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내가 가질게

밤은 내가 가질게

$16.00
Description
어둠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빛을 표현하는 작가
안보윤 단편소설의 정수

더 조용한 속도로, 더 조심스러운 각도로
감춰진 마음의 겹을 들추는 섬세한 손길
상처 입은 이들의 시선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의 가혹한 진실을 들여다보며 아픔을 어루만지고 회복의 길을 열어온 작가 안보윤의 세번째 소설집 『밤은 내가 가질게』가 출간되었다. 『소년7의 고백』 이후 오 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소설집에는 2023년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 「애도의 방식」을 비롯해 현대문학상 수상작 「어떤 진심」, 김승옥문학상 수상작 「완전한 사과」가 수록되었다. 환상과 실재의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표상하고 인물의 심리를 파고들며 그 솜씨를 인정받았던 안보윤은 최근 완성도 높은 서사, 인물의 입체적 면모를 드러내는 촘촘한 묘사, 익숙한 흐름을 답습하지 않는 시선으로 문학상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아왔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에서 안보윤은 일상이 파괴될 만큼 커다란 고통을 겪은 이들이 어떻게 다음 삶으로 이행해가는지 그 행로를 좇는다. 사이비종교 집단에 더이상 소속감을 느끼지 않음에도 남아 있기를 택한 신도(「어떤 진심」), 범죄자인 오빠 때문에 직장을 잃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여동생(「완전한 사과」), 돌봄방 아이들을 학대한 혐의를 받는 엄마를 위해 정작 자신이 받은 학대를 묻어두고 대신 합의를 진행해야 하는 딸(「미도」) 등, 안보윤의 인물들은 모두 막다른 길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가늠하며 새로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신을 옥죄던, 동시에 자신의 전부였던 세상을 잃은 그들은 과연 현실에 맞설 것인가 순응할 것인가. 안보윤은 선과 악으로 이분할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사정을 끈질기게 따라가며 그들이 말하거나 말하지 않은, 차마 말하지 못한 진심을 소설적 현실에 담아낸다.

어떤 진심은 꿈을 짓밟고 어떤 진심은 모멸감을 준다. 어떤 진심은 효용을 감지한 후에야 위로의 말을 건넨다.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하는 마음도 진심이고 속이는 마음도 진심이라면, 그때의 진심이란 얼마나 섬뜩하고 무서운가. 무엇보다 누군가를 외면할 때의 진심과 이후 그 순간이 야기한 죄책감을 되새기는 마음은 얼마나 가까운가. 안보윤은 이처럼 여러 겹의 진심으로 다양한 마음의 결과 행방을 되새기며 진심의 쓸모를 캐묻는다. 좋은 소설은 인간의 얼굴을 사면상처럼 묘사하기 마련이다. 각도에 따라 한 사람의 안색이 달라 보이게 마련인데, 안보윤이 「어떤 진심」에서 그려낸 인물의 얼굴이 그러했다. _편혜영(소설가), 현대문학상 심사평에서
저자

안보윤

저자:안보윤
2005년장편소설『악어떼가나왔다』로제10회문학동네작가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비교적안녕한당신의하루』『소년7의고백』,중편소설『알마의숲』,장편소설『오즈의닥터』『사소한문제들』『우선멈춤』『모르는척』『밤의행방』『여진』이있다.자음과모음문학상,김승옥문학상,현대문학상,이효석문학상대상을수상했다.

목차

어떤진심…007
완전한사과…039
애도의방식…073
바늘끝에서몇명의천사가…103
미워하는일…139
미도…173
밤은내가가질게…211

해설|정여울(작가,문학평론가)당신의마지막안전지대는어디입니까―트라우마이후,상처를정면으로직시하는문학의힘…253

작가의말…273

출판사 서평

“이세상은공평해.네가선을가지면저쪽이악을가져.”

표제작「밤은내가가질게」는매서운현실에맞서더냉담해지기로결심한인물이진정한사랑과공감의형태를알아가는과정을따라간다.학대피해아동주승이를담당하게된어린이집선생님‘나’는주승이가등원할때한번,하원할때한번아이의옷을벗겨상처가없음을보호자에게확인시킨다.불필요한누명을쓰지않으려행하는이방어기제는그동안폭력에가까운민원을제기하는학부모들을상대하며만들어진것이다.

