이안다고할수있는지깊은의문에빠진다.

얼굴도이름도모르는사람에대한마음.그것은이책의표제작인「낮은해상도로부터」에서집요하게탐구된다.이이야기속에서‘나’는얼굴을모르는두사람을끊임없이생각한다.어린시절자신의동생이될뻔했지만파양된아이,트위터를통해서만알고지내다어느날계정이삭제된사람.기억속에서낮은해상도의픽셀로떠오르는‘너’들.그들을계속해서떠올리는‘나’의마음은무엇일까?소셜네트워크로모든것이연결되어있으며,개인이하나의전체가아닌부분으로서곳곳에존재하는시대를살아가는이들이라면그마음을짐작할수있지않을까.

너로부터다시메시지가오기를기다리고있었다.기다리고,기다리고있었다.어쩌면내가기다리는것은네가아니라메시지였을지도모른다.너는이미하나의메시지였다.메시지는내게감정을야기했다.그런데이름도성별도나이도얼굴도목소리도모르는사람에게감정을느끼는게정말로가능한일일까.
_「낮은해상도로부터」,192쪽

대중문화와하위문화가뒤섞여우리삶의근간을이루게된풍경은이제익숙한것이되었다.영화와음악,미술과문학등의문화적코드가기저에흐르는서이제의소설속에서그러한풍경은더욱구체화되는데,흥미로운것은그것이왜인지모르게자꾸과거의시간으로향한다는점이다.아이러니하게도정보화시대의단면을그려낸서이제소설의주요한정서중하나가바로노스탤지어라는것.

「벽과선을넘는플로우」의‘나’는벽간소음에시달린다.소음의원인은옆집에서랩연습을위해틀어둔비트소리.밤마다울려퍼지는트랩비트에참을수없는지경이된‘나’는그에게분노를표출하기위해글을쓰기시작한다.하지만자신역시힙합을사랑하고,이제는사라진힙합레이블소울컴퍼니를그리워하고있던‘나’의독백에는어쩔수없이랩가사들이끼어든다.그래서그가쓰려는글은옆집사람에대한항의문이아니라함께힙합을사랑하고추억을나눴던지예에게쓰는편지가된다.「영원에다가가기」에서‘너’는미래의기술인메타버스프로그램〈뉴어스〉를통해1919년프랑스파리로돌아가소설가조르주뒤몽을만난다.조르주뒤몽이라는젊은작가는『영원의문』이라는소설을집필한뒤권총으로스스로목숨을끊었고,그것은이후형에의해유고집으로출간된다.현실세계의‘너’는콘텐츠가넘쳐나는넷플릭스에서아무것도보지않은채시간을허비하지만,과거로돌아가서는파리의서점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에서조르주뒤몽의낭독회에참석하고,이윽고조르주뒤몽이된다.

「자유낙하」는먼훗날지구시대가막을내리고다른행성으로퍼져살고있는먼미래의인류가21세기의예술작품을발굴하는시대를배경으로한다.‘나’는자신이발견한수백년전영상파일이고고학적사료가될만한가치가있는것인지를알아내려노력한다.이러한세상에서사료의가치를판단하는데다름아닌예술성을기준으로하고있다는점은눈여겨볼법하다.그것은해설에서박혜진평론가가이야기한것처럼“예술은진실한정보”라는사실을전제로하고,아마도그것이예술이라는표현형식이서이제소설전반에걸쳐중요하게다뤄지는이유이기도할것이다.예술이야말로인간을이해하는가장주요한척도가되는정보라는믿음.

『낮은해상도로부터』라는소설집의제목은얼핏보면저해상도에서고해상도로향하는여정처럼느껴질지모르겠다.하지만서이제의이야기는높은해상도로의이행이아니라,우리가어디로부터왔는지를끊임없이되짚는방식으로이루어진다.화면을구성하고있는픽셀이보이지않을정도의초고해상도로펼쳐지는세상이지만,역설적으로우리를우리답게만드는것은우리가지나온길,낮은해상도로존재했던과거속에존재한다.그래서“‘내면,기억,애정’이야말로우리가정보기술패러다임속에서,무한히가공되며확장되는네트워크속에서길을잃지않기위해챙겨야할방향임을알려주는것같다”(해설에서)는박혜진평론가의말에고개가끄덕여진다.

존재와비존재,과거와미래,여기와저기
연결을통해무한히확장되는세계의풍경

1과0이라는이진부호는디지털을구성하는요소인동시에있음과없음,즉존재와비존재를상징한다.서이제가그려내고있는세상,즉우리가사는이세계에는존재와비존재가공존한다.그것은살아있는사람과AI와같이과학기술이탄생시킨존재들을뜻하기도하지만,물리적공간에실체로서존재하는인간과데이터시대에정보와이미지로서존재하는인간을뜻하기도한다.우리는이미여기에있는동시에저기에있고,모든곳에있으며아무데도없기도한존재다.서이제는이러한세계를손쉽게대상화하지않고,지금-여기우리의생태로서온전히그려낸다.존재와비존재,과거와미래,여기와저기는현재라는공간에서뒤엉킨채존재한다.이러한초연결의시대에우리는서로연결되고,연결된서로는무한히확장된다.그연결과확장을정밀한시선으로들여다보는것은어쩌면지금문학이할수있는가장시급하고도즐거운일이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