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고 알았네

꽃 피고 알았네

$13.00
저자

조영의

저자:조영의
1996년『창조문학』작품「창」으로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문학창작지원금을받아
수필집『뒤로걷는여자』출간
이후『꼬리로말하다』『네가준말』『꽃피고알았네』
공저로스토리텔링『우리동네숨겨진이야기』가있다.
허균문학상,충북수필문학상을받았으며
중부매일‘아침뜨락’필진,
독서논술강사다.

목차

1부공존하는마음(12편)
무당벌레잠11
그래도얄밉다16
단호하게19
함께살수없나요22
지금은공사중26
농사짓기,첫걸음30
꽃피고알았네34
너도꽃이야38
이름값한다42
아슬아슬한생존46
꽃이피어서아프다50
향기속으로54

2부처음이라당황했어(11편)
웃음을드렸습니다61
뿌리에게65
안녕하신지요69
친정엄마흉보기72
참,어쩌나76
독獨하게살아가기79
숨은방찾기83
사진의언어86
느리게살아보니보이네요90
합성어문맹인94
가족인데98

3부소소하지만빛나는하루(15편)
빨래방에서103
목소리107
60이되고보니111
사프란이란이름114
아침에만나는언어118
나이는손이말해준다122
아프다는말126
해마다쓰는이력서130
다시읽는어린왕자134
시어머니137
거기까지만141
식탁의자145
동백꽃보러갔더니149
연필153
졸작의변명157

4부오래된것은사라지고기억만남는다(11편)
단골집163
얻을것이있어야온다167
빈방171
소중한것은오래되어도빛난다176
여행은사람의마음을본다180
공원에서184
나이보다이름이먼저188
반지192
부부196
2등에게박수를200
의자204

