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극장예술과 취미 담론 (양장본 Hardcover)

한국 근대 극장예술과 취미 담론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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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 근대 극장예술과 취미 담론』은 근대 초기 한국에서 ‘취미’의 가치가 인식되고, 취미라는 새로운 문화적 실천이 근대 대중문화의 근간이 되어간 과정을 밝힌 책이다. 1900~1920년대 공연문화로써의 다양한 대중연극이 취미 담론과 결합하면서 시기별로 어떤 특징적인 면모를 드러냈는지 살펴본다. 1900년대 연극개량담론을 필두로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한국 근대의 공연문화가 취미라는 새로운 가치와 봉합되면서 자본주의적 근대성과 식민성의 논리 하에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해명한다.
저자

문경연

저자문경연(文京連,MoonKyoung-Yeon)은경희대국문과를졸업한뒤동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경희대학교연구박사,한양여자대학전임연구원을거쳐,현재경희대ㆍ서울과학기술대ㆍ경희사이버대등에서강의하고있다.역서로『포스트콜로니얼드라마』,『演技된근대』,『취미의탄생』이있고,공역으로『좌담회로읽는국민문학』이,공저에는『신여성-매체로본근대여성풍속사』,『한국현대연극100년』,『토털스노브』등이있다.최근논문에「일제말기국민연극의기호학적고찰」,「1930년대말‘新協’의≪춘향전≫공연관련좌담회연구」,「일제말기부여표상과정치의미학화」,「1930년대한일역사극의담론지형고찰」등이있다.2011년‘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에서최우수논문상을수상했다.식민지근대의극장예술과문화번역을연구하고있으며,최근에는해방이후문화연구로관심을확장하는중이다.

목차

책머리에

제1장서론:극장의출현과‘취미’라는기표
1.문제제기
2.연구사검토
3.연구방법및범위

제2장근대취미담론의형성과전개
1.서구‘취미’담론과일본‘취미’담론의형성과전개
1)서구계몽주의와근대‘취미’담론
2)일본메이지문화개량운동과근대‘취미’담론
2.한국근대취미담론의기원과형성
1)근대취미담론의전사:18세기신지식인층의문화를중심으로
2)1900년대계몽담론과‘취미’개념의등장
3)1910년대‘문명’과식민주의적변용으로서의‘취미’

제3장근대공연문화와취미의제도화
1.계몽의기획으로서의근대초기연극담론
1)극장의출현과1900년대연극개량담론
2)근대시각장의체험과관극문화의형성
2.문화공동체의출현과공공취미의보급
1)1910년대‘극장취미’와관객의형성
2)‘취미화’를둘러싼제국-식민의역학관계

제4장근대초기공연문화의분화ㆍ교섭과취미의통합적기능
1.근대교육제도와대중문화를통한취미의확산
1)근대관람문화와공연물의연계
2)교과과정과‘취미’의내면화:‘수신’교과와‘학적부’의취미
3)근대적인간형과‘취미’라는척도
2.근대극장을중심으로한공연문화의교섭양상
1)막간공연의흥행과대중연극취미
2)연쇄극과활동사진취미
3)대중연극삽입가요의유행과음반취미

제5장결론:일상과개인,취미의정치학

부록

1.李王職博物館編,『李王家博物館所藏品寫眞帖』,李王職博物館(京城),1918
2.朝鮮總督府編,『高等普通學校修身書』卷3,朝鮮總督府(京城),1923
3.友枝高彦,『(改正)中學修身』,(合)富山房(東京),1925
4.乙黑武雄ㆍ關寬之共著,『(改正)學籍簿精義』,東洋圖書株式合資會社(東京),1938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한국근대극장예술과취미담론

‘미적감응력’으로소개된‘취미’는시간이흐르면서특정대상을소비하고즐기는구체적인의미로수렴되었다.1920년대이후로‘취미’는문명,교양,정신적개조라는개화기의시대적사명을탈각해갔다.이것은자본주의시장에서문화상품이된‘취미’가소비와구체적실천을통해획득할수있는‘오락’과여가의의미로수렴되어가고있음을의미했다.

