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우 꿈을 꾼 거니? - 문학동네 동시집 89 (양장)

우리 여우 꿈을 꾼 거니? - 문학동네 동시집 89 (양장)

$12.50
Description
직선 하나 그으려 했을 뿐인데
내 안에 펼쳐지는 생게망게 이상한 숲
"언제부터인지 이상한 숲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어요.
그 숲으로 가는 길은 지도에 없어 내비 대신 나비를 따라가야 한대요. (……)
이제 배낭 속에 서른여섯 가지 크레파스와 스케치북,
자물쇠 달린 빨간 일기장을 챙겨 그곳으로 떠날 거예요.“
_시인의 말에서

“세상의 경이로움과 경이로운 표현”을 궁리하며 발칙한 상상과 공상을 멈추지 않는 강기원 시인이 츄파춥스처럼 달콤한 동시집을 들고 찾아왔다. 강기원 시인은 『작가세계』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바다로 가득 찬 책』으로 김수영문학상을 받았으며 『토마토 개구리』로 출판놀이 ‘주머니 속 동시집’ 공모전에 당선된 이력이 있다. 이번 책은 25년간 시와 동시를 부단히 넘나들며 독특한 미적 세계를 구축해 온 그가 4년 만에 선보이는 동시집이다. 전작 『지느러미 달린 책』에서 천진한 목소리로 존재들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물었다면, 이번 동시집에서는 그의 미적 세계에 뿌리내리면서도 한층 더 깊고 지극해진 시선까지 담아냈다. 제목 “우리 여우 꿈을 꾼 거니?”는 질문의 모습을 한 초대의 문장이다. 배낭 속에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챙겨 넣었다면, 내비 대신 나비를 따라 재미난 소문이 무성하다는 숲으로 함께 떠나 보자.

직선 하나 그으려 했을 뿐인데
내 안에 펼쳐지는 생게망게 이상한 숲

직선을 그린다는 게
손이 흔들려 물결이 되었어

물결은 물결을 낳아
곧 바다가 되었지
_「직선 긋기」 부분

모험의 시작과 끝은 ‘선 그리기’이다. 한번 그린 선이 절로 다음 이야기를 펼치는 과정은 우리가 꿈속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과 닮았다. ‘꿈’이란 잠자는 동안 깨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는 것, 밖으로 내보이지 않으면 내 안에서 생겨나 내 안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 시인은 그 “옹송망송”하고 “생게망게”한 꿈의 시공간을 단단히 붙잡는다. 어항을 그리고 물풀을 그리고 금붕어를 그리고 물결을 그렸더니 빨간 지느러미가 살랑살랑 헤엄치기 시작하고(「빨간 정말」), 어젯밤 도화지에 그려 놓았던 잡채와 아이스크림은 다음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비몽사몽」). 내가 그린 그림에서 촉발되는 이상한 현상, 현실의 논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상들이 능청스레 펼쳐지니 이 꿈들은 더 이상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너와 나의 공유 경험이 되고, 그렇게 환(幻)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어느새 여러 존재들이 어우러져 놀고 있는 환상의 숲 공간에 이른다.

이처럼 시인의 모험은 지극히 사적인 ‘꿈’의 이미지에서 출발하지만 혼자만의 공상으로 빠지지 않고 ‘우리’라는 주체를 너그럽게 껴안는다. 하늘의 별 대신 바닷속 별을 꿈꾸는 별난 돌멩이(「불가사리」), 한 뼘 한 뼘 하늘을 나는 연습 중인 별박이자나방 애벌레(「별박이자나방 애벌레」), 돌 속에서 제 있던 곳을 향해 날아가는 흰 새(「돌 속의 새」) 모두 ‘꿈꾸는 존재’로서 하나가 된다. 특유의 “막힘없는 연금술”(유강희)로 서로 이질적으로 분류되던 개체들이 온전히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합일에의 지향이기보다 “공생의 실현”(우경숙)에 가깝다.

