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은 삼국 통일을 말하지 않았다

신라인은 삼국 통일을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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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신라인들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한국사 교과서가 ‘신라의 삼국 통일’을 역사적 사실로 적고 있다. 『신라인은 삼국 통일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렇게 교과서에 흔들리지 않는 사실로 각인된 ‘신라의 삼국 통일’에 근원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근대화에 뒤늦어 외세 강점을 겪게 됐다는 열등감, 즉 ‘근대성 콤플렉스’ 때문에 외세 강점 이전의 역사에서 찬란함과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시도가 광복 이후 시작되거나 강화됐는데, 어느덧 그런 움직임이 ‘역사를 왜곡하는 미화’로 변질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역사를 잊거나 비하해서는 안 되지만, 미화나 과장을 해서도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저자

신형준

저자신형준은서울대학교에서동양사학전공,서양사학부전공.고려대학교고고학전공(석사).언론을통한사회개혁을꿈꾸며1990년CBS입사.3개월만에퇴사해조선일보사입사.주로문화재담당기자를했다.2004년한국사에대한지나친미화를비판한『한국고대사에대한반역』출간.2004년,서울시부시장이춘식씨에게“서울광장에스케이트장을만들어아이들의웃음소리를도심에서들어보자”고권유.그해12월24일,자신의아이디어가‘육화(肉化)’된서울광장스케이트장이개장했을때특종기사를쓸때보다더기뻐함.이를계기로‘글’이아니라‘정책’으로사회를변혁시키는데관심을갖게됨.2008년말조선일보사퇴사뒤대통령비서실연설기록비서관실행정관으로옮김.조선일보사퇴사당시역대특종건수10위에듦.청와대에들어가자마자‘아니다’싶어3주만에그만둠.현재선대의고향인인천에서농사를지으며독서와집필활동중.

목차

자료수집방법을공개하며
서론신라인들은삼국을통일했다고생각했을까?

1‘신라인들이삼국을통일했다고자부했다’는정설에대한다섯가지의문
첫째의문:신라인들이통일을이룩한왕으로태종무열왕을꼽은까닭은?
둘째의문:신라인들이‘삼국통일’이라는표현을쓰지않은이유는?
셋째의문:신라인들에게‘삼한’은어디였을까?
넷째의문:발해건국에신라가모르쇠를한까닭은?
다섯째의문:‘삼한=삼국’이면삼국통일은당나라가했다?

2우리는삼국이아니라삼한을통일했다!
‘신라인들의기록’으로본신라인들의통일과국경에대한인식
━━━━━문무대왕릉비
━━━━━청주운천동사적비
━━━━━성덕대왕신종
━━━━━이차돈순교비
━━━━━김입지가비문을지은성주사비
━━━━━대안사적인선사탑비
━━━━━황룡사9층목탑찰주본기
━━━━━보림사보조선사탑비
━━━━━쌍계사진감선사탑비
━━━━━월광사원랑선사탑비
━━━━━성주사낭혜화상탑비
━━━━━봉암사지증대사탑비
━━━━━진경대사탑비
━━━━━예부에서상서를맡고있는배찬에게올린글
━━━━━헌강왕이당나라강서에사는대부직함을가진고상에게보낸글
━━━━━당황제가조서두함을내린것에감사를표시한정강왕의표문
━━━━━태사시중에게올린글
━━━━━발해가(당나라가마련한외교석상에서)신라보다상석에앉지못하도록당황제가조치한것에대해감사하며올린표문
━━━━━당에서공부하는학생을신라로보내주기를당나라조정에부탁하는글

3『삼국사기』와『삼국유사』를통한검토
통일을이룬왕은태종무열왕!
━━━━━선덕여왕의당파병요청
━━━━━김춘추,당에백제정벌을요청하다
━━━━━당,국상중이던신라에“고구려정벌참여”명령
━━━━━『삼국사기』‘김유신전’에나타나는신라와당의관계
문무왕의읍소“백제땅만주세요!”
당의영토가된고구려
━━━━━발해의건국과삼한
━━━━━신라,당으로부터대동강이남의땅을공인받다
━━━━━천헌성묘지명
━━━━━천남산묘지명5
━━━━━천비묘지명
━━━━━이은지묘지명
━━━━━고덕묘지명
━━━━━고진묘지명
백제유민들의기록━━━━━『삼국사기』‘견훤전’에서보이는신라말기삼한의용례
━━━━━『삼국유사』에보이는신라인들의통일과국경에대한인식

