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16.80
Description
더 진실하기를, 더 치열하기를, 더 용기 있기를
『내게 무해한 사람』 이후 5년, 고요하게 휘몰아치는 최은영의 세계

소설가 권여선, 서평가 정희진 추천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수록
‘함께 성장해나가는 우리 세대의 소설가’를 갖는 드문 경험을 선사하며 동료 작가와 평론가, 독자 모두에게 특별한 이름으로 자리매김한 최은영의 세번째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가 출간되었다.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이하는 최은영은 그간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는 인물의 내밀하고 미세한 감정을 투명하게 비추며 우리의 사적인 관계 맺기가 어떻게 사회적인 맥락을 얻는지를 고찰하고(『쇼코의 미소』, 2016), 지난 시절을 끈질기게 떠올리는 인물을 통해 기억을 마주하는 일이 어떻게 재생과 회복의 과정이 될 수 있는지를 살피며(『내게 무해한 사람』, 2018), 4대에 걸친 인물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감으로써 과거에서 현재를 향해 쓰이는 종적인 연대기(年代記)가 어떻게 인물들을 수평적 관계에 위치시키며 횡적인 연대기(連帶記)로 나아가는지를 그려왔다(『밝은 밤』, 2021). 이전 작품들에 담긴 문제의식을 한층 더 깊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어나가는 이번 소설집은 작가가 처음 작품활동을 시작했을 때 품은 마음이 지금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줌으로써 “깊어지는 것과 넓어지는 것이 문학에서는 서로 다른 말이 아니라는 것”(한국일보문학상 심사평)을 감동적으로 증명해낸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담긴 7편의 중단편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하다가도 어느 순간 이야기의 부피를 키우면서 우리를 뜨거운 열기 한가운데로 이끄는 몰입력과 호소력이 돋보인다. “너라면 어땠을 것 같아. 네가 나였다면 그 순간 어떻게 했을 것 같니”(「답신」, 170쪽)라고 묻는 최은영의 소설은 소설 바깥의 우리를 적극적으로 소설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때로는 직장생활을 하다 다시 대학에 입학한 인물이 충만한 기쁨과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느끼는 강의실로(「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때로는 동갑내기 인턴과 함께 카풀을 하면서 그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대화를 하게 되는 자동차 안으로(「일 년」), 때로는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여온 인물의 외로운 옆자리로(「이모에게」) 우리를 데려가 그들과 함께 한 시절을 겪어내게 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마음이, 당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의 마음에 붙을 수 있다는 것”(「몫」, 66쪽)을 일러준다. 그것이 최은영의 이번 소설집에서 강력하게 작동하는 힘이자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힘인 다른 사람에 대한 상상력일 것이다.
선정내역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2023년 올해의 소설책 베스트 4" 소개 도서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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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은영

삼색고양이의날에태어나삼색고양이와고등어고양이와함께사는소설가.타고난집순이지만매일장기간의세계일주를꿈꾼다.여행,글쓰기,고양이,바다,친구,잠을좋아한다.콤플렉스와약점이라고여겼던것들의힘으로살아가고있다.

1984년경기광명에서태어났으며고려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다.2013년부터본격적인작품활동을시작했다.지은책으로소설집『쇼코의미소』『내게무...

목차

아주희미한빛으로도/007
몫/047
일년/085
답신/125
파종/181
이모에게/213
사라지는,사라지지않는/267

해설│양경언(문학평론가)
더가보고싶어/321

작가의말/347

출판사 서평

“내안에서는언니에게상처를주고싶어서어쩔줄모르는나와
언니를잃을까봐두려워하는또다른내가싸우고있었지.”

