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수필가 81 선하다

우리시대 수필가 81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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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수필가 모임 수필문우회의 창립 44년을 맞이하여 회원 81명이 참여하여 자신이 선정한 대표작 1편과 작가메모를 곁들여 작품집을 펴냈다.
1부 회상의 파문(김태길, 손봉호, 반숙자, 백임현 등14명)
2부 나비의 깊은 잠(허세욱, 허창옥, 정태헌, 이경은 등 14명)
3부 바람의 발자국(고봉진, 홍혜랑 권일주, 최순희 등 14명)
4부 이리 아름답고 무용한(엄정식, 이정림, 이동렬, 문혜영 등 13명)
5부 우주의 소리가 들린다(구양근, 홍억선, 김광, 신현복 등 13명)
6부 활자와 더불어(유혜자, 염정임, 김영수, 이춘희 등 13명)

우리가 수필의 모임을 갖고 수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뜻은, 서로 배우는 가운데 한국수필의 수준이 올라가고, 올라간 수준의 운김 속에서 개인의 향상도 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있다. 다행히 그 기대가 부분적으로라도 달성된다면, 그 문화사적 의의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가까이서 멀리서≫(수필문우회수필집 1884 범양사)

수필문우회 김태길(友松 金泰吉) 창립회장님이 세 번째 수필문우회 수필집 머리말에서 월례 합평회에 대한 기대를 말씀하셨다. ‘글 좋고 사람 좋고’의 회원들, 이미 문명(文名)이 높은 이들도 합평회에서 가차 없이 혹평을 받아 글쓰기를 계속해야 하나 회의하며 문우회를 탈퇴하기도 하였다. 우송 선생님께선 이를 감안해서인지 평소 합평회 말미에서 감정 상하지 않을 표현으로 신중하면서 진취적인 평설로 회원들을 탄복하게 하셨다. 앞의 머리말에서도 강렬한 단어나 주장을 펼치지 않고, 우리나라 동인 모임에서 처음 실행해 온 합평회를 개인 수준의 향상과 문화사적 수준의 향상에까지 의의를 두셨다.
수필문우회의 창립이 우리 현대수필 중흥 운동 10년(1981년)을 맞는 때여서 문단에서도 수필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수필문우회의 구성원들이 국내 인문학의 석학들과 중견 수필가들이어서 수필계에서도 선망하는 동인 모임이었다. 창립 당시 30명 가까웠던 회원은 현재 생존자 세 분(노환)을 제외하곤 전부 타계하셨고, 끝에서 두 번째로 젊은이였던 제가 회장 임기를 마치면서 회원들의 대표작 선집을 출간하려고 한다. 1986년 이후 전임 회장님들께서 수필문우회 수필집을 발행하지 않은 것은 1985년에 창간된 『수필공원』과 1995년에 창간된 『계간수필』지에 회원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출판해 주겠다고 청해오는 출판사가 없을 정도로 출판계의 불황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창립 당시보다는 합평회가 평이한 수준으로 약화된 감은 없지 않지만 회원들의 대표작과 역대 회장님들의 대표작을 출간하여 수필문우회의 존재감을 환기하고 싶다.
문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멀어진 지 오래이지만 회원 한 분 한 분이 우송 선생님의 말씀처럼 ‘올라간 수준의 운김 속에서’ 각자의 수준 향상을 서로 짚어보고 튼실한 나무로 자라 청청한 숲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연과 사물에 대한 인식에 눈뜨려는 젊은 층에게 꿈과 동경하는 곳에 이르는 통로가 되고 육체나 정신의 성장기를 지나 메마르고 쇠퇴한 감성기에 이른 이들에게도 생생한 기억을 되살려주고 삶의 의욕을 북돋워 주는 작품들로 다가가고 싶다.

