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믈렛 - 문학동네 시인선 203

오믈렛 - 문학동네 시인선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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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붙잡아두어도 될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보이지 않게 두어도 될까.
따뜻한 거 먹이고 싶다.”

시적인 것이 아닌 듯한 문장들의 배합으로 만들어낸 시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은 오믈렛, 그 이상한 충만감

한국시의 새로운 이름으로 기억될 임유영의 첫 시집 『오믈렛』 출간
2020년 시 쓰는 이들의 문학적 열망이 담긴 6천여 편의 시가 응모된 문학동네신인상 시 부문의 심사대에는 ‘아침’이라는 제목의 연작시 한 묶음도 올랐다. 9편 중 8편의 제목이 모두 ‘아침’인 이 응모작은 저마다의 개성을 부각시키려는 다양한 고투가 엿보이는 시편들 사이에서 오히려 심사자들의 눈에 띄었다. 무심하리만치 심상한 동일 제목의 시편들을 제출한 이 비범한 패기를 지닌 시인의 시는,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박상수로 하여금 “뭐야, 이게 시인가? 근데 왜 자꾸 생각나지?”(심사평)라는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죽음 앞에 선 인간, 혹은 이미 죽어본 경험이 있는 자의 내면을 펼쳐 보이는 ‘아침’ 연작은 기존의 익숙한 시와는 어딘가 다른, 낯선 목소리의 힘을 발했다. 이 응모자는 곱씹어 읽을수록 “어느 한 편 빠지는 작품이 없이 굉장한 디테일과 안정적인 이미지”를 구사하면서 “마치 한 권의 완결된 시집을 읽은 듯한 만족감”(시인, 문학평론가 박상수)을 준다는 감상을 불러냈고, “고유한 음악이 들렸다”(시인 박연준)는 소회를 불러일으켰으며, “삶의 표면을 따라 부드럽고도 유려하게 이어지는 아름답고 쓸쓸한 세계”(시인 황인찬)를 구축해냈다는 평까지 얻으며 그해 시단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올렸다. 시인 임유영의 이야기이다.
그렇게 작품활동을 시작한 임유영은 부지런히 신작 시를 발표하면서 독특한 리듬과 이야기성을 지닌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정확한 죽음의 시각을 기록하기」 외 5편이 “시가 끝난 후 시 전체를 시적인 것으로 순식간에 들어올”(문학평론가 이광호)린다는 평을 받으며 2021 문지문학상 후보로, 「호수관리자들」 외 5편이 “깊은 통찰력”과 “감각적인 예지력”(시인 김행숙)을 겸비했다는 평을 받으며 2022 문지문학상 후보로 연달아 선정되면서 문단의 기대와 신뢰를 받고 있음을 증명해냈다.
『오믈렛』은 그런 임유영의 첫 시집이다. 죽음과 탄생, 이야기와 다성성, 시쓰기에 대한 의식과 여성성 등이 알알이 녹아 있다. 1부(‘살아 계신 분을 묻어드릴 수도 없었고’)는 임유영식 시쓰기의 기원에 대한 힌트를 엿보게 하고, 2부(‘가서 돌 주우면 재미있을’)는 꿈인 듯 현실인 듯 아름답고도 쓸쓸하고 그만큼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3부(‘한데 섞인 흰자와 노른자의 중립적인 맛’)는 그 강렬했던 ‘아침’ 연작에 새로운 제목을 달아 선보이며 죽음 이후 다시금 깨어나는 듯한 반복과 각성의 장면들을 더욱 긴장감 있게 펼쳐 보이고, 4부(‘어디 가는 어린애와 어디 갔다 오는 개’)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협업한 결과로 탄생한 시의 색다른 창조성을 느끼게 한다.
저자

임유영

임유영.2020년문학동네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인의말

1부살아계신분을묻어드릴수도없었고
헤테로포니/부드러운마음/단단/미래로부터/도둑들/굴은바다의우유/너의개도너를좋아할까?―D에게/중국인학자의정원/부드러운마음/호수관리자들/생일기분/돌에서/구역/밤에

2부가서돌주우면재미있을
정확한죽음의시각을기록하기/꿈이야기/부드러운마음/유형성숙/호로고루/사랑의열매/만사형통/기계장치강아지/자연스러운일/얼굴들/처서

