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 - 문학동네 시인선 196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 - 문학동네 시인선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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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는 맞추고 나는 쌓는다
이것은 벽이 될 수 있고”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해체하고
그 낱낱을 들여다보는 골똘한 시선
문학동네시인선 196번으로 정영효 시인의 두번째 시집을 펴낸다.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를 유려하게 형상화했다는 평과 함께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계속 열리는 믿음』(문학동네, 2015)에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탐구하는 동시에 그들이 속한 현실의 공간을 자신만의 구조로 재구성하며 “현재적 일상의 시공간에 스며든 시원적인 것의 흔적을 돋을새김의 필치로 명징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무심하면서도 첨예하게 절제된 하드보일드 문체와 더불어 철학적 알레고리의 풍모가 스며”(문학평론가 이찬) 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시집은 첫 시집 이후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더욱 집요하고 골똘해진 시선으로 일상을 들여다보고 탐구하는 데 천착해온 그의 신작 시 50편을 엮어냈다.
저자

정영효

시집『계속열리는믿음』과산문집『때가되면이란』을냈다.

목차

1부거기가어디냐고물어보면나타난다
일층/기숙사/확장/블록/추방/있다/외국인/회유/행사/자료실/아직은모른다/전시회/조합원/면책/속임수/단체들/언덕을넘는사람들

2부이름이저무는쪽에
고양이가울뿐인데/어린이공원/난관/분명한밤/자율성/명분/내구력/도달할미래/손바닥소설/지키기위해/여럿의문제/증명하는공/개발/연속물/투어/오지않는날/최소한으로

3부조금더먼곳에서우리는모이고있었다
차단막/플랫폼/어떠한방식으로든/아무도없다/능원길/구역/건물주/거래/지분/손님/강당/모면/난로/영향력/잠행/종착지

해설|망설임의윤리
고봉준(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나는맞추고나는쌓는다
이것은벽이될수있고”

익숙한일상의풍경을해체하고
그낱낱을들여다보는골똘한시선

문학동네시인선196번으로정영효시인의두번째시집을펴낸다.2009년서울신문신춘문예를통해우리가발딛고있는현실의이야기를유려하게형상화했다는평과함께등단한시인은첫시집『계속열리는믿음』(문학동네,2015)에서공동체와개인의관계를탐구하는동시에그들이속한현실의공간을자신만의구조로재구성하며“현재적일상의시공간에스며든시원적인것의흔적을돋을새김의필치로명징하게드러내보여”주고“무심하면서도첨예하게절제된하드보일드문체와더불어철학적알레고리의풍모가스며”(문학평론가이찬)있다는평을받은바있다.이번시집은첫시집이후8년이라는짧지않은시간동안더욱집요하고골똘해진시선으로일상을들여다보고탐구하는데천착해온그의신작시50편을엮어냈다.

거기가어디냐고물어보면나타난다어디까지가야하는지알지못해도약속이있고설명이있어서
(…)
거기는다른곳임을알았는데나타난다어디로든이어지기위해드러났고정확하게믿을때가까워진다

찾으려고하면언제든앞에있다
_「일층」에서

이번시집에서가장먼저눈에띄는것은전에비해더욱간명해진각시편의제목들이다.시집의문을여는「일층」을비롯해「기숙사」「블록」「외국인」등수록시대부분이단순한제목을통해그내용을먼저제시하는것처럼보인다.그러나이러한판단은시집의제목인‘날씨가되기전까지안개는자유로웠고’(「아직은모른다」)를경유하며전복되는데,제목이말하는바날씨가됨으로써안개가자유를빼앗겼듯일층역시그정의에따라‘여러층으로된것의맨첫째층’을뜻하는‘일층’이되는순간자유를박탈당할것이기때문이다.즉정의함으로써그대상은하나의의미로고정되고구속되는것이다.때문에정영효는‘자유를박탈당하기’전의상태를골똘히응시하는것인지도모른다.그런가하면“거기가어디냐고물어보면나타난다”는시의첫문장을통해우리는시가지시하는것이이미존재하는보통명사로서의일층이아니라이를의심하고질문하여되짚을때나타나는대상임을확인할수있는데,이와관련해시집의제목을담고있는시「아직은모른다」를눈여겨볼수있다.

