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책

말하지 않는 책

$16.00
Description
지적인 비유와 농담으로 날카롭게 세태를 풍자하고, 특유의 기발한 설정과 낯선 배경을 통해 한계 없는 상상력을 선보여온 김솔 작가의 세번째 소설집 『말하지 않는 책』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2012년에 등단한 후 지금까지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는 문지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하며 다른 누구와도 구별되는 특별한 개성을 인정받아왔다. 정교한 구성력과 해박한 지식으로 직조해낸 치밀한 세태소설들을 통해 “소설이라는 장르가 또 한번 변태를 일으”(문학평론가 김형중)킨다는 평을 받은 첫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문학과지성사, 2014)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소설적 실험으로 구현해낸 두번째 소설집 『유럽식 독서법』(문학과지성사, 2020)을 잇는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시니컬한 농담과 경계 없는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책’이라는 물질을 다각도에서 바라보며 ‘책이란 무엇인가’ ‘작가와 독자, 그리고 책은 어떤 관계를 맺는가’와 같은 책을 둘러싼 오래된 문학론적 질문에 대해 뾰족하고 독창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김솔의 서사를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이야기 자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설이 던지는 질문들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책을 ‘안과 밖에서’ 읽는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저자

김솔

2012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으로《암스테르담가라지세일두번째》,《유럽식독서법》,《당장사랑을멈춰주세요,제발》,《말하지않는책》,장편소설로《너도밤나무바이러스》,《보편적정신》,《마카로니프로젝트》,《부다페스트이야기》,경장편소설로《모든곳에존재하는로마니의황제퀴에크》,짧은소설로《망상,어語》,《살아남은자들이경험하는방식》이있...

목차

말하지않는책_009
LittleBoy_047
낙타의세계_087
우는책_115
퍼플케이크─WalkingTree2_151
보이지않는왕관을쓴독재자_193
노래를들을때_223
당장사랑을멈춰주세요,제발_251

해설|박혜진(문학평론가)
태어나지않은독자를위한책_287

작가의말_305

출판사 서평

“천국에이르는열쇠중에는말하지않는책도포함된다.”

당신이독서를시작하는순간,이책의운명은바뀐다.
그리고당신의운명도.

표제작인「말하지않는책」은한수녀원을배경으로책이무엇인지,어떤힘을갖는지,독자와어떻게소통하는지,어떻게후대에전승되는지등을깊이탐구한다.소설은그리스도의적이여자의형상으로태어난다는믿음을지닌대주교가훌륭한성직자로평가받는마르타수녀를탄압하려하는팽팽한긴장감을자아내며시작된다.마르타수녀는대주교와만유의진리인『성서』를부정하는내용의책을썼다는오해를받고종교재판에소환된다.마르타수녀는종교재판에서『성서』가존재하는한책을쓰지않겠다고맹세하지만,그녀를음해하는세력들에의해다시종교재판에소환되고만다.그러나마르타수녀가결코『성서』를부정하는글을쓴적이없으며,쓸수도없다는사실을아는단한사람이있다.바로펠리페수사이다.수도원의모든이들은“마르타수녀가세살때『마태복음』을라틴어로읽는걸”직접들었거나,“열다섯살이되기전에그리스어와이탈리아어,스페인어와프랑스어를완벽하게구사할수있게됐다는소문”(19쪽)을믿었지만펠리페수사는그녀가그럴수없다는걸안다.왜냐하면그녀는『성서』를오독하거나몰이해하는일을막기위해스스로문맹에이르렀기때문이다.이사실을알게된펠리페수사는마르타수녀를음해하는세력에맞서기위해오직진실만이담긴두루마리를써내려가기시작한다.