5세반점심반찬으로시금치가나왔었거든.다음날애아빠가들이닥쳐서는자기딸한테시금치를먹였다고멱살을잡더라고.그걸먹고애가체해서응급실에다녀왔다나.무릎꿇고빌라고난동을피우다가난데없이시금치한통을꺼내는거야.시금치가그렇게몸에좋으면니가다먹으라고,자기가보는앞에서당장다먹으라고.
먹었어요?
먹었지.몇년이지났는데도아직도궁금해.애가아팠다면서그이른시간에시금치무쳐올생각을어떻게했을까.다른사람을괴롭히겠다는일념으로어떻게그렇게까지부지런해질수있었을까.(238~239쪽)

이세상은공평해.네가선을가지면저쪽이악을가져.네가만만하고짓밟기좋은선인이되면저쪽은자기가제멋대로굴어도되는줄안다고.(231쪽)

‘나’에게는또하나의골칫거리인사고뭉치언니가있다.언니가이번에는사이비명상집단의꼬임에넘어가전세금을날리는바람에,‘나’는그녀와동거하는처지가된다.언니는‘나’의연인이선과친해져함께유기견봉사를다니기시작하는데,‘나’는그것이탐탁지않다.자기앞가림도못하는언니가약한존재에게측은지심을갖는동안,자신은필사적으로하루하루를살고있다는사실에화가난다.설상가상으로언니는나이들고병든유기견을입양하겠다고선언하고,‘나’는그만참지못하고불편한속마음을말했다가이선과도갈등한다.
그러나뜻밖의사건으로‘나’는자기안의상냥함을발견한다.등원한주승이의모습에서이상함을감지한‘나’는아이의몸에서오랜학대의흔적을발견하고본능적으로경찰에신고한다.사라지고없다고생각했던돌봄과배려가냉정을뚫고나오자,‘나’는언니와이선을비로소이해하게된다.상처받을줄알면서도손내밀기를주저하지않는그들의마음이자신을섬세하게감싸안고있었다는사실또한깨닫는다.유기견을집으로데려오던날,언니가개의목에서팬던트를떼어내면서속삭인“밤은내가가질게”라는말은두가지의미를지닌다.개의이름이‘밤톨이’에서‘토리’가된다는말일뿐아니라,사랑하는존재의어둠을흡수하여다정함으로빛나는세상을보여주겠다는선언이기도한것이다.

언니가개목에걸려있는은색펜던트에손을댔다.밤톨이라는이름이적힌,혹시라도주인이찾아올까봐계속걸어두고있었다던그것이었다.딸깍,소리와함께펜던트가떨어져나갔다.
밤은내가가질게.
언니가개의귀에작게속삭였다.늙고새까맣고병든개의이름은토리가되었다.(251쪽)

“엄마가죗값을다받았으면좋겠어.지은죄만큼정확히.”

「밤은내가가질게」의이야기는수록작「미도」「완전한사과」와연결되며자매의비극을기어코드러내고만다.돌봄방아이들을학대한혐의를받는엄마를위해,그들은피해자가족에게합의를간청해야하는처지에놓인다.아이들이겪었을고통을미도는누구보다상세하게알고있다.미도또한엄마에게아주어린나이부터학대를당해왔기때문이다.엄마는자신이없으면아무것도못하는무력한존재인것처럼미도를세뇌시켰다.
갈등하는미도에게동생의말은용기를준다.“학대는그냥학대야.거기엔어떤이유도붙으면안돼.”미도는동생에게오랜학대의고통을고백하고,자신의간절한소망을드디어이야기하게된다.“엄마가죗값을받았으면좋겠어.지은죄만큼정확히.”
그러나깊게팬상처는흉터로남아끈질기게그녀를따라다닌다.「완전한사과」에서주인공‘나’의오빠가폭력을휘두른상대는다름아닌그의아내미도다.그일로미도는자신의다리를,아기를,그리고반려견토리를잃는다.상황은이제더나빠질수없을것만같다.그럼에도불구하고읽는이가간절히그녀의행복을바라게되는이유는,아마도마지막까지그녀를지키고자애썼을토리를,그리고미도를사랑으로감싸고응원해온동생과이선을기억하고있기때문일것이다.

