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봉형 시인의 첫 시집입니다. “어쩌다가 도둑이 되었나요” 표제가 시사하듯 그의 시들은 현실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러나 그의 시 세계는 비관만이 아닙니다.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새순처럼 여리지만 함께 키워갈 수 있는 새로운 세계, 가능한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시세계 시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세계가 거대한 시장, 거대한 공장, 거대한 전쟁터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시인은 시장과 공장, 그리고 병영화된 사회 질서가 다중의 벽을 형성하며 끝내 세계를 추상적으로 변질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공동체가 붕괴되고 가치의 원천인 노동이 부정되며 ‘돈’ 때문에 생명들이 수없이 비명횡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부속품처럼 예속된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다. 시인은 이 상황에 맞서 “질문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어쩌다가 도둑이 되었나요”나 “나는 어떤 물을 마시는가?”처럼 갖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일종의 풍자적 기법으로서 자본주의 사회를 공격하는 것인데, 이 공격은 간접적이지만 매우 사납고 신랄하고 또 철저하다. 결국 노동자들의 이상 세계를,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제시하는 것이다.
추천의 글 전태일문학상 수상작인 『비명―마이크로칩 공장』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무한 성장과 무한 경쟁과 무(無)한 노조를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 조건들을 구체적으로 비판한 이봉형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두 가지의 특징을 심화시키고 있다. 한 가지는 작품의 제재들이 마이크로칩 공장을 넘어 아내를 비롯한 가족과 이웃에까지 확대했다는 점이며, 다른 한 가지는 제재들에 대한 거리 조정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시인의 작품들은 생산 현장을 넘어 구조조정으로 인해 더욱 열악해진 노동자들의 생활 현장까지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비정규직과 파견법과 스트레스와 만성질환과 독촉장을 받는 노동자들의 삶을 관념에 치우치지 않고 그려낸 것이다. “아버지는 유령인가요/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왜 한 번도 얼굴을 뵌 적이 없는지요”(『아버지는 어쩌다가 도둑이 되었나요』)라고 주눅 들지 않고 맞서고 있는 것이 그 모습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수동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또 막연하게 개선될 것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세력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숲’까지 사랑하는 이봉형 시인의 등장으로 한국의 노동시는 한층 더 새로운 여울 소리를 내며 도도하게 흐르게 되었다. -맹문재(시인, 안양대 교수)
어쩌다가 도둑이 되었나요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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