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세티아

포인세티아

$10.15
Description
『포인세티아』는 저자 김영애의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

김영애

저자:김영애
저자김영애는서울에서출생하여이화여중고,이화여대간호대학,서울대학병원내과병동과정신과병동근무,미국캘리포니아로이주,남가주간호협회총무,미국코리아타운피오피코도서관후원회회장역임
『미주크리스챤』(소설)가작(1976),『수필시대』(2008),『수필세계』(2013)로등단하여『서울문학』오늘의작가상(2012),경희해외동포문학상(2012),무원문학상수필부문금상(2012),불교문학상(2012),한국수필해외수필문학상(2014),국제펜한국본부해외작가상(2016),크리스챤문학상(2020)등을수상하였다.
작품집
수필집≪한생각물결되어출렁일때≫(2012)
≪사각지대의앵무새≫(2014)
≪렌트인생≫(2016)
≪몸연꽃피우기≫(2023)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틈>

여린풀이바람결에하늘거린다.한줌햇살도발디디기힘든좁은시멘트틈이다.하지만그곳은풀이자신을드러낼수있는유일한공간이다.틈은좁지만연한풀에게는온세상인듯싶다.촉촉한비와착한바람이지나는그곳은풀의자궁같은곳인지도모른다.빌딩과빌딩사이는틈으로이어졌다.틈은내것과네것사이의경계이자비움의공간이다.완벽한법칙과논리끝의빈공간이어서인지,세상물결에서뒤처진영혼들이잠시쉬었다가는곳이기도하다.사람들은세상시선을피해담배를피우기도하고걸터앉아지친영혼을추스르기도한다.
틈은쉼표다.빡빡한물질문명사이를흐르는바람처럼,틈은숨막힌빌딩숲사이에서메마른영혼을적셔주고순간의여유를찾게하는곳이다.하늘끝자락과건물이맞닿은틈에는욕망의간판들이줄을잇는다.그것은갈증난인간의온갖욕구를채워줄듯첨단예술로온몸을장식하고줄지어선환상의표식들이다.아트와문화가합작되어만들어진간판들은하늘과건물의틈새에서인간욕구에길잡이를하느라각기다른이름표들을달고서있다.
그런가하면한쪽공중의틈새에서는파격적인동영상자막이질주를하고있다.타박상을입은어제의세상과삐꺽대는오늘의뉴스가공중의틈새를타고따끈따끈하게세상에전달된다.거들떠보지않던하늘한쪽의틈새는세상과만남의장이되고소통의길로열리는것이다.
하루가기울어거대한빌딩에문명의불빛이사라지면,빌딩의틈은세상을등진인간들의삶의터전으로변신한다.첨단문명에뒤진지극히동물적인모습의걸인들에게하룻밤의숙소로바뀐다.하루의비즈니스가끝나누군가에게는쓸모없는공간이,다른누군가에는간절한삶의터전이되기도하는것이다.
동물이하로변신한인간은온갖질서와원칙으로맞춰진현대문명을조롱하는지도모른다.아니면자본주의가만든부의불공평분배를지적하고있는지도알수없다.거창한도시를지배하는철저한논리와질서이지만,구멍난작은틈으로도시는힘겹게숨을쉬고그좁은틈속에서사람들은나름대로의삶을표현하고있다.
나는틈에서생겨났다.말없는아버지와말많은어머니의틈새에서태어났다.남과북이격돌하는6?25사변의틈새에서,육남매의틈서리에서태어난나.부산영도다리의틈바구니에서나왔다고형제들사이에서놀림을받았지만,그틈새에서나는용케도살아남았다.
어쩌면틈은나의근원이고나를둘러싼세상인지도모른다.틈이있기에생겨났고틈새사이에서숨을쉬며살고있는것도같다.나에게틈은누구도침범할수없는경계이자때묻지않은공간이며새로운영혼으로끊임없이변신할수있는나만의세계이다.산골짜기에수만개틈인샘물이만나바다를이루듯,수많은틈과틈사이에서나의삶은창조되었고진화되었다.
화산구는화산머리에생긴틈새이다.그틈에서는대자연이토하는불의심장인마그마가거대하게뿜어진다.화산의틈새는내부를폭발적으로분출시켜압력을중화시키는중요한분출구다.마찬가지로내가슴속에꿈틀대는용암덩어리도입이라는틈을통해매순간언어로분출되는듯싶다.틈서리인입은보이지않는뜨거운내부를유출시켜끓어오르는응어리들을해소시키는중요한분출구다.
그런가하면사람과사람사이,마음과마음사이에도틈이있는것같다.그것은인격체사이로난보이지않는길이다.틈은‘벌어져사이가난자리’이다.큰둑이작은틈새가벌어져무너지듯,사람사이도사소한틈의오해와갈등으로좋은관계가무너질수있다.사람사이의회복하기힘든틈은상실과갈등을의미하기도한다.
하지만절친한사람사이의틈은넓을수록좋은듯싶다.틈새가클수록관계가싱그러워지는것은,틈은인격체와의경계사이에존재하는여유이기때문이다.넉넉한돌틈사이의샘물이더활기차듯,너와나사이에도때로는알아도모르는듯넘어가는여유가존재하기때문이다.
사랑하는사이의풍요로운틈새에는신선한바람과아름다운꽃이철따라피어날것이다.하지만사랑이라는이름으로너와나의경계가사라진다면여유라는틈은질식해버릴것이다.사람과사람사이의관계는틈에서시작되어틈으로끝나는것같다.
생각해보면틈은시간이기도하다.잠깐남는여유시간이다.틈새는일과일사이로가능성을향해에너지를모으는시간이다.사람들은틈을통해삶의즐거움을맛보며때때로그의미를찾는다.찰나의틈이지만영원을느낄수만있다면,틈은영원으로통한다.그러기에틈의길이는찰나이기도하고무한대이기도하다.
좁은공간에서온세상으로변하기도하는틈은,공간과시간과영혼에까지잠입하며삶의여기저기에서그실체를드러냈다.틈은삶에여유를주는원동력이며휴식이며활력이며희망이다.

