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 - 문학동네 시인선 205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 - 문학동네 시인선 205

$12.00
Description
“나는 한 번도 너 같은 종류의 가만히는 원한 적 없어.
나 혼자만으로 충분한 가만히 동호회.”

순진하고 귀여운 표정 아래 숨겨진,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크고 단단한 힘

변윤제 첫 시집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 출간!
저자

변윤제

변윤제.1990년성남에서출생.시와다양한장르의소설을쓴다.2021년문학동네신인상을수상하며시쓰기를,2022년카카오페이지를통해소설쓰기를시작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They
내일의신년,오늘의베스트/음악의편리와료칸의별/양자역학적인,인어/귀신고래의마을/
체류자들/것들/게스트하우스에서의한달/인도식키친―눈물이마음으로부터눈으로나온다면,모든물은아래로흐르는데왜유독눈물만은그렇지않은가/히노끼욕조의피날레

2부알파카공동체
아웃복서―알파카양의답장/주식회사알파카건설/알파카부인의안데스―나는신이아픈날태어났습니다/알파카는대필작가/비숑식체조교실/못된알파카친구들에게/우리의명랑한얼룩무늬/알파카의세계/알파카공동체

3부변연계―NothingAboutUsWithoutUs
영원과녹즙/기분의중력과부력/자화상/평범한일1/토마토가(家)의홈파티/평범한일2/약봉투를씹는식탁/평범한일3/중간/평범한일4

4부MakeYourDeath
탈모예방법/한때우리집고양이와/스팸선언문/수박만드는사람/MakeYourDeath/양자역학적인,겹장/그자체로완전한맛소금/망고가아닌모든이유/민트초코가유행이라서/가만히있을수없는가만히동호회

해설|예속된언어를구출하기
최선교(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총4부로이루어진이번시집중1부의부제는‘They’이다.「음악의편리와료칸의별」에서“너와있을땐불행의편이고싶다”라고말하는시인은“어딘가에서울고있”는너를통해“한명이아니라무수한사람의발소리”를듣는귀를지닌자이다.‘나’가아니라‘너’를,‘자아’가아니라‘타자’를,“위로하는나”가아니라“누구를보살피느라위로자신을돌보지못한”“위로”(「게스트하우스에서의한달」)그자체를헤아리는시인의시선은내면으로침잠하는대신주변상황과바깥세상을향해있다.“시가사람의일,삶의일임을,자기몰두를넘어현실과타자에깊숙이연루되는일임을”(김언희)보여준다는심사평을떠올리게하는대목이다.

인도에서온케밥판매원“아디타”(「체류자들」),“끔찍함이라는단어를번역못하는언어”에대해생각하는“번역가친구”(「것들」),민박집을운영하는“친절한노부부”(「인도식키친―눈물이마음으로부터눈으로나온다면,모든물은아래로흐르는데왜유독눈물만은그렇지않은가」)등은모두‘타자(They)’이지만,시인은그들이살아내는고된하루하루를살피면서이들의“매일이선물이아니”(「내일의신년,오늘의베스트」)라할지라도“우린노을빛을스스로만드는사람”이라고말한다.“적당히우스워지며실패를사로잡는법”(같은시)을터득한시인은“저는내년에도사랑스러울예정입니다”라고능청스럽게의지를다잡으면서읽는이에게도삶을살아낼힘을전해준다.

이동물은햇살을담기위해길러집니다.그속엔거울이있고,고원이있고,머리카락이흘러내리고,다시바라보면.
안개속입니다.안데스고원을가로지르며.날아가는알파카.흉곽에구름을충전하고싶습니다.손금이달라질때마다.
(……)
몽실한머리를보세요.귀여움이고,그러니잔인함이고.
블랙홀을예수라믿으며자신을파고든사람들처럼.

소용돌이칩니다.사라지지마세요.모두다우연이니까.
알파카의털속으로파도가치고.복슬복슬물살을들이마시면.
이거짓말은전부겪은일입니다.눈뜨면변기위에서의주절주절.커피숍에서안데스고원으로.새로워지라니참진부한얘기였군요.다시눈뜨면으악으악.
_「알파카의세계」부분

한편,2부‘알파카공동체’는‘아웃복서알파카양’‘주식회사알파카건설의직원’‘대필작가알파카’등다양한‘알파카’가등장하는연작시이다.“몽실한머리”를지닌알파카는언뜻귀여워보이지만,시인은알파카에게서“잔인함”(「알파카의세계」)을발견한다.알파카들이살아가는세계는“오해가산사태를”만드는위태롭고부조리한“안데스의꼭대기”(「못된알파카친구들에게」)이고,“연민은나를싫어”(「우리의명랑한얼룩무늬」)하는비정한세상이며,“보이는것만믿고있”는“모두가사이비종교”(「알파카공동체」)인무대인것이다.특유의명랑한어조로진행되는알파카연작시에서독특한비애감과날선비판의식으로인한긴장감이느껴지는이유는이러한시의특성때문일것이다.

