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출간작으로『가무내연가』등이있다.
작가의말
발문|이은희
삶의근원,화양리가무내197
1부염원
염원(念願)15
외로움에대하여19
그래그럴수있어24
다시지금은31
뒷모습35
모든것은때가있다40
비움과채움47
살방51
2부가무내연가
단장57
둥치64
가무내연가71
연필78
맏이82
그곳에살고싶다88
사진92
산다는것98
선산에서102
자리106
3부하이힐싣은코끼리
기이한세상113
매운맛117
밥이보약이다122
선입견128
쉼132
시월136
오해와이해140
하이힐신은코끼리146
4부우화를꿈꾸다
우화(羽化)를꿈꾸다155
호159
말(言)164
슈룹169
삶이그림이되다173
빗방울177
속내181
아름다운훈수185
품바189
터193
책속에서
<염원(念願)>
“한가지만빌어야해요.그것이염원이에요”
생각지도못했던말이다.녀석의대답에다음말을이어가지못하고행동을지켜본다.아이의행동과말이아이답지않다.돌탑쌓는모습을지켜보노라니아래로는넓적한돌을놓고위로는작은돌을얹어야한다는이치도깨우친듯하다.아이의말과행동이어른스러워한참을지켜보는중이다.
사람의욕심은끝이없다.더불어인간의염원도끝이없다.인간을가장사랑하신다는그분들이계시는절에서도교회에서도성당에서도별반다르지않으리라.부모의기도는한결같이가족을향한염원이리라.절집주변에는불자들아니불자가아니더라도오고가는사람들이쌓아올린수많은돌탑과마주한다.돌탑을쌓는이유는자신이염원하는것이이루어지도록도와달라는표현이아니라.어찌저리도염원이많은지돌탑은끝도없이이어진다.아이는배포좋게대웅전앞뜨락에그자리를잡은것이다.대단한녀석이다.돌탑장소로절집마당을택한것도돌을주워나르는발걸음도보통의아이들과사뭇다르다.몸짓에서깊은불심마저느껴진다.과연아이의‘하나만빌어야염원’은무엇이며더불어,나의진정한‘염원은무엇일까.’라는생각을한다.
나는절집예법을깊이알지못한다.처음법당을찾은날도,지금도별반다르지않다.나로서는감당하기버거운일이벌어졌던날처음법당을찾은기억이난다.아니이전에도절집은종종찾았으리라.불심이있어서가아닌관광객으로또는어머니를따라찾은기억이전부이다.하지만,간절함에스스로법당을찾아몸을조아린것은그날이처음이다.절집예절은고사하고절을어찌올려야하는지도몰랐던때이다.촛불도,향도올리지않고엎드려기도하던그날처럼나의염원이간절했던적이있었던가.그때이후로무엇을얻도록,이루어지도록기도하지않는다.아니할수가없다.더많은것을염원하면,지금의이작은평안함마저사라질것같은불안감에빠진다.
어찌살아간들그날만못하랴.그래서일까.나의기도는언제나‘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가전부이다.나에게하나만빌어야할염원은그날의새벽그염원이지않았으랴.그것이면충분하다.하지만,내가미처깨닫지못한내안에도사린욕심많은염원을들킨듯아이의말에돌탑이되어자리를뜨지못하고지켜본다.
젊은부부가법당에서마당으로내려선다.걸음의방향으로보아꼬마의부모님이리라.아이가그들의품으로달려가안긴다.그들과눈인사하고말을건넨다.‘부처님은불당이아닌마당에계셨어요.’했더니무슨말이냐는듯두눈이커진다.그들에게녀석이했던말을들려주니빙그레웃는다.부모를보니아이의품성이어디서왔는지알듯싶다.
대웅전처마에달린풍경이바람에흔들리며맑은소리를낸다.아마도부처님은꼬마의염원을들어주지않을수없었으리라.어느작가의문장처럼이세상에더이상‘빌것이없는날들이이어지기’를염원(念願)하며천천히절집을나선다.
