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작가 초롱

이중 작가 초롱

$15.50
Description
“이미상의 소설은 무슨 징후나 경향이 아니라 결정타다.
근래 읽은 가장 불가사의한 소설집이다.” _김하나(작가)

“이미상의 소설은 언제나 내 혼을 다 쏙 빼놓는다.” _강화길(소설가)

그 누구의 이름도 ‘미상(未詳)’으로 잊히지 않도록
현실의 폭력을 부수어 새로 쓰는 열망의 글쓰기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이미상 첫 소설집 출간★

2018년 여름, 젊은 평론가들이 매 계절 주목할 만한 단편소설을 발 빠르게 소개하는 첨예한 현장인 『문학동네』 계간평에 한 신인 작가의 데뷔작 「하긴」이 언급되었다. “독보적으로 문제적인 소설”(문학평론가 한설)이라는 평가를 받은 그 작품은 이듬해 “요즘 신진 작가들에게서는 구하기 어려운 풍속희극적 일화”(문학평론가 황종연)를 담았다는 찬사를 받으며 젊은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소설가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이후 다시 한번 신인 작가가 데뷔작으로 젊은작가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이례적인 순간이었다. “이런 정도로 힘있는 소설을 써낸” “데뷔작 이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는”(문학평론가 권희철) 작가가 누구인지 설왕설래가 이어진 것은 수상자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거니와 그 수상작이 신춘문예 혹은 문예지라는 전통적인 지면에 발표된 것이 아니라 웹진에 투고된 소설이기 때문이었다. 문학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신예’라는 호명에 값하는, 낯설고도 반가운 작가 ‘이미상’은 그렇게 한국 문단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그 이채로운 출현 이후 이미상은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벼려 특유의 실험정신을 발휘한 단편들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생존 게임의 현장처럼 과장되게, 그리고 유머러스하게”(문학평론가 조연정) 지하철 여성 승객의 불안을 형상화해냈다는 평을 받으며 문학과지성사 ‘이 계절의 소설’(2020년 겨울)로 선정된 「여자가 지하철 할 때」, “무거운 질문들을 감당하면서도 문장 속의 유머를 포기하지 않는”(문학평론가 조연정)다는 평을 받으며 ‘이 계절의 소설’(2021년 겨울)로 선정된 「이중 작가 초롱」, 모험 서사와 공포 장르 문법을 전유하는 매력적인 이야기로 “돌봄에 관한 기존의 서사를 해체하고 전복하면서 재구성”(안서현 문학평론가)했다는 평을 받으며 자음과모음 ‘2022 여름의 시소’로 선정되는 동시에 ‘이 계절의 소설’(2022년 여름)로도 선정된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등이 그 증거이다. 그런 이미상의 첫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에는 신랄한 화법과 과감한 형식, 읽는 이의 허를 찌르는 플롯을 자랑하는 여덟 편의 단편이 묶였다. 이 색다른 작품들은 새로운 소설에 목말라온 독자들에게 전율적인 문학 읽기의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저자

이미상

2018년웹진비유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데뷔작「하긴」으로2019년제10회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하긴_007
그친구_043
이중작가초롱_071
여자가지하철할때_109
티나지않는밤_153
살인자들의무덤_181
무릎을붙이고걸어라_215
모래고모와목경과무경의모험_273

해설|혁명의투시도_313
전승민(문학평론가)

