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것과 없는 것 - 문학동네 시인선 204

투명한 것과 없는 것 - 문학동네 시인선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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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이듬

2001년『포에지』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별모양의얼룩』『명랑하라팜파탈』『말할수없는애인』『베를린,달렘의노래』『히스테리아』『표류하는흑발』『마르지않은티셔츠를입고』가있다.시와세계작품상,김달진창원문학상,22세기시인작품상,2014올해의좋은시상,김춘수시문학상등을수상했다.『히스테리아』의영미번역본이전미번역상과루시엔스트릭번역상을동시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여기내살갗의무늬가있다
입국장
폐가식(閉架式)도서관에서
뮤즈
간절기
리얼리티
저지대
불을빌리러온사람
적도될수없는사이
다행은계속된다
사랑의역사

2부우리의몸속엔각자의바다가있다
시린소원
십일월
저속
카프리치오
자각몽
저녁의모방
시월
오픈키친
오늘의근처
귓속말
당신의문
야외용식탁

3부나는내생애최고의시를쓰고있어요
내일쓸시
죄와벌
후배에게
습지
클라이맥스없는영화처럼
드라이클리닝
주말의조건
내가던진반지
필균의침대
문라이트
환기
여름효과음악

4부아직나의영혼은도착하지않았다
호텔은묘지위에만들어졌다
두유리드미
스몰레볼루션
여장남자아더씨
도로시아
이날개달린나그네,얼마나서투르고무력한가
너는여기에없었다
말없는시간

5부악몽은잘이루어진다
사악한천사의시
야간비행
비밀과거짓말
올스파이스
연가
공동작업실
서푼짜리소곡
텍사스에서
조용한겨울
미추
현지인
일반상식
외로운사람

6부어쩌면시에의미가있을지모른다
구도시
비지엠
신년청춘음악회
먼미니멀라이프
켤레
노이렌바흐
모르는지인
그림자없는여자
크리스마스에디션
어제의말들
프리랜서
내일

해설|복행(復行)의시|소유정(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알려줄것들이조각케이크처럼부드럽고달콤하기만하다면

시집의문을여는시편「입국장」의화자는공항에서미국국적의친구를기다리며이도시를어떻게소개할지고민한다.공항내에는노동자산재사고가잦은“제과업체의체인점”이입점해있다.뿐만아니라아직도뮤즈타령을하는음험한예술가(「뮤즈」)가,“생애동안준비만했던이들”이죽음을맞았는데그런곳엘왜갔냐고비난하는사람들(「신년청춘음악회」)이도시의도처에있다.그럼에도불구하고이곳을자신이사랑하는곳이라고말할수있을지화자는고민한다.

해변으로떠내려온나체가있다
익사체를구경하는사람이있다

정말진짜같아

누가사람인가
(……)
지하철알루미늄의자에앉아그는외국에서올여자를상상한다
무료배송으로도착할진짜여자의촉감을기대한다
인터넷쇼핑몰뒤져걸스카우트유니폼을고르고있다
말을하는여자는피곤해
_「리얼리티」에서

화자들은스스로의실존을확인하는것에도거듭실패한다.「리얼리티」는‘여성’과‘리얼돌’의외양적동일성이여성을사물화하는인식과합치되는양상을그린다.겉모습도같고사물처럼여기는인식도같다면,리얼돌과여성을구분하는것은유의미한가.대상화된여성화자들은자신을보호하기위해애쓰고,입버릇처럼‘다행’이라는말을달고산다.존엄을부정당한이들의위태로운실존의식은“다행은행운이많다는뜻이기보다/위기를모면한이의탄식처럼들”(「다행은계속된다」)린다는시구로포착된다.

음악을좋아해?
걷는걸좋아해?
맛있는걸좋아해?

네가사는것도좋아하면좋겠다
(……)
사는게뭘까?
연말퇴근길에너는말했지
다른부서과장의부친상에조의금을부쳤고야근을했고배고파죽겠다고
회사가는게괴롭다고했어
사는게뭔지달아나고싶다고
(……)
일과중에나는너를기다리는이시간이제일좋아
널만날약속없었다면온종일끔찍했겠지
나도너처럼습관적으로한숨쉬지만

네가얼굴뾰루지랑새치를걱정하면서도
솟아오르는웃음을터뜨리면좋겠어
_「후배에게」에서

부조리에환멸하고실존을고민하며위태로운하루를보내고있지만,김이듬의화자는“네가사는것도좋아하면좋겠다”고주저없이후배를지지한다.“아무리죽이고싶어도//죽지말자”(「내가던진반지」)고,다시한번살아보자고떠밀려가는존재들을부표처럼붙잡고설득한다.비록두눈에는눈물이고여있지만“네가눈을깜박이는동안/너는나의등대같아서/서로를찾아올수있을”(「저속」)것이므로.느린속도이지만서로의행적을등불삼아따라가다보면삶의아름다운순간들을맞이할수있으리라는본능과도같은확신을김이듬의화자는가지고있다.