작가의말208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무당벌레잠>

거실창방충망에몸을붙이고겨울잠자는무당벌레를본다.자신의몸을흰실로감싸고바람이불면바람세기만큼흔들리고비가내리면그대로젖는다.가족중나말고는아무도무당벌레가그곳에있다는것을모른다.나도우연히붉은빛에검은동그란무늬를가진무당벌레를보지않았다면거무스름하게변한작은존재를관심갖지않았다.
내가먹을채소는친환경으로농사짓겠다는생각으로주말농장을분양받았다.건강한채소를얻기위해서는밭도휴경이필요하다.감자를캐고땅은잠시묵정밭이되었다.
무더위가물러서지않는8월의중순쯤밭을다시일구었다.거름과비료도넉넉히주었다.독한거름냄새가사라진후꽃모종심듯배추를심었다.손가락크기의작고여린배추를가지런히심고보니밭이환하다.
햇볕은여전히뜨거웠다.그늘도없는밭에남겨진여린배추를보며돌아서는데첫아이가초등학교에입학하던날이스쳤다.대견하면서도불안하고,걱정되면서도흐뭇하여몇번을돌아보고는했는데배추에서도설레는마음이느껴졌다.건강하게자란내아이처럼배추도뿌리의힘을믿어보기로했다.
튼실한배추는잎을만져보면안다.초록빛이쏟아질듯윤기흐르는배춧잎을쓰다듬으면솜털같은가시에닿는까슬까슬한통증이느껴진다.하루쯤깎지않은수염의마찰에서오는전율같은아찔한이끌림은거부할수없는가을배추와의교감이다.
그런데나만배추를좋아한것은아니었나보다.배춧잎사이사이에서씨앗같은똥을보았다.벌레가있으니잘찾아보라고한다.아니면약을주면된다고도한다.약이란말에신경이예민해졌다.약을쳐서잘키우는것보다소신껏키우고싶었다.그래도신경이쓰여서벌레를찾았지만보이지않았다.
일주일이지났다.토실하게잘자란배추에진딧물이보였다.잎속은새까맣다.다른배추에도옮길까싶어뽑았다.빈자리흔적이무척넓어보였다.
“진딧물은약아니고는이길방법이없어.배추먹으려면당장약뿌려요.”
근처에서일하던할아버지가오셨다.그리고성큼성큼밭고랑을옮겨다니면서배춧잎깊이에서벌레를쏙쏙찾아내어짓이기듯밟아버렸다.
“안뎌,안뎌,에구….”혼잣말인듯아니면나에게하는말인지성내면서배추를하나하나만져본다.투박하고마디가굵은구릿빛손이지날때마다한마리벌레가잡혔다.진딧물도손등으로묻어올랐다.할아버지빠른손놀림에가장잘자란배추몇포기가뽑혔다.배추는순간쓰레기로버려졌고추억하는시간은괴로웠다.그다음에도왕성한진딧물에감싸인배추를또뽑았다.
김장하려고남아있는배추를뽑았다.밭에있을때는묵직해보였는데겉잎을떼어내고보니속도차지않았고신선하지도않았다.벌어진잎속에서벌레도쉽게보였다.진딧물은생각보다많았다.그래도정성들인시간때문에버릴수없었다.친환경농법으로얻은진딧물낀배추와,농약사용의간극을생각하며씻는데무당벌레한마리가보였다.빨간날개를웅크리고꼼짝않는무당벌레를본순간가슴이서늘했다.
가을걷이가끝난밭에무당벌레를갖다놓을수도,배춧잎속에넣어버릴수도없어난감했다.
“지금은무당벌레눈씻고봐도없어.”
할아버지말이자꾸따라왔다.근처밭에놓아줄까,생각은수없이좋은방법을찾으면서도손은베란다방충망을열었다.그리고정말미안하지만어쩔수없음을합리화하며버렸다.그것만이내집에서밖으로보내는최선의방법이라생각했고자연으로돌아가꼭살아남기를바랐다.
버려진무당벌레는거실방충망까지무슨생각하며왔을까.허공과도같은8층에서매몰차게버린손이배춧잎을쓰다듬던그손이라는것을확인하고싶었을까.진딧물을보면서도약을뿌리지않고친환경을고집하더니,필요없어진작은생명을가볍게버리는이중성에경고라도하고싶었나.그래서밭이있는아래로내려가지않고콘크리트벽을타고거실방충망으로왔을것이다.그리고빨간색날개를납작붙여불빛같이신호를보내다가겨울잠에들었나보다.
겨울잠자는무당벌레시간은어디쯤흐르고있을까.말라버린듯검고작은무당벌레의비상하는봄을기다리는마음은불안하고미안하다.건강하게자는거지.잘견디고있는거지.무당벌레를보며혼자하는말이다.

