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보는 한국 근대사 : 조선, 세계의 화약고 - EBS CLASS ⓔ

전쟁으로 보는 한국 근대사 : 조선, 세계의 화약고 - EBS CLASS ⓔ

$16.00
Description
힘과 힘이 격돌한 시대,
조선은 어떻게 세계 열강과 맞섰는가?
병인양요부터 청산리전투까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신효승이 해석하는
한국 근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보는 시각에는 패배주의가 만연하다. 세계 열강이 한반도를 노리는 와중에도 왕은 무능했고, 정부 관료는 부패했다. 군대의 기강은 무너졌고 백성들은 나약했다. 국제 관계의 역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외교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왕조의 마지막 숨결을 내주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다. 더러 의병 항쟁의 영웅적 서사를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민족주의의 시각에 갇힌 채 분노의 정서만 자극한다. 우리나라의 근대사, 조선왕조의 마지막 역사는 과연 그렇게 패배주의적이고 무기력하기만 했을까? 병인양요부터 신미양요, 강화도조약을 거쳐 청산리전투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상들은 과연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한 채 그저 당하기만 했을까?
신효승(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전쟁사를 중심으로 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풀어내는 역사학자이다. 이 책은 전쟁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한국 근대사를 살펴본다. 그중에서도 조선에 세계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에서부터 독립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청산리전투까지 살펴보았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정말로 패배한 전쟁이었는가? 강화도조약은 과연 불평등하기만 한 조약이었는가? 일본은 어떻게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가? 세계 열강은 왜 일본에게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넘겨주었는지? 전쟁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살펴보면 기존에 배우지 못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다.
저자

신효승

저자:신효승
전쟁사를중심으로격동의한국근대사를풀어내는역사학자다.연세대학교대학원에서논문「20세기초국제정세변동과한인무장독립운동」으로박사학위를받았으며,예비역육군소령으로작전을지휘한경험을바탕으로심도있고폭넓게전쟁을연구해왔다.현재동북아역사재단한일역사문제연구소연구위원으로있으면서다양한저술활동과강연을통해한국근대사를해석하는새로운시각을제시하고있다.
저서로는『신미양요』,『3·1운동과대한민국임시정부의재조명3』,『조선전쟁생중계』(공저),『고려전쟁생중계』(공저),『일제의흔적을걷다』(공저)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는말|근대한국의전쟁을돌아보다
1강승리한전쟁이란무엇인가|병인양요
2강미군의끔찍했던48시간|신미양요
3강자주와굴욕사이|강화도조약
4강양면전쟁과조선|청불전쟁
5강중국은어쩌다패배했는가|청일전쟁
6강무섭지않은군대|대한제국
7강조선의친구는없었다|러일전쟁
8강등뒤의칼|의병
9강실전과영화는다르다|봉오동전투
10강독립운동사최대의승리|청산리전역
프롤로그_상생의게임을위하여

출판사 서평

병인양요와신미양요는승리한전쟁이다

1866년10월프랑스극동함대사령관인피에르-귀스타브로즈제독이이끄는함대가군함7척과병력1400명을갖추고우리나라한강입구에위치한강화도에쳐들어왔다.우리나라에서는‘병인양요’로프랑스에서는‘프랑스의조선원정’이라는전쟁이다.병인양요의결과우리는크게패하여강화도를점령당하고수많은문화재를약탈당했다고배웠다.하지만전쟁의궤적을살펴보면이와는다른내용을알수있다.당시조선조정은조선이프랑스의침략을무찔렀다고했다.프랑스정부역시조선침공에실패한‘패전’이라고평가했다.오히려프랑스군이각종보물과문화재를약탈해간것을수치스러운일이라며비판하기까지했다.
병인양요이후조선은전통적으로왕실의피신처였던강화도에포대를세우면서수비를강화했다.1871년미국은아시아에안정적교두보를확보하고자조선을타깃으로삼았다.6월10일미국은로저스제독과함선5척을앞세워강화도의초지진으로향했다.거기서미군은첫번째장벽인갯벌에부딪혔다.작전시간은늦춰지고병력의절반이전쟁도치르기전에손실되었다.결국미군은광성보까지진출하기는했지만전쟁을지속할여력이없다고판단해군을물리고만다.서구언론뿐아니라미국의회도이를패전으로받아들여해군을질타하고,로저스제독은군복을벗게된다.전쟁사를중심으로살펴보면패배한전쟁으로만알았던병인양요와신미양요과왜승리한전쟁인지가분명하게드러난다.
한반도를둘러싼국제관계의역학속에서근대사를보다

