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의 수기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3

사냥꾼의 수기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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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반투르게네프

저자:이반투르게네프

1818년러시아중부오룔의부유한지주가정에서태어났다.1833년모스크바대학교철학부에입학했고,페테르부르크대학교철학부로옮겨1836년졸업했다.1838년부터독일베를린대학교에서유학하면서스탄케비치,바쿠닌등러시아이상주의자,서구주의자와교유했다.1841년귀국한뒤진보적청년모임에참가하며집필을시작했다.1843년부터1845년까지러시아내무성에근무하며희곡과중편등을썼고,서사시『파라샤』(1843)가벨린스키에게호평받았다.1847년〈동시대인〉에「호리와칼리니치」를발표하고작가로서입지를다졌다.이단편을비롯해수년간꾸준히발표한총스물다섯편의단편을모은작품집이자,대자연을배경으로러시아사회의모순과농노제아래민중의삶을뛰어난서정으로담아낸『사냥꾼의수기』(1852)가국내외로큰반향을불러일으키며정부의감시를받게되었다.1850년모친이사망했을때는집안소유농노천여명을해방하려해사회의이목을집중시키기도했다.이후주로파리에서지내며자료조사와집필을위해귀국할때를제외하고는생애대부분을외국에서보냈다.『루딘』(1856),『귀족의둥지』(1858),『전야』(1860),『아버지와아들』(1862),『연기』(1867),1870년대러시아인민주의사회혁명을그린마지막작품『미개척지』(1877)까지총여섯편의장편을남겼다.러시아최고의미문가,이상주의적자유주의자,인도주의작가로당대지식인의양심을대표하며말년까지명상과사색을이어가다1883년파리교외에서숨을거두었다.유해는그의유언에따라페테르부르크볼콥스코예묘지에안장되었다.



역자:이종현

서울대학교에서러시아문학을공부하고모스크바러시아국립인문대학교에서러시아서정시에관한논문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서교인문사회연구실회원으로활동하며웹진〈인-무브〉에20세기러시아시를소개하는‘러시아현대시읽기’를연재하고있다.옮긴책으로마리나츠베타예바의『끝의시』,LGBT세계시선집『우리가키스하게놔둬요』(공역),미하일쿠즈민의『날개』가있다.

목차


사냥꾼의수기

호리와칼리니치7
예르몰라이와방앗간여주인29
산딸기샘49
시골의사67
나의이웃라딜로프85
오두막농민옵샤니코프101
리고프133
베진초원153
크라시바야메차의카시얀187
마름219
사무소243
비류크275
두지주291
레베댠307
타티야나보리소브나와그조카331
죽음353
노래꾼들375
표트르페트로비치카라타예프405
밀회433
시그롭스키군의햄릿449
체르톱하노프와네도퓨스킨491
체르톱하노프의최후523
산송장577
덜거덕덜거덕!601
숲과초원627

해설|행복한이들도멀리떠나고싶어한다641
이반투르게네프연보657

출판사 서평

19세기러시아사회의모순과아름다운자연을망라하고
드라마와해학,서정으로직조한젊은투르게네프의걸작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와함께러시아의3대문호로꼽히는이반투르게네프의『사냥꾼의수기』(1852)가완역되어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으로출간되었다.『사냥꾼의수기』는러시아의아름다운자연을배경으로19세기농노제말기를살던다양한계층,다양한인간의일상을수채화처럼담백하게담아낸연작단편집이다.1847년부터1851년까지<동시대인>에스물두편이차례로실렸고,1870년대에세단편이추가되었다.총스물다섯단편은계절마다사냥감을쫓아곳곳을여행하는귀족사냥꾼화자의눈에비친다채로운자연과삶의풍경,그길에서마주친사람들에대한소박하고사실적인스케치들이다.러시아리얼리즘문학의걸작으로꼽히며,이야기들을끊임없이결합해가는연작형식은당시전통적서사구조에서벗어나려던작가들에게큰영향을미쳤다.톨스토이,체호프등당대러시아작가들의극찬을받았고,헤밍웨이와헨리제임스등영미권작가들에게도강렬한영감을주었다.톨스토이는『사냥꾼의수기』를읽고“이제글을쓰기가힘들어졌다”고말했고,그영향으로이후「삼림벌채」와「세죽음」을썼으며,체호프의「갈대피리」와「사냥꾼」도이작품에영감을받아쓴것으로알려졌다.

