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16.80
Description
2022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가 임솔아의
얼음처럼 뜨거운 이별 이야기
나와 다른 타인들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이들의 뜨거운 움직임을 그려온 작가 임솔아의 두번째 장편소설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가 출간되었다. 한 가출 청소년이 겪어낸 가장 냉혹하고 잔인한 성장의 경로를 가감 없이 따라가는 첫 장편 『최선의 삶』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긴 이야기이다. 『최선의 삶』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십대 시절의 악몽을 맹렬히 복기하던 임솔아의 인물들은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에 이르러 각자의 내밀한 상처를 통과해 슬픔 이후에 마련된 삶을 살아나가는 법을 터득한다.
소설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네 여자의 삶을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좇아나간다. 각자의 이유로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여겨지던 그들은 원하는 무리에 속하기 위해, 소중한 존재와 함께 있기 위해 자기 자신을 버려본 적이 있다. 자신을 잃는 방식으로만 맺을 수 있는 관계는 필연적으로 깨어진다는 것을, 그들은 각양각색의 절절한 이별을 겪으며 몸소 체험한다. 소설 속 인물들이 애인에게, 친구에게, 부모에게,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느끼는 애틋하고 먹먹한 감정을 임솔아는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하게 묘파한다. 그 결과 이 소설에서는 얼음처럼 차가운 이별의 순간마저도 보이지 않는 격정들로 달궈진 듯 홧홧하게 감지된다.
외부 세계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자기 자신을 지워야 했다는 공통점은 네 인물을 제도권 밖에서 소수자로서 분투하는 예술가를 위한 그룹 전시에 참여하도록 이끈다. 별다른 접점이 없던 네 사람이 각자의 삶을 고유한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내며 교류하는 동안, 그들은 상처받지 않으면서도 서로와 다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음을 확인한다. 지난 이별을 거치며 타인과 함께인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알맞은 거리를 스스로 찾아내었음을. 이 조용히 빛나는 깨달음의 순간에 이르기 위해 아픈 시간을 지나왔는지도 모른다는 인생의 비의가 각자의 깊은 상처를 근사한 기억으로 완결시킨다.
저자

임솔아

장편소설『최선의삶』,시집『괴괴한날씨와착한사람들』『겟패킹』,소설집『눈과사람과눈사람』『아무것도아니라고잘라말하기』를썼다.

목차

I.종일옷을지킨적이있다_007
II.관찰의끝_085
III.화롯불속의알밤_171
IV.나는지금도거기있어_247

작가의말_324

출판사 서평

있는그대로의자신이되기위한노력은상처를남기고
상처는모여서예술이된다

정상과비정상을가르는보이지않는선에대해끊임없이질문하는임솔아는세상의다양한경계에걸쳐있는인물들을작품속으로불러모은다.이번소설의주인공은눈에띄지않고법적으로인정되지않는장애를지닌‘화영’,가짜정체성을연기하며지내오다가진정한사랑을찾은퀴어‘우주’,부당한일들에맞서싸우며역설적으로약자가되어가는노동자‘보라’,남다른창의성과공감능력을억누르고사회가원하는모범생으로살다가예술에눈뜬‘정수’다.소설은네사람의일생이각각하나의부를이루는구성을취하며지금한국문학장에서가장활발하게논의되고있는주제들을인물의삶을통해다뤄나간다.

1부:종일옷을지킨적이있다―화영의이야기
한쪽귀의청력을잃은화영은다른한쪽귀의청력을유지중이므로장애등급기준에따르면장애를인정받을수없다.일상생활에어려움을겪지만장애인은아닌화영은내내어디에도속하지못한다는불안감을느껴왔다.예술계에서비주류인미술이론을전공한후일자리를얻지못하고있는상황또한화영의불안을가중시킨다.어느날,화영은청년예술가석현이기획한그룹전시에비평가로서참여해달라는제안을받는다.한쪽팔목을절단했지만그러한신체에제약받지않고원하는만큼예술활동을해내려는석현의열정에감화된화영은석현과사랑에빠진다.하지만석현의장애가이끌어냈을그열정이화영조차배려하지않는이기심으로변질되는순간들이누적되자,화영은장애를지닌두사람의관계가비장애인들의관계와는다르리라기대했던자신의진심을마주하게된다.

