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신학은아우구스티누스작품의주석이라고할수있다”(E.TeSelle)
“아우구스티누스이후서양철학에서나온
새로운것은모두아우구스티누스의토양안에서조성된것이다.
그들은아우구스티누스의방법론을빌려
그의사상을변형시키거나뒤집어놓았다.
스피노자와키르케고르나헤겔을포함해서
최근의철학자들이모두그렇다.”(J.Guitton)
아우구스티누스,‘서구의아버지’로불리는사상가
그리스도교초기의교회와교의의발달에공헌한스승과저술가들을가리켜교부라고부른다.아우구스티누스는플로티노스로부터시작된신플라톤주의철학과그리스도교신앙을아우르고발전시킨위대한교부였다.중세신학의뼈대를세웠을뿐아니라근대의탄생에까지영향을미쳤다.이를테면그의국가관과교회론은주권이교황과황제로양분되는중세체제를만드는데기여했고,그의사상은근대의시작을열었던마르틴루터의종교개혁에신학적토대가되어주었다.토머스홉스,마키아벨리,데카르트를비롯한여러근대철학자들에게뿐아니라한나아렌트,베르그송,후설,하이데거,데리다와같은현대철학자들의사상에도직간접적으로일조했다.한나아렌트의박사학위논문은아우구스티누스의사랑개념에관한것이었으며,『고백록』11권에서나타난현재중심의시간관은베르그송의시간관과후설과하이데거의현상학적시간관의기원이되었다.거기다저자양명수교수는아우구스티누스의직선적인종말론적시간관이없었다면서양의발전사관이나헤겔의역사주의철학도출현하기어려웠으리라고보았다.그리스도교의정립과인류정신사의발전에아우구스티누스는빼놓을수없는인물이었던것이다.
“이세상을보는서구인들의눈에는
아우구스티누스딱지가붙어있다고해도틀린말이아니다”(JohnMattox).
회심이있기까지의지적편력과그후의삶
아우구스티누스는354년타가스테에서태어났다.카르타고로유학을떠난뒤에,법률가나관리가되기를바랐던아버지의기대와는달리수사학을비롯해천문학과철학을배운다.라틴어로쓰인고전을즐겨읽던아우구스티누스는키케로의『호르텐시우스』에감명받아내면의지혜에대해관심을갖게되지만,얼마안있어선악이원론을주장하는마니교에심취하고만다.하지만악을인간외부의실체로보는마니교는인간내면을탐구하고있던아우구스티누스를만족시킬수없었다.시간이흘러밀라노에수사학교수로있던가운데당시밀라노의주교였던암브로시우스와조우하게되는데,그무렵플로티누스계열의신플라톤주의가그의회심에영향을미쳤다.여러편의글을집필한아우구스티누스는암브로시우스에게서세례를받은다음히포에서사제가되고거기서이른시기에주교직까지맡게된다.그는학자이자행정가로서활동하며『고백론』,『신국론』,『삼위일체론』등여러저작들을써낸다.한편아우구스티누스가교회의정체성확립에기여한사건으로는그리스도교박해시절배교한교회지도자들의주교서품성례를무효라고주장한도나투스파와의논쟁과선을행할수있는자유의지와원죄론을놓고벌인펠라기우스논쟁이있다.아우구스티누스의작품은113권의책과218통의편지그리고500편이넘는설교가보존되어있다.
치밀한분석으로아우구스티누스사상의핵심에다가들다
깊은영성과인문학적지성을바탕으로인류문명에대해고민해온신학자이자사상가양명수교수는,『고백론』,『신국론』,『삼위일체론』등주요저서에서골라낸아우구스티누스의목소리를해설해가며그의다양한사상을짚어간다.양명수교수의친절하고담담한문체를따라가다보면인식론에서부터해석학과악의문제그리고정치사상과시간관등인류사상사에영향력을미친아우구스티누스의사상을별어려움없이이해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