<포인세티아>

산뜻한봄이다.뒷마당의빨간포인세티아가눈부신햇빛아래여왕처럼반짝인다.그모습을보니그것도기존형식을깨는포스트모더니즘추세를따르려는지제철인겨울이한참지난봄인데도한창이다.
포인세티아는새침한여인같다.곧게뻗은몸매에립스틱이라도바른듯빨간꽃잎이매혹적이다.화려한빛으로허밍버드를유혹하려는것일까.안개처럼퍼진침묵속에붉디붉은꽃잎이도발적이기까지하다.
자세히보니포인세티아는꽃잎변두리를과감히잘라모난각으로끝을마무리했다.모난돌이정맞는다고했지만,나름대로의개성으로그것또한독특한한삶의얼굴같다.깎고깎이어둥글지않으면어떠한가.둥근돌은구르나모난돌은박힌다하여,원만한사람은재물을못지켜도모나고야무진사람은재물을지킨다하지않았던가.아마도포인세티아는자기의삶조차그끝을단순하고솔직한직선으로마무리하여,세상에서쓰임새있게남으려자신의일부를모나게잘라냈는지도모른다.
어찌보면포인세티아의잎들은하이힐끝같이뾰족하다.아마도꽃은자신을돋보이게하려고잎끝을오므려하이힐을신은것처럼한것은아닐까.그리보니그것은빼뚤빼뚤걸어간빨간발자국흔적을가지마다매달아놓았다.영혼을꼿꼿이세우고흐트러지지않아야또박또박걷게되는굽높은구두.진땅마른땅을가려하이힐을신은듯포인세티아가조심스레내딛는삶의걸음걸이는인생을안전히지켜줄듯도싶다.
우리가꽃잎으로알고있는포인세티아의붉은부분은사실꽃잎이아니라포엽이다.포엽은꽃을보호하는보호잎이다.실제의꽃은포엽가운데에있는작은돌기들이다.돌기에는암술,수술을품은실제의꽃이초라하게자리잡고있다.포엽은어미가자식을감싸듯돌기전부를보듬어안았다.그리고작고초라한꽃을위해자신의몸을발갛게물들였다.꽃의꽃가루받이를위해벌새를강한빛으로유혹하기위해서다.자식을향한어미의본능같이,진품꽃의빈약함을가슴으로품어준따뜻한모성이다.그리보면포인세티아가슴에는이브의원초적모성이소복이담긴것같다.
하지만포인세티아는이율배반적이기도하다.까칠하게찬겨울에꽃을피우면서도따뜻한해를좋아한다.변덕스런여인의마음같이따뜻함을사랑하지만차가움을즐긴다.그것은정반대의것에매료되는난해한여인의마음을닮았다.
포인세티아는핏빛이다.밖으로드러난얼굴이핏빛인것으로보아몸안에는붉은정맥과동맥그리고가는모세혈관같은것들이있는게분명하다.그속으로붉은피가돌고그혈맥들안에는뜨거운열정과차가운이성이용해된채순환되고있을것같다.
그러고보면열정의포인세티아는붉은혈액속의찬이성과더운정열들의뜨거운몸싸움끝에만들어졌는지도모른다.아니면피같이진실하고강렬한삶이기에,그색깔조차진한핏빛이되었을듯도싶다.그래서인가,포인세티아는꽃말조차‘제마음은불타오르고있어요.’혹은‘살아있음이행복’또는‘축복’이라고기록되어있다.
포인세티아의빨간포엽은자궁모양처럼길쭉하다.따뜻한계절새순부위의줄기를잘라땅에꽂으면뿌리를내리는이유는온줄기가자궁이기때문이리라.여인을닮은포인세티아에는자신의유전인자를전달해줄자궁이숨쉬고있나보다.역사는생명이탄생되는자궁에서시작되지않았는가.생각해보면포인세티아는캘린더의마지막달에피어한해의끝을장식하기도하고,새롭게탄생되는새생명으로인해처음을시사하기도한다.그러기에포인세티아에는시작과마지막이함께공존한다.
자세히들여다보면포인세티아의붉은포엽들은닭의볏을닮았다.그래서일까포인세티아옆에서면붉은볏의닭들이자신의속내를소리내어호소하는것같다.숨겨진약자들의안타까운사연이담긴닭의울부짖음.그것은억울한‘미투의고발’을연상케만든다.‘갑’의횡포에힘없이당하는‘을’의성폭력과성추행같은사연은아닐까.그래서인가,포인세티아곁에있으면혼탁한세상을고발하는닭들의울음소리가마구쏟아져나오는듯싶다.새날이올것을미리알려주는닭의울음소리,역사는새벽닭의울음소리로시작되지않았던가.붉은볏의닭들이바른말로크게소리내면세상은새롭게열리게되는것일까.
이브의영혼이살아꿈틀대는포인세티아는,빨간매니큐어와현란한립스틱그리고뾰족구두로세상을유혹한다.하지만그안에는생명이탄생되는자궁과따뜻한모성이숨쉬고있다.한없이연약하지만꺾을수없는부드러움으로,세상의거친바람속을당당하게걸어가는이브포인세티아의매력에오늘아침흠뻑빠진다.