4당영토로묘사된한반도
한반도와만주상황에대한고구려유민들의기록
━━━━━고요묘묘지명
━━━━━이타인묘지명
━━━━━천남생묘지명
━━━━━고현묘지명
━━━━━고모묘지명
━━━━━고질묘지명
━━━━━고자묘지명
━━━━━예군묘지명
━━━━━부여융묘지명1
━━━━━진법자묘지명
━━━━━흑치상지묘지명
━━━━━난원경묘지명
중국인들의관련기록

결론객관적이고냉정한한국사읽기를소망하며

출판사 서평

신라는삼국을통일했는가?
더나아가,신라인들은삼국을통일했다고스스로자부했을까?
본질적인질문으로교과서속역사기술에의문을제기하다
모든한국사교과서가‘신라의삼국통일’을역사적사실로적고있다.『신라인은삼국통일을말하지않았다』는이렇게교과서에흔들리지않는사실로각인된‘신라의삼국통일’에근원적인질문을제기한다.저자의질문은본질적이어서더욱도발적이다.
첫째질문
백제는660년,고구려는668년멸망했다.신라는두나라가멸망한뒤당나라와의전쟁을거쳐676년대동강~원산만이남통일을이뤘다.신라의통일이완성된시기를668년으로보든,676년으로보든당시신라의왕은문무왕이었다.한국사교과서도통일임금으로문무왕을꼽는다.그런데,신라인들은통일을이룩한군주로문무왕이아니라,태종무열왕을꼽았다.661년에사망한태종무열왕은백제의멸망만지켜봤을뿐이다.신라인들은왜고구려멸망은커녕고구려와제대로대결조차한적없는태종무열왕을통일군주로꼽았을까?
둘째질문
신라인들이삼국을통일했다고자부했다면당연히‘삼국통일’이라는표현을자주썼을것이다.그런데뜻밖에도신라인들은삼국통일이라는표현을거의쓰지않았다.대부분‘삼한통일’이라는표현을썼다.신라인들은왜‘삼한통일’이라는표현을고집했을까?
셋째질문
신라인들은발해를고구려의후예라고생각했다.발해가고구려의옛땅대부분을차지하고건국했으니당연한일이다.신라인들이‘우리선조들이삼국을통일했다’고자부했다면발해건국을어떻게든막으려했을것이다.‘통일신라’를깨뜨리는것이기때문이다.그러나신라인들은발해건국에관심이없었다.발해가강성한국가로자리잡고도‘신라의통일은잘유지되고있다’는식으로말했다.고려나후백제가건국한신라최말기에‘나라가혼란에빠졌다’고비탄에잠긴것과대조된다.신라인들은왜발해건국,그러니까고구려부활에무관심했을까?
저자는이질문에대한답도본질적으로찾았다.신라인은물론,고구려인이나백제인이남긴모든기록유물을전수조사한것이다.그과정을거쳐‘신라인대부분은신라가삼국통일을했다고생각하지않았다’는사실을사상처음논증했다.
한국사학계에도소수이긴하지만신라의삼국통일을부정하는주장이있다.백제와고구려,그리고당과전쟁을마친뒤(이책에서는이를‘통일전쟁’이라고부른다)신라가차지한영역이대동강~원산만이남이기때문이다.그러나신라의삼국통일을부정하는한국사학자들도‘신라인들이삼국을통일했다고생각했다’는것에는의문을두지않았다.
저자는‘신라인들의통일관’을살피기위해①돌이나토기혹은쇠붙이등에신라인이직접써서남긴모든금석문,②원효나최치원등신라인의글을모은문집,③우리나라에남은고구려나백제의기록유물은물론당나라로건너간고구려나백제유민의묘지명(죽은이의행적을적어무덤에넣은글),④『삼국사기』와『삼국유사』,이렇게네가지항목자료를전수조사했다.그결과를토대로우리가믿어온것이사실이아니라는사실,더정확히말하면‘사실이아닐확률이높다’는사실을드러내보인다.