그렇다면‘알파카’는어떤의미일까?문학평론가최선교는해설에서‘알파카’를“의미가발생하기직전의무의미한기표상태”라고해석한다.‘알파카’는구체적인외양을지녔음에도의미를유추하기어려운,마치의미가담기지않은듯한텅빈기표라는것이다.하지만이때문에‘알파카’는역설적으로모든의미가될수있다.

슬픔이나절망은시인의전유물이아니지만,시인은시인의방식으로그것을다루는방법을찾는다.언어는시인의방식이며변윤제는바로그방식을사유함으로써존재를가두는모든종류의힘에서벗어날수있는방법을생각한다.2부의부제인‘알파카공동체’가한마리의알파카(단수)로완성될수없듯이,‘알파카’라는기표가단하나의의미로예속되지않기위해서는그것을최대한다양한방식으로읽으려는독해가요청된다.읽는사람의수만큼다양한의미가개입할때비로소시가아름다워지듯이,‘공동체’라는말이암시하는정치적이고사회적인연대가완성되는방식역시이와크게다르지않다.변윤제는‘알파카’라는텅빈장소를제공하며반드시한명분이상의몫이개입될때만비로소완성되는시적인정치성,정치적인시성(詩性)을그려내는것이다._최선교(문학평론가),해설에서

3부‘변연계―NothingAboutUsWithoutUs’는내밀한자기고백적인시들로채워져있다.“대학병원에혼자”있으면서“아픈사람보다평범한것”(「평범한일1」)에눈길을주는시적화자는“일기속상처는특권이지만,/역시평범한일”이라고,“절망이후에기어코다정할수있다는사실”또한“평범한일”(「평범한일2」)이라고여기면서스스로의고통을과장하지않는다.“신보단나를잘그리는”(「자화상」)화자는“위력이넘치는세상”(「평범한일3」)에서도“삶이아름답다는오래된믿음을소중히”여기면서“제외된삶의이파리를바라”(「평범한일4」)본다.이와같은시편들에서고립을자처하지않고주위를부지런히살피면서자기긍정성을발견해내려는이의고요한안간힘이아름답게넘실거린다.

볼수없다는건
어두운까닭이아니라
마음이마음으로가득차있기때문이란걸알아버리는

그런,
평범한날

사람에실망했으므로
나는더욱사랑스러울것이지
_「평범한일3」부분

“무거운문제들을자연스러운어투로다루는솜씨,어디로튈지모르는독특한상상력,한톨의억지없이순식간에세계를넓게확장해현실을‘새로이’보게하는”(시인박연준)변윤제의개성은4부‘MakeYourDeath’에서도유감없이펼쳐진다.“빠져버리자머리머리/머저리들아”라며상대에게서느껴지는“미움”에신랄한유머로맞서는「탈모예방법」,“쑥하고들어가는칼끝”처럼번뜩이는감각을드러내는「수박만드는사람」,애틋한그리움을담아존재론적인질문을특유의경쾌한어조로건네는「한때우리집고양이와」,민트초코유행을따라라면에치약을넣고끓이다가“자꾸그렇게곁눈질하지말아요/세상에대한안목이생겨버릴것같잖아요?”라며“참신하다는말”이도리어“모욕”이된세태를풍자하는듯한「민트초코가유행이라서」등이실려있다.

가만히멈춰라.
그말을들은순간부터시작된동호회.
(……)
나는한번도너같은종류의가만히는원한적없어.나혼자만으로충분한가만히동호회.
가만히부르는순간가만히있던그림자가떨어져나가고.
제털을가만히기르던먼지떨이가부서져버리고.
벽에가만히스며들고있던제등이제척추에서떨어져나가서.
사방이저로가득한.
동호회라기보다는가만히의회에가까워집니다.가만히로구성된제국일지도모릅니다.가만히.가만히다가오는비명에대해.
(……)
그대여.
가만히멈추라고요?
가만히야.
나는나의가만히를끌어안습니다.
가만히의기다란코가내목을살며시조릅니다.
아,가만히.
그리하여우리는가만히있을수가없는가만히동호회.
_「가만히있을수없는가만히동호회」부분

「가만히있을수없는가만히동호회」는시인의데뷔작으로,“시아니고서는다른말로표현할길없어쏟아부은에너지”(시인박연준)가여실히드러나는작품이다.‘가만히’란“묵은것,퀴퀴한냄새가나는것,구린것,탐욕때문에가려져있던것,유행하는것,자본주의의등잔밑에있는것,폭언과침묵사이를오가는것”(시인오은)등을의미하는말로읽히지만,더나아가한국에서2014년을지낸이들에게동일한사건을떠올리게하는단어로다가오기도한다.