삶의지난함과광활한자연이그려내는시대의풍경화
젊은투르게네프의역작이자러시아리얼리즘문학의성취

니콜라이고골에이어러시아의차세대문학을이끌이반투르게네프가등장했다.그는페테르부르크대학교에서철학을공부한뒤,베를린대학교에서유학하며서유럽의중심부를여행했다.그리고개화하고근대화하는그들의모습에매료되었다.스스로도자신의진정한교육이시작된곳이러시아밖유럽이라말했듯이,젊은날서구주의와자유주의에크게이끌린투르게네프는이후“가장비러시아적인러시아작가”로불리게되었다.1840년대집필활동을시작한투르게네프는담백한글과특유의뛰어난서정성으로곧인정받았다.러시아작가들과결이달랐고,프랑스작가,특히귀스타브플로베르에가깝다는평을들었다.투르게네프의이름을세계적으로알린첫번째성공작은1852년출간된연작단편집『사냥꾼의수기』였다.
알렉산드르2세가농노를해방하기로결심하게된이유중하나였다고거론되기도하는『사냥꾼의수기』는사냥꾼화자가대자연을누비며지주에서농노,마름,상인,하인에이르기까지수많은사람과나눈비극적이면서도즐거운공감과상호작용의기록이라할수있다.특히농노제의억압과가혹함을드러내는「호리와칼리니치」「두지주」등의단편을발표한후,이작품들이직접적인이유는아니지만반정부적인작가로서정부의감시를받게되었고,실제로구금되기도하고18개월동안고향에서유배생활도했다.
각단편은사냥애호가인이름없는화자의여정을좇는다.하나의연속적인이야기가아니라서로분리되어있으면서도연결된이야기다.눈에띄는클라이맥스나뚜렷한줄거리없이대부분의이야기는사냥여행길에서만난사람들과나누는대화,관찰,그들에대한이해와공감을중점으로흘러간다.사냥꾼이만난사람은대부분하인이나농노다.지주의땅을부치면서버거운소작료를내느라등골이휘고,귀족지주밑에서일하며평생입에풀칠이나하는,어떤보호도받지못하는이들이다.근대화되어가던당시농노제는유럽인들에게도완전히중세적인것으로여겨졌으며,1861년폐지될때까지러시아의발전을저해하는가장큰원인으로간주되었다.당시농노의삶을그린작가들은여럿있었으나농노를하나의온전한인간으로그린작가는투르게네프가유일했다.농민이그저주변인물로그려지거나교훈적인소설에서교화의대상으로만등장하던톨스토이의소설과달리,투르게네프의작품에서는교훈적인내용을찾아볼수없다.투르게네프가농노들이받는억압을심각하게느끼지않아서가아니라그가천성적으로교훈적인글을쓰는작가가아니었기때문이다.교훈을주는글은그가추구하는소설미학이아니었다.

“어째서포도주를데우지않았지?”그가꽤날카로운목소리로시종에게물었다.
시종은당황하며말뚝처럼동작을멈춘채창백해졌다.
“내가자네에게부탁하지않았던가?”아르카디파블리치가그에게서눈을떼지않고차분히말을이었다.불쌍한시종은자리에선채우물쭈물하며냅킨만쥐어틀뿐한마디도하지못했다.
_「마름」에서

투르게네프는당시농노제의가혹함과봉건적폭정을다양한상황의묘사로암시했을뿐,폐단을명시하거나강조하지않았다.오로지그들이사는모습에,인간그자체에,삶그자체에시선을두고주관적판단이나이념적개입없이러시아의얼굴을수채화처럼명징하게그려나갔다.「산딸기샘」에서화자는더운여름날사냥을나갔다가강에서낚시를하던두남자를만난다.그중한사람은이웃마을농노스툐푸시카였다.작가는화자의눈을통해독자에게다음과같은사실을알려줌으로써이남자의불행한상황을,19세기중반봉건적사회의우울감을그린다.

하인이라면누구나하인집단에서모종의지위,모종의관계를가지며,지주에게봉급을받거나아니면하다못해매월‘생필품’이라는것을받는다.스툐푸시카는어떤물질적대가도받지않았고누구와도혈연관계가없었을뿐아니라아무도그가누군지몰랐다.심지어과거도없었다.그에대해서는아무도말하지않았고그는가호조사에도등재되지않았다.그가한때어느댁시종으로일했다는알수없는소문만돌았다.하지만그가누구인지,어디출신인지,누구의아들인지,어쩌다가슈미히노사람이되었는지,무슨수로언제부터입고다녔을지모를무호야르카프탄을구했는지,어디에사는지,무슨돈으로먹고사는지등등아무도알지못했고,사실아무도궁금해하지않았다._「산딸기샘」에서