<그래도얄밉다>

집근처소나무숲에서뻐꾸기가운다.끊어질듯이어지는소리에반가움도잠시,터전을잃은뻐꾸기때문에가슴먹먹하다.
며칠전주변의개발로숲의소나무일부를베었다.그리고한동안포클레인굉음이허공을채우더니나무를파헤친자리에젖은흙이붉게빛났다.낯설던진흙도폭염에말랐고주민들기억속에서사라진숲은잊었는데뻐꾸기는떠나지못했나보다.자신의존재를피끓는소리에담아도시하늘가득퍼트리고있다.“나,여기있어.”라는처절한외침인지,아니면곧떠날거라는건지.둥지를잃은뻐꾸기가안타깝다가도청량한뻐꾸기소리는마냥좋으니나도내마음을모르겠다.
농사짓는밭에서도뻐꾸기소리를듣는다.주변잡목이우거진숲에서운다.도라지밭풀을뽑을때뻐꾸기소리에리듬을맞추면지루하지도힘들지도않다.그곳에서오래도록울어주기를속으로바란다.가끔비둘기도운다.둘의화음은자연이주는선물이다.다양한새들이다함께합창할때도있다.소리가높아서하늘로솟는가하면저음으로잠깐우는새소리는땅으로잠긴다.날아다니는듯가깝게와닿다가도이내멀어지는새소리에노동의힘겨움을잊는다.새가있어고마웠다.
그러나행복한마음은오래가지않았다.양쪽숲을사이에두고있는밭에콩을심었다.마을어른들이가르쳐준콩심는시기는새들이알을품고있을때다.새들이알을품는것에만집중하여밭에심은콩에는관심두지않는단다.그래도여유있게심으라고한다.새들에게도몇알은나눠주고,남은것으로잘키워서사람이먹는것이농사란다.그렇게함께살아가는거란다.그러면서새들의피해를막는여러가지방안도알려주어귀담아들었다.
콩심고여러날,싹이나왔는데중간중간이텅비었다.새가먹은것이다.다먹지않았을거니까기다리면나온다고한다.속상했지만새소리를생각하며잊었다.며칠후에는나온콩싹이모두잘렸다.비가온뒤라발자국이남았다.훑고지나간자리마다고라니발자국이선명했다.봄에도고추모를먹어낭패를본경험이있기에흥분하자콩뿌리가뽑히지않았으면싹은다시나온다며또기다리라고하신다.“다,그런겨.”느긋하게기다리면된다는말이처음농사짓는나로서는이해하기어려운숙제다.
낮에는아름다운소리로마음을흔들어놓고는몰래날아와훔쳐먹는새도,순하고착한눈빛으로농작물의어린싹을성찬으로먹은고라니도더불어살아가야하는소중한생명체다.그러나아직분별없고여유가없는나는생각할수록속상하다.도시개발로서식지를빼앗고무분별한퇴치용품으로동물들을위협하는것은사람이지만,사람이정성들여키우는것을빼앗듯먹는것은동물이다.
자연속에있을때는반가운손님이지만,소중한내것을자주빼앗겨화가치미는것은솔직한마음이다.정말얄밉다.

<단호하게>

김장하려고무를뽑고보니생각했던것보다훨씬작다.씨를뿌릴때부터얻고싶은것은무가아니라무청이었다.그래서자라는그대로두기로했다.싹이나오면마냥신기했고잘자라주는것이고마워서화초보듯즐겼다.내행동을옆밭에서농사짓는할머니는무척못마땅해하셨다.만날때마다쓴소리다.
씨를뿌릴때부터지켜봤는데성의가없다고했다.소중한씨앗을막뿌려서씨앗을낭비했고,한군데서여러개싹이나왔는데도솎아내지않아먹을것을버렸다는이유다.무농사를지으려면단호하게하나만남겨놓고뽑아줘야제대로자란단다.쳐다만보지말고성장이늦은것은지금이라도뽑아내라고재촉하셨다.
시기에맞춰비료와영양제도줘야하고,가끔씩무를심은주변흙도긁어줘야한다며호미로우리무밭을긁어주셨다.내가얼마나답답했으면그러실까,이해는되지만내생각과다른할머니가조금씩불편했다.
얼마후옆밭에일이생겼다.우리밭무잎에벌레가갉아먹은흔적이곳곳에보이는데도약을뿌리지않았다.내손으로건강한채소를얻으리라는신념을버리고싶지않았다.속상했지만지켜보기로했다.그런데진딧물까지생겼다.진딧물과벌레는옆밭으로옮겼고피해를막기위해농약을뿌리면서우리밭까지뿌렸다.농약이얼마남지않아어쩔수없었다고말씀하셨지만진심이느껴지지않았다.같은곳에서같은농작물을지으려면견해차이를존중해줘야하는것은이론이다.현실은특히,땅에서얻는농작물이돈으로연결되는입장에서보면내행동은피해를주는게으름이다.
농약은해충만죽이는것이아니다.자세히들여다보면달팽이도살고무잎사이에무당벌레도보인다.짝짓기하는방아깨비도있고거미도산다.이슬에젖은날개를말리는잠자리며,개미와작은곤충들의움직임도보인다.곤충들은무밭이집이고놀이터고휴식의장소일지도모른다.서로어울려평화롭게살아가는터에생명을위협하는약으로덮어놓았으니곤충의아우성이들리는듯하여한동안무밭에가지않았다.
나에게가을무밭은고향같은장소다.내발소리에놀란곤충들이달아날까봐조심스러워지는걸음만큼마음도가벼웠다.무잎의까슬한촉감,채소풋냄새만맡아도행복했다.
그런데무청을쓰려고무를뽑는순간행복했던지난시간이후회됐다.무가작은만큼무청도실하지않아시래기로말리기에는적합하지않았다.친환경으로농작물을키우는마음은있는그대로의애정이아니라,좋은환경을만들어주는일이란것을느끼면서호미질하던할머니손이떠올랐다.할머니도처음부터농약을쓰지는않았을거라생각된다.손톱끝이뭉툭해지고호미가닳도록풀과해충을잡아도사라지지않는고된노동에서잠시쉬는일은농약이었을것이다.할머니를이해하기로했다.
살면서내안의감성테두리에마음을가둬놓고단호하지못했던일들을생각해본다.나자신으로부터부모와자식과의관계,교사와학생의거리,사회안전불감증과사회적거리두기의불신,각종이슈가되는사건들속으로들어가보면단호하지못했던순간이있다.후회하면서도반복되는습관단호함,단호하게행동할수있는용기를무농사를짓고다시배운다.