2025.8.30.
회장 유혜자
편집위원 : 조한숙 이경은 김광 한혜경
저자

수필문우회

저자:수필문우회

목차

책머리에……4

1부회상의파문

김태길복덕방있는거리-12
손봉호“너여기있을줄알았어!”-15
반숙자이슬의집-19
백임현문우회시절-23
김애자사마귀의자존심-28
최원현고샅-33
박영자내안의목소리-38
조한숙초록빛은유-42
김종완무지를읽다-49
임완숙꿈의해석-57
박양근서있는자를위하여-63
민명자가면과거울의이중주-67
장금식물때-72
한혜경회상의파문-77

2부나비의깊은잠

허세욱그묏빛에그기와-82
허창옥남아있는날들에나는-86
정태헌간이역그여정-90
이경은언어를쓰다듬다-94
홍미숙고향무지개-98
김선화꽃무늬이불을지고-103
박종숙영혼의강가에서-108
이정희누구였을까?-113
오세윤묵정밭의망문석望文石-117
심규호꿈의재구성-121
김이경도요를보내며-126
김녹희골목길풍경-132
임덕기떠나간자개농-137
정훈모나비의깊은잠-142

3부바람의발자국

고봉진니체와자유-148
홍혜랑인간은늦된동물인가-151
권일주반칙이다-155
최순희수필바다를건널때-159
이난호시침끝을잘랐다-164
정부영보리수-168
배채진소멸의예감,붓꽃앞에서-173
이경수빨래-178
구민정나비,날다-181
조성원수와숫자-186
이종화가면무도회-191
송장길아름다운포옹-194
김도식별일없냐-199
류외순바람의발자국-204

4부이리아름답고무용한

엄정식아버지의회상-210
이정림크리스마스이브-214
이동렬풍금소리-218
문혜영집채하나허무는시간-221
이은희촉매-225
서숙저푸른들에나의아름다운황금소를누이리니-229
박기옥애도-233
탁현수아버지의퍼즐-237
김민숙어릿광대-241
이용옥아이의꽃성-244
정경순어머니의정담-249
홍정희사랑받고오다-253
정윤규이리아름답고무용한-257

5부우주의소리가들린다

구양근홀로선광야-264
홍억선참-269
김광치한유희癡漢遊?-272
신현복이역異域의노을-276
박태선안해-280
권태숙어디까지가좋을까-285
서정숙자라는집-289
권민정얼굴을마주보고-293
한향순인연의끈-299
김명규장맛과가운家運-303
김용순봄으로오시는당신-309
구무숙고양이민박집-313
박순희우주의소리가들린다-318

6부활자와더불어

유혜자후문後門-324
염정임회전문-329
김영수시계의숨소리가들려-332
이춘희희망이라는이정표-336
박현정황금빛저녁의꿈-340
김윤희명태가만든세상-344
임채욱춘한노건春寒老健-348
유석희청도를지나며-352
안윤자하베무스파팜-355
손진숙향기에잠기다-359
고선윤공지영작가에게봉순언니가있었다면나에게는순이언니가있었다!-363
박찬정목걸이-367
이선우활자와더불어-371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문밖큰길가에수양버들한그루가비스듬히서있다.수십세의연륜(年輪)으로슬픈얘기들을기억하는굵은줄기는가죽이벗겨지고알맹이까지썩어달아나반쪽만이남았다.
그래도젊은가지가지에는새로운잎이피어서가냘픈그늘을던진다.

수양버들중허리에때묻은헝겊으로된간판한장이걸렸다.그러나그것밖에는아무런비품도없었다.
나무때기의자에는할아버지두분이걸터앉았다.두분이다.당목고의적삼을입으셨다.한분은거무튀튀한파나마모자를앞이올라가게쓰셨고,또한분은하이얀맥고모자를눌러쓰셨다.

파나마모자는긴담뱃대를들었고풍덩품이넓은조끼를입으셨다.그러나담뱃대에연기는나지않고조끼단추는끼워지지않았다.
맥고모자는바른손에부채를쥐시고왼편에단장을기대놓으였다.그러나부채질은하지않으신다.두분이다흰고무신을신고대님을매셨다.
두분은그림속의인물처럼그저묵묵히앉아계신다.