우리역사속오류와모순을바로잡을기회가왔다
저자는한국사학계의주장처럼‘삼국=삼한론’을펼칠때닥칠수있는후폭풍을지적한다.이주장을논리적으로따라가면,중국의‘제2의동북공정’,그러니까고구려나발해가중국지방정권의하나였다는주장(기존동북공정)이한반도전역으로확대될위험과맞닿게된다.
7세기이후중국측기록에는‘삼한=삼국’이많이보인다.애초삼한이란표현은중국이자기주변에존재하는나라나종족에대해일종의‘인류학적보고서’를쓰면서역사서에처음등장했고,이때삼한은요즘말로하면‘중국에조공을바치는국가’정도로묘사됐다.조국멸망뒤당나라로건너간고구려나백제유민들도‘삼한=삼국’을받아들였다.한데여기서삼한은모두당나라의영토,혹은지배지역으로묘사돼있다.특히‘삼한=삼국’을받아들인고구려나백제유민들의기록에등장하는‘삼한’은100%당의영토였다.
고구려유민의묘지명중7세기중엽이후‘삼한’을언급한묘지명은모두삼한을당나라가차지한곳으로기술했다.심지어고구려의옛땅을발해가차지한상황에도삼한은당나라영토인것처럼표현했다.백제유민의것역시마찬가지다.당시국제정세를묘사한백제유민의묘지명도모두백제지역마저당이차지한것처럼말한다.물론고구려나백제유민이보인‘삼한은당나라영토’라는표현은당나라에서살아남기위한고육책이었을것이다.그러나신라인들은이런변화를받아들이지않았다.그럼에도한국사학계가중국에서비롯된용례변화를바탕으로필요에따라‘삼한=삼국’을받아들이면서,그속에담긴‘정치적함의의변화’,즉‘삼한은당나라의영토’라는변화된뜻에대해입을다문다면이는학문적으로잘못된일이다.더나아가이런식의주장,그러니까‘삼한=삼국’이라는주장이중국에의해악용된다면,더심화된‘동북공정’이나올수도있다.

이제한국사학계가설명해야한다
‘신라인이삼국통일을했다고생각했다’고주장하려면아래의문을설명할수있어야한다.
①왜신라인들은통일을이룩한왕으로현재사학계처럼문무왕이아니라무열왕을꼽았을까?
②고구려를발해가계승했다고여긴신라인들이왜발해건국때아무런군사적조치를취하지않았고,통일이깨졌다는생각조차가지지않았으며,심지어발해를두고서도‘삼한은여전히통일됐다’고말했을까?
③문무왕이당나라와의통일전쟁때왜“당태종이(신라무열왕에게)평양이남백제땅을주기로했다”며고구려최남단만당나라에요구했을까?
④사망직전(673년)김유신은왜신라와당이한반도중부에서한창전쟁을벌이는와중에도“삼한은통일됐다”고했을까?
⑤당황제가대동강이남을신라에게준다고했을때신라성덕왕은왜감사하다고했을까?
⑥삼한과삼국이같은표현이라면,신라인은왜삼한을통일했다는표현을주로쓰고,삼국을통일했다는표현을쓰지않았을까?
⑦신라인이7세기중엽이후중국기록을받아들여‘삼한=삼국’이라고생각했다면,신라인도‘삼한은당나라땅’이라는중국이나고구려백제유민의입장을받아들였는지,또이를바탕으로앞으로중국에서또다른동북공정론을제기한다면어떻게우리역사를‘방어’할수있는가?
한국사교과서는이에대해‘불완전한통일’이라는말로답을대신하고있다.왜태종무열왕을통일을이룩한왕으로신라인들이꼽았는지,발해건국때신라가왜모르쇠를하면서통일은유지되고있다고했는지등에대해서는답을주지못하는형편이다.
하지만‘신라인들은애초삼한보다약간더북쪽으로확장된지역을통일하려했고,실제로이루었다고생각했다.신라인들은신라가통일전쟁뒤차지한영역을삼한의지역적범위로생각했다’고답하면,위모든문제에대한해답은간단하게해결된다.
애초신라의목적은백제지역(혹은그보다북쪽으로약간확장된지역)통일이었기에통일을이룬왕은백제멸망(660년)을목격한태종무열왕(661년사망)이될수밖에없다.고구려는신라가통일한지역이아니었기에그곳에발해가들어서든발해를무너뜨리고요나라가들어서든신라인들은상관이없었다.그곳은신라가통일한땅이아니었으니까!그랬기에신라인들은‘삼국통일’이라는표현보다‘삼한을통일했다’는표현을압도적으로많이쓴것이다.비록고구려의옛땅을당나라가잠깐차지한것은사실이지만,한세대뒤고구려후예인발해가건국하면서만주와한반도북부는다시금우리역사로들어왔다.‘삼한=삼국=당나라영토’라는중국논리를신라가받아들인적도없지만,발해건국과함께이논리는설자리를잃는것이다.