이어지는「LittleBoy」에서는“독자들은거의사라진반면작가들은크게늘어”(65쪽)난세상을배경으로책에대한탐구를이어간다.소설에는자서전을출판하여대통령선거에영향을미치려하는한대기업회장이등장한다.그는국내유명작가들에게대필을맡기고화자인‘나’에게그원고들을적절히편집하라고지시한다.흥미로운점은이러한상황에서중요하게부각되는존재가다름아닌‘스타독자’라는것이다.스타독자의영향력은막강하여이들의“주목을받지못한작가들은고독해”(66쪽)지기에이른다.상황이이렇다보니대기업회장역시현재가장추종받는스타독자로수많은팬을거느린라울페레스에게추천사를받고자한다.그런데알고보니그는스물세명의사람을죽이고종신형을받아교도소에갇혀있는살인자였다.책을너무많이읽은나머지과대망상증에시달리다사람을죽이기에이르렀다는것이다.하지만그의영향력을무시할수없는‘나’는그에게추천사를받기위해그가수감되어있는교도소에찾아가고그곳에서뜻밖에스타독자라울의비밀을듣게된다.

그렇다면「우는책」은어떨까.한국에서영어가공용어가되는상황을가정하여펼쳐지는「우는책」은영어가공용어로서한국에도입되는과정과반대로다른나라에서한글을수입하려하는과정을현실감있게묘사하며언어가상황에따라중요하게다뤄지거나소멸하는과정을그려낸다.한글이사라지는극단적인상황은우리로하여금특정언어로기록을남기는행위가어떤의미인지끊임없이질문하게한다.특히나「우는책」은일기와편지,역사기록이라는다양한형식을차용하여각각의기록물의형태에따라읽는방식을달리하게만든다.하나의사건이여러형식으로기록되어있지만,어떤기록도모든진실을완벽하게설명할수는없기에이소설의곳곳에는빈틈이존재한다.그리고그빈틈을채워나가는것은독자의몫이다.과연우리는“문자에담기지않고여백에담”(「말하지않는책」,14쪽)긴책의진짜목소리를들을수있을까?

“김솔은내가아는가장희귀한작가이다.
모든것이있고아무것도없는그의소설은너무나보편적이어서특수하고
전적으로보편적이어서경이롭다.”_박혜진(문학평론가)

한편으로『말하지않는책』은낯선인물,낯선상황,낯선배경으로가득찬낯선소설집이다.「퍼플케이크―WalkingTree2」는환상적인상상을기반으로하여현실을풍자하는김솔작가의특징이돋보이는단편이다.몸에서씨앗이나오는것을알게된M은자신이나무로변하고있다는생각에공원관리소에서근무하는‘나’에게자신을관리해달라고부탁한다.M이몸에서배출해내는씨앗들중대마씨앗이섞여있다는것을알아챈‘나’는M과의동업을통해‘퍼플케이크’라는이름의씨앗가게를차려대마씨앗을팔고자한다.비밀스러운대마거래를통해많은돈을거머쥔‘나’는M의대마생산량을늘리기위해다양한시도를하면서도,M이언젠가자신을배신하지않을까하는불안감에시달린다.

터무니없는것으로치부될수있는독특한상상력에핍진한묘사를더함으로써독자를소설속으로끌어들이는김솔작가특유의몰입력은「노래를들을때」에서도확인할수있다.이소설에는몸에서끊임없이노래가나오는여자가등장한다.그녀는다양한시공간에존재하지만,소설에서그녀가자신의입으로직접말하는장면은거의나오지않는다.그녀와대화하는상대의목소리나그녀가바라보고있는상황만이묘사되기때문에독자는마치그녀가되어그녀의입장에서소설속상황을경험하게된다.그녀는특히정치적으로혼란한,민중이탄압당하는시간과장소에존재한다.그녀는집단학살사건이일어난1995년보스니아스레브레니차,야간통행금지가해제되기직전인1982년서울,쿠데타가벌어진1973년칠레등노래가환영받지못하는시공간에존재하는것이다.그녀는이런상황에서스스로에게묻는다.민중들이무차별적으로탄압당하고,스스로가하지않은일에대한자백을강요받고,무자비하게죽임을당하는시대에왜자신의몸에서노래가흘러나오는지.소설을읽다보면우리또한결코자신의뜻대로노래를멈출수없는그녀와같은질문을떠올리게될것이다.