저녁햇볕을받고버드나무그늘이길게길게뻗기시작하자,이곳한산한거리에도오가는사람들의수요가늘어난다.
열사람이열가지의차림과열가지의걸음걸이로지나간다.그들의가지가지모습에는각자의성격ㆍ직업그리고계급을밝히는도장이혹은진하게혹은흐리게찍혔다.기쁨과슬픔이같은길을나란히걸어간다.

희망과근심이열십十자를그리고잠깐소매를스치더니천천히남과북으로사라진다.
흰블라우스와감색스커트로대조를꾸민제복(制服)에두벌이무엇을소곤대면서골목길로접어든다.까만바탕에은빛테를두른승용차한대가먼지를피우며소리소리올려닥친다.뒤칸에탄회색양복의목덜미가언저리를누른다.

땀찬런닝셔츠에검정바지를걸친신문배달의바쁜다리가기계처럼움직인다.
어느연못의금잉어처럼살이그득하게오른중년부인한사람이바다같이파아란파라솔을이고서하느작하느작마냥비탈길을올라간다.발걸음옮길적마다엷은하늘색치마폭사이로백설같은속옷자락이보일락말락숨바꼭질한다.

미색바탕에수박색과밤색무늬를굵직하게놓은원피스하나가놔먹인말처럼미끈하게자란젊은몸집을뾰족구두한켤레에의탁하고음악에라도맞추는듯펩시있게걸어온다.그의왼손을들어서밉지않게생긴이마로흘러내리는머리카락을쓸어올린다.우유같은손이로되반지는보이지않는다.

여체(女體)의우아한하반신의곡선이더위와서늘함이섞인해거름의공기를부드럽게어루만진다.있는듯만듯인색한바람이수양버들가지를약간흔들었다.
팔다남은돗자리와발(簾)로짐이오늘의장사를마치고숙소로돌아간다.“이노릇도이문이없어못해먹겠당게요.이거나떨이로팔곤낼이면고향으로농사지으러가렵니다.이거참헐값이래유.”하고일주일전에우리집에서삼천환의매상고를올린바로그행상(行商)같다.터덜터덜빈아이스케이크통을맨십대소년이아무소리없이비탈길을내려온다.
복덕방영감님들은아직도그자리에앉아계신다.전설을지닌옛날벽화처럼.(1976)
---「복덕방있는거리,김태길」중에서

1962년부터3년간내가다녔던웨스트민스터신학교는작은학교였다.지금은건물도많아졌고학생과교수수도늘었지만그때는학생이고작100여명,교수는열분이었다.짓궂은학생하나가교수10명의단체사진을게시판에붙여놓고는그밑에다“FBI가가장원하는10명(FBITenMostWanted)”라고써놓았다.지금도그렇게하는지모르지만그때는미국연방수사국(FBI)이수배중인가장악질적인범죄자10명을사진과함께미국전국방방곡곡에게시했는데그것을빗대어만든것이었다.범법자이기는커녕그교수들몇분은당시보수신학계에서는가장뛰어난학자들이었기때문에영국,호주,한국,일본등여러나라에서학생들이모여들었다.나도학문적명성때문에그학교에지원했지만지금은교수님들의강의보다는그들의겸손하고온후한인품에서받은감동이더큰기억으로남아있다.

그학교에는일년에한번씩학생들이학교를위해서봉사하는전통이있었다.평소에는조금이라도학교일을하면임금을받지만,그날만은전교생이모여서아무대가도받지않고학교구석구석을청소하고,칠을하고,잡풀을뽑는등크지않은교정을말끔히정리하는것이었다.학생들의그런학교사랑에보답이라도하듯그날에는교수사모님들이모두학교식당에출동하여전교생들에게특식을만들어대접했다.형식으로는몸으로일하는것이었지만사실은그것을구실로하여학교전가족이함께모여교제하고즐기는잔치였다.학생들에게가장인기있는음식은울리교수의사모님이굽는러시아빵이었다.그사모님은러시아귀족의딸로풍모도고상했지만그가구운빵은미국의어느가게나식당에서도맛볼수없을정도로맛있다고학생들이과장하면서군침을삼켰다.아침에모이자마자삼삼오오모여서모두그빵이야기로떠들썩했다.