『사냥꾼의수기』에서가장강렬한구절중하나로꼽히는이대목은농노제가유발한비인간화의과정을보여준다.친구도가족도없고,자기것이라고부를만한것이아무것도없음에도주변사람들은아무도왜그런지궁금해하지않는다.그에대해알려진유일한정보는그가다른사람의재산이라는것,누군가의소유라는것뿐이다.화자는스툐푸시카의상황을이상하다고할뿐,감상도판단도하지않는다.오직농노의눈으로본것,농노의입에서나온말로그삶의또다른관점을보여줄뿐이다.이런묘사방식뿐만아니라이야기들을끊임없이새로결합해가는투르게네프의스타일은당시새로운서사구조에목말라하던작가들에게큰영향을미쳤고,그중가장대표적인작가어니스트헤밍웨이는미국시인아치볼드매클리시에게보낸편지에“투르게네프가역사상가장위대한책을쓴것은아니지만,역사상가장위대한작가”라고적었다.

“친애하는독자들이여,어서나의손을잡고함께길을떠나자.”

자연,인간,그리고삶자체에대한사랑
투르게네프의모든역량이담긴예술연대기

『사냥꾼의수기』에대해말할때결코빠뜨릴수없는것은아름다운자연의빛과그변화에대한압도적이고도황홀한투르게네프특유의문체와묘사다.

해가맑게빛나거나구름에가려질때마다비에젖은숲의내부는끊임없이변했다.배시시미소를짓듯사위가갑자기밝아지기도했다.그럴때면그다지빽빽하게심기지않은자작나무의가는줄기들이돌연하얀비단같은부드러운광택을띠었고,땅에누운잔가지들은알록달록해지며순도높은금처럼타올랐다.또키크고곱슬곱슬한고사리의아름다운줄기는농익은포도색을닮은가을의빛으로단장한채빛줄기사이로무한히서로얽히고설켰다.느닷없이모든것이다시푸르스름해졌다.선명하던빛깔은순간사그라졌고여전히하얀자작나무들,차가운겨울햇빛도미처건드리지못한금방내린눈처럼,광택없이그저하얗기만한자작나무들은여전히제자리에서있었다._「숲과초원」에서

삶의기쁨과슬픔,평범하고가진것없는자들이살아가는아름다운자연에대한묘사는워즈워스를떠올리게도하지만,투르게네프는거기서불멸의암시를찾지도않고,추구하지도않는다.보이는그대로의풍경,그대로의즐거움을누린다.톨스토이나도스토옙스키와달리투르게네프는삶에종교적인의미도두지않았다.문학의주요목표는삶의진실을반영하고삶의불의에비판적인태도를취하는것이라생각했던투르게네프는이신념위에때로는냉철하고때로는아이러니한객관성을지닌초연함으로자신만의작품세계를구축해갔다.그리하여누구보다‘인간’에가까이다가서는『사냥꾼의수기』와같은걸작을탄생시켰다.
그는각단편에서다양한인간본성을포괄적으로그려간다.「시골의사」에서는죽음을앞둔젊은여성이마지막순간누군가를무조건적으로사랑하려덤비고,「나의이웃라딜로프」에서는중년의귀족이죽은아내의여동생과사랑의도주를한다.「베진초원」에서는동네아이들이모여밤새도록귀신이야기를하고,「크라시바야메차의카시얀」에서는낯선노인이신을이야기한다.「비류크」에서는고독한숲지기의투박한인정을,「타티아나보리소브나와그조카」에서는시골의가짜예술가를풍자적으로묘사한다.「죽음」에서는러시아인들의죽음에대한태도를,「표트르페트로비치카라타예프」에서는농노와귀족의비극적사랑을,「밀회」에서는순진한하녀와불쾌한하인의마지막만남을그려낸다.모두이세계를구성하는인간들이고,한편한편이밀도높은문체로완결성을지니고있다.비참한인생을사는무학의사람들에게도신과인생에대한깊은철학이있고,체념만큼의만족이있으며,그들이내뱉는말은어떤철학서구절보다더깊숙이우리마음에와닿는다.
희극적이고풍자적이고아이러니하고슬프고비극적인,19세기러시아사회의단면들을합성한그림과도같은이작품집에서는특히다양한인간들의이야기에귀기울이는화자의품위와온화함이빛난다.단편들중가장감동적인이야기는「산송장」이다.아름답고활기찬소녀였으나어느날알수없는병마에사지가마비되어산골짜기좁은창고에누워초연하게죽음을기다리는여성이주인공이다.밖으로한걸음도나가지못한채마을사람들의자비로목숨을유지하며신이데려갈그날을기다리는그녀의모습은고귀하고영웅적으로그려진다.그것은투르게네프가,그리고그화신인화자가진심으로인간을사랑하기때문이다.소설에그려진인간의모든악행에도불구하고이놀라운작품집에서가장강하게현현하는것은자연,인간,그리고삶자체에대한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