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종 눈물귀신버섯 (한연희 시집)

희귀종 눈물귀신버섯 (한연희 시집)

$12.00
Description
“인간이었다가 이내 영혼이었다가
깜빡깜빡하는 혼란 속에서”

그늘진 땅속 서로의 손을 붙들고서
신비하고 이채롭게 자라나는 눈물, 귀신, 버섯
감각적이고 새로운 목소리의 시인들을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문학동네시인선이 200번을 앞두고 199번으로 한연희 시인의 두번째 시집 『희귀종 눈물귀신버섯』을 선보인다. 2016년 창비신인문학상을 통해 “시를 전개하는 방식이 능란”하고 “일상의 친근한 사물과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데서 시적 “기반이 탄탄함”을 알 수 있다는 평(심사위원 박성우 박소란 송종원 진은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첫 시집 『폭설이었다 그다음은』(아침달, 2020)에서 매 순간 우리를 틀에 가두고 교정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는, 비뚤어지고 정체를 알 수 없어 아름다운 화자를 앞세워 끊임없는 폭설이 쏟아지는 종말론적 세계 속에서 절망하는 대신 사랑의 힘으로 지지 않고 걸어나갈 것을 다짐한 바 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좀더 어둡고 축축한 곳, 빛이 들지 않아 외면받기 쉬운 곳으로 눈길을 돌려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기묘한 존재들을 들여다본다. “저 혼자 자라나” “귀신처럼 들러붙은” “이상한 유기체 같”(한연희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에서)은 이 존재들은 때로는 ‘기계 속 유령’과 ‘계곡 속 원혼’으로, 때로는 “잿물과 산비둘기의 피로 이루어진 비누”(「비누의 탄생」)로 몸을 바꿔가며 신비롭고 발랄한 목소리로 서늘하고도 서글픈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저자

한연희

한연희.2016년창비신인문학상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폭설이었다그다음은』이있다.

목차

1부공포의맛을꿀꺽삼켜버렸지
손고사리의손/딸기해방전선/비누의탄생/공포조립/고딕모자/미안해를구성하는요소/씨,자두,나무토막그리고다시/굴소녀컴백홈/기계속유령/시옷과도깨비/타오르는손잡이/계곡속원혼/광기아니면도루묵/에밀리껴안기

2부인간이었다가영혼이었다가깜빡깜빡하는
녹색활동/버섯누아르/실내비판/나타샤말고/사나운가을듣기/도무지/곤드레는여전히/12월/잉여쿠키/질투벌레/덕수와궁궐/아무나악령/야생식물/리히텐슈타인의말

3부그렇담넌요괴로구나
하이볼팀플레이/아주가까이봄/주먹밥이굴러떨어지는쪽/배꼽속요괴/알루미늄/캠핑장에서왼쪽/밀주/킬링타임/어제의카레/인절미콩빵/호두정과/나의찬란한상태/율동공원/뚜껑에진심

4부버섯을따자버섯이되자버섯을먹자
청록색연구/취미생활/미래에없는/미드웨이섬/겨울회로/불가사의한통조림/산호를좀먹는여섯번째의날/마리마리/식인귀/썰매가요/S이거나F/표고버섯키트

해설|망자들의학교
최가은(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어디서부터이야기를해야할까

끝이난시점
거기엔
경계선이있고
넘어서기에딱좋고

축축해진손을흙에묻었더니
금세와글와글한이야기가자라났다

(…)

손……님……
서두를부탁드려요

주렁주렁열린손을뽑는다

이이야기가
부디
아무나꽉잡아주기를
_「손고사리의손」에서


왜그랬어왜그랬어왜그랬어왜그랬어
어떤응어리가데구루루굴러간다

(…)