9시작업시작시간이되자학생회장은우리들을여러조를편성하여조마다다른임무를부여했다.내가속한조는인도에자라는잡풀을뽑는임무를받았는데내가조장으로임명되었다.다큰신학생들이라다스스로알아서잘하기때문에조장이하는일이란기껏해야연장나누어주고거둬들이는것정도였다.교정에웅장하게서있는고목들밑으로,혹은잔디밭사이로이리저리나있는인도에는새까만박석이깔려있는데다듬지않은자연석이라돌과돌사이가벌어져있어서거기에풀이자랐다.밟혀도죽지않고버티는놈들이라여간질기지않았다.7~8명의조원이열심히뽑았지만진도가그렇게빠르지않았다.다른조들은일을거의다마치고정리할무렵에도우리조가풀을뽑아야할길은아직많이남아있었다.

그러나시간은흘러그기다리고기다리던점심시간이오고말았다.학생회장으로부터아무신호도없었는데도12시가되자마자모두우르르식당으로몰려갔다.우리조원도예외가아니었다.혹시그맛있는빵을놓칠세라풀을뽑아야할길은2,3미터남았는데모두다가버렸다.명색이조장인나는난감했다.나도“옛다모르겠다.”하고가버릴까싶기도했지만아무래도마음이꺼림직했다.어쩌면10분쯤이면다뽑을수있을것같기도해서혼자서해보기로했다.땀을뻘뻘흘리면서열심히뽑고또뽑았다.

정신없이풀을뽑고있는데무슨소리가났다.쳐다보니학생회장딕워스가다가왔다.“나너여기있을줄알았어!네가안보이기에찾아왔어.가자.식사해야지”하고는나를식당으로끌고갔다.

음식맛에별로관심이없기때문인지러시아귀족이구운빵이나에게는그렇게대단히맛있다고느껴지지않았다.다른미국친구들처럼그빵이그렇게먹고싶었다면나도풀이고조장이고다잊어버리고식당으로뛰어갔을지도모른다.음식맛에둔감한탓인지책임감이투철해서인지분명하지는않지만어쨌든나는딕워스로부터“너여기있을줄알았어!”란칭찬을듣게되었고,그것은내가평생들은모든칭찬가운데가장좋은것으로마음속에간직하고있다.후에그의추천으로나는미국의한재단으로부터장학금을받게되었고,네덜란드자유대학교에서조교가되어월급을받을때까지근2년간그돈으로생활하고공부할수있었다.

80이가깝도록오래살면서억울한욕도먹었고칭찬으로위장한아첨도받았지만마땅히먹어야할욕도더러먹었고들을만한칭찬도가끔들었다.“나를착하다하는사람은나의적이요,나를악하다하는사람은나의스승”(道吾善者,是吾賊.道吾惡者是吾師)이란명구처럼내가제대로된인물이었더라면칭찬보다는욕이나를위대하게만들었을것이다.그러나나는그런위인도못되고그렇게생산적인욕도듣지못했다.평생을두고반성할비난도받지않았지만두고두고나를우쭐하게만들칭찬도기억하지못한다.다만딕워스의그“나너여기있을줄알았어!”라는지금도잘잊혀지지않는다.그때나의행동에대한칭찬으로는좀과분하지만그것이지금껏가장좋은칭찬으로기억된다는사실이나에게는의미가있다.그것은내가어떤사람인가보다는어떤사람이되어야하는가를말해주기때문이다.그런칭찬은지금도듣고싶지만아직도하나의채찍으로작용하고있다.