최선교는해설에서‘가만히’라는말이“가만히야”라는사랑스러운호명으로인해하나의주어가되는순간의미의감옥에서벗어나스스로움직인다고짚어낸다.‘가만히있으라’라는명령,그리고‘가만히있으라’라는말이발화된2014년의그날로시를해석하려는의도조차시는거부하고있다고,“삶이언어를초과하는것처럼,언어역시삶의맥락에귀속되지않는다.변윤제는이말장난같은삶과언어의관계를통하여삶이말에잡아먹히지않도록,말이삶에잡아먹히지않도록한다”고강조한다.

변윤제는타자의얼굴을외면하지않고,자기자신의내면을돌보는일도게을리하지않으며,사회부조리를서슬퍼런시선으로감지하는믿음직한신인이다.우리개인을향한속깊은위안과이사회를향한재치있는일갈을번갈아건넬줄아는그의첫시집『저는내년에도사랑스러울예정입니다』는묵은해를보내고맞이할새해를그려보게되는이시기,우리의마음을다잡을수있게하는힘을건네는시집이되어줄것이다.

변윤제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안녕하세요작가님,첫시집이출간되었습니다.간단한자기소개를부탁드리고,출간소회도여쭙고싶어요.

반갑습니다!저는시와다양한이야기를쓰는변윤제입니다.시인이자스토리텔러가제가생각하는저의문학적정체성이에요.산책,만화,동물,시와소설,전시와공연,힙합과트로트등평소다양한관심사에머무르는데,이런여러모습이다양한작업물에반영된다고생각합니다.출간을앞둔지금은자신감과걱정사이의복잡한줄다리기중입니다.저는16살부터시를썼어요.감히밝히건대긴시간동안노력한모든걸여기담았습니다.이시집이독자분들에게가닿기를간절히바라고있어요.

Q2.시집의제목이인상적입니다.위트있게다가오는한편,그이면에굳센의지같은것이느껴지기도해요.어떻게정하게되었고,어떤의미를담고싶으셨나요?

저에게2010년대중후반은기나긴절망과회의의날들이었어요.문학계엔2010년대중반을기점으로여러목소리가터져나왔고,세상은세월호와촛불혁명등많은일이있었죠.절망의날들이지만한편으론조금씩변화가도착한다는믿음도품었습니다.하지만10년대후반과20년대초반에걸쳐모든노력이허물어지는느낌이었어요.공동체를만들수있을거라는생각은환상같았죠.우리라는말도폭력처럼느껴졌고요.연대는궁극적으로불가능하고,연대가가진근본적인위험이있다는고민을했어요.그런데어느날,아주가까스로,우리가서로연대는못하더라도유대하는것정도는가능하지않나하는생각이찾아왔습니다.기실이런유대의뭉텅이가연대가된다는생각도했지요.한데,이런유대는결심에서가능하다고생각합니다.내가너와공감하겠다는결심,회의하고절망하되,적어도같이회의하고절망하겠다는결심이요.하여,시집의제목이사랑으로점차정해졌습니다.물론저는대체로외면하는사람이었다는점에서부끄럽고,부끄럽지만……어쨌든시집으로나마그런마음을담고자했어요.요즈음엔이런유대가더욱더필요한시기란생각도듭니다.

Q3.출세작이라할수있는「가만히있을수없는가만히동호회」는무척힘있는작품이에요.이시를쓸때어떤심정이셨을지궁금해요.또시간이지나작가님의마음에파문을남긴다른시들은무엇이있을까요?