울타리를넘기전까지염소는온순했다의심하기전까지거짓은단순했다무서워지기전까지표정은희박했으며선택하기전까지분명히기회가있었다말하지못해서,말보다자신이더확실해서드러나기전까지증거는숨어있었다날씨가되기전까지안개는자유로웠고외국인으로불리기전까지그는어느도시의시민이었다
_「아직은모른다」에서

시는“울타리를넘기전”“선택하기전”“날씨가되기전”의상황에대해이야기하고있다.그런데주목해야할것은모든일이일어난뒤그전을회상하는식으로진행되는이시의제목이‘아직은모른다’라는사실이다.1부의명사형제목들틈에놓여있는이문장형제목은정영효의시를읽는힌트가되어주는데,그것은시인이지어놓은시의구조와관계된다.앞서말한것처럼간명한제목을내걸고있는많은작품들은다음과같은식으로이루어져있다.“그는아니었는데그가될수도있다그는몰랐는데남이알아볼수있다”(「외국인」),“줄을맞출필요는없지만줄을벗어나면안된다앞을바라봐야하지만앞을넘어서면안된다”(「투어」),“갑자기건물안을뒤지기도하고건물밖을서성이기도한다건물과상관없는곳에있으면//건물때문에달려오기도한다”(「건물주」).“제목에서끝나는”(「제목에서끝나는」,『계속열리는믿음』)일종의블랙코미디처럼읽히기도하는이시편들은그러나제목의자리를‘아직은모른다’고비워두는순간전혀다른의미를지니게된다.문학평론가고봉준이짚어보였듯정영효의시에서는“진술의내용이아니라진술의방식이,특정한대상이아니라세계와대면하는시인의자세가그자체로중요”(해설에서)하다는점을떠올린다면,이시들은한편의의미심장한수수께끼,곧질문이된다.다시말해이제목들은시에대한대답이아닌시를향한질문으로환원되는것이다.그렇다면이때“누군가가르쳐주는길을겨우알아”듣고“계속두리번거리는”(「외국인」)이는누구일까?“이것은벽이될수있고//이것은집이될수있다”“이것은계획할수있으며이것은무너질수있다”(「블록」)의‘이것’은무엇일까?정영효의시는‘이것’이무엇인지단정하기보다는그저“끝을열어”(「명분」)둘뿐이다.그럼으로써고정되지않은풍부한의미들이새롭게싹틀수있도록.

“날씨가되기전까지안개는자유로웠고”라는진술에등장하는‘안개’에대해시인은어떤태도를취하는가?이질문에대해시인은“여전히설명을미루고있다”.여기에서설명은종결,즉결론의다른표현이다.어떤사태에직면하여결론을내린다는것은대상이지니고있는잠재성을부정하는것,그리하여변화의가능성을봉쇄한다는의미이다.(…)“확실함을믿지않는곳에서는가장현명한해결책을질문이라고부른다”는시인의진술을신뢰한다면정영효의시는‘질문’의시라고말할수있을것이다.또한“그곳에서는질문을찾지못하고돌아온일을생각이라고부른다”(「언덕을넘는사람들」)라는시인의말에동의한다면정영효의시는생각을위해‘설명/결론’을유보하는‘사유’의시라고평가할수있을듯하다.그에게있어서시적윤리는대상에대해속단하지않는것,빠른결론에도달하기위해잠재성을봉합하지않는것이다.
_고봉준(문학평론가),해설에서

“아무것도묻지않는게가장평화로운광경”임을알면서도끝끝내뾰족한질문을던지고야마는정영효시의화자는“비슷한모습들이비슷한일들을감추는평화”로운상태를떠나“나를드러낸채뜨겁게달리고싶”(「종착지」)다고말한다.그러니어느새답하기어려운하나의거대한질문이되어있는이시집앞에서우리는그저시인을따라“내용이가리키는것을기억”하며“제목이감추는것을기다”릴수밖에없는것이다.“문으로들어서면문밖의질문으로가득차버리는곳”(「자료실」)에서,간명하게놓여있는제목은지워버리고그내용만을맞추고쌓으면서.그렇게쌓아올린것을다시또부수고골똘히들여다보면서.그마음은또무엇이라부를수있을까?아직은모른다.다만그“이름이저무는쪽에”(「도달할미래」)선우리가비로소“조금더먼곳에도착”(「종착지」)할것임은알수있다.