구체적인수치로입증한‘삼한통일’의근거
‘신라인들이삼국통일을이뤘다고생각했다’는주장을뒷받침하는사료는모두5개다.‘삼한=삼국’으로본기록2건과‘삼국통일’이표현된3건이다.(통일군주로문무왕을꼽은‘문무대왕릉비’나『삼국사기』문무왕9년과21년기록세가지를거론하면서,이를신라가삼국통일을했다는증거로삼으려는주장이있을지도모른다.하지만이는‘신라가삼국을통일했다’는증거는아니다.통일군주로문무왕을삼은것뿐이다.문무왕은당나라에보낸편지에서도밝혔듯,통일전쟁에임하는신라의목표는고구려땅이아니라,백제땅확보라고말했다.)
하지만‘신라인들은삼국이아니라,대동강~원산만이남을뜻하는삼한을통일했다고생각했다’는주장을뒷받침하는사료는45건이다.삼한을‘통일전쟁이후신라가실제로자치한영역’으로생각했음을드러내는기록이18건,통일군주로백제의멸망만을지켜본태종무열왕을꼽은기록이7건,‘삼한통일’이라는표현이등장하는기록이11건,‘고구려가발해가됐다’며고구려지역이신라의영토가아님을명확히한기록이4건,‘북국에사신을보냈다’며발해를국가적실체로서인정한기록이2건,신라의국경이대동강~원산만이남임을밝힌기록이3건이다.
최종스코어45대5로,‘신라인들은삼국이아니라,자신들이실제로차지한삼한을통일했다고생각했다’는주장을논증하는증거가압도적으로우세하다.이럴때어느주장에손을들어줘야하는지는명확하다.

전문가의이야기라고무조건믿지말고,자기눈으로역사를직접검증하자
저자는‘신라인은삼국통일을말하지않았다’는주장검증에‘한글을읽을줄아는’모든국민이참여할수있다고손을내민다.예전처럼한자자료를해석해야했을때는숙련된소수전문가만‘논쟁’에참여할수있었다.그러나인터넷과정보공개발달로,신라와관련한모든사료는국문으로번역돼인터넷에올라있다.삼국시대사람들이남긴모든기록과번역문까지말이다.이제검증은전문가들만할수있는작업이아니다.구텐베르크의활자술이수도사등소수지식인이독점하던지식체계의운용을바꿨듯이,인터넷발달과학술정보공개는우리역사연구에서대중의접근을비약적으로확대시킨다.
한국사교과서도기술을바꿔야한다.현재교과서는삼국을통일했다는의미로‘통일신라’라는표현을쓰면서,한편으로는발해도다룬다.그래서8세기이후역사를‘통일신라와발해’라고부른다.발해를고구려의계승자라고생각한다면‘통일신라’에서의‘통일’은삼국이아니라,대동강~원산만이남을의미하는삼한을의미하는것이라야한다.신라가삼국을통일했다고주장하는순간,발해라는존재는설명할길이없다.그럼에도신라의삼국통일을주장하려면,발해건국으로삼국통일이깨졌다고해야한다.‘삼국을통일한신라’와발해는양립불가능한존재다.그렇다면8세기이후우리역사는‘삼한통일신라와발해’혹은‘남북국시대’라고부르는것이정확할것이다.

역사를미화해온콤플렉스,이제는과감하게벗어나자
저자의집필동기로두가지를소개한다.첫째는어린시절부터가져온의문,즉고구려영토를신라가통합하지못했는데어떻게신라가삼국통일을이뤘다고이야기할수있느냐는질문에자답하고싶었다고한다.
둘째는,20년가까이문화재기자를하면서느낀자괴감에서벗어나기위해서였다.저자역시기자초년병시절,‘우리문화유산의찬란함’내지는‘우리의빛나는전통과학기술’등의표현을많이썼다고한다.하지만알면알수록,자료에접근하면할수록‘한국사중심으로모든역사가돌아가는듯한,역사인식의천동설’에혀를차게됐다.고구려가동북아시아의패권자였다고한국사학계는주장하지만,최전성기에도중국대륙의‘반쪽짜리왕조’에조공한고구려가어떻게동북아시아의패권일수있는가?석굴암이루트2의비례미라는극도의자연과학적지식을바탕으로건축됐다고여러연구서가언급했지만,막상석굴암을실측하니그어떤‘수학적비례미’도찾을수없었다.조선후기에자생적근대의움직임이있었다고한국사학계는입을모으는데,근대의최선구로볼수밖에없는실학자그누구도서구근대과학을언급하며우리사고체계에통절한반성을촉구하지않았다.적어도19세기중엽이전까지는.
저자는근대화에뒤늦어외세강점을겪게됐다는열등감,즉‘근대성콤플렉스’때문에외세강점이전의역사에서찬란함과아름다움을찾으려는시도가광복이후시작되거나강화됐는데,어느덧그런움직임이‘역사를왜곡하는미화’로변질되고말았다고지적한다.역사를잊거나비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