무엇을기대했던걸까.어째서석현은다르다고여겨왔을까.어째서자신은다를수있다고여겨왔을까.손하나가없는사람과귀한쪽이안들리는사람의사랑은다른사람들과는다를거라고,마땅히그럴거라고여겼던걸까.석현을사랑하게된것도귀때문일까.한쪽귀가잘들렸다면어땠을까.그래도석현을사랑하게되었을까.(77쪽)

2부:관찰의끝―우주의이야기
우주는어렸을적자신이동성인여자친구들과는다르다는점을깨닫고친구들무리에끼기위해본모습을감춰왔다.동성친구들의습성을관찰하고모방하느라언제나긴장되어있던우주의일상은고등학교진학후선미를만나며변화를맞는다.선미와연애를시작하고,선미의작은방에서함께지내며우주는자기자신으로사는시간을누린다.반면선미는우주와함께하는삶에만족하지못한다.번듯하고안정적인생활을누리고싶다는선미의꿈을실현시키기위해우주는최선을다한다.하지만선미가원하는대로대학에가고취직을하고차를구입해도,생물학적여성인우주는선미에게안정감을줄수없는운명이다.서로를연인이라칭할수없는관계를어떻게든이어가기위해,우주는선미가살고싶어할집의모습을상상해미니어처로제작하여석현이기획한전시에출품하고선미를그전시에초대한다.

“애인이라고말하고싶어.”
선미는우주를빤히바라보았다.
“애인?”
이상하다는듯선미가고개를갸우뚱했다.
“나는네애인이아니잖아.”
(…)
“그럼뭔데?”
선미가손끝으로미간을긁적였다.
“없어.우리를가리키는단어는.”(158~159쪽)

3부:화롯불속의알밤―보라의이야기
보라는사이가나쁜부모밑에서눈치를보며자랐다.엄마는아빠가보라를유독예뻐한다는점을이용해부부싸움을할때보라에게아빠를껴안고있으라고했다.보라는늘엄마를위해아빠를껴안았지만,엄마는이혼할때아빠와더친밀하다는이유로보라를버렸다.분노에휩싸인보라는자신이원하는것을더욱적극적으로쟁취해야했다고자책하고,부당한일들에온몸으로맞서싸우기시작한다.성인이되어얻은일자리에서보라는치졸한선임에게물드는대신그에게저항하며후임을위하는좋은사람으로남으려애쓴다.그러나그런보라의노력을눈여겨보는사람은없다.허망함을느끼며직장을떠난보라는남성소비자를타깃으로하는담배회사의불법판촉에동원되는‘여성특수요원’으로,국내영업이금지된타투이스트로직업을바꾸며제도적으로보호받지못하는삶을살게된다.어느덧보라의싸움은옳은일을하기위한투쟁이아니라생계를지탱하기위한지난한노력이되어있다.보라는자신의타투와그것을새긴사람의눈동자를사진으로남겨전시에출품한다.

끌어안지말고맞서싸웠어야했다.다내다버릴것처럼.
보라는몸을감싸고있던두팔을풀었다.어항이깨졌다.물이바닥으로쏟아졌다.물을밟으며보라는걸어갔다.두눈을똑바로뜨고서.(190쪽)

4부:나는지금도거기있어―정수의이야기
정수는뛰어난공감능력과남다른표현력의소유자이지만,어린시절정수의창의성은유별난것,정답이아닌것으로취급받았다.성장하면서정수는사회에서요구되는대로행동하고정해진답을맞히는모범생이된다.그런정수가정답을맞히지못하는일이발생한다.친구가내민그림을보고친구의의도를해석하는데실패한것이다.그일을계기로정해진답이존재하지않는예술이라는분야에관심이생긴정수는미대에진학한다.무수한사람들의이야기를온마음으로듣고,그이야기속에서타인인자신은영영알수없는부분을이해해보기위해작품을만든다.석현이기획한전시를준비하며정수는화영,우주,보라의이야기또한마음을다해듣고,전시가끝난후에도이어지는그들의이야기속에함께한다.

