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전 장끼전

토끼전 장끼전

$16.00
Description
권력에 위협받는 힘없는 존재의 불안정한 삶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다
한국판 『레미제라블』!
가혹한 삶을 정면 돌파하려는 민초들의 꿋꿋한 의지
조선 최고의 연행 예술 판소리, 최하층 부류 유랑민을 주인공으로 발탁하다


『토끼전·장끼전』은 향촌 사회의 급속한 변화상과 세태를 비판적 시각으로 포착하고 동물에 빗대어 희화화한 판소리계 우화소설이다. 『토끼전』은 충절이란 명분으로 백성의 희생을 당연시하던 봉건국가에서 토끼와 자라라는 힘없는 존재의 불안정한 삶을 보여준다. 『장끼전』은 장끼와 까투리로 대변되는 하층 유랑민이 엄동설한에 극심한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비극뿐 아니라 과부가 남성들의 겁박에 맞서야 하는 수난을 그린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들이 재치 있게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을 때로 희극적으로 그려내지만 고난에 찬 삶의 무게를 마냥 웃어넘길 수 없게 만든다. 수백 년 전 소설이 오늘날 독자에게도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현재 힘없는 위치에 선 사람들이 겪는 수난과 고심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들은 『토끼전·장끼전』을 통해, 고전문학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와 유쾌한 저항정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 대신 동물을 내세우다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서 전승되던 동물우화를 소설적 편폭으로 확장시킨 우화소설이 유행했다. 조선 후기 향촌 사회에서 구성원 사이에 벌어진 갈등과 대립을 다루는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화소설에서는 토끼와 자라, 장끼와 까투리를 비롯해 별별 동물이 다투고 경쟁한다. 그저 그런 부류들이 서로 잘났다고 으스대는 꼴이라든가 부패한 수령과 결탁해 재물을 탈취하려는 모습을 그려 세태를 희화화했다.
실제로 조선 후기에는 향촌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각축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부유한 평민과 실세한 사족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화소설은 그 같은 사회의 급속한 변화상을 비판적 시각으로 포착했다.

