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직선 하나 그으려 했을 뿐인데
내 안에 펼쳐지는 생게망게 이상한 숲
내 안에 펼쳐지는 생게망게 이상한 숲
"언제부터인지 이상한 숲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어요.
그 숲으로 가는 길은 지도에 없어 내비 대신 나비를 따라가야 한대요. (……)
이제 배낭 속에 서른여섯 가지 크레파스와 스케치북,
자물쇠 달린 빨간 일기장을 챙겨 그곳으로 떠날 거예요.“
_시인의 말에서
“세상의 경이로움과 경이로운 표현”을 궁리하며 발칙한 상상과 공상을 멈추지 않는 강기원 시인이 츄파춥스처럼 달콤한 동시집을 들고 찾아왔다. 강기원 시인은 『작가세계』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바다로 가득 찬 책』으로 김수영문학상을 받았으며 『토마토 개구리』로 출판놀이 ‘주머니 속 동시집’ 공모전에 당선된 이력이 있다. 이번 책은 25년간 시와 동시를 부단히 넘나들며 독특한 미적 세계를 구축해 온 그가 4년 만에 선보이는 동시집이다. 전작 『지느러미 달린 책』에서 천진한 목소리로 존재들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물었다면, 이번 동시집에서는 그의 미적 세계에 뿌리내리면서도 한층 더 깊고 지극해진 시선까지 담아냈다. 제목 “우리 여우 꿈을 꾼 거니?”는 질문의 모습을 한 초대의 문장이다. 배낭 속에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챙겨 넣었다면, 내비 대신 나비를 따라 재미난 소문이 무성하다는 숲으로 함께 떠나 보자.
직선 하나 그으려 했을 뿐인데
내 안에 펼쳐지는 생게망게 이상한 숲
직선을 그린다는 게
손이 흔들려 물결이 되었어
물결은 물결을 낳아
곧 바다가 되었지
_「직선 긋기」 부분
모험의 시작과 끝은 ‘선 그리기’이다. 한번 그린 선이 절로 다음 이야기를 펼치는 과정은 우리가 꿈속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과 닮았다. ‘꿈’이란 잠자는 동안 깨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는 것, 밖으로 내보이지 않으면 내 안에서 생겨나 내 안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 시인은 그 “옹송망송”하고 “생게망게”한 꿈의 시공간을 단단히 붙잡는다. 어항을 그리고 물풀을 그리고 금붕어를 그리고 물결을 그렸더니 빨간 지느러미가 살랑살랑 헤엄치기 시작하고(「빨간 정말」), 어젯밤 도화지에 그려 놓았던 잡채와 아이스크림은 다음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비몽사몽」). 내가 그린 그림에서 촉발되는 이상한 현상, 현실의 논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상들이 능청스레 펼쳐지니 이 꿈들은 더 이상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너와 나의 공유 경험이 되고, 그렇게 환(幻)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어느새 여러 존재들이 어우러져 놀고 있는 환상의 숲 공간에 이른다.
이처럼 시인의 모험은 지극히 사적인 ‘꿈’의 이미지에서 출발하지만 혼자만의 공상으로 빠지지 않고 ‘우리’라는 주체를 너그럽게 껴안는다. 하늘의 별 대신 바닷속 별을 꿈꾸는 별난 돌멩이(「불가사리」), 한 뼘 한 뼘 하늘을 나는 연습 중인 별박이자나방 애벌레(「별박이자나방 애벌레」), 돌 속에서 제 있던 곳을 향해 날아가는 흰 새(「돌 속의 새」) 모두 ‘꿈꾸는 존재’로서 하나가 된다. 특유의 “막힘없는 연금술”(유강희)로 서로 이질적으로 분류되던 개체들이 온전히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합일에의 지향이기보다 “공생의 실현”(우경숙)에 가깝다.
개구리는 생각했어. 온통 빨강이잖아. 난 토마토개구리가 아니라 크리스마스개구리였군. 애써 졸음을 참은 보람을 느끼며 토마토개구리 아니, 크리스마스개구리는 눈 이불을 덮고 비로소 다디단 빨간 잠에 빠져들었지.
