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이름들 : 제3회 박상륭상 수상작

남겨진 이름들 : 제3회 박상륭상 수상작

$14.00
Description
“한 사람의 삶이 온전히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
슬픔과 그리움, 기억의 빈틈은 사람의 말로 번역될 수 있을까.”

현실과 허구, 언어와 신체의 구획을 넘어
인간의 씀과 삶에 바치는 찬란하고 지극한 헌사
생의 고통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섬세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수놓아온 소설가 안윤의 데뷔작 『남겨진 이름들』이 출간되었다. 제3회 박상륭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심사위원(강정, 김진수, 김진석, 배수아, 함성호)들로부터 “다가갈수록 자신만의 웅대한 고독 속에서 우주와 내통하는 듯한 내밀한 결기에 경외감이 들 정도”라는 찬탄을 받으며 안윤 소설세계의 시작을 알렸다. 그동안 발표한 단편소설들에서 떠난 이들을 향한 온기어린 애도로 독자들의 마음에 부드러운 진동을 일으켜온 작가는, 그 발원이 된 이 첫 장편소설에서 현실과 허구, 언어와 신체의 경계를 초월하여 삶과 사람을 향한 깊은 사랑과 신뢰를 보여준다.
『남겨진 이름들』은 언뜻 덧없어 보이지만 순간으로서 영원히 찬란한 우리의 삶을 탁월한 아포리즘과 감각적인 묘사로 포착해낸 수작이다. 작가는 치열하도록 정교한 문장으로 ‘탄생’ ‘죽음’ ‘사랑’ ‘이별’이라는 간명한 단어로 함축되곤 하는 일생의 사건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부조해낸다.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알게 된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시간이 지나 육체를 잃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져가지만, 이야기는 그들의 이름을 간직한 채 우리 곁에 살아남고 있음을. ‘기록하는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깨달음으로 가득한 이 장편소설은 그래서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게 바치는 찬란하고 지극한 헌사로 다가온다.

한치도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문장의 밀도, 그리고 마치 직접 현지인의 대화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묘사, 사물에 대한 섬세한 자각과 심리의 교직이 우아하게 펼쳐지는 수작이었다. 상처를 드러낼 때 덩달아 아파지고 짧은 환희를 토로할 때 뒷골이 서늘해지는 느낌 때문에 굉장히 더딘 독서가 됐지만, 삶의 소소하지만 내성 깊은 심연을 들여다봤다가 나온 뒤의 묵묵한 성찰들은 근래 보기 드문 내공이었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다가갈수록 자신만의 웅대한 고독 속에서 우주와 내통하는 듯한 내밀한 결기에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_박상륭상 심사평 중에서
저자

안윤

2021년장편소설『남겨진이름들』로제3회박상륭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방어가제철』이있다.

목차

서문 9
1장 23
2장 85
3장 147

출판사 서평

이야기는어디에나있고누구에게나있다.
이야기는증명되지않아도된다.
이야기는계속될테니까.

키르기스스탄에서어학연수를했던윤은한국으로돌아온지팔년이지난어느날,신세졌던하숙집주인라리사의부고를전해듣는다.라리사는윤에게수양딸나지라의공책을유품으로남긴다.공책에쓰인이야기의주인공또한‘나지라’라는이름을지녔지만,실제나지라의삶과공책속나지라의삶이완전히같은것은아니다.그럼에도라리사와윤은이이야기가나지라그자체라고믿는다.윤은키르기스어로쓰인이야기를한국어로옮겨우리에게전하면서이렇게묻는다.“한사람의삶이온전히다른사람에게전해질수있을까.”

이처럼『남겨진이름들』은공책에쓰인이야기를번역해소개하는액자식구성을취한다.이형식은낯선타국의한가운데로초대받은독자들이언어를초월하여인간보편의감정을자각하도록이끈다.소설이라는형식이이미‘허구’를내포하고있음에도안윤작가는허구안에또다른허구를배치하며현실과비현실의경계를가뿐히뛰어넘는다.한존재의삶을보다여실하게표현할수있는것은실재의나열이아닌상상으로직조된한편의이야기라고,문장과서사라는씨실과날실의엮임에서한사람의진정한심연을발견할수있다고소설은말하고있는듯하다.

공책들속의이야기는그애의이야기이면서그애의이야기가아니더구나.일기도소설도아니었지.글쎄,그런걸뭐라고하는지모르겠다만,그이야기는그냥그애자체였지.나지라하미돕나유수포바였어.나는이기록을모두읽고나서윤,너를떠올렸다.너는이야기를쓰는사람이니까.이야기는살아가고,어떻게든우리곁에서살아남는다는것을우리는알고있지않니._21쪽

이야기속의나지라는쿠르만과카탸부부의입주간병인으로일하고있다.사고로식물인간이된카탸를먹이고,씻기고,입히는게나지라의주된업무다.예전의행복했던시간으로는다시돌아갈수없다는예감이남편쿠르만을괴롭히지만이대로삶이계속될수만있다면,하는일말의기대감이이들을하루하루기쁜마음으로살게한다.카탸를돌보고,가끔씩무너져내리는쿠르만을지탱하며나지라는카탸와쿠르만의친구이자두사람사이를잇는가교가된다.

눈동자만으로의사를표현할수있는카탸를보며나지라는느낀다.단지발화와물리적행동만이사랑을표현하는수단은아님을.카탸가자신의말에온몸으로대답하고있다고믿음으로써나지라는신체와언어의장벽을넘어그녀와대화한다.비록실감할수는없더라도끊임없이카탸의대답을상상하며그녀와교류하기를멈추지않는나지라와쿠르만의노력은소통에대한기존의관념을전복하면서도,들을수없는카탸의목소리를그리워하는그들의마음을효과적으로드러낸다.

나는그러나들을수없는것은카탸의목소리지대답은아니라고생각한다.동원할수있는힘이란힘은모조리끌어다전하고있는그의대답을우리가들을수없을뿐이라고,카탸는언제나온몸으로대답하고있다고나는믿었다.카탸의곁에머무는우리는비밀처럼숨겨진그의대답을들으려쉼없이주의를기울여야만한다.상상해야만한다._77~78쪽

카탸와의이별을끝내마주했을때나지라와쿠르만은최선을다해그녀를떠나보낸다.지워지지않으리라여겨질만큼낯설고선연한아픔이이들을고통스럽게하지만,두사람은카탸의부재를,그리고다가올각자의부재를받아들이게되는날까지서로를돌본다.사랑하는이의죽음을통해탄생이있기에죽음이있다는사실을알게되었으므로,이들은만남뒤의이별을축하하며맞이하게된다.그리고훗날희미해져가는기억속에서나지라는이모든일을공책에기록한다.슬퍼함에서멈추지않고기록함으로나아가는나지라를통해우리는알게된다.소설가이주란의추천의말처럼,우리가경험해온“모든것들이바로살아있음의증거이며,끝내자기자신에게가닿고자우리는그증거를기록하고또기록하고있음을.”

『남겨진이름들』은이처럼잊혀가는이들을활자의영원으로끌어들이는일을해내면서도,깊이있는사유와우아한분위기로안윤소설만의미학을확인하게해준다.일상의평범한장면들을반짝이게만드는다정한디테일,고통의순간에문득당도하는깨달음은소설읽기의경험을한층풍부하게한다.이별과애도로가득한페이지들을넘기면서도슬픔을넘어선무언가를느끼게하는안윤의문장은때론날카롭고짙은채도로,때론온화하고묵직한촉감으로우리를이야기속에오래도록머물게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