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시집을통해빛과꿈,새,바다나모래성과같이섬세하게반짝이는감각과이미지들로소년기의상처를되짚고현실과천국의풍경을겹쳐보았던시인은이번시집에서한층더단단해진사유와언어에대한감각을선보인다.시인은‘영원’‘소년’‘천사’라고“손톱을세워벽위에”(「다나에」)쓰는것만으로는결코닿을수없는세계를향해가고자자신이자리한곳을되짚어본다.
누군가방의입구에불을지른다면
어디로도나갈수없다는생각만으로
여러번화염에휩싸인채깨어나야했다
너른꿈의좁은입구에서여러번내쳐졌다
(…)
쏟아지는빛에놀라깨어났으나
여러겹의어둠속이었다
(…)
어떤꿈에선걸음이남아
꿈의둘레를벗어나지못했다
이곳에오기전에어떤방향으로누웠는지
누구의곁에서잠에들었는지
기억나지않았다
_「다나에」부분
육호수의화자가살고있는세계는결코넓지않다.“너른꿈”의가장자리가곧그가사는현실의가장자리이다.거기에난입구는더욱좁아그는꿈으로향하는길목에서“여러번내쳐”지지만,그럼에도“꿈의둘레를벗어나지못”(「다나에」)한다.그가바라는,‘영원’‘소년’‘천사’로표상되는모든것이꿈속에있기때문이다.“무수한유령들을/허물로남겨두고/밤의아름다움을감당하지않아도되는”(「희망의내용없음」)그곳에서아름다운석양아래“은화처럼반짝”이던조개껍질과“고운모래”는깨어나는순간몸위를기어다니는“개미들”(「고사리장마」)이되어있고,“쏟아지는빛에놀라깨어”나면눈앞으로는“여러겹의어둠”(「다나에」)이펼쳐져있다.
주목해야할것은육호수의시에서꿈과현실을연결하는통로가서로를비추는거울로도기능한다는점이다.거울속의‘너’와‘나’는본질적으로같은존재여야마땅하다.그러나“거울속의우리는한번도떨어진적없”음에도“아주먼사이”(「고사리장마」)이며,심지어현실의‘나’는“거울에붙은모기를죽이려다”거울속의‘너’에게“무언가를죽이려다가가는얼굴을들”(「물끄러미,여름」)키기까지한다.이렇게‘나’와‘너’가개별적인존재인탓에거울너머꿈의세계는자유로이넘나들수는없는곳이되고,“다나에”는“궁전아래밀봉된지하감옥”에서“누군가방의입구에불을지른다면/어디로도나갈수없다는생각”에사로잡혀꿈속의“그빛이어디에서왔을지”(「다나에」)하염없이그려야만한다.
그방을떠나던날엔
신발을신고들어섰다
(…)
옮기면안되는것까지
옮기게될까봐나를
금지하는문턱앞에서
좁은방의좁은입으로서서있었지
(…)
다르게살수있을것같아서
바라는게많았다
작고깊은이방을위해
무서운이야기를참많이지었다
밤대신아침을새우며기대면이방의
창문은허공보다투명한거짓을허공뿐인
허공에보여주었지
“이방의어둠을해치지않고창밖의새들은어떻게노래를부르는가?”
새에대해생각하며새에대해취약해지던
이야기를허물기전엔나갈수없는방이었다
_「망명」부분
그런데이처럼바라는모든것을품고있는꿈으로넘어가는길이요원해보이는곳에서,육호수의화자는문득질문을던진다.“이방의어둠을해치지않고창밖의새들은어떻게노래를부르는가?”(「망명」)이에대한답이그에게실마리를던져준다.“이름을잃을때”“모서리가정확해”지고“날개를떼어내야만천사들은날수있”(「시론에는원고료가없고」)듯이,“이방의어둠을해치지않고”(「망명」)서는방밖으로나갈수없다는것,“면벽의안식”이실은“감금”(「희망의내용없음」)이었다는것.