최하층 유랑민을 주인공으로 발탁한 판소리 열두 마당 중 두 편
『토끼전』과 『장끼전』은 미천한 신분의 광대가 판소리로 다듬어수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넓은 공간에서 선보이며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판소리야말로 조선 후기 최고의 연행 예술로 꼽히는데, 열두 마당 가운데 우화소설이 두 편이나 들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고전소설 작가들은 주인공을 으레 영웅적 인물 또는 재자가인으로 설정해왔다. 하지만 판소리 광대들은 그런 관행에서 벗어나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발탁했다. 그런 판소리 광대들이 길짐승 토끼와 날짐승 꿩의 삶에까지 눈길을 주었다. 꿩과 토끼야말로 힘없는 존재들이다. 향촌 주변 논밭을 전전하며 곡식 낟알을 주워 허기를 채우던 장끼와 까투리, 조정 미관말직에 있으면서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던 자라, 목동·포수·매 등에게 쫓기며 살아가던 토끼는 조선 후기 최하층의 부류인 유랑민의 모습과 비슷하다. 판소리 광대들은 유랑민이 고난에 찬 삶을 살아가면서 엄혹한 시련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를 우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토끼전』: 꾀 많은 토끼와 또다른 주인공 자라
봉건국가의 군주로 상징화된 용왕의 죽을병을 고치기 위해 육지 동물 토끼를 잡으러 가는 소동을 벌이는 『토끼전』은 참으로 문제적이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자라에게 위험한 육지에 가서 토끼를 잡아오라는 임무가 부과되는 과정도 그렇지만, 수궁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던 토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다. 용왕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던 자라와, 용왕의 요구를 거부하고 달아나버린 토끼의 엇갈린 행보라는 놀라운 결말은 충절이란 명분으로 백성의 희생을 당연시하던 봉건국가의 부당한 요구 앞에 선 개인의 선택을 보여준다.
『토끼전』은 이본의 양상이 흥미롭다. 어떤 작품은 결말까지 사뭇 다르게 난다. 어떤 이본에서는 토끼를 놓친 자라가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자결하자 용왕이 약을 구하지 못하고 죽는가 하면, 어떤 이본에서는 도사가 나타나 자라에게 불로초를 주어 용왕이 살아나기도 한다. 이처럼 결말에 차이가 나는 까닭은 『토끼전』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결말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한 것일까.
딜레마에 봉착한 캐릭터는 자라다. 『토끼전』에서는 자라 역시 주인공이다. 그런 사실을 반영하듯, 『토끼전』은 이본에 따라 『별주부전』도 있고, 둘의 이름을 나란히 드러낸 『토별가』 또는 『별토가』도 있다. 19세기 중반 송만재는 『토끼전』을 읽으며 토끼 못지않게 자라에게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많은 사람은 자라를 조역으로 취급하거나 용왕과 함께 비판받아 마땅한 존재로 치부하지만, 실제로 자라의 작중 역할은 막중하고도 흥미롭다. 토끼와 자라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서로의 목숨을 노릴 정도로 치열하게 맞서지만 사실 그 둘은 진정한 적대자가 아니다. 진짜 토끼의 목숨을 노리는 자는 토끼의 간을 필요로 하는, 곧 무고한 서민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용왕이다. 『토끼전』에서 토끼는 지혜를 발휘해 끝내 자유를 찾고, 용왕은 절대 권력을 휘두르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라는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인간의 초상 아닐까? 그가 직면한 애환이 문제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장끼전』: 다섯 번의 장례식과 이후의 삶
『장끼전』을 읽다보면 안뜻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돌싱’ 특집이 떠오른다. 까투리는 다섯 번 결혼하고서도 또다시 가장을 잃어버려야 했다.
작품의 현실적인 핵심 사안은 굶주림의 문제다. 콩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장끼는 덫에 걸려 비명횡사하고 까투리는 아홉 아들 열두 딸을 혼자 키워야 하는 과부 신세로 전락한다. 떠돌이로서 궁핍하고 불안정한 삶이 그들 부부 앞에 놓인 최대 문제였다. 장끼의 죽음으로 까투리는 험난한 세상에 또다시 혼자 남게 된다. 앞으로 모든 고난은 연약한 까투리 홀로 헤쳐나가야 하는데, 장끼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숱한 잡새의 구혼으로 그 시련은 현실화된다.
그러나 까투리의 생명력은 질기다. 다섯번째 남편이 죽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끝끝내 까투리는 좋은 짝을 찾게 될까?
과부를 차지하려는 수컷들의 회유와 겁박에 맞서 까투리는 수절과 개가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정절이 목숨보다 중하다고 여기던 봉건 사회에서 까투리가 개가를 선택한다는 결말은 결코 허투루 보아 넘길 수 없다.

조선 후기 유랑민이 겪은 고난과 그로부터 비롯된 비극적인 삶, 그러나 그냥 웃어넘길 수 없게 만든다. 이를 꿋꿋하게 이겨내는 까투리의 모습을 통해 조선 후기 하층 여성의 전형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봉건국가의 침탈에 시달리던 토끼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통해 지배층의 끝없는 탐욕과 허위의식을 풍자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때문에 판소리계 우화소설이 이룩한 고도의 사회의식과 정치의식은 과거의 유산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바로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부조리한 요구와 회유가 끊이지 않고 있고, 그때마다 어떤 선택을 내릴지 결단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지금 이런 시대야말로 판소리계 우화소설의 두 주인공인 토끼와 까투리의 결단과 선택이 더없이 밝은 빛을 발하는 순간이지 않을까. 부익부빈익빈의 사회현상이 점차 심해지며 재물의 위력이 힘없는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무시할 때 어떤 결단이 필요한가를 생동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전소설 『토끼전』과 『장끼전』이 오늘날까지 읽히는 이유다, -머리말에서
저자