<골든타임>

금쪽같은순간이다.냉정한초침과분침은한치의오차도없이수많은찰나를넘나들었다.911구급대가올때까지숨가쁘게흘러간여덟시간.강물이넘쳐댐이범람하듯안타까운구명시간이한계점을넘어서자이모의뇌혈관은결국터져버렸다.이모는의료진의노력에도불구하고안타깝게반신불수가되었다.
얼마나부지런한이모였던가.만석이나되던땅을빈틈없이갈무리하던분이셨다.꺼져가던목숨을겨우이은이모는재활치료를시작했다.한발짝내디딜때마다근육이삐걱댔다.거미줄같이퍼진전신의신경세포에경련이일어나면서쓰나미같은통증을온몸에퍼뜨리기시작한다.게다가통증을이겨내지못한몸은식은땀으로전신을뒤덮으며정신을혼미하게흔들어댄다.과거의골든타임이분초를다툴만큼소중하였듯,질통으로가득찬현재의골든타임역시절대적이지않은가.
골든타임은생사의갈림길에선환자가목숨을구제받을수있는최적의황금시간을뜻한다.한정된시간안에적절한의료조치를받지않으면환자는원상대로회복하기가힘들다.심장마비때는사분에서육분,뇌졸중발병환자의경우세시간이다.이모의골든타임은하늘이내려준구원의황금줄같이회생할수있는마지막기회였다.
상처받기쉬운여인의영혼같은아보카도를보면서골든타임은사람의목숨에서뿐아니라과일에도존재한다는생각이든다.처음에는마음을닫아온몸을딱딱히굳히는가싶더니,신선함의골든타임이넘어가자전신에반점같은멍을여기저기남기다영혼과육신이순식간에무너져버린다.아보카도의골든타임은며칠이었다.
그런가하면요리하는데도골든타임은적용되는듯싶다.며칠전저녁식사때였다.접시한쪽에구운생선을놓고,그옆으로는빠른불에살짝데친아삭한초록빛로메인배추를곁들일생각이었다.하지만잠깐의열기에도불구하고,상추는시골외삼촌이끓이던칙칙한소죽같이몸을가누지못한채흉측한우거지로변해버렸다.격에맞지않은우거지를신선한생선과함께먹다보니,그것을조리할때팬에서빨리꺼내지못한것이후회스러웠다.눈깜짝할사이에상추의골든타임이흘러갈줄이야어찌알았으랴.
골든타임은세상의모든일에몸을나툰다.세상사람들의패션감각을들먹여최적의시간에거리를유행의물결로출렁거리게하는패션디자이너에,뜨거운불의골든타임에맞춰재빠른몸놀림으로먹거리를맛깔난요리로탄생시키는요리사에,최적의타이밍에맞추어주식을사거나팔아이익을챙기는주식브로커에자신을노출하며그존재를과시한다.그런가하면두영혼이소통하고공명하여서로의혼에울림을주는달콤한사랑에서조차도골든타임은신비한예술을창조하고있지않은가.보이지않지만,세상모든것에는골든타임이존재하고있어,삶은그것에이끌려가고있다는생각이든다.
삶의가운데에서중요한한박자,일의과정에서결정적인힘을들이는한순간을‘타이밍’이라고부른다.어쩌면타이밍은골든타임의가장적절한순간을의미하는것인지도모른다.“인생은한방이다.”라는말은아마도골든타임을순간포착해치명적인한방으로일을성공시킨경우가아닐까.
나의골든타임은언제일까.생각해보니현재바로이순간인것같다.내일도,어제도아닌,오늘지금이순간이다.하지만눈깜짝할찰나에흘러가버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