3부한데섞인흰자와노른자의중립적인맛
아침/인테리어/방랑자/오믈렛/병정들/선물가게/빗금/포노토그래프/우수(雨水)/진술

4부어디가는어린애와어디갔다오는개
무언가더욱중요한것이있다는생각/단감,단감/채소마스터클래스/움직이지않고달아나기멈추지않고그자리에있기/녹색병원/미꾸라지와뱀장어와지렁이와/파/라/목/토/담자균문/Air&Water/나리분지

해설|‘이상한마음’을따뜻하게다스리는‘완벽한방법’
조연정(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방과후문예반에서소녀들은정확한문장을쓴다.
소녀들은또래보다빨리읽는다.소녀들은하나의문장을시작하고끝낼줄안다.여러개의문장을잇고쓸데없는문장을뺄줄안다.

(……)

소녀들은선생님이친구의글을읽어주는걸듣다가
가끔눈물이날때가있다.

죽음과눈물과폭력과섹스와오물과고통이라면,소녀들은
역사를잊은민족에게미래는없다고쓰고치워버리지만

어느여름오후

선생님이사과한알을교탁에올려놓고
그것에대해쓰라고하셨을때

소녀들은죽음과눈물과폭력과섹스와오물과고통을생각하는
완벽한방법을알아낸다.

음악이시작된다.
_「헤테로포니」부분

시집의문을여는「헤테로포니」는“방과후문예반소녀들”의이야기를그린다.이들은과학기술의발전이나조국통일에대한염원,독립열사추모처럼선생님이쓰라고한주제로시를써내지만,이들의마음을진실로붙들고있는것은“죽음과눈물과폭력과섹스와오물과고통”인듯하다.의무와강요에서벗어나“음악”처럼“시작”되는소녀들의시는“같은선율을조금씩다르게,수평적으로연주하는”(문학평론가조연정,해설)다성음악의일종인‘헤테로포니’처럼울려퍼진다.
여기서주목할만한점은임유영의문장이지닌‘수평성’이다.임유영의문장은대체로특별한미사여구도,소위‘시적인’수사도생략되어있다.위계없이평이한단어들이모여뜻밖에반전을거듭발생시키고,그로인한화음을통해독특한정서적울림을준다.

사고가나서여자아이는죽어버렸다.나는그날꽃은못보고돌아가던길에교복집하는늙은남자에게이상한이야기를들었다.그는아이의뒷모습에서죽을징조를벌써보았다고주장했다.(……)그러나나는그영감의말을곧이믿지는않았다.무릇꿈이란뇌에서배출된찌꺼기에불과한데,그런꿈을해몽한다는자들의말또한사람을현혹하는얕은수일뿐이다.그증거로나는사월의화창한대낮에꽤오래걸었음에도전혀땀을흘리지않았다.
어쨌거나나는붓을들어이이야기를종이에옮겨적었고,사람들이잘볼수있는벽에붙여두었다.후에그것을마음에들어하는사람이있어적당한값을받고팔았다.
_「꿈이야기」부분

해설에서“이번시집에서가장아름답고슬픈시”로꼽힌「꿈이야기」는사고를당해죽은여자아이의이야기이다.담담한문장들로전해지는죽은여자아이의사연을다읽고나면이시는여자아이의죽음의징조를느꼈다고주장하는늙은남자의꿈같기도하고,그이야기를들은화자‘나’의꿈같기도하며,그당시를전생처럼바라보는‘나’의기억처럼다가오기도한다.이모든이야기들을“적당한값을받고팔았다”는결말은또한번반전으로다가오면서읽는이로하여금다층적인해석의결을쌓아올리게한다.
“남쪽숲”에서태어난“새끼곰”(「단단」),“밤산책을나갔다가개한테손을잘못물린”사람(「너의개도너를좋아할까?―D에게」),“다리하나가없는새”(「생일기분」),“돌에서”나온사람(「돌에서」)등이등장하는시들또한담담한문장이종내에터뜨리는시적고양감을전해준다.
데뷔작이었던‘3부’의‘아침’연작시에서이미그런임유영시의힘이내포되어있었음을알아차릴수있다.“호수위에둥둥떠”있는“모자”에대한묘사로시작하는「아침」은“누군가의머리”에서“조모의이마”로,“조모님을모시고”호숫가에온“가족”으로,“파도가아니라고설명할수없”는“바다”로“상상”의초점을옮겨가면서강렬한여운을남긴다.“한데섞인흰자의노른자의중립적인맛”으로시작해“알코올중독자라면더할나위없다”로끝나는「오믈렛」,“손목시계를차야하나.말아야하나”로시작해“내게손목이나허리가남아있으려나”로끝나는「선물가게」,“나에관해서라면아무것도들키고싶지않았다”로시작해“끔찍한일은어른들에게맡기고,모두잊어버려”로끝나는「포노토그래프」등의시편들에는하나같이누구도흉내내기어려운임유영의‘인장’이찍혀있다.

