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 (박판식 시집)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 (박판식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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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상에서의 행복이 소나기 같다는 걸 그 누가 모르겠는가”

웃을 것인가, 더 크게 울 것인가
삶이라는 거대한 수수께끼 안
반복되는 고통과 번뇌, 그리고 누리기에는 너무 짧고 남루한 행복
그럼에도 끝끝내 살아내고자 하는 시의 힘
냉혹한 현실에 풍요로운 몽상을 중첩하며 세상의 고통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순수를 추구하는 작품들을 선보여온 박판식 시인의 구 년 만의 신작 시집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를 문학동네시인선 170번으로 출간한다. 시인은 생활 세계의 한복판에서 얽히고설키며 고통받는 인간 군상을 생생하게 목격하며, 남루한 현실을 자조하는 대신 단단하게 살아내고자 하는 시의 힘을 보여준다.

나의 영혼은 고깃집의 갈고리에 매달려 있다, 파리들이 달라붙는다
자 이제 다시 계속해볼까요
어디든 마음을 다해 가라, 이 문장을 똑같이 따라 해보세요
누구든 내 마음에 들어오세요

지상에서의 행복이 소나기 같다는 걸 그 누가 모르겠는가
_「내가 누구예요?」에서
저자

박판식

1973년함양에서태어났다.2001년『동서문학』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나는나와어울리지않는다』『밤의피치카토』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슬기로운삶/로보토미-나는내어리석은인생에시원한구멍을내고싶다/낙원으로가는인생/개미에관하여/곧/비상구/플레바스에대하여/나는들었다/맨발의왕자/복낙원/몽블랑/비는우리를겨냥한다/작은목소리/버선발에슬리퍼를신고/나는말한다/너와나/불안에관한노래/벨/울룰루/뿔/객관적으로/커피한잔/도무지알수가없는것/사/스텝바이스텝/크로노미터/내가누구예요?/과거를빠져나가는미래에게현재가/작은사건/이아이는누굴까/사랑의목소리로/생활이라는망상/아내의사촌에게/체크메이트/아들과딸에게/내게강같은평화/우리모두다같이즐거웁게/왼발오른발/아궁차락아궁차궁차락아/부드러운바람이불고달콤한비가내린다/사랑,그것은포근한털속의지방덩어리처럼/수지큐/마르고닳도록/증발/때가되었다/당신과의식사/엉클패닉/부모님은혜/나는착한사람이아니다/하늘의마음/2020

발문|사랑의목소리로|박상수(시인,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첫번째시집『밤의피치카토』에서서정적인백일몽과중세풍의이교도적인상징물을이미지화하며현실세계이면에존재하는환상의미학을보여준시인은두번째시집『나는나와어울리지않는다』에서깨진거울처럼흩어진현실의조각들을시의언어로이어붙이며세계의것이자자신의것이기도한흉터를대면했다.이번시집에서시적화자는아버지이자남편,그리고혈연가족의구성원으로서생활의한복판으로밀려온다.시인은가족과이웃등세속의사람들을관찰하여그모습을구체적에피소드와생생한실감으로시에담아내면서살아가는내내무수한고통을직면하는것이곧삶임을다시한번자각한다.

아내와나는같은세숫대야에얼굴을씻지않는다
아들과딸하나씩을발명하고우리는기진맥진이다
작은호랑이처럼헐떡이는아이들
김이다달아난밥한공기를놓고
위층에새로세든불행한엄마와그녀의엄마가차례로
벽에다그릇던지는소리를듣는다

내일은넋이빠져나간외할머니를보러
시외버스를탈것이다
죽음은어떤장소도시간도아니다,죽음은오히려반듯한질서
구포국민학교2학년오후반이후나는늘지각중이다
_「때가되었다」에서

이렇듯풀리지않는거대한수수께끼같은삶을대하는시적화자의태도는짐짓태연하게느껴진다.그가삶을섣불리자조하거나성찰하려들지않고직시하고자하기때문이다.문학평론가박상수에따르면화자는“어떤커다란깨달음이나서정적도약도덧붙이지않고,또한선악의판단도가하지않으”며,어설프게감상적인문장을꾸며내지않고“차라리삶안에서뒹굴며자기의육체로모든것을살아”낸다.고통을토로하기보다그자체를여실히인지하고받아들이며,외면하기보다빠짐없이목격하고시로써드러내기를택한것이다.

흰색보드판앞에서젊은고물상주인이
늙은여자와가벼운실랑이를벌일때도
그들의배후에서천장없는가건물로폐품들이
더올라갈수없는높이로올려지고있을때도

나는생각하게된다

(...)

인생은얼마나더큰커브를돌다쓰러져야만끝나는게임일까
_「크로노미터」에서

박판식의시에서일상의희노애락애오욕은다른차원으로승화되지않고다시금일상에머문다.비록생활은여전히진창이고번뇌와망상으로가득차있는“슬픈기념비”(「개미에관하여」),혹은“질것같은전쟁”(「곧」)이지만박판식의화자는이세계를버리지않고남아있으려한다.이결정은거창한이념때문이아니라,영혼은슬픔에침투당해파리날리는고깃덩어리로매달릴지라도사랑하는사람들과순간순간의기쁨을함께하고싶은마음에서비롯된것이다.

나는못된남편이고호통치는아빠였습니다
오늘만은나도어린아이가되어
머릿속을몽롱하게떠다니는아내의고민과걱정을씻어주고싶습니다

저기,프라이드치킨과청량음료를기다리며
새끼곰들처럼비쩍마른굴참나무가지에식구들이하나씩매달려있네요
_「마르고닳도록」에서

『나는내인생에시원한구멍을내고싶다』에는이처럼슬프고도아름다운세속에서인간의고통과번뇌를탐구함과동시에사랑의목소리를내기를멈추지않는박판식의시적자세가담겼다.시인은소시민들의고된현실을관찰하는목격자이자,그럼에도불구하고순간순간생동하는삶의의지를써내는기록자이자,무한히반복되는고통에끝끝내무뎌지지못하리라는예감에도지금을살아내고자하는삶의여행자이다.그는담담히,그러나안간힘을다해말하는듯하다.이수수께끼같은삶과뒤엉켜사랑하는것이또한시인의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