<함께살수없나요>

개구리소리가요란하다.어제부터세찬비가내리더니말라있던집앞농수로에물이고였나보다.울음소리에서힘이느껴진다.오랜만에듣는개구리소리가반가워창문을활짝열고즐거운비명같은소리에집중한다.
계절은이미여름에가깝다.비온뒤라바람은한밤중인데도끈끈하고습하다.살갗으로닿는느낌이무거운데개구리는오랜만에활기를찾았다.쉬지도않고운다.어떻게왔을까.개구리가있는곳은농수로인데농사짓던땅에아파트가들어서면서기능을잃었다.
한때는드넓은논으로힘차게물이흘렀을농수로에는물이끼로흔적이남아있을뿐생활쓰레기가쌓이는공간으로방치된지오래다.물이고인곳에는악취도심할텐데인간이더럽혀놓고외면한곳에터전을잡은개구리가반가우면서도미안하다.그래서더울었으리.어쩌면,별안간세찬빗물에휩쓸려낯선환경으로밀려왔을지도모른다.두려움에혼자울다가근처에같은울음소리를듣고화답으로소리를높였으리라.서로를확인하며안심하는소리가밤이깊을수록두려움의소리로도들린다.
더럽혀진장소,언제그칠지모르는빗소리,점점작아지는개구리울음소리에마음은농수로에머문다.인간들의도시개발로인해터전을빼앗긴동물이개구리만있을까.
근처에백로서식지가있다.오래전부터송절동야산에터를잡고살고있어서충청북도는‘충북의자연환경명소100선’으로지정했다.그러나근처에‘문암생태공원’이조성되면서지금의좁은터로밀려났고,이후테크노폴리스단지가개발되면서그터마저조금씩변하고있지만,백로의위태로운날갯짓과‘송절동백로서식지’안내판은아무도눈여겨보지않는다.
이른아침무심천을향해백로들이날아간다.테크노폴리스단지에아파트가생기기전까지는여유로운날갯짓이었다.창공은무한하고들녘은안전했으며길은자유로웠다.아파트가들어서면서백로가날아다니는길은좁아졌다.고층아파트사이를넘나드는위험을감당해야하고사람들이끊임없이쏟아내는냄새와소음도견뎌야했다.자유와터전을사람에게빼앗기고도로변자투리숲으로내몰린백로의울음소리는애절하다.
크고날카롭다.외침같은소리가익숙하지않아놀라기도하지만창가에서날갯짓의무희를보는나는,하루중가장아름다운시간이다.백로를가까이서보기는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