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 문학동네 시인선 209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 문학동네 시인선 209

$12.00
Description
깨트림에서 비롯되는 탄생
헝클어짐에서 비롯되는 사랑
작은 인간, 작은 우주, 작은 나에게서 비롯되는 세계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시와 산문, 소설 등 장르를 넘나들며 독자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온 박연준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을 펴낸다. 소시집 『밤, 비, 뱀』(현대문학, 2019) 이후 5년 만이자, 등단 20주년이 되는 해에 펴내는 신작 시집으로 특별함을 더한다.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창비, 2007) 속 삶과 세계를 부정하며 생살을 찢는 아픔을 거침없이 말하던 20년 전 박연준의 화자는, 사랑하는 이들을 상실하며 쓴 뜨거운 슬픔의 시세계에서 “나와 나 사이의 불화를 중재할 수도 있게”(신형철,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해설에서, 문학동네, 2012) 되었다. 이후 “은밀하고도 섬세한 언어를 통해 뿜어나오는 명랑하고도 발랄한 에로티시즘의 미학”(조재룡, 『베누스 푸디카』 해설에서, 창비, 2017)이라는 평을 받으며 매혹적인 리듬감을 펼쳐보인 그는 “내 시는, 내가 쓰고 당신이 연주하는 음악이다”(『밤, 비, 뱀』 수록 에세이에서)라 말하며 고요한 밤의 자리를 독자와 나누기에 이르렀다.
저자

박연준

저자:박연준

2004년중앙신인문학상을받으며등단했다.시집으로『속눈썹이지르는비명』『아버지는나를처제,하고불렀다』『베누스푸디카』『밤,비,뱀』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이곳에선깨진것들을사랑의얼굴이라부른다
흰귀/불사조/재봉틀과오븐/나귀쇠가내사랑을지고걸어간다/소금과후추/소설/울때나는동물소리/나는당신의기일(忌日)을공들여잊는다/유월정원/마리아엘레나1/마리아엘레나2/진눈깨비/이월아침/무보(舞譜)

2부혼자는외로운순간에도바쁘다
작은인간/작은돼지가달구지를타고갈때/저녁엔얇아진다/택배,사람/주차장에서/베개위에서펼쳐지는주먹/작은사람이키를잰다/다이빙/혼자와세계/뜨거운말/수요일에울었다/도착―당주에게/미운사람과착함없이불쌍함에대해말하기/구원/경주1/경주2―대릉원에서

3부말하지않는시,말하는그림
나는졌다―나의탄생/쫓는자와도망가지않는자―상처입은사슴/나는하반신을잃은치마―부서진척추/우리는저울을사랑합니다―두명의프리다/밤은파기된사랑의도래지―디에고와나/욕조―물이나에게준것/‘멍청하고과격하게’연주할것―머리카락을잘라버린자화상/상처몇개―단도로몇번찌른것뿐/사랑은잠들었다―<나를위한위로>를위한드로잉/청동거울―나는틀렸었지…나는틀렸었지…/키키,키키,키키키―슬픔의온도재기

4부돌멩이가조는걸바라보는일
초혼(招魂)/밤안개에서슬픔을솎아내는법―1988/이렇게말하면어떨까/초록유령을위한제(祭)―2022-10-29/음악의말/피아노연습/형용사로굴러가는기차/사랑으로치솟는명사/안녕,지구인/수업시간/시인하다/당신에게/어제태어난아기도밤을겪었지요/파양/우산사세요/빗방울쪼개기/죽은새

발문|‘공들여추락하는’불사조의눈부심
신미나(시인)

출판사 서평


“당신에게부딪혀이마가깨져도되나요?
질문이끝나기도전에나는날았고
이마가깨졌다”

