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사정 (조경란 연작소설)

가정 사정 (조경란 연작소설)

$15.00
Description
아직 말해지지 못한 상처와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품고서도
곁을 내어주고 마는 존재, 가족
고독한 삶의 세목을 특유의 정교하고 단정한 문장으로 기록해온 소설가 조경란이 4년간의 창작과 반추 끝에 선보이는 연작소설집『가정 사정』. 치유되지 못한 오래된 상처를 지닌 가족 구성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생업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마치 상처를 잊은 듯 살아가지만 그 사이로 문득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아픔을 자각하곤 한다. 조경란은 자주 어긋나고 맥연히 교차하는 가족의 대화를 세심하게 포착해내면서, 그저 희미해질 뿐 지워지지 않는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온 가족 구성원들이 마침내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감각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에 더하여 현재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고통의 면면을 신중하고 웅숭깊은 시선으로 묘사함으로써 시대의 일면을 담아내려는 소설적 시도를 이어나간다.

표제작 「가정 사정」은 2020년 김유정문학상 후보작으로, 아내와 아들을 불시에 잃고 남겨진 부녀가 처음으로 둘만의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을 그린다. 고층빌딩에서 떨어진 종잇조각을 치우며 자신이 과연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였는지 돌아보는 노년의 아버지와, 나이들어가는 아버지를 돌보며 그마저 떠나고 홀로 남겨질 자신을 막연히 그려보는 중년의 딸은 서로를 더욱 배려하고 생각해주려 하지만 그 방식 때문에 조금씩 어긋나곤 한다. 실제로 2018년 한 대기업의 새해맞이 불꽃놀이 행사로 빚어진 꽃가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잘 녹지 않는 종이 꽃가루와 같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실의 아픔을 느끼게 하면서도, 그들의 생활이 결국에는 조금씩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다정한 위트와 함께 남겨놓는다.
저자

조경란

1996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불란서안경원」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불란서안경원』『나의자줏빛소파』『코끼리를찾아서』『국자이야기』『풍선을샀어』『일요일의철학』『언젠가떠내려가는집에서』,장편소설『식빵굽는시간』『가족의기원』『우리는만난적이있다』『혀』『복어』,중편소설『움직임』,짧은소설집『후후후의숲』,산문집『조경란의악어이야기』『백화점─그리고사물·세계·사람』『소설가의사물』등을펴냈다.제1회문학동네작가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현대문학상,동인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가정사정_007
내부수리중_043
양파던지기_079
분명한한사람_117
이만큼의거리_157
너무기대는하지마세요_191
한방향걷기_223
개인사정_257

해설리무버블스티커의마음_김미정(문학평론가)_293
작가의말_309

출판사 서평

아직말해지지못한상처와끝내이해할수없는마음을품고서도
곁을내어주고마는존재,가족

부족한손을맞잡고서로의지팡이가되어줄때
아픔은용기가되고,미움은연민이된다

고독한삶의세목을특유의정교하고단정한문장으로기록해온소설가조경란의연작소설『가정사정』이출간되었다.현대문학상,동인문학상등을수상하며“‘관계’의문제를치밀하고섬세한문체로다”룬다(현대문학상심사평)는감탄어린평을받아온작가는26년이라는시간동안소설과글쓰기를향한끊임없는사랑으로성실하게작품을창작해왔다.
4년만에독자들에게선보이는이번연작소설에는치유되지못한오래된상처를지닌가족구성원들이공통적으로등장한다.이들은생업의흐름에몸을맡기고마치상처를잊은듯살아가지만문득문득가슴을치고들어오는아픔을자각하곤한다.조경란은자주어긋나고맥연히교차하는그들의감정을섬세히포착하면서,끝내이해할수없는마음을품고서도서로의안위를살피고곁을내어주고마는가족의모습을그린다.이에더하여‘가족’이라는이름으로포용할수있는다양한관계들을상상하고,보호종료아동의현실과자살생존자의트라우마등우리사회고통의면면을신중하고웅숭깊은시선으로묘사함으로써시대의일면을담아내려는소설적시도를이어나간다.

윤씨는자리에쭈그리고앉아종잇조각을쓰레기봉투에담기시작했다.끝이없는일같아보여도오늘은이일로하루를보낼수있다.하루는당연하게주어지지않고언제끝장나버릴지아무도장담할수없었다.예보에없어도내일당장장대비가쏟아질지,기록적인남서풍이또불어올지누가알수있단말인가.아내와아들이처음함께간여행에서그런참변을당할거라고그누구도알아차리지못한것처럼.

표제작「가정사정」은2020년김유정문학상후보작으로,아내와아들을불시에잃고남겨진부녀가처음으로둘만의새해를맞이하는모습을그린다.고층빌딩에서떨어진종잇조각을치우며자신이과연좋은남편이자아버지였는지돌아보는노년의아버지와,나이들어가는아버지를돌보며그마저떠나고홀로남겨질자신을막연히그려보는중년의딸은서로를더욱배려하고생각해주려하지만그방식때문에조금씩어긋나곤한다.실제로2018년한대기업의새해맞이불꽃놀이행사로빚어진꽃가루사건을배경으로한이작품은잘녹지않는종이꽃가루와같이좀처럼지워지지않는상실의아픔을느끼게하면서도,그들의생활이결국에는조금씩조금씩나아질것이라는작은희망을다정한위트와함께남겨놓는다.
「양파던지기」「이만큼의거리」「너무기대는하지마세요」는스스로생을마감한가족을둔자살생존자들의일상을다루며원망과후회가뒤섞인유가족들의혼란스러운감정을바늘같은언어로세밀히묘사한다.작가는그러나‘남겨진자’들이슬픔에잠식당하지않도록한다.그들은부지런히집안일을하고,굴욕을참고생업을이어나가며,상실감을공유한사람들과보폭을맞춰걷는다.결국서로를지탱하는건서로임을알기에이들은부족한손을맞잡고서로의버팀목이되어준다.