깊은애정과투명한미움이복잡하게얽힐때
한시절내가건네받은사랑을뒤늦게알아차리게될때
스스로의몫을고민하며온마음으로써내려가는7편의긴편지

사람사이의관계를그리는데특출한감각을발휘하는최은영의소설은특히관계가시작되는순간과부서지는순간을포착하는데,더정확히는무엇이관계를어그러뜨렸는지치열하게들여다보는데능하다.이번소설집의특징중하나는그러한관계의양상을사회적문제와의연관속에서헤아린다는점이다.문학평론가양경언이정확하게적시하듯“최은영의작품은언제나미묘한파동이만들어진원인으로여러사회조건및역사적,구조적인문제가얽혀있다는것을짚어왔”고“현실의문제를다루는일에‘여전히’용감”(「더가보고싶어」,『아주희미한빛으로도』해설,332쪽)하다.그러니소설속인물들이맺는관계를살피는일은그들이발딛고선땅이어떠한지파악하는일과떨어뜨릴수없다.

“솔기가하나도없는완벽한바느질이다.인간관계란무엇인가란질문의독특한대답”(평론가정여울)이라는평과함께이효석문학상최종심에오른「일년」은화자인‘지수’가3년차사원이었을때계약직인턴으로입사한동갑내기‘다희’와함께보낸1년의시간을따라간다.당시지수는풍력발전소개소식을앞두고매일공사현장에나가상황을점검하는일을맡고있었고,다희는중국어에능통하다는이유로지수의어시스턴트로근무를시작한참이었다.정규직사원과계약직인턴이라는차이에도불구하고두사람은함께카풀을하며공사장을오가는동안어디서도한적없는진실된대화를나눈다.그대화를통해서만“제모습을드러내던마음”(123쪽)이있었지만,두사람의다른처지는예상치못한순간관계에균열을내고둘은서로에게솔직해지지못한채헤어지고만다.그러나소설은여기에서한발더나아가그로부터8년이지난후두사람이우연히마주치는상황을마련해놓는다.중요한점은이짧은마주침이두사람이다시관계를시작하는산뜻한계기가되는게아니라,그1년의시간이서로에게어떤의미를갖는지솔직하게돌아보는시간으로작용한다는것이다.

「아주희미한빛으로도」가집중해그리는것도그런복잡한어긋남과화해의과정이다.은행에서일하다가뒤늦게대학교영문과에편입한스물일곱살의‘희원’은“무채색계열의옷을입고한국어억양이강한영어로또박또박자기생각을말하는”(10쪽)젊은강사인‘그녀’에게매료된다.희원은지적인자극을주는그녀의수업을통해자신의글이다른사람의시선을신경쓰는‘안전한글쓰기’가아니었는지깊이되돌아보게되고,조금더진지하고용기있게글쓰기에다가가게된다.그러나대학원에진학하고싶다고말하는자신에게“공부는대학원아닌곳에서도할수있는거,희원씨도알죠”(37쪽)라고이야기하는그녀의대답에희원은상처를받고그녀의자존심을건드리는말을뱉어버린다.그녀가어떤마음으로자신에게그렇게말했는지희원이어림해보게되는것은,시간이흘러자신이그녀와마찬가지로젊은강사가되고나서이다.그녀를떠올리며희원이“비록동의할수없지만,이해할수는있는마음이라고지금의나는생각한다”며“나도,더가보고싶었던것뿐이었다./어쩌면그때의나는막연하게나마그녀를따라가고싶었던것같다”(43쪽)라고담담히고백할때,우리는희원과그녀사이에이어져있는희미한,그러나분명한빛을보게된다.

한편「일년」이관계의변화위에비정규직문제를겹쳐놓는다면,「아주희미한빛으로도」는‘용산’이라는공간을부각시킨다.소설은희원과그녀를공통의기억으로가깝게묶어주는공간이자정부의과잉진압으로참사가일어난장소인용산을글쓰기의바탕으로환기함으로써글을쓰는일의의미를진지하게탐구해나간다.「몫」역시관계와사회,글쓰기라는이번소설집의핵심키워드가집약돼있는작품으로,교지편집부활동을함께하며가까워진세인물이글쓰기를통해경험하는성취와보람,한계를강렬하게그려낸다.1996년가을,도서관앞에쌓인교지를우연히집어들었다가‘정윤’의글을읽고마음을빼앗긴스무살의‘해진’은운명처럼교지편집부에들어간다.해진은날카롭고유려한글을쓰는동갑내기‘희영’의모습에압도당하기도하지만,조금씩자신만의글을써나가면서“어렵고,괴롭고,지치고,부끄러워때때로스스로에대한모멸감밖에느낄수없는일,그러나그것을극복하게하는것또한글쓰기라는사실”(75쪽)에마음을빼앗긴다.그러나여성문제를둘러싸고갈등과논쟁이첨예했던,어쩌면지금과크게다르지않았던1990년대의상황은해진과희영,정윤사이에점점틈을만들어낸다.