깨트림에서비롯되는탄생
헝클어짐에서비롯되는사랑
작은인간,작은우주,작은나에게서비롯되는세계

2004년중앙신인문학상에당선되어등단한이후시와산문,소설등장르를넘나들며독자들의아낌없는사랑을받아온박연준시인의다섯번째시집『사랑이죽었는지가서보고오렴』을펴낸다.소시집『밤,비,뱀』(현대문학,2019)이후5년만이자,등단20주년이되는해에펴내는신작시집으로특별함을더한다.『속눈썹이지르는비명』(창비,2007)속삶과세계를부정하며생살을찢는아픔을거침없이말하던20년전박연준의화자는,사랑하는이들을상실하며쓴뜨거운슬픔의시세계에서“나와나사이의불화를중재할수도있게”(신형철,『아버지는나를처제,하고불렀다』해설에서,문학동네,2012)되었다.이후“은밀하고도섬세한언어를통해뿜어나오는명랑하고도발랄한에로티시즘의미학”(조재룡,『베누스푸디카』해설에서,창비,2017)이라는평을받으며매혹적인리듬감을펼쳐보인그는“내시는,내가쓰고당신이연주하는음악이다”(『밤,비,뱀』수록에세이에서)라말하며고요한밤의자리를독자와나누기에이르렀다.
이번시집에서는보다더‘작은것’에집중한화자를만날수있다.작은인간,작은우주,작은나등미시적세계를잘들여다보는것이시의일이며,작은것이사소한게아닌본질에가까운것임을드러내는일이시인의책무임을말하는듯한58편의시편들.“작게말하면작은인간이된다(…)공책을펼치면거기/작은인간을위한광장/납작하게,죽지도않고살지도않는/이름들/사소한명단이걸어다닌다/작은이름표를달고작게작게”(「작은인간」)…그렇게작아질수록구별짓기는무색해지고우리는“세상에서가장작은동그라미를그려볼”(「구원」)수있을것이다.“작은죽음을사고파는것/작은죽음을사랑한다는것/작은죽음이우리를먹여살리는것”(「작은돼지가달구지를타고갈때」)을아파할줄알게될것이다.그어떤큰것도작은것들이촘촘히모여야가능해진다는것또한.
“이제부터//작은것에만복무하기로한다”(「유월정원」)는결심은시집곳곳에흩뿌려진‘깨트린것/부서진것’들과만나이상하고아름다운불협화음을낸다.‘작은인간’을향한몰두가박연준시세계가당도한지금의얼굴이라면,능동적으로깨트리거나,무언가에의해부서지는것에대한발화는그의시세계가그간적극적으로탐구하고구축해온구심점이라할수있다.

그의탄생은깨트림(破)에서비롯한다.결집보다는해리,합체보다해체,의미의유기적통일성보다비의미의다양성으로이어진다.그에게사랑의본질은무엇인가?헝클어짐이다.“헝클어짐은사랑의본질이라고/수렴될수없다고/물방울이아래로떨어지며동그란생을파열시키는일”(「나귀쇠가내사랑을지고걸어간다」)이라고.사랑은이제막죽음의산도(産道)를빠져나와,축축한껍데기를머리에얹고다시태어났다.
_신미나시인,발문「‘공들여추락하는’불사조의눈부심」에서

이곳에서는깨진것들을사랑의얼굴이라부른다
깨지면서태어나휘발되는것
부화를증오하는것
날아가는속도로죽는것

(……)

“사랑이죽었는지가서보고오렴,
며칠째미동도않잖아.”

