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 특별 한정 에디션

밝은 밤 : 특별 한정 에디션

$12.50
Description
이야기가 가진 본연의 힘과 사람을 향한 믿음을 끝까지 붙들며 한국문학의 서정성과 서사성을 새롭게 발굴해낸 소설가 최은영의 세 작품 『쇼코의 미소』(2016), 『내게 무해한 사람』(2018), 『밝은 밤』(2021)을 특별 한정 에디션으로 선보인다. 이번 에디션은 기존보다 작아진 판형에 은은한 색감과 부드러운 일러스트가 인상적인 박선엽 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완성되었다.
“선명한 캐릭터와 잘 짜여진 이야기로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독자에게 스며들어 사회 이슈를 성숙하고 깊이 있게 다루었다. 올해 우리 소설이 이룬 최고의 성과”라는 평과 함께 제29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 『밝은 밤』은 ‘증조모-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비추며 시간과 공간을 방대하게 아우르는 작품이다. 할머니와 ‘나’가 중심이 되는 현재 시점의 이야기와 증조할머니가 중심이 되는 과거 시점의 이야기를 교차시킴으로써 인물들이 통과해온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사건이 현재와 어떻게 조응하는지, 과거의 자신을 대면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저자

최은영

저자:최은영
2013년『작가세계』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쇼코의미소』『내게무해한사람』『아주희미한빛으로도』,장편소설『밝은밤』,짧은소설『애쓰지않아도』가있다.허균문학작가상,김준성문학상,구상문학상젊은작가상,이해조소설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대산문학상,제5회,제8회,제11회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007
2부093
3부171
4부265
5부331

작가의말381

출판사 서평

추천사

태생지를빌려삼천이로,새비로서로를부르며함께한세상을살아냈던두여성의만남은우정,자매애,사랑이라는언어를넘어선근원성,어쩌면목숨과목숨의얽힘이라고나해야할것이다.가없이그립고정다운마음들은이승과저승의경계를넘나들며속삭인다.난너를떠난적이없어.아프고서럽게살아낸목숨의이야기들은노래가되어풀려나오고읽는이들은끝없이이어지는그실타래의한끝을잡고자신이갇혀있던상처와혼돈과환멸과슬픔에서,그어둡고혼란스러운미궁에서비로소빠져나온다.슬픔을위로하고감싸주는것은더큰슬픔의힘이리니.작가가창조해낸특별한공간‘희령’에서는이모든것이가능하다.
-오정희(소설가)

책속에서

“내게는지난이년이성인이된이후보낸가장어려운시간이었다.그시간의절반동안은글을쓰지못했고나머지시간동안『밝은밤』을썼다.그시기의나는사람이아니었던것같은데,누가툭치면쏟아져내릴물주머니같은것이었는데,이소설을쓰는일은그런내가다시내몸을얻고,내마음을얻어한사람이되어가는과정이었다.”
---작가의말에서

왜개새끼라고하나.개가사람한테너무잘해줘서그런거아닌가.아무조건도없이잘해주니까,때려도피하지않고꼬리를흔드니까,복종하니까,좋아하니까그걸도리어우습게보고경멸하는게아닐까.그런게사람아닐까.나는그생각을하며개새끼라는단어를가만히내려다봤다.나자신이개새끼같았다.
---p.13

마음이라는것이꺼내볼수있는몸속장기라면,가끔가슴에손을넣어꺼내서따뜻한물로씻어주고싶었다.깨끗하게씻어서수건으로물기를닦고해가잘들고바람이잘통하는곳에널어놓고싶었다.그러는동안나는마음이없는사람으로살고,마음이햇볕에잘마르면부드럽고좋은향기가나는마음을다시가슴에넣고새롭게시작할수있겠지.
---p.14

증조모는뒤도돌아보지않고집을나왔다.잠시라도뒤돌아보면떠날수없을것같아서였다.십칠년동안살던집,누린내가가시지않던집,똥지게꾼도상대해주지않아스스로오물을퍼내야했던집,해질녘구석에핀꽃이예뻐바라보다아무이유도없이날아온돌에머리를맞아야했던,무엇하나좋은기억이없던집.그집을떠나기차역으로가는데그짧은길이천릿길같았고,걸음걸음이무거워납으로만든신발을신은것같았다.그래도떠나야했다.그게사는길이었으니까.
---p.34