<가무내연가>
내가자라온공간이사라지고있다.코흘리개아이의성장과햇볕에까맣게그을린부모님의삶도기억속에만존재할뿐.모든것이잊히리라.동그란문고리에지문처럼남은허리굽은할머니의흔적도사라지리라.대문을밀고불어오던소슬바람도흙벽을넘어돌아오지않는다.세월이흘러사람의흔적이없는집은머물던주인의허리처럼굽어기울어지고있다.
주인이떠난집은사람의온기가느껴지지않는다.그집에더는머물자손도없다.작은산촌의역사를기억하는사람들이가무내에얼마나더머물수있을까.마을에는일손을도울젊은이도없다.큰아버지가마을의유일한남성인데당신도이제가무내에더는머물수없단다.병이깊어요양원으로모신다는사촌의말이아득하게들린다.
가무내는지독한몸살감기를앓는중이다.도시에서내려온낯선이들이빈집을기웃거린다.몇곳은이미집을허물고멀끔한새집이들어섰다.최근자주듣던‘세컨하우스(휴식의집)’란명목으로지어진집인가보다.그집주인은휴일에만내려와잠시머물다자신들이있던자리로되돌아간다.그러니이웃과의소통할시간이없다.대부분은집대문에단단히자물쇠가채워지고가뭄에콩나듯겨우문이열린다.
집은제역할을다하지못하고있다.집이란함께머물며어울려살아야하는장소이다.그래야집에머무는이들의향기를품지않으랴.대궐같은집일지라도대문이열린날보다닫힌날이많은집.과연주인이그리도원했던‘힐링’을줄수있을까.가무내의변화가안타깝기만하다.예전가무내의정겹고따스한풍경이그리움이아닌현재에존재하기를소망한다.
오늘도마음은가무내로향한다.미원삼거리에서성당을끼고돌면좁은플라타너스가로수길이이어진다.그길을따라삼십여분을더달린다.사방이얕은동산에둘러싸인조그마한마을,앞으로는시냇물이흐르는조용한산촌이다.지금도무더운여름철이되면,도시의소음과더위에지친사람들이종종찾아드는곳이다.
가무내를현천이라고도부른다.둥글고납작한검은색돌이많아그리불렀다고한다.깊은개울바닥에검은돌이그대로보일정도로개울은맑았다.유년시절친구들과물속에서돌을주워오는놀이를즐겼다.넓적한돌하나를주워개울깊은곳으로던지고는그것을찾아오는놀이를하였으니,물이얼마나맑았는지가늠이되리라.지금의강변은많이변했다.검은빛을내며깊고넓게흐르던개울의모습이아니다.무분별한골재채취가원인이리라.어느날부터냇가이곳저곳에서자갈과모래를퍼나르는트럭들이부산스러웠다.이제강변은아이들이놀수없는공간으로변했다.유년시절친구들과밤낮으로뛰어놀던놀이터는자취도없이사라졌다.골목어귀까지왁자지껄하던풍경이눈앞에선하지만,수풀만무성하다.
산천의풍경은이미봄이다.희끄무레한무채색옷을벗고산능선은핑크빛으로단장중이다.하지만,가무내의들녘에는예전처럼못자리나비닐하우스등은보이지않는다.일손이부족한탓도있지만,오일장에서어떤묘목이든튼실하고씨알좋은것을손쉽게구할수있기에힘들여키우지않는다.큰아버지댁도새싹을키우던비닐하우스가보이지않는다.곧가무내를떠나리라는사촌의말대로떠날준비를하는것이리라.하지만,큰아버지의생각은다른것일까.
당신은오늘도집앞텃밭을일구고있다.평생일구던땅이묵정밭으로변하는것은볼수없다는몸짓이신지,아니면이곳을떠나기싫다는무언의항변인지는알수없다.큰아버지는텃밭에고구마모종을심으신단다.당신이떠나면,누가그밭을일구고가꾸랴.그런사실을알고도모르는척하시는지는알수없다.
