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위대한유산,‘기억’은으뜸인학습
교육당국은4차산업혁명포고와함께‘지식’과‘학력’의자리를‘역량’으로대체해학교와교사,학생모두를혼란스럽게만들었다.사실적,개념적지식인‘무엇(What)’을아는지먼저묻지않고,절차적지식인‘어떻게(How)’해내야하는지가르치고배우라고강조해왔다.‘미래교육’이라고불리는이런철학과지침은자연스럽게‘지식’과‘역량’의양분과대립을불러왔고,무엇을우선시해야하는지논쟁을일으켰다.그러면서지식의바탕이되는사실이나개념,원리를이해하고기억하는교육은낡은방식으로치부되었고,‘검색’과‘체험’,‘공감’과‘협력’만을맹신하는풍조가생겨났다.
지금도학교현장에서는지식교육은다소소홀하더라도역량만잘길러주면된다는믿음이팽배해있다.그러나이런믿음은뇌과학,인지심리학등제반학문을융합한학습과학원리에비춰보면환상과미신에불과하다.지식의정의와기준이다른데도유용성만을내세워무비판적으로수용하는것은위험하고,기억이가장인간답고으뜸인학습임에도기억교육을무조건반교육적주입식교육으로왜곡하는일은어리석다.역량이지식에서비롯되고기억하는힘이배움의수준이라는점을간과한다면결국득보다실이많아질것이다.‘지식’과‘기억’이라는인간고유의자산과능력에대해조금만관심을두고파고들면교육의본질적인이해가가능한데도이를무시하는처사가안타깝다.
교육은궁극적으로지식을얻고삶에전이하도록돕는일이다.지식을폄하하고역량만추종하는교육은반쪽짜리에불과하고,자칫역량마저제대로교육하지못해둘다놓칠수있다.사실역량은갑자기하늘에서뚝떨어진새로운능력이아니다.산업혁명이후자본주의가발전하면서주로기업에서요구되는기술과능력을이름만바꿔그럴듯하게포장한개념일뿐이다.학교는이미오래전부터지식과역량이상호보완하여배움을일으킨다는사실을인정하며두가지교육을병행해왔다.
‘지식’과‘역량’은대립하지않는다
저자는지식을쌓고기억을활성화시키는교육이야말로역량향상의초석이되고인류진화와사회발전에기여할수있다고강조한다.‘핵심역량’으로불리는‘4C(비판적사고,창의력,의사소통,협력)’교육에대해서도해박한학습과학지식과풍부한사례를바탕으로대안을제시한다.
‘비판적사고’만하더라도뇌의메커니즘에따라우선장기기억속에저장된사실적,개념적지식에기대야한다.실제로장기기억에저장된지식이추론이나문제를해결하는과정에서작업기억능력을활성화시킨다.즉머릿속에지식이없으면아무리훌륭한사고기술을익혔어도속빈강정에불과하고,지식이아무리많아도사고기술이없으면제대로써먹을수없다.창의력역시타고난재능이라기보다는기존의지식을새롭게재구성하는힘으로이해해야한다.우선틀안에무엇이있는지확인해야지무턱대고틀밖으로나가사고한다면결코생산적일수없다.효과적인의사소통을위해서도정서에기댄애매하고모호한어휘를가급적쓰지말고소통의맥락을고려한지성적,이성적언어를써야한다.협력에있어서도무조건적인강요와통제를일삼지말고인간의이타성과상호이익이공정하고합리적으로균형을이룰수있도록포용력을높여야한다.
이런저자의제언은교육과정수립과교수학습,평가방식개선에많은시사점을던진다.그핵심은교육자라면교육자답게어떻게하면학생들에게실제로배움이일어나게할수있는지만궁리해야한다는것이다.그러기위해서는지식이창의와융합역량과전혀대립하지않는다는사실을먼저깨달아야한다.
다시,미래교육의길을생각하다
대학서열화와입시경쟁으로인한교육파행등산적한문제를해결하기위해역량중심의새로운학력관을도입한교육당국의고충은충분히이해한다.하지만새로운학력관의원리가흠잡을데없이순수해보여도실제로학교현장에서구현하기에는너무나이상적이다.그철학이아무리선하다고해도그결과지식과학력이빈곤해지고사교육비는천정부지로치솟고계층이동의사다리마저붕괴된다면결코사회발전을이루는‘진보’라고부를수없다.이책은현재주류를이루는미래교육담론에훼방을놓거나어기대려는의도를가지고있지않다.누군가는희생하여민낯을드러내고불편한진실을언급해야보다건강하고올바른교육담론을생산할수있다는신념과소명에서비롯됐다.미래교육의정답을고집하며일방적으로주장하기보다는교육당국자,교육학자,교사,학부모에게발상의전환과각성,대화를촉구하는것이다.이런과정하나하나가바로교육을교육답게만들고,지성인으로서교육자로서자긍심을높이는길이라고믿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