그러므로거울너머꿈의세계로나아가기위해서는좁은방의벽에새겨진“‘영원’‘소년’‘천사’를뒤에남겨둔채자신을“금지하는문턱”을넘어”(문학평론가김준현)서야한다.그럼으로써더이상그말들에“진빚”(「희망의내용없음」)이없다고선언할때,“누군가방의입구에불을지른다면/어디로도나갈수없다는생각”(「다나에」)은비로소“작고깊은이방을위해”지어낸것에불과한“무서운이야기”(「망명」)가되어허물어지고,“너른꿈의좁은입구”(「다나에」)는전소된다.
때㉤ㅏ침
때㈄ㅏ침ぇㅓ럼
㉩ㅓ럼의ぇㅓ럼㈉ㅓ럼창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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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Łй악몽속으로へㅏㄹΓ진㉡ㅓ의영혼의ёnŧrØpħy로ㅐ겐Øl런문ㅈБO1Łй己l...」부분
그렇게현실이폭죽처럼터지고꿈의파편들이찬란하게쏟아지는가운데,“영원보다더먼영원”,“소년보다더무위의소년”과“천사보다더투명한천사”(‘육호수시인과의미니인터뷰’중에서)가있는그곳으로육호수의화자는들어설것이다.신발을신고서성큼.
시와꿈의닮은점은어떻든의미의결여상태라는점,그리고이를최대한지속하려는성질을갖고있다는점이다.그러니애써유기체에가까워진언어-세계를다시파편으로만드는데주저함이없는것이육호수의시가지닌차별화된미덕인지도모르겠다.도예에비유하자면,육호수는단하나의완벽한완성체를위한집념의장인정신으로갓구운수많은도자기를깨부수기보다오히려‘도자기부수기놀이’가주는쾌감에기초한유희정신으로시를써내는것같다고해야할까.그렇게생기는부서짐,의도한바없기에방향을모른채사방팔방으로튀는파편과같이,우연적으로,그리고사후적으로오는모든좋은,나쁜,이상한것들은결국읽는‘당신’의몫이된다.당신이이시를읽는독자이건이시를쓴시인이건,당신은이즐거운방임의주체가된다.
_김준현,해설에서
◎육호수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첫시집이후오년만에두번째시집『영원금지소년금지천사금지』를출간하셨어요.그동안어떻게지내셨는지,두번째시집을출간하는마음은어떤지말씀부탁드려요.
첫시집이세상에나온후여러독자분들께응원의메시지를참많이받았어요.시에대한감상뿐만아니라시를써주어서고맙다는이야기,심지어살아주어서고맙다는이야기도있었죠.짧은감사의인사밖에돌려드리지못했지만,그마음들덕분에제마음도잘지냈다고말씀드리고싶습니다.백지앞에서두렵고후회되고비참하고막막하고좌절하고혼란스럽고부끄럽고죄스럽고허망하고어지러워시를포기하고싶을때마다큰힘이되었어요.가끔은낭독회에제시를미리외워가기도했어요.그러면시를읽는동안듣고있는분들의표정과눈빛을볼수있으니까요.그눈빛들덕분에용기를내어다시백지앞에앉을수있었습니다.
첫시집때는사는것을어떻게시로쓸수있을까고민했다면이제어떻게이시를살아갈수있을까고민하게되었어요.한편한편방을만들고그안에큰창을내고벽난로와의자를만들어살다가,언젠가이곳에와머물독자들을위해청소를하고방을비우며오년을보냈네요.첫시집에실린시를쓰던때에는과연이시들이세상에나와누군가에게닿을수있을까막막했어요.영원히이모니터속에갇혀있을것같아시들에게참미안하기도했고요.이젠,이시들이꼭필요했던누군가에게반드시닿게될거라는믿음이생겼어요.여러마음들덕분이에요.이시집이몇명의사람에게닿게될지는중요하지않아요.다만이시를알아볼수있는,이시안으로들어올수있는‘당신’에게는꼭이시집이눈에띄었으면좋겠어요.우연히서점이나여행지에서이시집을마주친다거나,인터넷에서어떤구절을보고지나칠수없게된다거나하는그런일이벌어졌으면해요.