용고새너머로정을나누던시절은아니다.마을에는열린대문보다닫힌대문이더많다.대문이열린집도자식은떠나고나이든노인들뿐이다.그들이가무내에얼마나더머물수있으랴.남은노인들마저떠나는날,산촌의집은침묵의열쇠가채워지리라.아니도시의누군가가휴일에이용하고자대문에더큼직한자물쇠를채울수도있으리라.
내가살던집도이제주인이없다.성장하여형제가떠나고부모님도떠난후큰오빠는집을처분한다.오랫동안덩그러니주인없는신세였으나다행히십여년전도시에서생활하던할머니가새로운주인이되었다.집에온기가드는가싶었지만,올해초서울할머니도병환으로세상을떠났다고한다.집은다시주인을잃고자물쇠가채워진다.어머니가애지중지하던우물가불도화도수국도저홀로외로이꽃을피우리라.그리생각하니알수없는서러움이밀려온다.
가무내의옛풍경이눈에선하다.하지만기억속젊은이들은도시로떠나고노인들은생을달리한다.인디언은‘한명의노인이죽으면도서관하나가사라지는것’과같다고하지않았던가.가무내를지키고있는저분들이떠나면,마을의역사를기억하고말해줄분이더는없으리라.가슴이먹먹하다.큰아버지는한번도가무내를떠나생활한적이없다.당신은남은생도가무내에서머물러살고싶으리라.하지만,어쩔수없는생에이끌려고향을떠나는그심정을나는감히짐작만할뿐알길이없다.당신은지금껏이어오던일상을한순간에멈출수없었듯,남은생도의지대로흐름의길을바꿀수는없으리라.골목을훑고불어오는바람이볼을스친다.아직가시지않은찬기운을품고있다.
다시가볍게외투를걸치고가무내로향한다.산촌의시간은나의삶이자그뿌리의시작이다.가무내의역사와그곳사람들의삶을글로나마담아내고싶다.산촌에함께머물렀던동네사람과현존하는어르신들과앞으로살아갈이들도‘글집’에담아두고싶다.글집에서는가무내가사라지지않고큰아버지와어르신들이마을을떠나야할일도없다.또한,작물이홀로씨알을키울일도없으니좋으리라.하지만,지금의현실도가무내의역사이자생인걸어찌부정하랴.흙담을끼고골목길을천천히걷는다.돌틈사이에핀노란민들레꽃이나의상념과다르게봄바람에사정없이하늘거린다.
<맏이>
비는그칠줄모른다.오히려빗살이점점거세진다.어머니는가슴이답답하다고방문을열어두란다.당신은간신히일어나앉아장대같이내리는비를하염없이바라본다.그시선은마당을지나대문밖을서성인다.‘네언니는언제온다니’엄마는이른아침부터채근하듯언니를찾는다.나는‘조금전버스를탔으니한시간정도면도착할거야’라고말해주고어머니의마른몸을조심스레받쳐자리에눕힌다.
전화기너머들려오는언니의목소리가떨리고있다.터미널에서곧떠나는버스를타고출발한단다.언니는어린조카둘을데리고셋째를임신한중이다.언니의상황은어머니를병간호할수없는처지이다.하지만,병원과산촌을오가며어머니를간병중이다.당신은몸상태가점점나빠져물을마시기조차힘겨워진다.급기야언니는형제들집을돌며냉장고에얼려둔얼음을모아병원을오가곤했다.요즘같으면편의점에서사기라도했을것을그도수월치않던시절이다.깨끗한거즈에얼음을말아당신의입에물려준다.당신은그제야조금씩녹아흐르는물로겨우목마름을해결한다.다른자식들은직장을다닌다는핑계로그모든것은맏딸인언니의몫이된다.