정영효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첫시집『계속열리는믿음』이후8년만에두번째시집『날씨가되기전까지안개는자유로웠고』를출간하셨어요.그동안어떻게지내셨는지,두번째시집을출간하는마음은어떤지말씀부탁드려요.

그동안특별한일은없었고특별한일을계획하지도않았던것같아요.시쓰기말고도다른일들을하긴했지만그마저도제일상에서자연스럽게하던것들이었거든요.어쨌든두번째시집이출간되기까지꽤오랜시간이걸려서‘첫번째와두번째사이의긴거리감을무엇으로채워야할까?’라는고민은했던것같아요.아무런답을얻지못한채그고민과친해지다보니이렇게인터뷰를하고있네요.지금부터는‘이번시집이어떻게읽힐까?’라는질문과친해져야할시간인것같습니다.

Q2.‘날씨가되기전까지안개는자유로웠고’라는제목은수록작「아직은모른다」의한구절에서따온것이지요.어떤의미가담겨있는제목인가요?

현재의사건이나상황을근거로‘안개’를‘날씨’로정의하면안개의과거는소거되거나왜곡될수있을거예요.날씨의영역으로안개를포괄하는순간안개가지녔던자유를보기는힘들겠죠.또안개의미래를정해진방식대로해석해버릴수도있고요.이렇게지금내가보고느끼는주변의모든것에불확실성과불완전함이숨어있을지모른다는생각이「아직은모른다」에녹아들었고,또그생각을가장잘드러내는구절이“날씨가되기전까지안개는자유로웠고”인것같아요.시집에실린모든시가그렇다고볼수는없지만,많은시편들이불확실성이나불완전함에대한저자신의물음과맞닿아있다고생각합니다.

Q3.첫번째시집과비교해이번시집에서달라진점이있다면무엇인지소개해주세요.

이번시집을준비하면서의식적으로첫번째시집과다르게써야겠다고생각하지는않았습니다.변화만큼중요한게연속성일수도있으니……그런데출간을앞두고두번째시집의원고를천천히들여다보니사람과공간에대한발화가첫번째시집에서보다자주발견되더라고요.이런특성에그동안달라진저의관심과시적방향성이반영된것아닐까요.사람과공간에대한잦은발화가첫시집과의확연한차이점이라고말할수는없겠지만,이번시집을이해하게하는하나의단서는될수있다고생각합니다.

Q4.수록된작품들의제목이대체로무척간명하고익숙한데요(‘기숙사’‘블록’‘건물주’‘외국인’등),이렇게지시한개념을한번비틀어보여줌으로써그정의를다시곱씹어생각해보게하는것이인상적이었어요.이를테면이런식으로요.“갑자기건물안을뒤지기도하고건물밖을서성이기도한다”(「건물주」),“그는아니었는데그가될수도있다그는몰랐는데남이알아볼수있다”(「외국인」).첫번째시집에실린수록작의제목‘제목에서끝나는’이떠오르기도하는데,이처럼독특한시의구조는어떻게형성하시게되었나요?

제목짓기는저에겐언제나힘든일입니다.여러가지제목들을떠올리다가도결국엔간명한쪽으로손이가더라고요.이런제목은지시적으로느껴질수도있지만,본문과잘조합되면의미가확장되거나변주될수있다고생각해요.「건물주」와「외국인」처럼제목이주인공이자대상인작품에서는제목의선명함이시적진술을수렴하면서내용을결합시키는힘을발휘할수도있고요.이렇게제목과본문이서로를정의하는관계성에이끌려이런구조의시를자주쓰게됐는데,한편으로는다른방식으로제목을짓고구조에도변화를주고싶다는생각을하고있습니다.

Q5.마지막으로,『날씨가되기전까지안개는자유로웠고』를읽을독자분들께인사를건네주세요.

저는혼자서하는산책과혼자서떠나는여행,혼자서먹는밥을좋아합니다.시집읽기도혼자서할수있는멋진일중의하나라고생각해요.제시집이‘혼자’라는상황을즐기는누군가에게작은보탬이되었으면좋겠습니다.

시인의말

이제는작별의시간이다.

2023년6월
정영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