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터는 없어 : 제2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1미터는 없어 : 제2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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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는 긴 시간 이런 소설을 기다려왔고
앞으로도 이런 소설을 꿈꿀 것이다.”
_신수정(문학평론가)
지난해 100쇄를 돌파한 은희경의 『새의 선물』과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천명관의 『고래』 등 작가들의 빛나는 첫 장편소설을 소개해온 문학동네소설상의 제28회 수상작 『1미터는 없어』가 출간됐다. 강희영의 『최단경로』 이후 3년 만의 수상작으로, 기다림이 길어진 만큼 심사 또한 신중하고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치열한 토론 끝에 수상작을 결정한 뒤 당선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그가 202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신예 작가 양지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적록색맹을 가진 학생과 선생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린 단편소설 「나에게」로 “오해와 이해 속에서 펼쳐지는 풍경이 압도적”(심사위원 성석제 하성란)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 젊은 작가는 그뒤 장편 작업에 집중하며 오랜 시간 원고를 매만졌다. “문예창작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기에 늘 염려가 많았”지만 “당선작은 스스로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이희주 작가와의 인터뷰 중에서)는 조심스러운 고백에서 우리는 작가가 얼마나 오래도록 고심하며 원고를 다듬었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첫 페이지부터 그 흥미로움과 참신함이 압도적”(소설가 김인숙)이며 “매력적이고 위트 있는 장면이 많고 생동감 넘치는 인물의 매력이 빛나는 소설”(소설가 편혜영)이라는 평을 이끌어낸 『1미터는 없어』는 생소하게 느껴질 법한 측량의 세계를 위트 있고 톡톡 튀는 서사와 거침없는 전개로 풀어낸 작품으로, ‘측량의 천재’라 불리었던 ‘그녀’의 실종에 얽힌 배후를 파헤치기 위해 그녀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측량하고 통제하여 획정할 수 있는 것 너머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저자

양지예

2021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단편소설「나에게」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미터는없어009

수상소감187
수상작가인터뷰|이희주(소설가)193
심사평205
작가의말217

출판사 서평

측량의천재가사라진뒤,
잴수없는‘유령’만이남았다

10년전,‘그녀’가미얀마에서행방불명되는사건이일어났다.양곤국제공항을출발해만달레이국제공항에도착할예정이었던비행기가사소한사고로이라와디강위에불시착했을때의일이다.그녀는다른모든승객들과함께비행기에서내렸고,구명조끼를입었으며,탈출슬라이드에올라구조용보트에까지무사히탑승했다.그리고그곳에서그녀는사라졌다.감쪽같이.
그녀는누구인가?연구원,과학자,발명가이자백만장자,그리고“우주의춤을지름12센티미터에담아낸사람”(114쪽)이라불리기도한측량의천재.그녀의천재성은어린시절“5센티미터길이의선분을그어보세요”(16쪽)라는산수문제를마주하고처음으로발현되었다.범재라면무심코지나쳤을법한그문제에서치명적인오류를발견한것이다.

우리는상상력을발휘해야한다.자의눈금을떠올려보자.매우가느다랗지만,분명한두께를가지고있다.두께가없다면어떻게우리눈에보이겠는가.그럼선분은어디에서긋기시작해야할까.눈금왼쪽에바싹붙어시작해야할까,오른쪽에바싹붙어시작해야할까.(…)눈금의두께따위무시한다면간단히해결할수있는문제다.그러나그녀에게는그렇지않았다.한번인식하자도무지그냥지나칠수없게되었다.그녀는손톱을물어뜯으며들여다보고또들여다보았다.그럴수록눈금은점점두꺼워지는것같더니자의너비를넘어책상보다두꺼워졌고마침내운동장까지펼쳐졌다.(17~18쪽)

눈금에는아주가느다랗더라도분명한두께가있다.그렇다면길이를측정하기위해선분을그을때시작점을어떻게삼아야할까?그녀를난처하게한건그뿐만이아니다.어떻게든선분을제대로긋기위해눈금을계속들여다보자눈금이점점두꺼워지는듯보인것이다.그녀는“눈금이점점두꺼워지는상황이환상인지실제인지구분”(18쪽)하지못한채커다란공포를느낀다.

