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 김훈 장편소설 (양장)

하얼빈 : 김훈 장편소설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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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훈

1948년5월경향신문편집국장을지낸바있는언론인김광주의아들로서울에서태어났다.돈암초등학교와휘문중·고를졸업하고고려대에입학하였으나정외과와영문과를중퇴했다.1973년부터1989년말까지한국일보에서기자생활을했고,[시사저널]사회부장,편집국장,심의위원이사,국민일보부국장및출판국장,한국일보편집위원,한겨레신문사회부부국장급으로재직하였으며2004년이래로전업작가로활...

목차

하얼빈_007

후기·주석_281

작가의말│포수,무직,담배팔이_301

출판사 서평

폭력과야만으로가득찬시대,
청년들의짧고강렬했던생애를그린김훈식하드보일드

안중근을다룬기존의도서들이위인의일대기를처음부터끝까지기록하는데주력한것과달리,김훈은1909년10월26일안중근이이토를저격한순간과그전후의짧은나날에초점을맞추어안중근과이토가각각하얼빈으로향하는행로를따라간다.이로써『하얼빈』에는안중근의삶에서가장강렬했을며칠간의일들이극적긴장감을지닌채선명하게재구성된다.
구한말,쇠약해져가는조국을바라보기만할수없었던청년들의결기가들끓고,세상의흐름에맨몸으로부딪친민중들이공허하게스러지던어두운시대상도김훈특유의단문으로하드보일드하게형상화된다.이비극적인상황속에서안중근이좇는대의와그가느끼는인간적인두려움은더욱효과적으로대비를이룬다.동양의평화를위해자신과타인의희생을불사하면서도,집안의장남이자한가정의가장이며천주교에서세례받은신앙인이라는정체성때문에수시로머뭇거리는그의모습은그간상대적으로주목되지않았던낯선면모이다.

이세상이끝나는먼곳에서빌렘이기도를드리고있고,그반대쪽먼끝에서이토가흰수염을쓰다듬고있고,그사이의끝없는벌판에시체들이가득쌓여있는환영이재위에떠올랐다.시체들이징검다리처럼그양극단을연결시키고있었다.
……신부님은여기에계시렵니까?
라는말을안중근은참았다.(66~67쪽)

안중근이이토를저격하기로결단하는순간은우연과운명이뒤섞여빚어지는전율로가득하다.암울한미래에고뇌하며간도와연해주일대를떠돌던안중근의하숙집으로신문지한조각이흘러드는데,그위에는통감공작이토가대한제국의위상을격하하고일제의세력을과시하기위해교묘히연출한순종황제의사진이실려있다.사진에암시된일제의야욕을감지한안중근은즉시마음을정하고이토가방문할하얼빈을향한생애마지막여정에오른다.
안중근은곧바로의병활동을함께했던동지우덕순을찾아가고,안중근을맞은우덕순역시안중근의의중을간파하고두말없이동행을결정한다.동일한목적을공유한두청년의망설임없는의기투합이간결한대화를통해전달되며묵직한인상을남긴다.

―꿩을쏘고남은총알로이토를쏘는구나.
우덕순이소리없이웃었다.웃음은엷게얼굴에번졌다.
―우습지만그렇게되었다.겨누어쏘기는마찬가지아닌가.
―총을많이쏘아보았는가?
―많이쏘지는않았다.나는사냥꾼이아니지만이토는꿩보다덩치가크니까어렵지않을것이다.
안중근이소리내어웃었다.
―그렇겠구나.그렇겠어.나는이토의덩치가너무작아서어렵겠다고생각했다.
―그것은좋지않은생각이다.
둘은마주보며웃었다.웃음은흐렸고소리끝이어둠에스몄다.(115쪽)

일본인검찰관과법관들이거사를단행한안중근일행을조사하며남긴신문조서와공판기록또한적재적소에활용되어소설의현장감을높인다.극도로정제된공문서의이면에서인간사의비극을읽어내는것은김훈의특기중하나이다.일면건조해보이던이문서들은소설의맥락속에절묘하게배치됨으로써당시의뜨거웠던현장을증거하는절절한기록으로다시읽힌다.

―그대는안의명령에따른것인가?
―아니다.나는안에게명령을받을의무가없다.또명령을받을의무가있다하더라도이런일은명령으로할수있는일이아니다.나는내마음으로한것이다.
―이토공은고관高官으로수행원과경호원이많은데,그대는암살에성공할수있으리라고생각했는가?
―그것은사람의결심하나로되는일이다.결심이확고하면아무리경호가많아도성공할수있다고믿었다.(232쪽)

이러한공술들은소설적각색을허용하지않을정도로완벽히긴장되어있고,안중근과우덕순의답변은단순하고정확해서다른해석의여지를남기지않는다.김훈은이기록들에서유불리를떠나오직스스로의신념을밝히기위해거침없이발화되는청춘의언어를읽는다.옳다고생각하는일에짧은생애를바친청년들의모습이동경심과슬픔,안타까움등복잡미묘한감정을불러일으킨다.

신념을지키는일의어려움과
그것을극복한이들이뿜어내는순수한빛

소설에서안중근과이토의갈등만큼이나눈여겨보아야할것은안중근에게세례를준빌렘신부와한국교회를통솔하는뮈텔주교의갈등이다.일본형법에근거한재판으로사형을선고받은안중근은죽음을앞두고신에게죄를고할수있기를염원한다.빌렘은그런안중근에게고해성사를베풀어주려하고,뮈텔은한국에겨우자리잡은천주교의뿌리가흔들리는것을막기위해빌렘의뜻에반대한다.한인간의영혼을구원하기위해애쓰는빌렘과,교회의안위를위해역설적으로세속과결탁한뮈텔의대치는성聖과속俗의대립이라는갈등을더하며소설의결을더욱풍부하게일구어낸다.
안중근과마찬가지로빌렘은뮈텔의권위에굴하지않고스스로의신념에따라안중근을만나러감옥으로간다.이러한빌렘의용기는안중근의거칠었던영혼을평온한안식으로인도하는명장면을탄생시킨다.

안중근이몸을앞으로굽히고낮은목소리로말했다.빌렘이몸을앞으로굽히고들었다.안중근의목소리는점점작아졌다.사형수의머리와사제의머리가가까워졌다.안중근의목소리는숨소리처럼들렸다.옥리들은아무소리도듣지못했다.목소리가끊기고,침묵이길게이어졌다.빌렘은침묵속에서안중근에게고해성사를베풀었다.(273~274쪽)

김훈이그리는안중근은희망이보이지않는시대에온몸으로길을내며나아간다.그과정에서안중근이지녔던젊음의패기와세상을변화시킬수있으리라는기대와환상은그의생명과함께부서져간다.안중근이부딪혔던벽은그로부터백여년이지난지금도건재한듯하다.청년들은여전히보이지않는길을찾기위해악전고투하고있고,때로는시류와타협하여개인의가치관과신념을버릴것을요구받는다.그렇기에거대한세상에홀로맞선안중근의생애는시대를뛰어넘어공감과탄식을자아낸다.
책의말미에실린‘후기’에는안중근의사형이집행된후남겨진이들이겪어야했던수모와배반의이합집산이펼쳐진다.안중근의외로운고투가일으킨변화와,그럼에도불구하고이어져간비극을담담하게서술한이후일담형식의글은소설바깥의현실과맞닿으며또다른울림을준다.『하얼빈』은동양평화라는대의를실현하기위해안중근을비롯한인물들이선택한길에대해옳고그름을가리지않는다.다만스스로의신념을지키려한책속많은이들의모습은각자가만들어낸명장면속에서순수하게빛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