이시집의표제는3부의시「오믈렛」에서가져왔다.“한데섞인흰자와노른자의중립적인맛”이라는「오믈렛」의첫문장은앞서언급한임유영문체의특징을은유하는것처럼보이기도한다.임유영의시들이시적인것이아닌듯한문장들의배합으로만들어졌다는점에주목하면‘오믈렛’은임유영의시적방법론을연상시키는오브제이다.
한편,해설을쓴문학평론가조연정은모종의온기어린정서를불러일으키는「만사형통」을해석하면서시집의제목‘오믈렛’에또다른의미를부여한다.

그들은자신의손가락끝마다심장이하나씩달려힘차게박동하는것같다고느꼈다.서로가손끝의심장을들키지않으려잡은듯만듯간신히깍지를낀모양새였다.그러면서도도무지손을놓지못했다.

(……)

두사람을여기둘수있는이유가될까.찬바람부는가을밤을둘이계속걷게해도될까.알수없는것을알수없다는이유로붙잡아두어도될까.둘의신발을벗기고싶어진다.이상하게.싸늘한밤의강변을맨발로걸어가라.그래도그런기분을완전히적을수는없다.강건너에불을질러본다.일정한속도,일정한보폭,일정한온도로,넓어지세요.옮겨지세요.퍼지세요.멀리멀리가보세요.

손잡아.그냥한번꽉잡아봐.

보이지않는다는이유로계속보이지않게두어도될까.따뜻한거먹이고싶다.
_「만사형통」부분

조연정은해설에서「만사형통」을두고“사랑이시작되려다말아버린안타까운순간”을그린듯도,“삶과죽음의경계를넘나들어보는기분”을그린듯도하다고말한다.임유영의시편들에“죽음을생각하게되는그런마음”들이종종드러나는데,「만사형통」은그럼에도불구하고“서로가손끝의심장을들키지않으려잡은듯만듯간신히깍지를낀모양새”를풀고“그냥한번꽉잡아봐”라고말하는시라고짚어낸다.“자꾸만밤으로,산으로달려가고싶은”마음을모른척하지않기위해“서로의차가운맨발이아닌손끝의뜨거운심장을느껴보는일”이필요하다는것이이시의메시지라고조연정은해석한다.“따뜻한거먹이고싶다”라는시적화자의소망은,비록우리삶이“찬바람부는가을밤”처럼고독과결핍으로이루어져있다할지라도서로“따뜻한거”를건네주고먹이려는마음들이모이고섞인다면우리삶도‘오믈렛’처럼충만하고부드러워질수있을거라는바람이라는것이다.
‘보다젊은감각과깊은사유를지향한다’는캐치프레이즈를걸고시작된문학동네시인선이현재에다다른지금,12년이라는짧지않은역사와의미에값하는주목할만한‘첫’시집『오믈렛』을자신있게선보인다.임유영은한국시의새로운이름으로기억될것이다.

임유영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안녕하세요작가님,드디어첫시집이나왔습니다!출간소회를여쭙고싶어요.

첫시집이예정대로무사히출간되어기쁩니다.시집을준비하는동안문학동네편집부분들을비롯해많은분이원고를깊이읽어주시고다양한의견과응원을보내주셨습니다.덕분에제가막연히예상했던것보다는덜외롭고,덜두렵고,오히려든든한마음마저듭니다.독자여러분의다양한이야기를들을준비가된느낌이라고할까요.물론떨리긴하지만,침착한마음을유지하려노력중입니다.이책에겐이제부터긴여정이시작되는셈이니까요.