개는죽으면영영제자리로돌아오지않는다고하고
인간은제자리를벗어나지못한다고한다

빨간실타래와부적을베개밑에서꺼내
가스불에태우고나서야
선명하게보인다

드디어찾았다
내가발뻗고죽을자리!
_「광기아니면도루묵」에서

“끝이난시점”(「손고사리의손」)에경계선을넘어서서‘영혼’‘귀신’‘유령’이되기를택한이들은필연적으로“어떤응어리”를지니고있기마련이다.“빨간실타래와부적을베개밑에서꺼내/가스불에태우고”(「광기아니면도루묵」)서도풀수없는,이들로하여금지박령이되어영원히이곳에머무르게하는이응어리는무엇일까.시집을채우고있는장면들은하나같이무참하다.‘나’의사랑하는언니는자신이다친것도,자신에게갓난아이가있는것도까먹다영혼마저까먹어버린채창밖으로떨어진다(「고딕모자」).이웃집아저씨가낚아챘던여자애의손목에서는지워지지않는비린내가나고(「알루미늄」),또다른여자애는물에빠져죽임을당하며(「굴소녀컴백홈」),피서객들이노니는캠핑장인근에는누군가의피묻은옷더미와구더기가있다(「캠핑장에서왼쪽」).이토록“무책임한군중무차별적폭력무의미한처벌”(「굴소녀컴백홈」)뿐인세상에서‘끝’을맞이한이들은“썩지않는몸과뒤섞인몸의사체를//걷어버리면/세상에태어난흔적도없어져버”(「미드웨이섬」)리므로수습되지못한채부패해갈뿐제대로된애도를받을수없다.“침묵과침묵사이에서말못한사연”은썩어들어가며“끈적하게상처에달라붙”(「딸기해방전선」)을따름이다.
그런데이토록참혹한사연으로인해원혼이되어버린존재들은어찌된영문인지자신의한을풀어내기는커녕이야기를시작할수조차없다.그들에게이름이없기때문이다.이름이없다는것은자신의존재를증명할수없다는것이며이승에서든저승에서든존재가증명되지않은자에게는목소리가주어지지않으므로,그들은‘손님’,즉샤먼의힘을빌려야만이야기를시작할수있다.바로이샤먼의역할로서이세계에초대받은인물이한연희의화자이다.그는“인간이었다가이내영혼이었다가깜빡깜빡하는/혼란속에서”(「12월」)방울달린천조각을흔들면서,버림받고상처입은존재들이자신의못다한이야기를완성할수있도록,그들각각의존재가‘희귀종’으로호명되고보호받을수있도록그들의이름을찾고또찾는다.

누군가를부르기에적당할때까지
누군가의형체가만들어지기까지
이름을만든다

온자와
간자의이름은늘다르다

(…)

희고둥그런기계앞에서
숨을크게들이마신다
그의이름은에밀리
_「에밀리껴안기」에서


여전히아이들은이른죽음을맞이하고
가볍고작고흰손가락이그렇게무참히얼어붙고있는데

그러니12월에는
뜨거운통안에서퍼올린이름들을불러줘야해
이끈질긴애정으로작은것이라도놓치지않으려면
무슨이야기든듣고말해야한다
_「12월」에서


무지개를건너간반려동물나의친구언제나자매카레의여왕다정한이웃혹은선생님저먼인도의수많은신의부름을물려받은자그리고내가식탁에마주앉아시끌벅적이야기를나눈다

얼마든지네편이되어주기로약속할게
_「어제의카레」에서

그렇게‘영혼’‘귀신’‘유령’이“나의친구언제나자매카레의여왕다정한이웃”혹은“에밀리”가될때,그들의이야기를듣고“얼마든지네편이되어주기로약속”하며서로의죽음을기억하고존재를증언하기시작할때,‘눈물’‘귀신’‘버섯’은한데모여‘눈물귀신버섯’이라는희귀하고새로운버섯의이름을얻는다.불가해한메아리와섬뜩한흐느낌은이야기로자라나마주앉은식탁은어느새와글와글한이야기들로시끌벅적해진다.

기억해야합니다
진실을파헤쳐야합니다
꾹꾹적어나갈수있는연필을
언니가손에쥔다
엄마가이름을쓴다
이모가일기를끝마친다
딸이필통가득히연필을모은다
그렇게
씨가나무로나무가연필로연필이진실로
이어지고이어지는세계에서는
작고여린씨앗이되는것이
두렵지않을거야
무궁무진한다음을기다릴거야
_「씨,자두,나무토막그리고다시」에서

한연희의화자는말한다.“우리의목소리가바람처럼금세사라질거라고다들말했지만”(「하이볼팀플레이」),이야기의손이끝끝내우리를꽉잡아줄것이라고.사라지게두지않을것이라고.그렇게“무궁무진한다음”이기다리는이야기를전해들은“여자애는무럭무럭어른이되”고,“비좁고어두운동굴을”막빠져나온자리에서우리는마침내“모두나이많은여자”(「표고버섯키트」)가되어있는서로를무사히마주할것이다.


◎한연희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첫시집『폭설이었다그다음은』이후3년만에두번째시집『희귀종눈물귀신버섯』을출간하셨어요.짧다면짧고길다면긴시간인데,그동안어떻게지내셨나요?두번째시집을선보이는마음은어떤지도말씀해주세요.

3년보다는한6년여정도의시간을지나온기분이랍니다.왜냐하면첫시집을내고얼마안되어코로나가터졌거든요.독자분들을만날기회가별로없다보니우울감에빠질때도있었고,또반강제적인고립생활에지쳐분노나슬픔같은,애써외면했던감정들이수시로솟구쳐올라오기도했었어요.제마음을잘다스려보려고노력했던시기였네요.그래서그기간이상대적으로더길게느껴지는게아닌가싶습니다.하지만그마음들을고스란히붙잡은덕분에이렇게두번째시집을만들수있었어요.그런데말이죠,어째설레는게아니라오싹한기분이들어요.축축하거나들끓는감정으로메꾼이시집이왠지제게귀신처럼들러붙은것같달까……저혼자자라나제게서떨어져버린이상한유기체같아요.그만큼떨리고무섭습니다.