수많은은유로가득한「보이지않는왕관을쓴독재자」는P국이라는가상의국가를배경으로P금속을통해부를축적한‘칼을찬독재자’가‘보이지않는왕관을쓴독재자’에의해몰락하고결국P국이라는국가가세계지도에서사라지는과정을그린다.P국에서만생산되어“인류가개발한모든전자제품에활용될수있”(198쪽)는P금속으로P국뿐만아니라전세계경제를뒤흔드는권력을지닌‘칼을찬독재자’는P국에서오래전부터살아온원주민들을내쫓고국민들을P금속채취에강제로동원시키는등악랄한독재를이어나간다.그런데‘칼을든독재자’의‘변덕과궤변’탓에“전세계사람들이적어도반세기동안사용할수있을만큼매장돼있다던P금속이모조리고갈”(214쪽)되는사태가벌어지고,P국은결국몰락의길을걷게된다.소설내내‘보이지않는왕관을쓴독재자’의정체는모호하게그려진다.외모나성격에대한구체적인묘사가거의없으며,출구라곤없는방에갇혀있다가도바로탈출하는등인간이아닌존재처럼그려지기도한다.그러나이소설이코로나19바이러스로모두가혼란스러웠던2022년에쓰였다는점을고려한다면우리는‘보이지않는왕관을쓴독재자’의정체가무엇인지어렵지않게추측해낼수있을것이다.그런후다시소설을읽어나간다면김솔작가가섬세하게직조해놓은은유에감탄하게될것이다.

이번소설집에는논리적인사건전개가돋보이는단편들역시담겨있다.물리학을기반으로한세계관이특징적인「낙타의세계」에서작가는진실로가득찬세계에대한주인공의열망과현실의인과관계가모두뒤틀리는순간을실감나게묘사하고,수록작가운데가장현실과가깝다고할수있는「당장사랑을멈춰주세요,제발」에서는‘벨라증후군’이라는유전병을앓는루시일가의삶을통해‘장애’를둘러싼문제를우화적으로그려낸다.무엇이옳거나그르다고단정하지않고그저이야기를들려줄뿐인이소설들은우리로하여금소설과현실의상황을견주어보고스스로판단하게끔이끈다.

이처럼기발한상상에서출발해우리의예상밖으로무한히뻗어나가는이여덟편의소설을읽는동안우리는여러질문들에붙들리게될것이다.소설에서그려진공간이어디인지,지금무슨상황이펼쳐지는지,앞으로어떤상황이이어질지아무것도예측할수없기때문이다.그러나간단하게답을내릴수없는이복잡한상황한복판에서즐겁게헤매게하는것이이번소설집이품은진짜매력인지도모른다.그리고질문을멈추지않은채이번소설집을읽어나가다보면우리는독서를통해“독자와화자와등장인물과저자의운명”이,그리고이“책의운명도바”(「말하지않는책」,14쪽)뀌는경험을하게될것이다.또한우리자신의운명도.

“책은(전혀)듣지못한다는약점을감추기위해(끊임없이)말을건다.진리는문자에(거의)담기지않고여백에(겨우)담긴다는진리를정작책은(애써)외면한다.(결코)말하지않겠다고선언한책조차도사실은,(먼저)말하진않겠지만누군가(굳이)말을걸어온다면(그즉시)대답하려고(잔뜩)벼르고있다.책에서입을떼어내고귀를달아준다고한들책은고막을울려서라도(기어이)말을이어갈태세다.여기까지(벌써)도착했다면,돌아가기엔(이미)늦었다.이책의말을(가깝게)듣는대신이책에말을(건성으로)거는독서법을당신에게(슬쩍)추천하겠다.나의무명만큼이나당신의부재가(늘)고맙다.”_‘작가의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