같은여성이라는조건만으로연대나화해가쉽게이루어지지는않음을인정하고여성문제의복잡함을살피는「몫」의문제의식은「답신」에서도이어진다.수록작가운데가장온도가높은이소설은‘나’가더이상만날수없게된언니의딸에게보내는편지형식으로이루어져있다.‘나’는왜언니가아닌조카에게편지를쓰는걸까.‘나’는왜더는언니와조카를만날수없게된걸까.그런궁금증을안고소설을읽어내려가면서우리가맞닥뜨리게되는것은개인의의지만으로는어찌할수없어보일만큼완강한폭력이다.‘나’는조카인‘너’에게자신의어린시절을들려주는것으로편지를시작한다.‘나’는엄마가집을나간후아빠의방치속에서자라왔지만책임감이강한3살터울의언니가어려서부터‘나’의부모역할을하며가장큰힘이되어준다.그런언니가달라지기시작한건언제부터였을까.어느날집앞에검은색세단이멈춰서더니그안에서뜻밖에언니가내린다.언니는당황스러워하며우연히만난학교선생이태워다줬을뿐이라고변명하듯말하지만‘나’는언니가거짓말을하고있음을알아챈다.그리고언니는스물한살이되던해에자신보다열다섯살이많은그선생과결혼할거라고말한다.임신을했다고,그남자가자신을책임지겠다고했다고.하지만정작그는상견례자리에서,그리고결혼한뒤에도거리낄게없다는듯천연덕스럽게,노골적으로언니를무시한다.‘나’는그런그의태도에참을수없이분노하면서도자신이어떻게언니를도와줄수있을지알수없어무력감을느낀다.그리고그분노는어떤사건을계기로폭발하고만다.‘나’는“사랑하는언니를보호하고싶어서,언니가그렇게함부로다루어져서는안되는소중한사람이라는걸그렇게라도보여주고싶어서”(177쪽)온힘을다해그에게맞서기시작한다.“그때의선택이어떤결과를낳게될지”(170쪽)라도.

“바라지않아도그흔적은사라지지않을거야.”

스스로에게새겨진흔적을정직하게응시하며
타인과사회를향해나아간다는것

후반부에나란히배치된세편의소설「파종」「이모에게」「사라지는,사라지지않는」은흔히‘정상가족’이라여겨지는것과는다른가족의모습을보여준다.일찍돌아가신엄마를대신해자신을보살펴준오빠의사랑을뒤늦게깨닫는동생의이야기인「파종」은삶에대한오빠의태도와그가남긴사랑을은유하는공간인‘텃밭’을배경으로남매가나눈마음을섬세하게담아낸다.「이모에게」는제목에서짐작할수있듯‘나’가어린시절의대부분을함께보낸이모를떠올리며써내려가는이야기이다.‘나’는감정적으로인색하고엄격한이모를견딜수없어하며자신에게깊이새겨진그흔적을부정하려하면서도동시에어떤누구와도다른방식으로자신을아껴준이모를그리워하기도한다.때문에‘나’가“나는이모를판단하기위해서이글을쓰는것이아니다.그런판단은너무쉬우니까.나는그런쉬운방식으로이모에대해말하고싶지않다”(217쪽)라고말할때,우리는있는그대로의이모를받아들이는일이도무지견딜수없던자신의모습을받아들이는일이되기도하리라는걸알게된다.