_「토마토개구리의 빨간 겨울 잠」 부분
‘물 거야, 물 거야’
경고했는데도 피하지 못했으니
물려도 할 말 없다
_「모기의 경고」 부분
시인은 개별성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꿈의 세계를 그려 냈다. 그러니 꿈으로의 전환을 지연시키는 ‘모기’(「모기의 경고」)와 ‘고등어’(「잠들기는 어려워」)의 존재감도 특별하다. 방해꾼이 아니라 잠이 지연되는 동안 공존하는 개체가 되면서 어느 존재도 다른 존재에 의해 지워지지 않는다. 이 안온한 세계에서 조그마한 것들은 “적잖은 위로”를 받는 꿈의 공간으로 부드럽게 나아간다. 강기원의 동시집을 함께 읽으며 우리는 어떤 모양의 잠을 잤으며 어떤 색깔의 꿈을 꾸었는지, 도란도란 말해 보고 쫑긋 들어 보고 살랑살랑 그려 보는 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환상적이야
침대가 출렁출렁 흔들리더니
밍크고래처럼 방 안을 떠다녀
밍크고래 위에 누워
고등어들의 떼춤에 맞춰 흥얼거리며
난 생각해
오늘 밤도 잠자긴 틀렸군
_「잠들기는 어려워」 부분
그 숲으로 가는 길은 지도에 없어 내비 대신 나비를 따라가야 한대요. (……)
이제 배낭 속에 서른여섯 가지 크레파스와 스케치북,
자물쇠 달린 빨간 일기장을 챙겨 그곳으로 떠날 거예요.“
_시인의 말에서
“세상의 경이로움과 경이로운 표현”을 궁리하며 발칙한 상상과 공상을 멈추지 않는 강기원 시인이 츄파춥스처럼 달콤한 동시집을 들고 찾아왔다. 강기원 시인은 『작가세계』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바다로 가득 찬 책』으로 김수영문학상을 받았으며 『토마토 개구리』로 출판놀이 ‘주머니 속 동시집’ 공모전에 당선된 이력이 있다. 이번 책은 25년간 시와 동시를 부단히 넘나들며 독특한 미적 세계를 구축해 온 그가 4년 만에 선보이는 동시집이다. 전작 『지느러미 달린 책』에서 천진한 목소리로 존재들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물었다면, 이번 동시집에서는 그의 미적 세계에 뿌리내리면서도 한층 더 깊고 지극해진 시선까지 담아냈다. 제목 “우리 여우 꿈을 꾼 거니?”는 질문의 모습을 한 초대의 문장이다. 배낭 속에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챙겨 넣었다면, 내비 대신 나비를 따라 재미난 소문이 무성하다는 숲으로 함께 떠나 보자.
직선 하나 그으려 했을 뿐인데
내 안에 펼쳐지는 생게망게 이상한 숲
직선을 그린다는 게
손이 흔들려 물결이 되었어
물결은 물결을 낳아
곧 바다가 되었지
_「직선 긋기」 부분
모험의 시작과 끝은 ‘선 그리기’이다. 한번 그린 선이 절로 다음 이야기를 펼치는 과정은 우리가 꿈속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과 닮았다. ‘꿈’이란 잠자는 동안 깨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는 것, 밖으로 내보이지 않으면 내 안에서 생겨나 내 안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 시인은 그 “옹송망송”하고 “생게망게”한 꿈의 시공간을 단단히 붙잡는다. 어항을 그리고 물풀을 그리고 금붕어를 그리고 물결을 그렸더니 빨간 지느러미가 살랑살랑 헤엄치기 시작하고(「빨간 정말」), 어젯밤 도화지에 그려 놓았던 잡채와 아이스크림은 다음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비몽사몽」). 내가 그린 그림에서 촉발되는 이상한 현상, 현실의 논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상들이 능청스레 펼쳐지니 이 꿈들은 더 이상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너와 나의 공유 경험이 되고, 그렇게 환(幻)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어느새 여러 존재들이 어우러져 놀고 있는 환상의 숲 공간에 이른다.
이처럼 시인의 모험은 지극히 사적인 ‘꿈’의 이미지에서 출발하지만 혼자만의 공상으로 빠지지 않고 ‘우리’라는 주체를 너그럽게 껴안는다. 하늘의 별 대신 바닷속 별을 꿈꾸는 별난 돌멩이(「불가사리」), 한 뼘 한 뼘 하늘을 나는 연습 중인 별박이자나방 애벌레(「별박이자나방 애벌레」), 돌 속에서 제 있던 곳을 향해 날아가는 흰 새(「돌 속의 새」) 모두 ‘꿈꾸는 존재’로서 하나가 된다. 특유의 “막힘없는 연금술”(유강희)로 서로 이질적으로 분류되던 개체들이 온전히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합일에의 지향이기보다 “공생의 실현”(우경숙)에 가깝다.
개구리는 생각했어. 온통 빨강이잖아. 난 토마토개구리가 아니라 크리스마스개구리였군. 애써 졸음을 참은 보람을 느끼며 토마토개구리 아니, 크리스마스개구리는 눈 이불을 덮고 비로소 다디단 빨간 잠에 빠져들었지.
_「토마토개구리의 빨간 겨울 잠」 부분
‘물 거야, 물 거야’
경고했는데도 피하지 못했으니
물려도 할 말 없다
_「모기의 경고」 부분
시인은 개별성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꿈의 세계를 그려 냈다. 그러니 꿈으로의 전환을 지연시키는 ‘모기’(「모기의 경고」)와 ‘고등어’(「잠들기는 어려워」)의 존재감도 특별하다. 방해꾼이 아니라 잠이 지연되는 동안 공존하는 개체가 되면서 어느 존재도 다른 존재에 의해 지워지지 않는다. 이 안온한 세계에서 조그마한 것들은 “적잖은 위로”를 받는 꿈의 공간으로 부드럽게 나아간다. 강기원의 동시집을 함께 읽으며 우리는 어떤 모양의 잠을 잤으며 어떤 색깔의 꿈을 꾸었는지, 도란도란 말해 보고 쫑긋 들어 보고 살랑살랑 그려 보는 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환상적이야
침대가 출렁출렁 흔들리더니
밍크고래처럼 방 안을 떠다녀
밍크고래 위에 누워
고등어들의 떼춤에 맞춰 흥얼거리며
난 생각해
오늘 밤도 잠자긴 틀렸군
_「잠들기는 어려워」 부분
우리 여우 꿈을 꾼 거니? - 문학동네 동시집 89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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