개구리는 생각했어. 온통 빨강이잖아. 난 토마토개구리가 아니라 크리스마스개구리였군. 애써 졸음을 참은 보람을 느끼며 토마토개구리 아니, 크리스마스개구리는 눈 이불을 덮고 비로소 다디단 빨간 잠에 빠져들었지.
_「토마토개구리의 빨간 겨울 잠」 부분

‘물 거야, 물 거야’
경고했는데도 피하지 못했으니
물려도 할 말 없다
_「모기의 경고」 부분

시인은 개별성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꿈의 세계를 그려 냈다. 그러니 꿈으로의 전환을 지연시키는 ‘모기’(「모기의 경고」)와 ‘고등어’(「잠들기는 어려워」)의 존재감도 특별하다. 방해꾼이 아니라 잠이 지연되는 동안 공존하는 개체가 되면서 어느 존재도 다른 존재에 의해 지워지지 않는다. 이 안온한 세계에서 조그마한 것들은 “적잖은 위로”를 받는 꿈의 공간으로 부드럽게 나아간다. 강기원의 동시집을 함께 읽으며 우리는 어떤 모양의 잠을 잤으며 어떤 색깔의 꿈을 꾸었는지, 도란도란 말해 보고 쫑긋 들어 보고 살랑살랑 그려 보는 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환상적이야
 침대가 출렁출렁 흔들리더니
  밍크고래처럼 방 안을 떠다녀
   밍크고래 위에 누워
  고등어들의 떼춤에 맞춰 흥얼거리며
 난 생각해
오늘 밤도 잠자긴 틀렸군
_「잠들기는 어려워」 부분

저자

강기원

발랄,발칙,깜찍,생경한동시를꿈꾸며공상,상상,망상속에곧잘빠져있곤합니다.아이들의귀여운거짓말에귀기울이기를좋아해요.1997년『작가세계』신인상을받으며등단했습니다.지은책으로시집『고양이힘줄로만든하프』『바다로가득찬책』『은하가은하를관통하는밤』『지중해의피』『다만보라를듣다』,시화집『내안의붉은사막』,시선집『그곳에서만나,눈부시게캄캄한정오에』,동시집『토마토개구리』『눈치보는넙치』『지느러미달린책』이있습니다.2006년김수영문학상수상,2014년출판놀이‘주머니속동시집’공모에당선되었습니다.

목차

1부옹송망송흐릿한눈을썩썩비벼보는데
빨간정말10
네잎클로버키우기12
손가락츄파춥스14
누가물어봤나?16
틀니가웃는다17
비몽사몽18
빨간망토의골목20
누워서별따기22
잠들기는어려워24

2부바람과파랑에몸을실어
콩의노래28
초당두부30
브로콜리32
별박이자나방애벌레34
월식36
드림캐처38
오늘나는론섬조지40
돌속의새42
설레는양파44
불가사리46

3부생게망게이상한숲이내안에있어
글꼴의역사50
나도그렸지52
나비와비를긋다54
눈치와뱁새56
모기의경고58
먼지카드59
할머니가방60
배꼽의길62
잘들린다64

4부너랑나랑삭의어둠을밝히면
조마조마첫걸음마68
바다손은약손70
멸치의자존심71
여름,풋72
여우콩여우팥74
토끼속의달76
가을검은밤나방78
노래하는돌80
달데이트81

5부직선을그을땐조심해야해
고양이두부먹기84
달을조금샀어86
토마토개구리의빨간겨울잠88
캐나다회색곰이야기90
드라큘라의다이어트92
일식93
이유있는변명94
직선긋기96

해설|우경숙99

출판사 서평

직선하나그으려했을뿐인데
내안에펼쳐지는생게망게이상한숲

직선을그린다는게
손이흔들려물결이되었어

물결은물결을낳아
곧바다가되었지
_「직선긋기」부분

모험의시작과끝은‘선그리기’이다.한번그린선이절로다음이야기를펼치는과정은우리가꿈속세계로진입하는과정과닮았다.‘꿈’이란잠자는동안깨어있는것과마찬가지로사물과현상을인식하는것,밖으로내보이지않으면내안에서생겨나내안에서사라지고마는것.시인은그“옹송망송”하고“생게망게”한꿈의시공간을단단히붙잡는다.어항을그리고물풀을그리고금붕어를그리고물결을그렸더니빨간지느러미가살랑살랑헤엄치기시작하고(「빨간정말」),어젯밤도화지에그려놓았던잡채와아이스크림은다음날흔적도없이사라져있다(「비몽사몽」).내가그린그림에서촉발되는이상한현상,현실의논리로는받아들이기어려운현상들이능청스레펼쳐지니이꿈들은더이상혼자만의일이아니다.너와나의공유경험이되고,그렇게환(幻)의영역으로나아가고,어느새여러존재들이어우러져놀고있는환상의숲공간에이른다.