정출헌옮김

저자:정출헌

부산대학교한문학과교수.고려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고전문학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연구교수,부산대학교점필재연구소장을역임했다.현재한국고전번역원부산밀양분원을맡고있다.조선전기유교지식인의시대정신과동국문명의변화과정,일제강점기유교지식인의대응양상과만주망명의여정을탐색하는데관심을갖고있다.저역서로『조선후기우화소설연구』『고전소설사의구도와시각』『조선최고의예술판소리』『고전문학사의라이벌』(공저)『김부식과일연은왜』『추강집』『남효온평전』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토끼전
용왕의잔치와발병
도사의출현과처방
수궁신하들의갑론을박
별주부의자원과작별인사
별주부의육지구경과모족회의
별주부의위기와호랑이퇴치
토끼와의만남과산중흥취
토끼의세상팔난과별주부의수궁흥미
별주부의유혹과토끼의결심
토끼의수궁행과위기모면
토끼와별주부부인의동침
토끼의생환과별주부의최후

장끼전
장끼와까투리의고단한삶
콩을둘러싼장끼부부의논란
콩을먹으려던장끼의죽음
과부가된까투리의수난
과부까투리와홀아비장끼의결합

원본『토끼전』
원본『장끼전』

『토끼전』해설|동물우화로담아낸봉건국가의해체
『장끼전』해설|동물우화에담은유랑민부부의비극적삶

출판사 서평

사람대신동물을내세우다

조선후기에는민간에서전승되던동물우화를소설적편폭으로확장시킨우화소설이유행했다.조선후기향촌사회에서구성원사이에벌어진갈등과대립을다루는작품이대부분을차지한다.우화소설에서는토끼와자라,장끼와까투리를비롯해별별동물이다투고경쟁한다.그저그런부류들이서로잘났다고으스대는꼴이라든가부패한수령과결탁해재물을탈취하려는모습을그려세태를희화화했다.
실제로조선후기에는향촌사회의주도권을장악하려는각축이치열하게벌어졌다.부유한평민과실세한사족사이에서심상치않은갈등이발생하기도했다.우화소설은그같은사회의급속한변화상을비판적시각으로포착했다.

최하층유랑민을주인공으로발탁한판소리열두마당중두편

『토끼전』과『장끼전』은미천한신분의광대가판소리로다듬어수많은청중을대상으로넓은공간에서선보이며열렬한사랑을받았다.판소리야말로조선후기최고의연행예술로꼽히는데,열두마당가운데우화소설이두편이나들어있다는사실에주목하지않을수없다.고전소설작가들은주인공을으레영웅적인물또는재자가인으로설정해왔다.하지만판소리광대들은그런관행에서벗어나평범한인물을주인공으로발탁했다.그런판소리광대들이길짐승토끼와날짐승꿩의삶에까지눈길을 주었다.꿩과토끼야말로힘없는존재들이다.향촌주변논밭을전전하며곡식낟알을주워허기를채우던장끼와까투리,조정미관말직에있으면서하찮은존재로취급받던자라,목동·포수·매등에게쫓기며살아가던토끼는조선후기최하층의부류인유랑민의모습과비슷하다.판소리광대들은유랑민이고난에찬삶을살아가면서엄혹한시련을어떻게헤쳐나가는지를우화를통해보여주고자했다.

『토끼전』:꾀많은토끼와또다른주인공자라

봉건국가의군주로상징화된용왕의죽을병을고치기위해육지동물토끼를잡으러가는소동을벌이는『토끼전』은참으로문제적이다.평소에는거들떠보지도않던자라에게위험한육지에가서토끼를잡아오라는임무가부과되는과정도그렇지만,수궁과전혀상관없이살아가던토끼에게희생을강요하는것은어처구니없다.용왕의부당한요구를받아들이지않을수없던자라와,용왕의요구를거부하고달아나버린토끼의엇갈린행보라는놀라운결말은충절이란명분으로백성의희생을당연시하던봉건국가의부당한요구앞에선개인의선택을보여준다.