한편,「완전한사과」의주인공‘나’는오빠가가정폭력범으로세상에알려지면서방과후교사일자리를잃는다.억울할법한상황을‘나’는그저받아들이는데,그체념뒤에는오빠의폭력의역사가있다.오빠에게맞아깁스를했을때도,동생도윤의갈비뼈가부러졌을때도‘나’는어떤제재도하지못했다.단한번이라도오빠에게대항했다면,그랬다면지금의극단적인상황만큼은피할수있지않았을까.‘나’가가해자가족을향하는부당한시선에대한최소한의항변조차포기한것에는그러한죄책이깃들어있다.
그렇기에‘나’는초등학생동주가동급생승규에게괴롭힘을당하는걸목격했을때동주의하소연을떠올렸을것이다.“왜안되는데요?승규정강이까는거,그거딱한번이면되는데,(……)그것도안되면.그럼난뭘해요?”‘나’는손을뻗어거칠게승규를제지한다.지난날자신을,가족을,한여자와동물을지켜내지못했던스스로에게속죄라도하듯이.
지금도어디에선가가해자의가족들은‘나’처럼뜻밖의수모를당하고내적갈등을겪고있을것이다.읽는이는어느것도그들의잘못이아님을알고있지만,순진한위로의말을건넬수없다.안보윤은단편적인윤리의식으로는정의내릴수없는가해와피해의굴레를내부자의눈으로들여다본다.가능과불가능,책임과회피의모호한경계를오고가며죄책을되새김질하는이들은언제정당해질수있는지,과연우리에게그들의결백을승인할자격이있는지작가는묻는듯하다.

그러나가장억울한건이런것이었다.나는왜양껏오빠를증오할수없나.저주의끝에는왜늘습관처럼죄책감이들러붙나.나는거리낌없이오빠를찢어죽이라고말하는사람들이부럽다.나도그들처럼다만새까만사람이되어정의로운악담만을내뱉고싶다.살인자를욕하는데어떤책임감도느끼고싶지않다.
그날밤이후로나는오빠에대해자주생각한다.그러나생각해보면오빠가아닌,오빠가훼손한것들에대한생각이다.어떤진심도가닿을수없는사라진것들에대한생각이다.
_「완전한사과」,62쪽

“알리가없다.이미으깨진것을기어코한번더으깨놓는사람의마음같은건.”

「어떤진심」과「미워하는일」,「애도의방식」과「바늘끝에몇명의천사가」는폭력적인상황에처해있던인물들이스스로의힘으로곤경에서벗어날수있게되었을때내리는상반된결정을그린다.「어떤진심」의유란은사이비종교목사와바람이난엄마를따라교회로거처를옮겼다.어린시절부터꾸준히세뇌당한유란은절친한친구민주가구원받길바라는마음에교회로그녀를끌어들이지만,자라는동안교회의실체를알아채고믿음을그만둔다.그러나민주는어느새교회의핵심전력이되어믿음을볼모로시간과돈을착취당하고있다.유란은믿음없는마음으로여전히도움이필요한이들을찾아내신자로포섭한다.언젠가교회가충분히커지고신도가늘어나면민주를돌려받을수있으리라기대하면서.

매일을견디는것,그저하던일을계속하는것외에어떤일상이있는지유란은알지못했다.유란은소란한마음이가라앉을때까지심호흡을했다.그럼에도아직지우지못한문장이하나남아입속을맴돌았다.이젠누구도진심이아닌곳에왜열매들만이,오직열매들만이진심인채로남아있을까._「어떤진심」,38쪽.

「미워하는일」의주영은하굣길에동급생이한남자에게폭행당하는모습을목격하고부모에게정신적충격을토로하지만애정어린관심을받지못한다.엄마친구의딸인세연이같은날화상을입어돌봄을받아야했기때문이다.엄마친구는사이비종교에빠져세연을방임해왔는데,주영에게그것은세연의사정일뿐으로여겨진다.마땅히받아야할부모의사랑을빼앗겼다고생각한주영은자신을따르던세연에게무자비한말을내뱉고,세연은집을나가홀연히사라져버린다.성인이된주영은사라진후사고로목숨을잃은세연과하굣길에벌어진폭행으로후유증을앓게되었던어릴적동급생을떠올리며“매일매일이지옥같았다”고회상한다.두사건의발단에자신의치기어린귀책이있음을,주영은끝끝내아무에게도말하지않는다.