근대초기한국에서‘취미(趣味)’의가치가인식되고취미라는새로운문화적실천이근대대중문화의근간이되어간과정을밝힌흥미로운연구서가발행되었다.『한국근대극장예술과취미담론』(소명출판,2012)이바로그것이다.『한국근대극장예술과취미담론』은특히1900∼1920년대공연문화로서의다양한대중연극이‘취미’담론과결합하면서시기별로어떤특징적인면모를드러냈는지재구(再構)했으며,1900년대연극개량담론을필두로세상에존재를드러낸한국근대의공연문화가‘취미’라는새로운가치와봉합되면서자본주의적근대성과식민성의논리하에형성되어가는과정을해명해냈다는데그의의가있다.

한국근대공연문화와대중연극의형성과정과‘취미’라는근대적‘제도’의영향관계를밝힌최초의연구서!
이책의저자문경연교수는『한국근대극장예술과취미담론』을통해근대한국의‘취미(趣味)’는서구/일본의영향과국내적배경맥락을바탕으로형성되었다고주장한다.다시말해서구취미론의영향을받아그의미가획정(劃定)된일본어‘취미(趣味)’의영향을받았다는것.서구의근대미학사상과그것의집약적개념인‘taste’가메이지시대일본에영향을주었고,‘taste’의일본어번역어로‘취미(趣味,しゅみ)’가등장하며,‘미적판단력’,‘대상의아름다움을읽어낼수있는미의식’,‘정신적미각’으로서의‘taste’가일본전통의미학(美學)개념인‘취(趣,おもむき)’와결합하였고‘趣味(しゅみ)’라는말로번역되었다.
조선에서는이미일본의식민화가추진되며진행된다양한식민지통치전략을통해,식민지조선을문명화하려는일본의취미사상이한국에유입된것이다.『한국근대극장예술과취미담론』은이렇게1900년대에등장한낯선기표,‘취미(趣味)’의구체적인용법과활용양상은개화기에발간된학회지와신문매체,잡지,각종문서등을통해분석했다.그리고1900년대‘취미’는전통적용법으로사용되기도했으나,개화기적문명관과서구어(일본)번역어의영향을받으면서확장,전위,변용되는역동성을드러냄을논리적으로밝혀내고있다.

근대공연문화의장에서근대적‘취미’를향유하는문화주체가어떤식으로상상되고계몽ㆍ교육되었는지를연구해…
이책에서는‘취미’가구체적으로발화되기시작하면서현실적으로가치를보증받고효과를발휘하는근대극장을중심으로살펴보고있다.개화기의극장공연은당대계몽주의자들과여론의전면적비판을받았다.전통연희의봉건적구습과악폐가비난의대상이되었고,국권상실의위급한정세에사치와유흥을조장한다는풍속의문제가대두되었다.하지만1907년이후사설극장과원각사의공연물,신파극등이연극개량담론과풍속담론의공격을우회하는방식으로새로운연극의미덕을내걸었다.“民智啓發上의大趣味”,“관람자의취미(趣味)를돕는”것,“취미(趣味)와실익(實益)”이그것이었다.음부탕자(淫婦蕩子)로비난받던관객들은‘진보한세인’,‘고상한’관객으로불렸고,일본연극이모범으로설정되었다.애국계몽기에민족주의적언론매체와개화지식인들의계몽담론안에서지속적으로비판받았던연극의사회적위상과관객의위상이1910년을전후하여미묘하게변하기시작한것이다.그안에서새롭게발화된개념이바로‘취미(趣味)’였다.그리고1900년대각종매체의‘취미’가근대적지식과앎,문명을향한계몽의차원에서강조되었던것처럼,연극의‘취미’역시‘개량’의징표이자근대적‘신문화’가가진가치로내세워지고있는상황을살펴볼수있다.