『토끼전』은이본의양상이흥미롭다.어떤작품은결말까지사뭇다르게난다.어떤이본에서는토끼를놓친자라가바위에머리를부딪쳐자결하자용왕이약을구하지못하고죽는가하면,어떤이본에서는도사가나타나자라에게불로초를주어용왕이살아나기도한다.이처럼결말에차이가나는까닭은『토끼전』이제기한문제에대해합의된결론을도출하지못했기때문이다.어째서결말에대해합의를보지못한것일까.

딜레마에봉착한캐릭터는자라다.『토끼전』에서는자라역시주인공이다.그런사실을반영하듯,『토끼전』은이본에따라『별주부전』도있고,둘의이름을나란히드러낸『토별가』또는『별토가』도있다.19세기중반송만재는『토끼전』을읽으며토끼못지않게자라에게도깊은관심을보였다.많은사람은자라를조역으로취급하거나용왕과함께비판받아마땅한존재로치부하지만,실제로자라의작중역할은막중하고도흥미롭다.토끼와자라는온갖위험을무릅쓰고서로의목숨을노릴정도로치열하게맞서지만사실그둘은진정한적대자가아니다.진짜토끼의목숨을노리는자는토끼의간을필요로하는,곧무고한서민의생명을빼앗으려는용왕이다.『토끼전』에서토끼는지혜를발휘해끝내자유를찾고,용왕은절대권력을휘두르지만,이러지도저러지도못하는자라는어쩌면가장현실적인인간의초상아닐까?그가직면한애환이문제적으로다가오는이유다. 

『장끼전』:다섯번의장례식과이후의삶

『장끼전』을읽다보면안뜻연애리얼리티프로그램‘돌싱’특집이떠오른다.까투리는다섯번결혼하고서도또다시가장을잃어버려야했다.
작품의현실적인핵심사안은굶주림의문제다.콩을먹을수밖에없었던장끼는덫에걸려비명횡사하고까투리는아홉아들열두딸을혼자키워야하는과부신세로전락한다.떠돌이로서궁핍하고불안정한삶이그들부부앞에놓인최대문제였다.장끼의죽음으로까투리는험난한세상에또다시혼자남게된다.앞으로모든고난은연약한까투리홀로헤쳐나가야하는데,장끼의죽음이후이어지는숱한잡새의구혼으로그시련은현실화된다.

그러나까투리의생명력은질기다.다섯번째남편이죽는데서이야기가시작되는데,끝끝내까투리는좋은짝을찾게될까?
과부를차지하려는수컷들의회유와겁박에맞서까투리는수절과개가라는선택의갈림길에놓인다.정절이목숨보다중하다고여기던봉건사회에서까투리가개가를선택한다는결말은결코허투루보아넘길수없다.

조선후기유랑민이겪은고난과그로부터비롯된비극적인삶,그러나그냥웃어넘길수없게만든다.이를꿋꿋하게이겨내는까투리의모습을통해조선후기하층여성의전형을볼수있다.그리고봉건국가의침탈에시달리던토끼의생기발랄한모습을통해지배층의끝없는탐욕과허위의식을풍자하고있음을발견하게된다.이때문에판소리계우화소설이이룩한고도의사회의식과정치의식은과거의유산으로만읽히지않는다.바로지금우리에게도그런부조리한요구와회유가끊이지않고있고,그때마다어떤선택을내릴지결단하지않을수없다.어쩌면지금이런시대야말로판소리계우화소설의두주인공인토끼와까투리의결단과선택이더없이밝은빛을발하는순간이지않을까.부익부빈익빈의사회현상이점차심해지며재물의위력이힘없는사람의희생을강요하거나인간으로서의존엄성을무시할때어떤결단이필요한가를생동하게보여주기때문이다.고전소설『토끼전』과『장끼전』이오늘날까지읽히는이유다,-머리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