Q2.‘오믈렛’이라는제목이독특한느낌과울림을줍니다.작가님이생각하는제목의의미가있을까요?혹은독자들에게어떻게가닿았으면좋겠다하는바람이있을까요?

‘오믈렛’이라는제목은김민정시인께서지어주셨습니다.저는시를써놓고도이사물이제첫시집의제목이될거란예상을한번도해보지못했습니다.그런데일단‘오믈렛’이라는부드러운발음의단어를들으니이보다적확한제목은없으리라는확신이들었어요.오믈렛은어떤재료를첨가하고얼마나익히느냐에따라맛이달라지는유연한음식입니다.어린아이부터노인까지수월하게씹어삼킬수있는부드러운음식이기도하지요.무엇보다계란이라는흔한재료로만들수있습니다.소박한부엌에서손수만들어먹을수도,고급식당에서사먹을수도있고요.요리하는사람의기술이나취향이가감없이드러나어찌보면단순해서무섭기도한메뉴인한편,속을편안하게해주어아침부터먹기도좋은만만한음식이기도하네요.제게인상깊은오믈렛은폴토머스앤더슨감독의영화<팬텀스레드>속버섯오믈렛인데요.여러분은어떤오믈렛을좋아하시나요?제책을펼친독자각자가제각기상상하신맛과모양의오믈렛을드시게될텐데요,이런생각만으로도즐겁습니다.오믈렛의저수많은미덕에조금이라도값하는시집이된다면참좋겠습니다.

Q3.방과후문예반소녀들,남쪽숲에서깨어난새끼곰,돌에서나온사람,사고로죽은여자아이,동자승등등시적대상이다양해요.다채로운형식과어조로그들의이야기를들려주는데,다읽고나면이게임유영의시구나,신기합니다.기본적으로는리드미컬한산문시의힘덕분같고요.시를쓸때중요시하는게있을까요?

시를쓸때는최대한스스로에게솔직하자는생각으로임합니다.또제시가잘되었나가늠할때도,시가얼마나솔직하였는가가중요한기준이됩니다.물론이때의솔직함,정직함이란현실을잘모사하는것과다른문제입니다.제가쓴시에등장하는주체가어떤누구이건,결국은모두저라는인간의한계안에서움직이고,저의가장좋은부분부터최악의결점까지도드러낸다고생각합니다.어떤분들은제예상을넘어더좋거나더나쁘다고평가하실수도있고,제가모르는저를찾아내실수도있지요.두렵기도하지만제가가장바라는일이기도합니다.제가다른시를읽을때도마찬가지입니다.설령아주희미한느낌에불과하다고해도,결국무언가진실한것을얻길원하게됩니다.
어떻게하더라도시를일단써서세상에제출하고나면제가통제할수있는일은별로없으니,최대한시를쓸때그당시버전의스스로가만족할수있게쓰려고노력합니다.그렇게쓰면서드물게찾아오는질좋은몰입이저에게무엇과비견할수없는큰기쁨을줍니다.또깊은몰입은기쁨뿐만아니라언어에리듬을가져다줍니다.

Q4.이시집에서특별히아끼는시가있다면무엇인지궁금합니다.그이유도요.

아낀다기보다는3부에실은데뷔작에신경이쓰입니다.이전에모두‘아침’이라는같은제목으로8편이발표되었고,시집을묶을때1편을또같은제목으로추가했다가,마지막에는전부다른제목을붙여출간하게되었는데요.기존의‘아침’연작을읽어보신분들과,책을통해처음읽으신분들의이야기를모두듣고싶다는소망이있습니다.국립현대미술관의의뢰로쓴연작세편은,평소와달리시를쓰기위해실제과천미술관을답사하고전시워크숍도거쳤던과정이흥미로워서기억에남고요.시집을통틀어가장나중에추가된시인「담자균문」은바로그이유로,가장최근의시이기때문에어떻게읽으실지궁금합니다.

Q5.이시집으로작가님을처음만나게될독자분들께인사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따뜻하게준비한‘오믈렛’,맛있게드시면기쁘겠습니다.감사합니다.

시인의말

나는붓을들어이이야기를종이에옮겨적었고,사람들이잘볼수있는벽에붙여두었다.후에그것을마음에들어하는사람이있어적당한값을받고팔았다.

2023년10월
임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