이와같이측정의부정확함에대한의문과더불어그로인한두려움을안고자라난그녀는청소년기에이르러자신의운명을깨닫게된다.박물관에서유척(鍮尺)을발견하면서다.조선시대암행어사들이세금의양을검사하거나형구의크기를재기위해가지고다녔던,놋쇠로만든자.그것을보는순간그녀는그도구에얽힌무수한사연과함께사람들의모습이보이는경험을한다.“탐관오리에게유척을빼앗기고유명을달리한암행어사,규정보다두배는큰곤장에맞아죽은이름모를민초,놋쇠를담금질하고눈금을새겨정성껏유척을만들었으나규격에서벗어났다는모함을받은장인들”(73쪽)의원혼이.하지만눈앞의눈금이점점커지는걸보고두려움을느꼈던것과달리“그녀는더이상그존재들이두렵지않았다.센티미터와밀리미터,필요하다면나노미터같은단위로측정해하나씩차분히다독일수있으리라는생각이들었”(73쪽)기때문이다.그렇게그녀는“측정을자신의운명으로받아들이게”(74쪽)된다.성인이된이후그녀의천재성은측정을넘어발명의영역까지뻗어나가는데,몸무게를소수점아래열두자리까지측정하는동시에주변물건을재배치하거나호흡을조절하는것만으로몸무게가바뀌는‘열두자리체중계’는단숨에그녀를발명가의자리에올려놓는다.나아가세계적인햄버거프랜차이즈기업‘버거킹’과의협업으로이루어낸,언제나원형을유지하는‘찌그러지지않은버거’의개발과자르지않고통째로쓸수있어버거의크기를획정하는데기여하는‘납작양상추’‘납작토마토’의품종개량은그녀의천재성을세상에떨쳐보이게한다.

그런그녀가실종되었으니세간에서는여러추측이떠돈다.의심의눈길은가장먼저그녀의전남편인‘염박사’에게로향한다.실종직후방영되었던다큐멘터리에서그녀가한때몸담았던기업‘극한정밀’의염사장,그리고그의아들이자그녀의동업자이기도했던염박사가이실종의배후에있는지도모른다는뉘앙스를풍겼기때문이다.다음으로의심이향하는곳은그녀의유일한친구였던‘금요숲’이다.금요숲이그녀의실종지인미얀마출신의난민이며그녀와가장긴밀했던사람이라는이유에서다.하지만금요숲은실종당시그곳에없었다는알리바이를제시하며의심에서벗어난다.이렇다할증거가발견되지않자의혹은자연스레물밑으로가라앉는듯보인다.

시간이흘러그녀의업적을기리는박물관이건립되고,한때고산등반가였지만산악사고로인해왼쪽다리를잃은뒤등반을포기한‘나’가과거그녀의후원을받아에베레스트에오른것을인연으로관장직을제안받는다.‘나’는생계를위해제안을받아들이지만,막상진짜그녀에대해서는잘알지못한다.그저천재에대한호기심과동경을가지고그녀가남기고간일기만을거듭해읽을뿐이다.

그런데어느날,‘나’에게국정원요원이찾아온다.국정원요원이요구하는것은관장의허가가있어야만열람할수있는그녀의일기.그는기록광이었던그녀의일기장속에사건의실마리가담겨있을것이라고말한다.국정원측의이야기가어딘지미심쩍게느껴지면서도‘나’는실종에얽힌수수께끼를풀기위해그녀의일기장을다시한번꺼내보기로한다.염박사와금요숲은정말그녀의실종과무관할까?국정원이‘나’에게했던말은전부사실일까?

부를수도잴수도없는것들을향해
한뼘더,한걸음더,한번더뻗어가는마음

그런데실종의배후를파헤치는한편그녀의일대기를톺아보며정확한측량의아름다움을펼쳐보이던소설은자꾸만‘유령’앞에서멈춰선다.그녀가실종직전마지막으로남긴메시지는바로“유령을남겨두어야한다”(58쪽)였다.유령이란무엇일까,말그대로의유령일까?‘나’는그녀의일기를토대로이모든이야기의실마리가되어줄유령을찾아나선다.그녀가어린시절처음으로목격한유령과박물관에서다시한번마주하게된유령,그녀의삶곳곳에서그모습을보이던유령들을.“확정할수없는대상은측정할수없고,측정할수없는대상은정의할수없”(78쪽)기에잴수도,부를수도없어그저유령이라고밖에표현할수없던그것들은그녀의실종과어떤관련이있을까.확정하지못하는데서비롯되는두려움을이겨내기위해모든것을정확하게재고자노력해온그녀는유령을좇아불확실성의영역으로걸어들어간것일까.두려움을무릅쓰고한걸음더내딛는마음,다시한번손을뻗는마음은어디에서비롯된것일까.『1미터는없어』는결국그마음을헤아리는여정에다름아니다.소설은그녀의뒤를따라가던‘나’와함께우리역시그녀가사라진미지의영역으로잡아끈다.모든비밀이기다리는그곳,유령의세계로.그곳에서우리는불확실성이란우리가없애야할한계가아님을,“존재는그흔들림에의하여유일”(103쪽)함을깨닫게될지도모른다.

나를구성하고있는이세계는왜이토록불확실한가?이불확실한세계는어떤모양으로생겼는가?그리고그안에서나는어떻게살아가야하는가?(…)완벽한아름다움에이르려는인간의추구가실패할수밖에없다는사실은새롭지도놀랍지도않다.그러나그매정한사실에번번이상처받기를그치고,두려움과불안감속에서스스로를의심하면서도미지의공허에뛰어들어한번더손을내밀어보는마음은언제나새롭게발명되어야하는것이다.(문학평론가인아영,심사평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