작가의말_349

출판사 서평

우리사회문화의병폐를꼬집는신랄한웃음의소설

이미상소설의출발점인「하긴」과「그친구」는학생운동에투신했던86세대부부인남편‘김’과아내‘규’,그리고그들의모임친구‘지경’을주인공으로하는연작성격의작품이다.「하긴」에서화자‘김’은자신의딸‘보미나래’가친구들의자녀들에비해지적능력이떨어진다고여기고,어떻게든딸을좋은대학에보내기위해미국으로유학을보냈다가예상치못한상황에맞닥뜨린다.그과정에서소위‘배운세대’라고일컬어지는운동권세대인‘김’의내면에잠재되어있던학벌주의와속물근성이수면위로떠오른다.이처럼「하긴」은겉으로보기에올바른듯보이는인물의도덕적허위를꼬집으며웃음을자아내는강렬한블랙코미디이다.
「하긴」이남성화자‘김’의목소리로전개되었다면「그친구」는여성화자‘규’의목소리로진행된다.‘규’는남편과함께나가는모임의일원인‘지경’이남편‘김’과불륜을저질렀다는사실을알게된다.이후소설은‘규’가같은여성으로서‘지경’과그녀의삶을어떻게바라보고이해하려노력하는지호소력있게펼쳐보인다.「그친구」는기존의남성적시선으로그려져온운동권문학을비트는남다른후일담소설이자여성연대를의미화하는작품이다.
표제작「이중작가초롱」은주목받는소설가‘초롱’이누군가에의해습작시절에쓴작품을인터넷에무단으로유포당하며곤경에처하는모습을그린다.동일하게불법촬영피해자여성을다루었지만데뷔작에서는온전히인물의내면묘사에초점을두었으면서,습작품에서는피해자와가해자를손쉽게화해시키는결말을짓는이중성을용납할수없다는뭇사람들의비난을받으면서‘초롱’은순식간에기만적인작가로낙인찍힌다.그러나전국의글쓰기공모전에서‘초롱’이라는이름을가져다쓴당선자들이우후죽순출몰하면서,문단에서매장되어야마땅하다고여겨진‘초롱’은역설적으로다수의익명작가로서문단을장악해가기시작한다.
「이중작가초롱」은한명의특정한작가의이름으로존재하지못할위기에처한‘초롱’이모두의이름이됨으로써살아남는풍자적카타르시스를전해준다.그럼으로써사건의본질을외면한채외설적인면만부각해공격하는작금의문화세태를꼬집으면서,글쓰기와재현의윤리를따져물을때진정누락되는것이무엇인지를질문하는도발적인문제작이다.

“대체초롱이어떤소설을썼기에악하다는말까지나왔을까?한때인터넷에나돌아쉽게읽을수있었던―이제는읽기어려워진―「이모님의불탄진주스웨터」는악하기는커녕관습적인소설이다.아마읽는다면실망할것이다.그럼에도그날‘악하다’는말이나온까닭은소설이악해서가아니라우리가악하다는말에취해있었기때문이다.”_74쪽

“하드보일드레이디가뛰기시작한다.
그녀는점점더빨라진다.무감해진다.잔인해진다.자유로워진다.”

이미상의소설세계에서빼놓을수없는특징은작품전반에여성주의적시선이녹아있다는점이다.「여자가지하철할때」는그러한특징을대표적으로보여주는작품이다.‘수진’이지하철에서겪는불안과공포를실험적인형식으로극화한이소설에서,‘수진’이얼굴I과얼굴II로분열되어벌이는연극적인독백은기괴한낯섦을자아낸다.그간‘지하철’이라는장소에서벌어져온한국사회의여성혐오적사건들을떠올려보건대,그낯섦은도리어지하철을이용해온여성이라면누구나한번쯤은느껴봤을현실적공포이자불안의감각일것이다.
「살인자들의무덤」은「여자가지하철할때」와짝으로읽었을때그매력을십분체감할수있는작품이다.이소설은국내외에실존해온악명높은살인범들이‘살인자들의무덤’이라는가상의공간에함께묻혀있다는설정을통해현실과상상의경계를허묾으로써독특한스릴을전해준다.특히여자를죽인자들이묻힌구역과남자를죽인자들이묻힌구역을나누어놓고,같은연쇄살인마임에도“여자라는이유만으로”그들사이에서는“하찮”(188쪽)게여겨지는구역에묻힌에일린워노스를호명하는장면에서이소설의날카로운문제의식이드러난다.“더나은묫자리를지향하라!”(189쪽)라는살인자들의반복적인선언은범죄자를바라보는시각에도성별간의위계와차별이존재한다는사실을기괴한상상력과풍자로써보여주는듯하다.
앞선두작품의스릴러적면모와여성주의적메시지를색다른플롯으로보여주며독자를긴장케하는「모래고모와목경과무경의모험」은작가의최근작으로,고모가목경과무경자매를데리고산속으로사냥을떠나는모험서사이자고모와조카사이에싹튼연대감을오롯하게그려낸유사모녀서사이다.이소설은액자식구성으로이루어진이야기라는점에서도눈에띈다.고모와목경과무경세사람의과거서사가‘내부’이고그것의‘외부’를또다른이야기가감싸고있다.소설의예술적기법을의미하는“한방”,즉“문장을아껴쓰며굽이굽이나아가다순간탁,터뜨리는에피파니”(276쪽)에대해논하는작가자매의대화장면이그것이다.이‘외부’에위치한작가자매이야기가고모와목경,무경의‘내부’이야기를통과하면서발생하는상호영향은오직하나의중심부만을지닌텍스트의위계를풀어헤치고,이야기의미세한주름속숨죽인인물들의생생한목소리에귀기울이게하는귀한미덕을전해준다.