「파종」이남매를,「이모에게」가이모와조카를다룬다면「사라지는,사라지지않는」은가장복잡하면서어려운모녀관계를긴호흡으로살핀다.육십대여성인‘기남’은홍콩에살고있는작은딸‘우경’을만나기위해짧은여행을떠난다.여행에서기남이새삼실감하는것은자신과우경사이에놓인보이지않는선이지만,그런기남에게뜻밖에위안이되는존재는바로일곱살의손자‘마이클’이다.마이클은오랜만에만난기남의관심을끌려고분주히움직이는한편으로,맑은표정으로기남에게예상치못한말을던지기도한다.기남은우경과마이클과함께홍콩시내로나들이를갔다가실수를저지르고,자신때문에가라앉은분위기속에서집에돌아온기남은그동안의삶을되돌아보다불현듯부끄러움을느낀다.그런데그런기남의곁에마이클이다가와앉더니마치기남의마음을읽기라도한듯이렇게말한다.“부끄러워도돼요.부끄러운건귀여워요”(318쪽)라고.

기남은조심스럽게마이클의머리를쓰다듬었다.숱이많은곱슬머리가우경의어린시절과똑같았다.
“마이클은다정하구나.”
“맞아요.엄마가그랬어요.마이클은너무다정해.한국할머니처럼.”
“정말?”
“근데너무다정하면안된대요.”
마이클이잠시기남을보다말을이었다.
“너무다정한건나쁜거래요.”
따뜻한통증이기남의등과배에퍼져나갔다.기남은마이클의머리칼을쓰다듬으면서가만히고개를끄덕였다.마이클은자신을몰랐고자신이살아온시간을몰랐다.하지만그순간,자신에대해아무것도모르는그애가오히려자신보다자신을더많이이해하고있는것처럼느껴진건무슨이유였을까.부끄러워도돼요.기남은그말을믿을수없었다.한번도기대하지않았던말.기남은그말을잊을수없으리라고생각했다.(319쪽)

마이클의말에기남이느끼는‘따뜻한통증’은최은영의소설을읽는동안우리안에퍼져나가는감정과도같다.상처가정확하게건드려질때,잘모르는누군가가자신을깊이이해하고있는것처럼여겨질때,그래서그순간을잊을수없으리라고예감하게될때,우리는자신과상대가긴밀하게연결되어있음을알아차리게된다.관계안에서,사회안에서무엇과도무관한채서있을수없는우리의존재.그간빛나는작품들을선보여온최은영이자신의글쓰기를끊임없이점검하며이번소설집에또렷이새겨넣은것은바로그러한우리의모습일것이다.

책속에서

나는아직도그말을하던사람의얼굴을기억한다.그가잔인함을잔인함이라고말하고,저항을저항이라고소리내어말할때내마음도떨리고있었다.누군가가내가느꼈던감정과생각을날것그대로말하는모습을보며한편으로는덜외로워졌지만,한편으로는지금까지그럴수없었던,그러지않았던내비겁함을동시에응시할수있었기때문이다.
---「아주희미한빛으로도」중에서

어쩌면그때의나는막연하게나마그녀를따라가고싶었던것같다.나와닮은누군가가등불을들고내앞에서걸어주고,내가발을디딜곳이허공이아니라는사실만이라도알려주기를바랐는지모른다.어디로가는지모르지만,적어도사라지지않고계속나아갈수있다는걸알려주는빛,그런빛을좇고싶었는지모른다.그리고나는그빛을다른사람이아닌그녀에게서보고싶었다.
---「아주희미한빛으로도」중에서

그대로라는말이거짓인것만은아니었다.그대로라고말하는것은그많은변화속에서도여전히예전의당신이존재한다고,그사실이내눈에보인다고서로에게일러주는일에가까웠다.
---「몫」중에서

당신은그런글을쓰고싶었다.한번읽고나면읽기전의자신으로는되돌아갈수없는글을,그누구도논리로반박할수없는단단하고강한글을,첫번째문장이라는벽을부수고앞으로나아갈수있는글을,그래서이미쓴문장이앞으로올문장의벽이될수없는글을,언제나마음깊은곳에잠겨있는당신의느낌과생각을언어로변화시켜누군가와이어질수있는글을.
---「몫」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