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경주부의 옛 관부와 읍성에는 근래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일부는 복원되고 있으나 일부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퇴락 일로에 처했습니다. 교사校舍로 사용되던 집경전 터는 근근이 그 유지를 확보하고 있으나 주변에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발굴이 진행되고 있고, 일제 강점기 때 소실된 정조 어필의 비각은 아직 건립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읍성 향일문의 남북 일부는 복원하였으나 동북 성우城隅 주위는 마무리 발굴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과거 동헌東軒 건물은 사찰 건물로 사용되고 있으며, 동경관 중건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또한 악부의 전래 노래와 여인들의 한 맺힌 삶을 이대로 덮어둘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경주 관부의 복원은 많은 시일이 필요하겠지만 자료만이라도 먼저 정리해야 한다는 작은 의지는 차마 꺾을 수 없었습니다.
1980년 초만 해도 개인 소장의 고문서가 많이 나왔으며 고서점도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필자는 고문서의 가치를 모른 채 다만 개인 문집을 수집하기 시작 했습니다. 대구와 안동 등지를 다니며 꾸준히 노력한 결과 경주문집의 수량과 범위를 대충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경주문집해제』(2004)를 집대성하여 출간하였습니다. 경주지역 개인 유가 문집류를 정리한다는 취지도 있었으나 그 근본적인 배경은 경주부의 고문헌이 워낙 찾을 길이 없었으므로, 이들 문집 속에 관련 자료가 다수 전할 것으로 추정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같은 추정은 목적한 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결국 경주의 작은 자산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앞서 『경주선생안』(2002)을 국역하였으며, 『경주읍성과 관부』(2018, 공저, 3책)를 발간하며 경주부의 문헌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 초만 해도 개인 소장의 고문서가 많이 나왔으며 고서점도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필자는 고문서의 가치를 모른 채 다만 개인 문집을 수집하기 시작 했습니다. 대구와 안동 등지를 다니며 꾸준히 노력한 결과 경주문집의 수량과 범위를 대충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경주문집해제』(2004)를 집대성하여 출간하였습니다. 경주지역 개인 유가 문집류를 정리한다는 취지도 있었으나 그 근본적인 배경은 경주부의 고문헌이 워낙 찾을 길이 없었으므로, 이들 문집 속에 관련 자료가 다수 전할 것으로 추정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같은 추정은 목적한 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결국 경주의 작은 자산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앞서 『경주선생안』(2002)을 국역하였으며, 『경주읍성과 관부』(2018, 공저, 3책)를 발간하며 경주부의 문헌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주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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