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

청어

$13.00
Description
정명숙의 『청어』는 크게 4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

정명숙

출간작으로『청어』등이있다.

목차

작가의말

1부익숙해지기
익숙해지기
차가운길
키스
눈물
저녁6시와7시사이
친정엄마
특별한여행
평범함을위하여
황홀한고백

2부선녀와나무꾼
라온의시간은누가훔쳐갔을까
선녀와나무꾼
모정
물뱀의세월
산에대한기억
에스프레소가간절한날
봄나물
사랑하는이유
밥만먹고가지요

3부소멸하는것들에대한위로
소멸하는것들에대한위로
스물다섯시간동안
어미

연인
연필로쓰세요
내남편,딸남편
외가
원초적인색에빠지다
유년의뜰
이발사의다리

4부감자
청어
감자
국이식지않을거리
꽃보다꽃게
오빠는잘있단다
늙어서보자
당신을차단했습니다

독한여자
둠벙
뒤로가는밥상
바람으로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청어>

발걸음을멈추었다.얼마만인가.불빛에반짝이는청어의등살이단단하다.생을보존시켜주던날카로운가시를살속에감추고옆으로누운몸가짐이조신하다.
한때는몸값비싼어느여인과비교되는영광을누린주걱턱이다.돌출된아래턱을바라보고있으면우스꽝스러워가시가많아주의해야할생선이란걸잊고만만하게여기게된다.담홍색에다소푸른빛을띠고있는몸빛은싱싱해보이고무엇보다둥근비늘이잘벗겨져손질하기좋다.
날씨가추워야어물전좌판에올라오는청어다.어획량이줄어시장보다는대형상점어물전에서나만날수있는귀한몸이되었다.고등어나꽁치보다지방이많아감칠맛이좋다.눈에띄면망설이지않고산다.어종으로분류되는것들의숨겨진가시가밥상앞에서나를긴장시키지만,청어는더욱신경쓰이는어종이다.세심하게살을분리해도작은가시가목에걸리면고통으로인해밥먹는일을중단해야한다.스스로빠지거나빼내지않으면평범한일상마저흔들린다.
값싸고맛있어서울의가난한선비들이잘먹는고기라하여명물기략名物機略에비유어肥儒漁로표기했다는청어에굵은소금을발라구웠다.기름을바르지않아도노란기름이배어나와코끝에맴도는냄새가식욕을당긴다.
약속이라도한듯밥상앞에앉은식구들의눈이내게로향한다.접시위에놓인몸을해체했다.커다란알이들어있다.알밴청어는이름을바꿔구구대라불러야한다.척추를드러내면잔뼈가그대로남는다.균형잡힌뼈의무늬가촘촘하다.느긋한사람이면잔뼈를꼭꼭씹어먹겠지만대부분그러질못하니일일이가시를발라내야한다.성가신작업이지만험난한세상사에상처받는일도많을터,집안에서까지생선가시에목을내주게할수는없지않은가.
일을마치고돌아온식구들이함께밥을먹을때,직장에서또는사업장에서있었던일을털어놓는다.하루도순탄하게지나가는날이없는것같다.제몸의가시를세워상대를곤란하게만들었다는소리를들으면대화가건조해지기시작하고상처가나서들어오면감춰져있던내안의가시가슬그머니일어선다.세상은청어의몸속가시보다많은가시밭길이다.험한길을가자면만만하게보이면우습게본다.그래선지사람도저마다의가시를세우지않던가.
가시를좋아하는사람은없을것이다.아무리작은가시라도손끝에박히면온몸의신경줄이곤두선다.생선가시를발라내면서피해가는방법을터득하지만작정하고가시를세우는사람은피하고싶다고피해지는게아니다.내게도여러개의가시는있으나숨기고잘보여주지않는다.하지만말의가시를시도때도없이쏘는사람을만나면고슴도치처럼온몸의가시를보란듯이세우고경계한다.살기어렵다고억세진가시를저리세우는구나,하다가도자꾸만말의가시가독고마리로달라붙어상처가되는걸어쩌지못한다.그럴때마다상대와똑같이하지말아야지하면서마음결을눕히려노력하지만쉽지만은않다.그냥넘어가도될일에예민하게반응하고화살처럼말의가시를날렸던일이한두번인가.
청어가놓인접시가비어간다.저렇게많은가시를속에넣고청어의등살은단단해졌나보다.