모르는청년의일로가슴아파하는아주머니에게인주는말했다.왜슬픈이야기는사람들을가깝게만들어줄까요.인주는이제알것같았다.그슬픈이야기들이란사실슬픈이야기가아니라살아가는이야기에가깝기때문이라고._「개인사정」,291쪽

*
「내부수리중」과「양파던지기」는안전한삶을욕망하는부부의이야기로,이뤄낸꿈과잃어버린꿈,그리고그속에서흔들리는관계를묘사한다.「내부수리중」의기태와연호부부는녹록지않은환경에도쉬는날없이일하며‘내집마련’과‘내업장마련’이라는두가지큰꿈을이루었으나서로에게말하지못한상처때문에,그리고그토록원하던아이를가지지못했다는점때문에몰래괴로워한다.「양파던지기」의원진은식물세밀화를그리고싶다는어린시절의꿈대신안정적인직장과결혼을택한다.중년의나이에좌천되다시피고향근처로일터를옮기게된그는미국으로떠난아내와아들에게마음을터놓지못하고거리를둔다.각자의시간을보내게된두작품의부부는서로의부재를통해오히려그동안알아차리지못했던상대방의온도를실감한다.아직말로설명할수는없지만서로의눈빛과목소리만으로도변화를알아차리는그들에게서오랜세월을함께해온관계만의애틋한연대감이느껴진다.

불을켜야겠어,여보.아내가산의젖은흙을여기저기묻히고있는기태를봤다.기태가가진불안들을물끄러미들여다보는눈빛으로.이제그들은알게될것이다.시작된지구일후수색은성과없이종료된다는것과그일과무관한듯조금씩나빠져가는것들에대해서.그래서아내가지금부터자신들이시도하는모든게뜻대로되지않을수도있다는마음을밀어내는힘으로가게문을잡아당기는것같아보여서기태는자신의부족한손으로얼른아내의손을맞잡았다._「내부수리중」,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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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한사람」「한방향걷기」「개인사정」은각각교회내성폭력과가정폭력,자녀살해후자살로트라우마를겪는여성들이주인공이다.이들은가족과따뜻한한마디를주고받을수있기를바라지만정작가족으로서의의무를겨우다할뿐입안에맴도는말을삼킬뿐이다.그러나이들의아픔은결국용기가되어곤란을겪는가족을돕는데에쓰이고,가족을향한미움은서서히타인을향한통찰과연민으로바뀌어누군가를,그리고스스로를일으키는힘이된다.이해와용서로뭉뚱그려지는전통적인가족서사의결말에서벗어나,작가는함께삶을살아가는다양한사람들을가족이자동반자의범주에포함시키며달라진시대의가치를긍정한다.그러나,김미정문학평론가의말처럼작가는긍정하는것으로만소설을끝맺지않는다.라면조차끓이지못하는아버지에게밥짓는법을알려주고,‘남자는’과‘여자는’을어두에붙여성별고정관념을드러내는광고문구에는언제든떼어낼수있는스티커를조심히붙여둔다.자신과타인의취약함을인정하고어느누구도섣불리소외하지않는조경란의글쓰기는사려깊고다정하다.

쓰세요,어떤글이든.그런데시작도전에포기하게되거나시작해도쉽지않을거예요.힘들때마다그책에찬사를해줄사람을떠올려보는거예요.한사람은있어요.내쪽의그런분명한한사람.때론그게나자신이될수도있겠죠.스스로에게찬사를보내고또받는거예요.그렇게계속하다보면뭔가되지않을까요.그런상상만으로도도움이될거예요.우리,힘을내서살아야할때가많으니까._「분명한한사람」,152쪽

어느덧변화가찾아왔다.그변화는익숙하던것들의사라짐을의미하고종종쓸쓸함을동반하지만필요한변화이기도하다.이때작가는달라진시대의가치를긍정하면서도,행여그것에동의하지못할이들을쉽게내치려하지않는다.그리고이세심한마음씀은조경란의『가정사정』전체를관통한다._해설‘리무버블스티커의마음’,김미정평론가.

『가정사정』의단편들은주로중년여성을주인공으로한다.슬픔앞에의연해질나이라고생각될법하지만,과연나이를먹고경험이거듭되면어린시절의상처는잊혀지고자연히성숙해지는것일까.김미정평론가는말한다.“‘슬픔’이라는말에함축된약함,아픔,나이듦,불안정함같은말들은우리를의기소침하게하거나위축되게하는말들이아니라과연‘살아가는이야기’에값”하며,“더는기피되어야할것이아니라인간의조건과다름없다”(해설)고말이다.어른이되어서도여전히오랜상처에무람없이괴로워하는것이야말로,나아가서로를감싸안고상처를어루만지는것이야말로인간의조건은아닐지,조경란은여덟편의작품으로말하는듯하다.

#가족소설#외상후성장#이춘재연쇄살인사건#자살생존자#보호종료아동#자녀살해후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