Q2.‘희귀종눈물귀신버섯’이라는제목이무척독특해요.분명잘아는단어들인데,합쳐놓고보니언뜻으스스하게느껴지기도하고,기묘한인상을주기도해요.‘눈물’‘귀신’‘버섯’은이번시집에자주등장하는존재들이기도한데요.이제목에는어떤의미가담겨있는지,특별히이세가지에집중하게된이유가있는지궁금합니다.

실제로‘그물귀신버섯’이있어요.또‘눈물버섯’도있답니다.단순하게는이이름들의조합이에요.세상에는달걀버섯,미치광이버섯,애기방귀버섯등들으면웃기고신기한버섯들이정말많이있는데요.어느날이이상한이름들에빠져버섯도감을찾아보게되었어요.처음엔이름이없었을야생버섯들에게어쩌다가이렇게특이한이름들이주어졌을까상상해봤어요.그랬더니자연스레제가그버섯들을시로가져와쓰고있더라고요.
아,혹시‘댕구알버섯’이라고아시나요?어제본뉴스에따르면희귀종인그댕구알(눈깔사탕이라는뜻)버섯이남원에서몇년째계속자라나고있대요.정말아주커다랗고하얀버섯인데,이름처럼독특해보였어요.제가조합해만든‘눈물귀신버섯’도어쩌면이렇게매년희귀하게태어나삶을이어가고있지않을까생각해요.남과다르다고버림받는게아니라오히려희귀종으로존중받으며살았으면하고요.알려진대로버섯은식물도동물도아닌존재예요.균류에속하는이개체가어쩐지제게는산것도,죽은것도아닌귀신과같아보였어요.경계의이쪽에선아무도아니지만,또저쪽에선아무나되는것에대해이야기해보고싶었어요.

Q3.그러고보니‘폭설이었다그다음은’이라는첫시집의제목과도꽤다른분위기의제목이에요.첫번째시집과비교해이번시집에서달라진점이있다면무엇인지소개해주세요.

제일먼저는화자인것같아요.어두워졌달까,성숙해졌달까,첫시집때와는조금다른여자가시집전반을누비는느낌입니다.그렇다고유머를잃어버리고싶진않았어요.아이러니한상황에서비집고나오는웃음을녹여내려고노력했어요.제가좀진지한편이라일상에서는누군가를많이웃기지못하는데,시에서만큼은독자분들이유머를잘찾아주셨으면좋겠네요.그리고첫번째시집에서출발한소재들이확장된점도특징이지않을까싶어요.이번시집에는유령뿐만아니라다양한존재들,그리고귀신이나공포에관한이야기가많이나오는데요.읽을수록더선명한장면들을그려볼수있을거랍니다.

Q4.이번시집에수록된시들은마치영화처럼생생하게감각적이고서사적입니다.영화중에서도공포영화,그것도다보고나면어쩐지서글픈마음이드는공포영화같아요.시인님은무섭고도슬픈이야기를좋아하시나요?평소어떤것들에서시상을떠올리시나요?

네,저는무섭고슬픈이야기를아주많이좋아해요.그래서제시에도자연스레한(恨)의정서를담아보고자했어요.평소에저는영화를자주보는편인데요,특히애정하는장르가공포영화예요.요즘공포영화는너무자극적이거나놀라게하는데혈안이되어있을뿐작품자체는아쉬운경우가많아서가려보고있지만,인상깊게본몇몇작품들은사라지지않고제안에남아시의힘이되어주는것같아요.예를들면영화〈기담〉에서본장면들을떠올리며가끔제머릿속을환기해볼때가있는데요.그렇게하면특정시를쓸때집중하기딱좋더라고요.
공포영화속늘무섭게등장하는귀신들의모습은때론슬퍼보이는데,사실그들은자신의사연을들려주고싶어할뿐이잖아요.저는그런억눌린마음들에귀를기울이고싶었어요.이번시집에서는제마음뿐아니라다른이들의마음도어루만져주고싶었어요.

Q5.마지막으로,『희귀종눈물귀신버섯』을읽을독자분들께인사를건네주세요.

독자여러분,안녕하세요.올여름『희귀종눈물귀신버섯』으로인사를드리게된한연희입니다.제첫번째시집과는또다른느낌이가득한이번시집에서는요,한여자가골목을산책하고,계곡에가고,술을마시며,자신과마주치는또다른여자들에대해이야기를합니다.이시집에담긴축축한정서는그들과함께하고픈저의열망이기도하고,허기이기도한동시에독자여러분한분한분과도꼭나누어보고싶은마음같습니다.어떤때는기괴하거나,또어떤때는친근하기를바라는제이야기의파편을여러분들이꽉잡아주셨으면좋겠어요.
언젠간옹기종기모여앉아이야기를나누는‘괴담낭독회’를꼭마련해보고싶어요.별탈없이지내시다문득만나뵐수있으면참좋겠습니다.모두들희귀한나날맞이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