Q2.제목이무척강렬한데,시집을읽기전까지는정말‘영원’‘소년’‘천사’등이나오지않는시집이라고생각하실수도있을듯해요.(웃음)어떤의미를담고있는제목인지소개해주세요.
(시집제목이좀세보이긴하지만…매운맛아니니너무걱정마셔요.)영원이라는말로영원을담을수없어서,천사라고쓴다고천사를볼수없어서,소년이라는말로소년이될수없어서이런제목을붙이게된것같아요.영원과소년과천사는첫시집을쓰던시절부터제가골몰해있던것들이에요.첫시집이세상에나오고난후에이들에게더가까이가고싶어서고민하다이들을표하는‘시어’를믿지말자는생각에다다른적이있어요.그날종이에‘영원금지소년금지천사금지’라고크게써서책상앞에붙여두었죠.당시‘2인이상사적모임금지’등여러금지를오가던때라금지란말을매일같이들었거든요.(웃음)천사,영원,소년.이셋모두이세상에선내게금지된것같기도했고요.무언가가금지되고나서야,우리에게금지된것이무엇인지새삼깨닫게되곤하잖아요.미문에천착하지말자,시어에경도되지말자.오랫동안가지고있던생각이지만여전히어려워요(그래서저의이‘젊은시인’시기를어서건너고싶기도해요).영원이라는말로담고자했던건영원보다더먼영원이었어요.천사보다더투명한천사,소년보다더무위(無爲)의소년에닿고싶었죠.금지의방식으로라도그들이이시안에와주었으면했어요.객기죠.(웃음)시인이가진것은언어뿐이겠지만,그렇다고시에언어만이담기는건아니잖아요.시안에무엇이담겨있는지,담을때도담은후에도저는다알수없지만,그중미리담을수없는것이하나있다면그건시의의미겠지요.시집의제목에대해이런저런배경을말씀드리긴했지만,이제목에는어떤의미도미리담겨있지않아요.시의의미는시의언어와문장안에이미담겨있는것이아니라누군가의영혼과마주하는때에비로소새롭게탄생하는것이라생각해요.그것은제몫이아닌것같아요.의미는독자께내어드리고자해요.와서지내다가세요.잘부탁드립니다!
Q3.강렬한제목과는달리서정적인작품들도여럿마음에남았어요.“꿈바깥의안부를전하느라/거듭옅어지던꿈의개울가에서//서로의귀에귀를포개었지/서로가기르는침묵의/둘레가되어주려고”(「장마」)“안녕,어젠해변의네살배기들과조개를모았어.석양이들면그때우리가다줍지못한조개껍질들이은화처럼반짝였어.어젯밤엔귀와입으로고운모래가쏟아져들어와잠에서깼어.”(「고사리장마」)“어떤꿈에선사랑이많은사람과만났다/그와살아서가고싶은곳보다/죽어서가고싶은곳이더많았다”(「다나에」)같은부분들이요.인용한부분들은공통적으로꿈에관해이야기하고있는듯한데요,시인님의시세계에서꿈이어떤의미를갖고있는지궁금합니다.
제가악몽부자입니다.(웃음)나는내게진실하기어렵고,세상에진실하기어려워요.반대로누군가에게,세계에게진실을바라기도참어렵죠.영혼과진실은공기에취약하잖아요.내놓으면갈변하죠.자기의영혼과진심을세상에드러내고사는것만큼어리석은일도없는것같이느껴지기도해요.그렇지만악몽만은악몽의방식으로내게진실해요.내가무엇을바라는지,무엇을두려워하고무엇을후회하는지,무엇을소중하게여기고무엇으로부터도망치고있는지아주투명하게펼쳐보여주지요.악몽안에는이세계의것은아니지만시공간이있고감각이있고이야기와감정이있죠.이세계와단절된세계이면서도이세계와연결되어있고요.그런면에서악몽과시는참닮았어요.악몽에서깨기직전의순간과시의마지막문장도비슷하고요.저는악몽에서깨고난직후의한밤중에시가제일잘써져요.악몽을한바탕겪으며세상에서의내가완전히무장해제되고무방비의영혼이노출되는시간이니까요.그래서원고마감에쫓길때는악몽과의독대를바라며잠에들기도해요.저는시를제외하고는이세상에바라는바가없어요.마찬가지로이제타인에게도딱히바라는바가없어요.다만제악몽속의여러이들에게는바라는게많아요.다음번악몽에선좀살살부탁드립니다.매번저만먼저악몽의밖으로도망쳐서죄송합니다.꿈속의이야기를꿈바깥으로훔쳐가서죄송합니다.제가악몽말고는가진게없는지라.