투명한것과없는것을혼동하지않을때까지

김이듬은일상의에피소드를시속으로소환하여익숙함의틈을짚어낸다.짜장면을먹다말고서로의정치적입장이다름을알게된두친구(「적도될수없는사이」)와지인에게왜이렇게절뚝거리며걷냐고물었다가소아마비로장애가있다는사실을뒤늦게알게된‘나’(「모르는지인」)의난감한이야기에서,우리는영원히타인을완벽히알수없다는고연한사실을인지한다.
김이듬의화자는이사실을알면서도멈추지않고다른존재들을온몸으로들여다본다.잘닦아놓아투명해진유리창은언뜻없는것처럼보이지만,새가부딪혀죽을수도,사람의코가깨질수도있음을이야기한다(「간절기」).위험수목으로지정받아베일위기에처한나무를섣불리위로할수있을지고민하며,“어쩌면나무들은베어지고싶을지도”모른다고방향을바꿔생각해본다(「클라이맥스없는영화처럼」).
이다면적인관찰은본질에대한관심과의문으로귀결된다.“네가사랑하는것이어디서왔는지”(「올스파이스」)알고싶어하는지극한마음이있기에세계와존재의본질을시로써자꾸만들여다보는것이다.그형태가마치복행(復行)하는비행체와같다고소유정문학평론가는해설한다.상처입을줄알면서도자꾸만우리의마음에부딪쳐오는시편들에서이모순된세상을포기하지않는이가있음을알리는파열음이,동시에자신을잃어가는이들을붙잡는구호의외침이들려오는듯하다.

사랑의본질에대한시인의탐구는한동안계속될것이다.적어도그가시를쓰는동안에는.죽고싶은마음은씀으로잠재울수있고,쓰다보면또사랑에대해묻게될테니까.“대표작”을묻는독자의질문에“제대표작은아직못썼습니다.내일이나모레쓸예정이에요”(「내일쓸시」)라고답하였듯,지연되는시간속에그가찾는사랑이있다.그렇기에김이듬의시는내일로복행(復行)한다.지금은이도시를사랑할수없어서,오늘은그의미를알지못해서,반복되는내일을향해다시금날개를편다._소유정(문학평론가),해설에서

김이듬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시집『투명한것과없는것』이출간되었습니다.2001년데뷔후여덟번째시집인데요.이번시집을선보이는마음이어떠신지궁금합니다.
무척설레면서도긴장됩니다.이번시집엔어디에도싣지않은미발표작과새로쓴시가유독많아서독자분들이어떻게읽으실지궁금해요.

Q2.‘투명한것과없는것’이라는제목을어떻게생각하게되셨는지궁금합니다.

지금까지출간된일곱권의시집제목은저혼자결정했어요.그런데이번시집제목‘투명한것과없는것’은문학동네편집부선생님들이골라주신몇개의제목중에서선택한것입니다.눈밝은편집자분께서제문장의얄팍한틈에서제목을발견해주신거죠.감사합니다.
‘투명한것과없는것’은확연함의측면에서정반대개념일수도있지만‘보이지않는다’는면에서는유사성이큰것들일수도있죠.비가시적인세계,없는것으로치부되는존재,언어로지칭할수없는것들이지닌아름다움을찾아가는시를쓰고싶습니다.

Q3.시편들에서부조리한세상에대한안타까움과분노가느껴집니다.그럼에도불구하고,화자는이세상을사랑하고자,사랑하며살아가고자하는데요.이애증의감정에많은분들이공감할것같습니다.상처입으면서도우리는왜다시사랑하고자마음을다잡는걸까요?

누구나부조리한세상에대한안타까움과분노를느끼며살아가고있을겁니다.저마다그감정에몸부림치거나해소하려애쓰면서요.저는피를흘리는심정으로시를쓰면서세상을응시하곤해요.그러다보면더러운웅덩이같은저의내면을헤엄쳐탐색할수밖에없죠.좌절감에휩싸여서도저는이세상과단절하여살수없다는걸알게되더라고요.결국저는사람들을눈여겨보고조응하며사람들을좋아하는사람이더라고요.사랑까지는잘모르겠어요.사랑은천차만별의색깔을가지고있는것같아요.사랑하지않는자를범죄자처럼보는사회가좋은걸까요?저는사랑이라는명목으로자행되는수많은폭력문제에더예민한편입니다.자신이상처받을지라도타인을다치게하는건사랑이아니라고생각해요.

Q4.이번시집에서는존재를다면적으로바라보려는화자의의지가또한돋보였습니다.「클라이맥스없는영화처럼」과같은시편에서는“감히짐작할수없”을지라도숲의세계를계속해서바라보고이해해보려고하지요.인간중심적사고를넘어존재의심연을들여다보고존중하려는화자의마음이귀하게느껴졌습니다.

“삶은나이아가라이거나아무것도아니다.나는풀잎한줄기의지배자도되지않을것이며그자매가될것이다.”(『긴호흡』,마음산책,118쪽)라는메리올리버의말이떠오르는데요.저도보드라운흙이나오래된조개껍데기보다인간이더우월하다고생각하지는않아요.

Q5.마지막으로,『투명한것과없는것』을감상할독자분들께인사를건네주세요.

저의시는도구로서의현실적용도는갖고있지않은것같아요.꼭그러려던건아닌데……프로포즈멘트나결혼식축가로쓸사랑스러운작품도없어요.시집제목처럼거의공백이죠.하지만시집이라는문손잡이하나를열고들어와뛰어다니며조금재미있어하면좋겠습니다.

시인의말

가진게없지만
시와함께라서
제삶은충만하고행복했습니다
어제시골의한회관에서
이십대신인의수상소감을들었다
눈물이났다
나만이상하게살아가는건아니다

2023년11월
담양글을낳는집에서
김이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