일본은조선인들을정치적인장에서배제하고조선을취미화하고조선인을취미의주체로허명해…일본제국주의의식민통치전략이결합된근대대중문화
이책『한국근대극장예술과취미담론』은1910년대가되면‘극장가기’,‘연극구경하기’라는“새로운문화실천이관객에게취미를부여하고관객의취미를함양하는행위로의미화하였다”고말한다.연극관객들의경험을지각하고판단하는용어로‘취미(趣味)’가활용된것.그러나한편으론『신문계』와경성에서발간된일본어잡지『조선』,『조선급만주』를통해일본제국이식민지조선을‘취미화(趣味化)’하려는정책을펴고있었음도밝혀냈다.조선을미화(美化)하고경성에각종공공적(公共的)취미오락기관을설비하고자했던것이,재경(在京)일본인을위한문화행정이면서제국의지방으로포섭된경성을통치하려는식민전략이었다는것인데,이는한마디로‘취미’가일제의식민지지배기술로활용되고있었다말할수있다.
특히저자는“사사화(私事化)된영역이라할‘감각’이나‘개성’으로서의취미가일상을규정하는하나의제도로정착하는데는,학교교육의영향력이컸다”고말한다.≪수신(修身)≫교과서는‘취미’를교육내용에포함시켰고,학생의‘취미’는학적부(學籍簿)와같은공적기록안에학생개인의이력과특징을표상하는항목으로규정되었다.교육제도와결합하며교과과정을통해교육된‘취미’가공식적인가치를인정받은것이라말할수있다.도회(都會)의관람문화와근대적교육을경험한개인은취미를통해서자신을드러내고,사교생활을유지할수있는등‘취미’야말로개인의인격과품성,정신적능력의표상이라는새로운가치관아래취미는모든인간관계의기준이되었다.연애와결혼의조건으로취미가내세워졌고,개인이자신의정체성을표명하는수단으로취미가거론되었다.1920년대사회에서‘취미’라는문화적실천이결혼과사교의기준이되면서문화자본으로서의위상을획득하고있음을,당시세태담론을통해확인할수있다.

‘취미’는‘근대적개인’의존재감과정체성을구축하는데중요한하나의표상이다
한일합병과3ㆍ1운동의실패라는역사적사건을경유하면서근대국민국가형성이라는근대적기획에실패한한국인은,‘국가’안에서‘개인’으로자기-정립하는것이불가능할수밖에없었다.때문에개인성의구축은비정치적인부문,일상의장으로축소되었다.전(前)시기인개화기의‘개인’담론은반드시국가와사회를전제로한개인이었다.그러나1910년대이후식민지조선인은국민(國民)이아닌제국의신민(臣民)인한에서‘개인’으로주체화될수있었다.한편일본은조선을취미화(趣味化)하고식민지인들을취미의주체로허명(虛名)했다.제국의취미를훈련시키고교육했으며,공통취미를소유한자와그렇지않은자들을구별했다.당시의지식인과엘리트들이‘문학’과‘예술’의장에서내면세계로침잠함으로써근대적개인성을구축할수있었다면,다수의민중들은일상에서상품소비와대중문화를향유함으로써타인과구별되는개인성과정체성을획득할수있었다.그것이가장용이하고현실적으로가능한방식이었다.이렇게의식적ㆍ무의식적영향관계안에서대중들이문화-주체(culturalsubject)로형성된데는근대자본주의의대중문화가근저에자리잡고있었다.그리고거기에는일본제국주의의식민통치전략이결합되었다.

‘극장’이라는공간에관객으로호명된근대조선인
다시말해『한국근대극장예술과취미담론』이이렇게근대공연문화의장에서근대적‘취미’를향유하는문화주체가어떤식으로상상되고계몽,교육되었는지를보여준것은결국비정치적일상의영역에서근대‘개인’이구성되는맥락을살펴보았다고할수있다.이는근대적개인,즉근대주체가구성되는과정을해명하는것이기도한것이다.‘극장’공간안에서관객으로호명(呼名)된20세기전반기의한국인들은,‘문명인(文明人)’이라는시대적정체성과동시에‘신민’이라는정치적정체성,그리고‘(개인)관객’이라는문화적ㆍ심미적정체성을형성해갔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