Q4.시집을넘기다보면유독눈에띄는작품들이있어요.표제작「영원금지소년금지천사금지」에서단어의순서만바꾼「소년금지영원금지천사금지」「천사금지소년금지영원금지」같은시들은하나의시속에두가지이야기가교차되거나병치되어있고,「하다못해코창에서스노클링을하다가말미잘을보고도네생각이났어」는전체가사진한장으로이루어져있지요.또「Łй악몽속으로へㅏㄹΓ진㉡ㅓ의영혼의ёnŧrØpħy로ㅐ겐Øl런문ㅈБO1Łй己l...」는특수문자등의‘외계어’로만가득차있고요.이작품들의독법을제안해주실수있을까요?
재미있게봐주세요!얼마전찾은외국의한해변에서꼬마아이셋이모래성을짓는것을한참보았는데요,파도가깊게들어와서아이들이쌓던모래성이무너질때마다아찔하더라고요.그런데그러는사이아이들의놀이에제가더몰입해서보고있는거있죠(아이들은물론쿨하게다시성을쌓다가쿨하게모래도시를떠났지요).우리는학교에서시속에숨겨진의도를찾게끔배워왔잖아요.정해진주제나틀에박힌표현과효과를학습하고그것에서벗어난답을내면가차없이오답이되고요.그래서시를보면시인의의도와숨겨진의미를찾으려고하거나,교과서바깥의‘요즘시’들은그게잘안되니시를멀리하게되는경우도있죠.월권의위험성을무릅쓰고저자로서보증합니다.여기에는어떤표현상의의도나의미도미리숨겨두지않았어요.그것을찾으려애쓰지않으셔도돼요.그냥파도가넘어들어와모래성이무너지는것처럼당연하고재미있는해프닝으로여겨주시면좋겠어요.모래성을무너뜨리려고파도가치는게아니듯이,그파도에는의도와의미가없어요.파도와파도에무너지는모래성을보고있는누군가의마음이더중요해요.ㄴㅐ겐...┓┠끔...㈚도ㄱ친다...フト끔은ㅍΓ도를え占을수없는내>ㅏ별루ㄷr...()
Q5.마지막으로,『영원금지소년금지천사금지』를읽을독자분들께인사를건네주세요.
반가워요.육호수입니다.저는시인이기이전에한국의시를찐으로좋아하는독자예요.이십대중반의어느날갑자기어떤시가문장이아니라살아있는구체적생물처럼느껴지기시작했고,그것을너무너무좋아하다여기까지흘러오게되었답니다.부족하지만제가평론도하는데요,저는오래오래여러시를곁에두고읽고쓰며평생을지내고싶어요.십년후에도,백년후에도잘부탁드립니다.오랜시간이지나다시시로만나게되었을때에도반갑게여기실수있도록살겠습니다.제가처음시인으로데뷔했던때,지면에이렇게수상소감의마지막을적었었네요.부끄럽긴하지만,지금도그때와같은마음이에요.“제가가진곁을모두시에내어주고,백지앞에서조금도비켜가지않겠습니다.”
■시인의말
언젠가거듭작별하는꿈에서너는
손위에검은돌멩이를쥐여주며말했지
“새를잘부탁해.죽었지만”
2023년3월
육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