―그래서뭐?
내가다그치듯세연에게물었다.
―교회사람들이,그사람들이너한테무슨짓을했는데?널때렸어?
―아니.
―너한테욕을했어?그사람들이널함부로만졌어?
―……아니.
―그럼아무것도아니네.
세연이놀란얼굴로나를올려다봤다.나는세연의주근깨투성이얼굴을똑바로내려다보며말했다.얼굴이둥글어졌어도푸석푸석하던머리칼이보드라워졌어도몸에서좋은냄새가나도여전히엉망으로찍혀있는주근깨만을바라보며말했다.
―그럼아무일도없었던거잖아.아무것도아니라고.그러니까유난떨지마.(164~165쪽)

「애도의방식」은가해자의죽음을목격한학교폭력피해자의트라우마에서시작되는소설이다.스무살동주는대학에진학하거나고향을떠나는대신버스터미널안찻집에일자리를구한다.동주가미래를구체적으로꿈꾸지않으면서무감히현재를살아가게된것은과거의지독한악연때문이다.초등학교때부터동주는동급생승규에게괴롭힘을당했다.조용히지내다보면가해자의관심이다른아이에게로향하리라는엄마의기대때문에,동주는중학생이되어서도반항한번제대로해보지못하고기나긴폭력의시간을견딘다.그러던어느날,폐건물옥상에서동주를괴롭히던승규는옥상에서떨어져죽음을맞는다.승규의엄마는죽음의진실을알고자오랜시간동주를따라다녔지만,동주는강요된침묵을지켜왔다.

우리애한테무슨일이있었는데요?
복어처럼몸을부풀린엄마가소리쳤다.
우리애한텐아무일도없었어요.남자애들끼리좀치고받고놀수도있죠.괴롭힘을당했다니,대체누가요?
(……)
소문속에서나는승규의정강이를걷어차기도하고승규를등뒤에서힘껏떼밀기도했다.학교복도나급식실에서했다면대수롭지않을행동들이었으나난간이없는옥상에서는그렇지않았다.그만큼당했으니동주걔도한번쯤은.암만억울해도인간이어떻게그러냐.누군가는동조하고누군가는비난했다.매일매일이소란했다.아무것도,아무말도하지않는사람은나뿐이었다.(91~92쪽)

수년만에찻집으로찾아온그녀는동주에게사과를건넨다.죽음의이유를묻지않겠다고,다시는찾아오지않겠다고말하고돌아서는그녀에게동주는끝끝내아무말도하지않는다.이번침묵은엄마의강요가아닌동주의선택이다.승규가아닌그녀를위해,동주는온힘을다해주먹을휘두르던승규의마지막표정을말하지않는다.

「바늘끝에몇명의천사가」의하진은학과조교에게스토킹을당해경찰에신고한다.그러나경찰도,엄마도가해자를용서하라고말한다.“딱한번”뿐이었다는가해자의말에서,하진은자신의목을졸랐던엄마가“딱한번”저지른일이지않으냐며용서를구했던순간을떠올린다.곤경에처한하진에게힘을주는건중학교동창이자이웃인유영이다.유영은아빠의가정폭력에오래시달렸고,폭력에서벗어난뒤에는도움이필요한이들에게먼저다가가손을내민다.

―나는저소리가뭔지알아.저게뭘의미하는건지,나는
알아.
유영이말했다.하진이유영의팔을끌어안듯붙잡고주저앉는바람에유영이휘청거렸다.하진이숨을몰아쉬었다.머리위에서는너무많은것이부서졌고더많은것이깨졌다.사물은쓸모없어졌을것이고공간은결코안전할리없으며그안의누군가는,그안의누군가는.가지마.하진은그렇게말했다.스스로의비겁함에몸을떨면서도유영을붙잡았다.
―나는그때,매일매일기다렸어.
유영이하진을조심스레떼어내며말했다.
―누가나를도와주기를,누가딱반뼘만문을열고안을들여다봐주기를.비명을지르면더많이맞으니까베개에얼굴을처박고매일생각했어.제발누구라도,아주잠깐만이라도나를숨겨달라고.(137~138쪽)

「어떤진심」의유란과「미워하는일」의주영은자신에게가해지던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