내가말하자날아가는조약돌

돌아와서는
아직이요―,한다
_「불사조」에서

시집제목으로쓰인시구‘사랑이죽었는지가서보고오렴’은의미심장하다.사랑이죽었을까봐걱정하는것으로도읽히고아직죽지않았을까봐확인하는것으로도읽힌다는점에서그러하고,그것을확인하는일의두려움으로읽히는동시에그것을기다리는자의들뜸으로도읽힌다는점에서그러하다.이마가깨질것을,날아가는속도로죽을것을알면서도멈추지않는불사조와,사랑이‘아직’죽지않았다유보적인답변을내놓는,‘아직’깨져본적없어보이는조약돌의대화라는점에서도.출간을앞두고편집자와주고받은짧은인터뷰에서시인은제목으로삼은시구에대해“우리가사랑하며뒤척일때가질수있는여러감정들이담겨있”으며“이요청이시집의얼굴이었으면했”다고답했다.사랑의시,욕망어린서늘한밤의사랑부터펄펄끓어주체할수없는사랑까지,불사조의무모함과대담함을닮은사랑까지,우리가박연준시세계에기대하는사랑의그러데이션은이번시집에서도유감없이발휘되어있다.물론그것을음미하는데고통이수반되리라는것또한그의독자라면짐작할테다.

고통의중심이살을좀먹으며
안착한다,내영혼에

십자가에못박힌건내가아니다
십자가가내게와박혔다
투명하고아름다운십자가가계속,
내속으로이양되려는것
_「나는하반신을잃은치마―부서진척추」에서

사랑을낭비하느라너무많은시간을썼어
이제얼굴은쓰레기통이야
죽은비가
얼굴위로쏟아진다

내가못생긴건슬픔이얼굴을깔고앉았기때문
짜부라트렸기때문

(…)

결국병은수용체에게가는거야
수용을허락한처소에게

나는그처소를몇군데알지

걱정말렴
사랑은깨끗이나았다
그게사랑인줄몰라볼정도로
_「나귀쇠가내사랑을지고걸어간다」에서

한편시인과화자를동일시하는것이늘바람직한것은아니겠으나,삼십대에서사십대로건너가며이번시집이쓰였다는것을곱씹게하는시편이눈에띈다.

스무살의나는하루에도아홉번씩죽었다
서른살의나는이따금생각나면죽었다
마흔살의나는웬만해선죽지않는다
_「시인하다」에서

시세계의변화는시인의생물학적나이,그사이의경험과무관할수없을것이다.특히박연준시인의경우“서른과마흔,/사이에/산문이있었다”.(같은시)산문집과장편소설을통해다른몸다른목소리를써온시간이시쓰기에도분명영향을미쳤으리라.이전시집들에비해죽음만큼늙음도구체화되었다는점이그연장선상에있는변화중하나라말할수있을까?“늙는다는건/시간의구겨진옷을입는일”이다.“모퉁이에서빵냄새가피어오르는데/빵을살수있는시간이사라”지는것이다.빵을굽듯“그의등,얼굴,미소를/구울수있다면좋을텐데”(「재봉틀과오븐」)그럴수없는우리는굽는것보다는깁는일에몰두하는시간이길고,“사랑과늙음과슬픔,셋중무엇이힘이셀까”하는시인의물음에재봉틀앞에서놀리던손을이따금멈출것이다.“무엇도꿰매지않으면서”.(같은시)
시집의도입부에‘불사조’가날고있다면,시집의마지막에는‘죽은새’가누워있다.“부리를안쪽으로묻은채/가느다란다리를뻗고죽은새”.시인은“어떻게왔는지는크게중요치않다”고,“당신은다살아보았다”고한다.(「죽은새」)불사조에게는이미여러번일어났을일이다.“어제태어난아기도밤을겪었”고“밤이한올한올빚은,캄캄한머리카락을가”진것처럼.(「어제태어난아기도밤을겪었지요」)이처럼반복되는탄생과죽음과탄생의굴레혹은신비안에서‘작게’말하는‘작은인간’을지향하게된시인이세밀하게그려나갈‘작은우주’가우리앞에새로이열리고있다.