정수는이제그들의이야기를감히자신의이야기라고생각지않았다.그러나여전히,그들의이야기를남의이야기라고도생각지않았다.이야기에서보이지않는자리에정수는있었다.(320쪽)

페이지를넘길수록인물들의서사가겹쳐지고덧쌓이면서소설속장면들은한층더진한풍경으로변해의미심장하게다가온다.네사람이전시를위해모여있는동안나타난누군가의골똘한침묵이나별뜻없어보이던말들에개인적인고충과슬픔이담겨있다는것이도처에서드러날때마다,잘모르던이를조금더깊이이해하게된듯한감각이따뜻한감동과여운을불러일으킨다.

허구의텍스트에서느껴지는독보적인실감
소설과현실의층위를허무는작가임솔아가선사하는
아주특별한소설체험

정수의이야기가담긴4부에도달하면독자들은이소설이중층적인구조를지닌세련된작품임을몸소실감하게된다.4부에서정수가듣는여러사람의이야기속에화영,우주,보라의이야기를연상시키는내용이존재한다는것,정수가타인의삶을소화해자신만의작품으로표현해왔다는것을확인할때,서로다른인물이서술하는독립된이야기로읽혔던1~3부는정수가누군가로부터듣고가공해서들려주는이야기로도다가온다.그렇다면4부는앞선이야기를마친정수가마지막등장인물로서자신의이야기를꺼낸뒤네주인공의남은이야기를전하는에필로그로도읽을수있다.그렇게이해될때연작소설의형태를취한듯보이던이소설은하나의관통하는서사를지닌장편소설로꿰어진다.

소설은거기서더나아가마지막장면을통해매우독특한독서경험을선사한다.소설속인물인정수와소설밖현실의독자인우리가같은시공간에놓여눈맞춤을하는듯한강렬한체험이이루어지는것이다.화영,우주,보라의서사가액자를넘나들면서그들목소리로직접들려온이야기에서정수를통해재탄생한이야기속이야기로층위를재정립하듯,이소설의마지막장면은소설과현실의층위를무화시키며이야기밖으로빠져나와독자인우리의눈앞에떠오른다.혹은소설밖의독자에게소설속인물이될가능성을부여하며우리를소설속으로끌어들인다.

2022년젊은작가상대상수상작「초파리돌보기」를통해소설과현실의구분을무너뜨리는실험을성공적으로수행해낸바있는임솔아는이번장편에서더욱적극적으로소설과현실을공명시킨다.작품속의비극적인한장면에개입할수없었던서술자로서의시선과작품밖작가로서의제약된시선을겹쳐놓으며다층적인목소리들의울림을표현한에이드리언리치의시「한장면」에서이소설의제목을가져온이유가짐작되는대목이다.

임솔아는‘작가의말’에서“어떤날은소설을쓰는손이멈춰지지않아밤을꼬박새”웠고“몸이혹사되는나날속에서나는이고생이너무나도재미있었”으며“소설쓰는일을작가들이왜즐겁다말하는것인지이제야나도조금이해하게되었다”고말한다.허구의텍스트인소설이현실독자에게특별한실감을불러일으키도록쓰는것이지금작가에게가장재미있는작업인듯하다.임솔아에게소설은현실을뛰어넘지못하는제한적인텍스트도아니고,현실의삶없이존재할수있는전지전능한예술작품도아니다.딱현실만큼의가치를지니고독자와마주보려하는소설의자리로,임솔아는우리를초대한다.“나는지금도거기있”다고말을건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