‘가만히’를쓸땐화가많이나있었어요.저는어떤명령이나요구를들을때그이유를반드시들어야해요.납득하지않으면못하는스타일이죠.당시세상곳곳에부당한명령이너무많다고생각했어요.그런생각이저에게‘가만히’를쓰게했어요.누군가나에게‘가만히’를지시한다면나는차라리가만히몸부림치겠다,가만히에게가만히의진정한의미를되돌려주겠다,이런생각이눈덩이처럼불어나시가되었습니다.시간이지나제마음에파문을남긴다른시로는여러가지가있지요.그중에먼저「평범한일4」를독자여러분에게선보이고싶어요.이시에서“삶이아름답다는오래된믿음을소중히여기면/귀신의삶이외로워지고”라는구절을오래곱씹곤했어요.보편적인믿음,아름다움은소중한것이죠.하지만그보편을조명할때제외된존재가있을수있다는것.그런생각을담고자노력한작품입니다.또다른시로는「음악의편리와료칸의별」을추천해드리고싶어요.인터뷰를보시는분에게만알려드리는이스터에그인데이시는「인도식키친―눈물이마음으로부터눈으로나온다면,모든물은아래로흐르는데왜유독눈물만은그렇지않은가」와서로대결하는느낌으로쓴연작입니다.「인도식키친」을통해떠나는사람이받는위로에관해썼다면,이시에서는다시결심하는사람의의지를담아내고자했지요.비교하면서읽으셔도재밌을거라고생각합니다.

Q4.2부의'알파카'연작시또한기억에남습니다.한호흡으로읽으면마치한편의소설을읽은느낌도들고요.귀여움속에깃든잔인함이랄까,작가님이숨겨놓은의미가있을것같았어요.이연작시를통해전하고싶은것이있었을까요?

알파카연작을통해선‘새로움’이라는개념에대해많이생각했어요.새로움을문학의지상명제처럼말하는사람이많죠.하지만사실새롭다는개념만큼구태의연한것도없다고생각해요.낯설게하기,뒤샹의샘같은것이다100년전의발명품이잖아요.게다가그어떤개념보다히트한유행품이고요.그렇다면차라리낡게쓰는것,대놓고촌스럽게하는게진정한새로움이아닌가하는생각도해요.무엇보다견딜수없는것은새로워지라는온갖압제들이에요.새로워지라는낡은지령을내리는주제에마치대단한모더니스트처럼으스대는구닥다리들이요.또한,이연작을통해선그렇다면‘진정함’이란무엇인가란생각을많이했어요.새로움은모두당대의산물이며,비교를통해가능하죠.나아가인간존재도기실그렇게대단한게아니라일종의에너지장에불과하다고하죠.우리눈에보이는모든물질도원자와원자의결합일뿐이며그사이는아득히떨어져있다고하는데……그러면실존이란무엇인가까지생각이뻗었습니다.우리가얻을수있는유일한실존은서로가서로를믿는일정도뿐이다,이런결론이요.이런다양한생각이알파카연작에담겼습니다.무슨소리를하는건지저도점점모르겠네요.하하하.

Q5.마지막으로독자들에게전하는인사한말씀부탁드립니다.

저의첫시집을찾아주신독자여러분감사하고,감사하고,대단히감사합니다.사소한단어와구두점까지끝까지놓지않고고민한시집입니다.부구성과시배치,각각시편의조응에도무척공을들였어요.다시는이렇게내진못할것같단생각이들정도입니다.바쁘게흘러가는시간속제시가여러분의쉼표가된다면무척행복할거예요.부디기쁘게읽어주시길소망할따름입니다.다시한번진심으로고맙습니다.

시인의말

이제세상에없는그병원을생각하면수많은나무가떠오른다.
손바닥같은노란잎을매달고선나무.서로의살냄새를나누어쓰는나무.햇볕을마구때리고있던나무.아름드리나무,이팝나무,후박나무,나무,나무,나무.

이태원에서,신림동에서,서현역에서,그리고무수히많은어딘가의골목에서.
내가아니어야할이유는없었다.그것이때로괴로웠고,그것이때로죄스러웠고,때때로어린시절헤매던서현역을곱씹곤했다.에스컬레이터에서의오르락내리락.내가알던가장화려한곳.

사람들이쏟아진다.사람들이쏟아졌다.사람들이쏟아졌기에.

누군가의죽음은공동이함께살아내고마는삶의끊임없는장소가되는군요.

누구는그것을그라운드제로라부르고,누구는그것을4·19민주묘지라부르고,누구는그것을한숨이라부르고,누구는그것을어떤이름으로든부르고,말조차하지못하는말이그렇게탄생하고……

죽음은무언가가되어가고있군요.긍정인지부정인지모를이끊임없음앞에서.
나는기어코사랑을떠올릴수밖에없었습니다.

2023년11월
변윤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