엄마가다시애타게언니를찾는다.언니는어려서부터몸이약해성장한후에도집을떠나생활한기간이짧다.결혼전까지는부모님과생활했고결혼후에도자연스레친정의산림살이를살핀다.경제력이넉넉해서가아니다.다른자식들이경제활동으로요란스레효도흉내를낸다면,언니는부모님이남들에게누추하게보이지않도록소리없이챙긴다.부모님의속옷이나양말이구멍나고헤어진것을살펴챙겨두는것도늘언니이다.그것을생색내지도않았으며부모님도당연하다여겼으리라.나또한,그런모습을맏이로서당연한일이라여긴듯하다.
세상에당연한일이어디있으랴.애정없는마음에는행동이따르지않는다.그날어머니의모습에많은뜻이담겼음을짐작한다.큰딸에게매순간고마운마음을표현못한것은그만큼다른자식보다가깝고편한존재라여긴마음이리라.아니,맏이는당신이말하지않은속마음을알고있으리라여긴것이아니랴.당신이먼여행을떠나던그날만큼은고마운맏이에게그마음을표현하고안아주고싶은마음이었으리라.더불어당신에게도가장두려운시간이었을그순간에자식이며친구같고때론보호자였던언니의넓은품이그리웠으리라.버스를몇번이나갈아타고와야만하는거리를꽤부리지않고오가던딸이다.맏이가보란듯이잘살기를바란것도당신의소망이었으리라.하지만,자식의삶이부모의소원대로된다던가.맏이의고단한삶을모른채한것도당신이자식을향한최소한의예의라고여기셨으리라.
어머니의얼굴이한결편안해보인다.모든것을내려놓으신듯하나,여전히언니만은애타게찾는다.언니가버스에서내려허둥지둥달려대문을들어선다.그토록애타게딸을기다리던엄마도촌각을다투며달려온언니도말이없다.둘은서로를조용히품에안은채이별을한다.어머니가떠나시는그시각새벽부터내리던소낙비가잦아들고있다.아버지는조용히마루로나가앞산만바라본다.그날의기억이선명한까닭은어머니와의슬픈이별때문만은아니다.어머니와의이별보다가슴아팠을그일을막내는잊지못한다.
말보다날카로운비수가어디있으랴.당신에게한모질었던말이소멸하지않고날카로운비수가되어나의가슴을옥죈다.당신의흔들리는눈빛과표정이잊히지않는다.어머니를간호하느라지친당신은막내가왔으니잠시숨을돌릴수있었으리라.다소안심하고벽에기대어감기는눈을애써참는당신에게칼보다날카롭고화살보다뾰족한말살을쏜다.당신의삶에서가장힘겨운시간을보내고있을아버지에게‘지금잠이오세요’라니,그고약함은당신과나만이알고있으리라.그한마디가당신을무너지게한것은아닐까싶어숨이막힌다.잊은듯하면떠오르고잊으려할수록더욱선명해진다.비가내리는날이면,화살보다날카로운말살이옷을적시고나의가슴에사정없이날아와꽂힌다.그탓이리라.한동안고향집을찾지못한다.
부모님산소에들러옛집을찾는다.집은오랫동안사람이살지않은탓에해가지날수록무너지고본래의모습을잃어간다.새주인이본채를이용하지않은탓에흙집은형체를잃고스러지고있다.마당이,마루와뜰팡도이리작았던가.어머니가언니의품에안겨주무시듯떠난모습도,빗살이쏟아지는풍경을초점없는눈으로바라보던아버지의모습도,어제인듯선명한데어디에서도그흔적을찾을수없다.
마루에뽀얀먼지를털고앉는다.마당과대문을지나멀리개울에시선이머문다.유년시절지게에나무를가득메고내려오는아버지를용케도알아보고개울로내달음치던기억이선명하다.순간알수없는감정이밀려온다.세상이무너지는듯참담했을당신에게어찌그런말을하였을까요.그날의빗소리도차마숨겨주지못했던불효를용서하소서.당신의가시는길목청껏울지못한연유를이제야알았습니다.당신이떠나신뒤에야당신의마음을돌아봅니다.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