1800년대말서구열강은동북아시아에서완벽한우위를차지하지는못했다.실제1880년대의중국은이홍장이이끄는북양함대를중심으로아편전쟁,청불전쟁을겪으면서점차서구열강이두려워하는존재로급부상하였다.이에프랑스는청나라를이기기위해일본을끌어들이면서양면전쟁을계획하고,조선은부득이그전쟁의중심에놓였다.
청나라는이처럼당시동북아시아최강의군사력을자랑했지만내부의반란을진압하기바빠외부의침략에적극대응하지는못했다.한족과만주족의다툼,후이족의반란,백련교도의난,태평천국운동등사회적모순에따른수많은사건이이어지고있었다.영국과프랑스,러시아,독일등서구열강역시이런사정을알고있었다.서구열강은청나라를견제하기위해일본을선택했고,일본에자금과군사기술등을제공했다.그결과일본이청일전쟁에서이기고러일전쟁에서도승리할수있었다.
러일전쟁은당사국인러시아와일본뿐아니라그전장이었던조선은물론이고영국,미국,독일,프랑스등이직간접적으로연관된전쟁이었다.러시아의진출을막으려던서구열강의대리전성격을띄기때문에‘제0차세계대전’이라고부르기도한다.먼저영국이일본과영일동맹을맺어일본에최신군함과아시아각국의함대를제공했다.러시아는독일의위협을받고있었고,1905년‘피의일요일’사건으로내부적으로도혼란스러웠다.결국내부혼란과서구열강의견제를받은러시아는표면적으로일본에게패할수밖에없었다.당시일본역시전쟁을지속하기는힘든상황이었다.러시아와일본은포츠머스회담으로전쟁을종료했다.포츠머스회담의결과만을보면러시아도일본도승자가아니다.결과적으로가장피해자는러일전쟁과정에서국제적으로철저하게고립된대한제국이었다.

패배의역사에서각성과성장의역사로

병인양요,신미양요때프랑스와미국을간신히막아내고,강화도조약당시최대한균형을유지하려노력했지만,국제관계의역학속에서조선과대한제국은철저히외면되었을뿐아니라,오히려세계열강이나서서대한제국을일본의제물로만들어주었다.다른나라에의해우리의운명이결정된것이다.
결국조선의민중이외부세력의간섭과침해를견디지못하고분연히일어났다.바로의병이다.의병전쟁은단순히일제의군대를공격했다는데있지않다.일본은1910년에대한제국을강제병합했지만,이땅의민중은스스로의병을조직하여일본이대한제국을불법적으로침탈한것임을세계에알렸다.1920년독립군이일본과싸워첫승리를얻어낸봉오동전투,무장독립운동역사상최대규모의승리를거둔청산리전역등의의병전쟁은한반도의민중은독립을염원하고있으며충분히그럴역량이있음을국제사회에알린신호라고볼수있다.
조선은19세기말에세계질서에편입되었고,일본과서구열강의간섭끝에1907년대한제국군대가해산되면서국가의존립을유지할수단을상실하였다.하지만그과정에서민은의병을일으켜국권회복의주체가되어일제에대항했다.전쟁사라는새로운도구로우리근대사를보는이책은우리의근대사를패배와좌절로점철된역사가아니라민이근대국민국가의주체인국민으로각성해성장하는적극적이고역동적인과정으로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