◎박연준시인과의미니인터뷰

1.2019년소시집『밤,비,뱀』이후오랜만의시집입니다.등단20주년에펴내는다섯번째시집,이번시집이지난네권의시집과어떻게비슷하고또다르다고느끼시는지요?
이번시집에수록된시들을쓰면서시간을장소로지각하는경험을했어요.시를쓰는시간이제겐안식처,혹은은신처처럼느껴졌거든요.고단할때마다문을열고들어가숨는작은방처럼,시쓰는시간을경험하며혼자서는퍽좋았습니다.2014년부터10년동안많은양의산문을써오면서,산문이필요로하는‘혹독한노동시간’을시쓰는시간으로치유(?)했던것같아요.‘치유’라는단어를쓴이유는모든노동은어쨌든피로를야기하고,아픈곳을만들기때문이에요.이10년은저를전업작가로살게한시간이기도해서한편소중합니다.
시쓰기를의무감을가져야하는‘일’로생각하고싶지않아서일정기간동안청탁을받지않기도했는데요.시집에수록된시들중반정도는청탁없이,혼자자유롭게썼습니다.그전시집에실린시들은대부분발표한시들이었으니,시가태어나는자세나위치가달라졌다고볼수도있겠어요.비슷한점은……글쎄요.리듬은사람의목소리같은거라서비슷할것같네요.점점시를쓸때제가차분해지는것같아요.나이가들어서랄까(웃음).

2.제목인'사랑이죽었는지가서보고오렴'은사랑이죽었을까봐걱정스러워하는것으로도읽히고사랑이아직도죽지않았을까봐확인하는것으로읽히기도하는데요,이제목을어떻게결정하신건지궁금합니다.
「불사조」란시의한구절을제목으로삼았는데요.이시를단숨에썼고,쓰고나서흡족했던게생각나요.드물게시가단박에마음에드는거예요.사랑이죽었는지가서보고오라는말에는사랑이죽었을까봐걱정하는마음과정말죽었는지확인하기두려운마음,혹은사랑의죽음을기다리기라도하듯‘두려운희열’등이내포되어있습니다.우리가사랑하며뒤척일때가질수있는여러감정들이담겨있지요.이요청이시집의얼굴이었으면했어요.
저는순진함을장착한채,날아가서사랑의생사를확인하고‘아직’이라대답하는돌멩이에게마음이가요.돌멩이는‘아직’이라는말에담긴어두운예감과불길한흥분속에서‘보는존재’,진실을보고전달해야하는존재잖아요.그건어린존재가잘하는일이죠.

3.이번시집에서특히아끼는시가있다면무엇인지,그이유와함께말씀부탁드립니다.
문득「나귀쇠가내사랑을지고걸어간다」가떠오르네요.이시는휘몰아치듯썼는데,쓰는중에자꾸무언가를발견하고놀라며썼거든요.제가무슨이야기를쓰고싶은지모르겠는데,말이마구나오는상태,어둠속에서길을헤매며겁도없이나아가는데무언가를새롭게찾고,보게되었어요.신기하죠.

4.작은인간,작은우주,작은나,작은연두등'작다'라는형용사가곳곳에서발견되는시집입니다.작은것,작아진것,작게부수어진것등에골몰하신이유가있을까요?
시집의제목을‘작은인간’이라고지을까고민했을정도로‘작은인간’‘작은것’에천착했어요.어느날이문장이떠올랐거든요.“작게말하면작은인간이된다.”이문장엔미시적인것부터거시적인것까지,미물부터인간까지,동물부터비동물까지,나부터우리까지……많은것이문제적으로담겨있는것처럼보이더군요.시에서저는한문장으로,띄엄띄엄말할수밖에없었지만요.저는문학이‘작은존재’를공들여들여다보는일에서시작해,먼곳으로나아가는일이라고믿습니다.작은존재를오래바라보고,집요하게풀어내는것을좋아하는것같아요.

5.이시집을마주할독자들에게인사말씀나눠주세요.
아름답고,또슬픈사월입니다.꽃은다시피었고요.시들도다시태어났고요.‘다시’라는부사에깃든조그마한희망,고요한긍정에기대어여러분께새시집을선보이려합니다.시는왜자꾸태어날까요?대답을당신께듣고싶은봄입니다.아무곳이나펼쳐훌훌읽고,펄펄날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