그녀에게는그런재능이있었다.어떤경우에도자신을속이지않는재능.부당한일은부당한일로,슬픈일은슬픈일로,외로운마음은외로운마음으로느끼는재능.
---p.54

그녀는아이가작은몸과마음으로눈치를살피느라마음껏울어보지도못하는게아닐지근심했다.그녀의사랑은그근심에서자랐다.아이와눈을마주치며웃던어느날,그녀는자신이아이를마음으로귀하게여기고있음을알았다.그것이세상사람들이말하는어미의본능적사랑같은것은아닐지몰라도.
---p.73

그렇지만그게다무슨소용일까.사람이사람을기억하는일,이세상에머물다사라진누군가를기억한다는것이무슨의미가있을지알수없었다.나는기억되고싶을까.나자신에게물어보면언제나답은기억되고싶지않다는것이었다.내가기원하든그러지않든그것이인간의최종결말이기도했다.지구가수명을다하고,그보다더긴시간이지나엔트로피가최대가되는순간이오면시간마저도사라지게된다.그때인간은그들이잠시우주에머물렀다는사실조차도기억되지못하는종족이된다.우주는그들을기억할수있는마음이없는곳이된다.그것이우리의최종결말이다.
---p.81

삼천아,새비에는지금진달래가한창이야.개성도그렇니.너랑같이꽃을뽑아다가꿀을먹던게생각나.그걸따다가전을부쳐먹던것두,같이쑥을캐다가떡을만들어먹던것도.인제나는꽃을봐도풀을봐도네생각을하는사람이됐어.별을봐도달을봐도그걸올려다보던삼천이네얼굴만떠올라.새비야,참희한하지않아?밤하늘을보면서그리말하던네가떠올라.이것도희한하구저것도희한한우리삼천이가생각나누나.
---p.120~121

우리는둥글고푸른배를타고컴컴한바다를떠돌다대부분백년도되지않아떠나야한다.그래서어디로가나.나는종종그런생각을했다.우주의나이에비한다면,아니,그보다훨씬짧은지구의나이에비한다고하더라도우리의삶은너무도찰나가아닐까.찰나에불과한삶이왜때로는이렇게길고고통스럽게느껴지는것인지이해할수없었다.참나무로,기러기로태어날수도있었을텐데,어째서인간이었던걸까.원자폭탄으로그많은사람을찢어죽이고자한마음과그마음을실행으로옮긴힘은모두인간에게서나왔다.나는그들과같은인간이다.별의먼지로만들어진인간이빚어내는고통에대해,별의먼지가어떻게배열되었기에인간존재가되었는지에대해가만히생각했다.언젠가별이었을,그리고언젠가는초신성의파편이었을나의몸을만져보면서.모든것이새삼스러웠다.
---p.130

예전처럼며칠씩서로말도붙이지않을정도로신경전을벌일만한일이우리에게는더이상없었다.큰불이나기전에꺼버렸고,상대에게작은불씨를던졌다는것에문득무안해지기도하는사이가된것이었다.그건우리가그만큼친밀한사이가아니라는뜻이기도했다.서로에게큰상처를입혔다가돌이킬수없게될지도모른다는두려움을우리는눈빛으로공유하고있었다.우리는더이상끝까지싸울수없는사이가되었다.정말끝이날까봐끝까지싸울수없는사이가.
---p.137

당장이라도무슨일이터질것같다는생각을하며전전긍긍할때는별다른일이없다가도조금이라도안심하면뒤통수를치는것이삶이라고할머니는생각했다.불행은그런환경을좋아하는것같았다.겨우한숨돌렸을때,이제는좀살아볼만한가보다생각할때.
---p.199

편지에서묻어나오는명숙할머니의애정이할머니는버거웠다.명숙할머니의편지를읽다보면결국자신이누군가에게사랑받고싶어하는사람이라는것을알게됐으니까.그것도아주간절하고절실하게,사랑받고싶어하는사람이라는것을인정하게됐으니까.남선의모진말들은얼마든지견딜수가있었다.하지만명숙할머니의편지를읽으면늘마음이아팠다.사랑은할머니를울게했다.모욕이나상처조차도건드리지못한마음을건드렸다.
---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