이처럼시인의모험은지극히사적인‘꿈’의이미지에서출발하지만혼자만의공상으로빠지지않고‘우리’라는주체를너그럽게껴안는다.하늘의별대신바닷속별을꿈꾸는별난돌멩이(「불가사리」),한뼘한뼘하늘을나는연습중인별박이자나방애벌레(「별박이자나방애벌레」),돌속에서제있던곳을향해날아가는흰새(「돌속의새」)모두‘꿈꾸는존재’로서하나가된다.특유의“막힘없는연금술”(유강희)로서로이질적으로분류되던개체들이온전히연결되는것이다.이는합일에의지향이기보다“공생의실현”(우경숙)에가깝다.

개구리는생각했어.온통빨강이잖아.난토마토개구리가아니라크리스마스개구리였군.애써졸음을참은보람을느끼며토마토개구리아니,크리스마스개구리는눈이불을덮고비로소다디단빨간잠에빠져들었지.
_「토마토개구리의빨간겨울잠」부분

‘물거야,물거야’
경고했는데도피하지못했으니
물려도할말없다
_「모기의경고」부분

시인은개별성을지우지않으면서도함께어울려놀수있는꿈의세계를그려냈다.그러니꿈으로의전환을지연시키는‘모기’(「모기의경고」)와‘고등어’(「잠들기는어려워」)의존재감도특별하다.방해꾼이아니라잠이지연되는동안공존하는개체가되면서어느존재도다른존재에의해지워지지않는다.이안온한세계에서조그마한것들은“적잖은위로”를받는꿈의공간으로부드럽게나아간다.강기원의동시집을함께읽으며우리는어떤모양의잠을잤으며어떤색깔의꿈을꾸었는지,도란도란말해보고쫑긋들어보고살랑살랑그려보는놀이를할수있을것이다.

정말환상적이야
 침대가출렁출렁흔들리더니
  밍크고래처럼방안을떠다녀
   밍크고래위에누워
  고등어들의떼춤에맞춰흥얼거리며
 난생각해
오늘밤도잠자긴틀렸군
_「잠들기는어려워」부분

말의틈에서뻗어나오는이야기
너도나도한뼘자라나게하는지극한사랑의힘

공생은말의봉합과해체를통해서도일어난다.「여우콩여우팥」속여우콩과여우팥,「나비와비를긋다」속물결나비,「가을검은밤나방」속가을검은밤나방은벌써제이름안에흥미로운이야기를품고있다.생소해보이는것도그이름으로부터털실처럼풀려나오는이야기를걸음걸음짚어나가다보면어느새친근하다.한편멸치에서광활한바다를느끼고(「멸치의자존심」),어둠속콩나물들의노래를듣는마음안에는자연물에대한호기심을넘어서는존중심이있다.친근하지않았던대상이라면친근하게,친근했던대상이라면지극하게볼것을제안하는시인의마음이여기저기다정함을퍼뜨린다.이를“사랑의힘”이라명명할수있겠다.

“처음에는호기심을갖고대상을응시하다가,그가살아가는방식을헤아리며깊이공감한다.내속에그의공간이점점울창해지다보면다른이들은알지못하는그의전부를상상하게된다.이렇게상상은나와다른세계에대한호기심에서시작된다.세부적으로확장된상상은지극히사랑하는상태와비슷하다.그렇기에강기원이그리는상상세계도사랑의힘에서온다.”_우경숙(아동문학평론가)

바람과파랑에몸을싣고몽환의숲을유영하는시간
조금더오래놀고싶은안온한환상세계

강기원의숲은일러스트레이터류은지의부드러운터치로한층더몽환적이고아름답게형상화되었다.그속에서물기둥솟는소리가다들릴것같이싱그러운조팝나무와모란의곁을지나면깡충뛰노는빨간고양이와초록여우와눈맞출수있는곳.이몽환의숲에놀러온이라면누구라도조금더오래머물고싶을것이다.그렇게형형색색반가운존재들과한바탕숲의유영을즐기고나면,돌아온현실에서키가한뼘이나자라있을지도모를일이다.이제배낭속스케치북과크레파스를꺼내‘그리기’와‘바라보기’의잠재력을가득머금은그림들을하나하나따라그려보아도좋겠다.명심해야할사실하나,선을그리기전에단단히심호흡을할것!

*인증유형:공급자적합성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