<익숙해지기>

십년만에하는열다섯번째의이사다.구정명절이지나자마자도심의끝에서또다른끝인,산골에서산골로거처를옮겼다.지인들은나이들었으니편리한아파트에서살지불편하게주택으로가느냐고한다.
아파트에서살아보니편리함보다는불편한일이많았다.식구끼리만살아도늘조용해야하고한밤중에제사를지내거나가족모임이라도있으면죄인처럼아래위층의눈치를봐야했다.산골에서는내멋에겨워도남의눈치볼일없어그리편할수가없다.
같은지명안에서도자리를옮기면낯설다.주민들과는정식으로인사도나누지못했다.익숙하지않은곳에서는잘나서지못하는성격탓도있으나꼬리를담그고있는역병으로스스럼없이얼굴을마주하기엔서로가조심스러워선뜻나서지못하고있다.
새집으로오면서좋은마음도있지만,걱정도앞섰다.이번에는제대로활착할수있을까.언제쯤이나주변환경과익숙해질수있을까.나무나꽃도자리를옮겨심으면누렇게떠서몸살을앓는데쉽사리사람을사귀지못하는나도별반다르지않아자꾸으슬으슬춥다.봄이라지만여백의산과들판은아직도가난해서더낯설고서먹하다.
이사란사는곳을다른곳으로옮기는것을가리키는사회학용어다.누구나살다보면여러가지이유로이사를하지만내가했던열네번의이사는집에대한좋은조건을따지기전에밥을벌기위한수단이었다.풍수지리를본다거나손없는날을가리지도않았다.마치유목민들이먹을것을쉽게구할수있는강과초지를따라이동하듯그렇게이사를했다.한곳에정착하지못하고수시로떠나야하니주변사람들과의관계도깊어질수가없었다.어느곳에선일년도살지못했고어느동네에선오년을살았어도집앞마트나세탁소주인의얼굴만겨우익히고떠나기도했다.한데이번에는상황이다르다.잠시만살자고들어간산골집에서오래살았다.십년이넘는세월을한가족처럼챙겨주고다독여주던정든사람들을떠나왔다.고향처럼자꾸마음이향하는곳이다.무엇보다데려올수없었던들고양이들의안부가몹시걱정된다.아침이면밥달라고현관앞에모여있던애처로운눈망울들,외출했다돌아오는차소리만들려도우르르몰려오던열두마리의고양이들이우편물을가지러갔을때한마리도보이지않아가슴이내려앉기도했다.어느집에서든거둘것이니걱정하지말라는위로의말에도그들과의인연도여기까지라고생각하니우울함이몸을덮는다.생명이있는것들과이별하는일은이토록무겁다.
한때는새로운풍경과공간을찾아그안으로들어가는일에거부감을느꼈었다.그러나시간이지나면좀더나은삶의길을선택할수있어서위로되었다.어찌보면내삶은끊임없이낯선곳을찾아누군가를만나익숙해지며엘도라도를꿈꾸었는지도모른다.
수시로거처를옮기면서많은인연을맺었다.깊은인연은오래도록변함없이이어지고스치는인연은무심해진다.떠나와서돌아보면내가살다온곳에서만난소소한인연도모두의미가있었고나를여물게했다.이젠내생의마지막정착지로정한이곳에새로운의미를부여하고익숙해져야한다.세월이흐르면떠나온것에대한추억은시나브로희미해질것이므로.

<선녀와나무꾼>

이사하면서책을정리했다.오래되어누렇게변했거나아이들이어렸을적에읽었던전래동화와월간잡지를분류해재활용품으로내놓았다.그러다눈에띈것이‘선녀와나무꾼’이다.설화를바탕으로지어진책의제목은작가마다다르다.‘나무꾼과선녀’가있고‘선녀와나무꾼’이있다.
다아는동화지만다시읽는다.기가차다.작금의시대에이런나무꾼은악랄한범죄자다.손가락을꼽을정도로죄명이많다.날개옷을훔쳤으니절도죄,목욕하는것을몰래봤으니성희롱에다성폭력범이다.목숨을살려준대가로깊고맑은눈을반짝이며범죄를사전모의한사슴도용서할수없는공범자다.
나무꾼은제욕심채우자고하늘나라선녀님을금강산깊은산속에감금해놓고아이까지낳게했다.천상의선녀가족을비탄에빠트리고선녀의삶을망가뜨린파렴치범이다.낯선곳에서가족과떨어져생판모르는인간남자와살면서아이낳고산다는게얼마나고통스러운일인지나무꾼은정말몰랐던것일까.
일방적인관심과사랑은상대를병들게한다.돌아갈길이보이지않는선녀는날개옷을잃어버렸다는죄책감에자기삶은포기하고아이만품어안았을터다.날개옷을찾았을때남편에대한미련없이아이만데리고살던곳으로날아간선녀의모정만큼은인간세계보다강해서감동적이다.주위를둘러봐도아이가걸림돌이된다싶으면인정사정볼것없이버리고방치하는어미들이좀많은가.하지만나무꾼의다음행동에또다시화가난다.홀어머니를산속에버려두고처자식에게가겠다고두레박을타고올라간다.염치없이처가덕을보고있는불효자가아닌가.그래도양심은있었는지홀로있는어머니를잠시보고가려천마를타고내려온다.노모를홀로두고떠났던아들을위해팥죽을쑤어먹이고싶은어머니의눈물겨운모정,뜨거운죽을천마위에서급하게먹다흘려놀란말이나무꾼을떨어뜨리고하늘로날아가버린다.그후,나무꾼은수탉이되어새벽마다하늘을쳐다보며울었다고하니범죄자에다불효막심한그에게하늘에서벌을내린것이분명하다.
나무꾼은날개옷을감추고선녀를볼모로잡아강제로아내로삼았다.여자의약점을잡고부부로사는동안나무꾼은행복했을까.주위를둘러보면현대판나무꾼이왜이리많은지모르겠다.
이웃마을에사는허리굽은할머니가어린아이둘을키우고있다.며느리가삼년전,친정으로가버렸다.부모에게조금이라도도움을주고싶어남자가준오백만원은친정에주고한국농촌으로시집온심청이처럼효성깊은캄보디아의어린여자다.친정아버지보다나이가많은늙은남편은적은땅에농사를짓고농한기에는가끔공사장을기웃거리나빈날은술에젖어지내는사람이다.친정보다는나을거라는생각으로타국에왔지만,말도통하지않는한국농촌의가난한남자와사는일이결코쉬운일은아니었을것이다.남편의폭언과폭력에도틈틈이딸기하우스에서일하고일당받아살림을꾸려가더니더이상못견디겠는지아이도두고혼자만캄보디아로떠났다.
설화속에서선녀의날개옷을훔친나무꾼도,유행처럼외국의어린여자를돈주고사온늙은남자도결국아내는떠나고혼자가되었다.여자의마음은열지못하고약점만쥐고있었으니당연한일이겠으나,사랑없이시작된두여자가받은상처는무엇으로위로가될까.
버리려던‘선녀와나무꾼’을다시책장에꽂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