“등단을기점으로이제부터너는작가,이글부터진짜글,하는거이상하지않아요?”

「무릎을붙이고걸어라」는작가가『이중작가초롱』의특별소책자‘NewFaceBook’수록인터뷰에서밝힌바,청소년시절사춘기를극복하라는부모님의권유로떠났던유럽성지순례의경험을일부녹여낸자전적인이야기이다.작중화자인‘나’는작가로,금기시되는성(性)과강요되는성(聖)사이에서활달한욕망을펼쳐내는십대인물들의사연을‘우리’라는1인칭복수화자를통해소설로써되살려낸다.그러나작품말미에한독자가항의편지글을보내와낯선타지에서여성청소년이남성청소년에비해더큰위험을마주한다는사실을날카롭게지적하고,‘나’는그차이를무시했다는것을인정하며그편지를소설의결말을대신하여붙임으로써그익명의독자또한한명의‘작가’의위치로올라서게한다.
「무릎을붙이고걸어라」를포함하여이미상소설에는글(소설)쓰는인물이다수등장한다.「이중작가초롱」의‘초롱’처럼작가가된인물도있지만,「티나지않는밤」의‘수진’처럼작가를지망하는인물도있다.수진은미등단자의투고작도받아주는K출판사에꾸준히소설을보내고,수진의유일한독자인K출판사의편집자는괴팍할정도로진지한반려메일을보낸다.수진이밤마다소설을쓰며시간을할애하듯,편집자또한읽기라는치열한노동을펼친다.이들의쓰기와읽기의시간이상징하는것은,설령작가로공인받지않은사람일지라도쓰는일을멈추지않는다면,그렇게쓴글이누군가에게가닿는다면그행위자체가바로‘작가-되기’임을역설하는것일터이다.
“등단을기점으로이제부터너는작가,이글부터진짜글,하는거이상하지않아요?”(「이중작가초롱」,81~82쪽)라고묻는초롱의질문은「티나지않는밤」의작품세계와연동되며시사점을던져주는듯하다.‘쓺’과‘읽음’이특정신분,세대,성별만의권리로여겨지던때를생각해보면이미상의소설은그권위의위계를부수고종내에는자유로운해방을부르는“혁명”(73쪽)을꿈꾼다고볼수있을듯하다.어디에선가‘수진’처럼자기만의언어로글을써나가는사람들을기억하려는의지,그들이익명으로사라지지않기를바라는마음.이미상의필명‘미상(未詳)’에는그러한이들과함께하려는작가의뜻이반영되어있는듯하다.앞으로더욱신선한작품으로우리를놀라게할이미상의다음소설이기다려진다.

“문학을너무크고위대하게생각하면글쓰기가무서워진다.그런데글은그런무서운게아닌것같다.적어도나에게는그렇다.유치한표현이지만나는글이‘그래도’친구같다”_‘작가의말’에서

“시대를이끌어온모든예술은당대에이미불온했다.소설이지닌힘이란바로이런문학적상상력,발칙하고도발적이며독자들을불편하고난처한처지로몰아넣음으로써그누구보다동시대속에서살아내게끔추동하는힘이다.혁명하는힘이다.소설집을덮고깨닫는다.이미상의소설이야말로그간내가기다려온소설이다.나는이런소설을정말로기다려왔다.
‘문학은자유다.’”_전승민(문학평론가),해설에서

마지막으로,이미상소설특유의범상치않은제목들이각작품의세계관과연결되어생각할거리를던져준다는점을짚고넘어가자.‘그’와‘친구’를붙여쓴‘그친구’(「그친구」)는운동권남성이아내를부르는호칭의이면을들여다보게하고,‘지하철’이라는사물에‘하다’라는동사를결합한조어‘지하철하다’(「여자가지하철할때」)또한그장소에놓인여성의불안과안간힘을감각하게한다.‘모래고모와목경과무경의모험’처럼묘한운율을자아냄으로써세인물의관계성을질문하는듯한제목도이채롭다.이처럼남다른언어조형으로소설이언어예술의한분과라는점을상기시키고,무엇보다그것을통해소설의문제의식을암시하는이미상소설의제목들은그야말로‘이미상스럽다’라는형용사의탄생을예감하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