작가메모

수필을포함한모든글은독자에게어떤면에서든지도움을줄수있어야한다고믿는다.문학작가로사람들의감성을자극하고말은아름다움을즐기도록하고싶지만나에게는그런능력이없다.그대신나의삶에일어난사건가운데되돌아볼만한가치가있는것을골라서그것에대해서이런저런방식으로반추해봄으로독자들에게조금이라도도움을줄수있도록하는것이내가수필을쓰는목적이라할수있다.내가쓴것가운데이수필이좋다는평이많아대표작으로선정했다.
---「“너여기있을줄알았어!”,손봉호」중에서

과수원소독을하고있습니다.경운기는바삐돌아가고소독대에서는소독약포말이분무합니다.가끔씩약물을젓는일을하는틈틈하늘을보고뒷산도보며한눈을팝니다.이고약한버릇때문에지난번소독때는큰호통을들었습니다.

저아래언덕배기나무를소독하는데소독줄어딘가가터졌던모양입니다.나가라는통로로는안나가고소독약은산지사방으로품어져올랐습니다.소독약을뒤집어쓰다시피한남편이경운기발동을끄라고아무리소리를쳐대도마이동풍,하늘만바라보고있더랍니다.소독대를집어던지고달려온남편은화가머리끝까지뻗쳐서소독약보다더쓴화살을쏘아대었습니다.

이여름내내이렇게지내고있습니다.왜그런지나는하늘과산이곁으로다가오는여기만오면멍청하고은밀하게내안의세계로빠져버립니다.그리고여기말고어딘가내집이따로있었을것이란생각을합니다.그리고다음생엔또어떤집에서살게될까상상도해봅니다.

비가오다개어서그런지고추잠자리가떼를지어납니다.파란하늘을배경으로상승과하강을되풀이하는잠자리의춤이근사합니다.방심한듯가볍게춤추는율동은봄바람에나부끼는꽃잎같기도하고모닥불에타오르는불티같기도합니다.

잠자리의춤을보다가내전생은춤꾼이아니었나생각합니다.5월산들바람에춤추는미루나무의잎새들을보거나오늘처럼잠자리들의춤을볼때면‘춤추어라,춤추어라’주문처럼외며내몸에도부력이생겨점점가벼워지는느낌을받습니다.나도한마리잠자리가되어여한(餘恨)없이춤을추고싶어집니다.그렇게춤을추자면먼지처럼가벼워져야할텐데내날개는지금녹이슬어있습니다.

접때는들깨모를모종하고도랑으로발을씻으러갔습니다.산골짜기에서내려오는물줄기가세지는않아도모래톱을흐르는물이맑아서흙묻은발을담그기가미안했습니다.세수하고발을씻으며어린시절개구쟁이로돌아가서혼자서물놀이를즐기고있었습니다.

그때,도랑옆의풀줄기에짱구머리를한벌레가붙어있었습니다.처음본이상한형상이라한참을들여다보는중에지나가던농부가뭘그렇게보느냐고물었습니다.그도그럴것이,나이를먹을대로먹은여자가꽁무니를하늘로치켜들고무엇인가를열심히보고있으니까요.발걸음을멈추고들여다보던농부는“잼재리여,잼재리”하고마을로내려갔습니다.

그흉하게생긴벌레가잠자리의유충이란걸확인한것은며칠후의일입니다.알에서깨어난유충은물밑바닥,모래,진흙속,물풀의틈에서수개월내지7,8년을살면서열번에서도더많이불완전변태로탈바꿈한답니다.그사실을알고부터내머릿속은윤회라는단어로가득찼습니다.

한마리의잠자리가되기위하여그토록많은탈바꿈을해야한다면오늘의나는또얼마나많은윤회를거쳐온것인가하는생각때문입니다.잠자리의유충이탈피를거듭하며그때만났던인연들은또무엇이며,오늘나와맺어진사람들은어느생에서발원한인연일까요.

어떤날은인연없이살고싶어태어나지도죽지도않게해주십사발원할때가있습니다.가족이라는인연,동기간이라는인연,서럽게하는인연,애타게하는인연,사랑함으로아픈인연의고리에서헤어나고싶습니다.그러자면나도레테의강을건너야할테지요.그강물을마시면과거를깡그리잊어먹는다는망각의강을말입니다.

이여름을아프게보냅니다.어쩔수없는사랑때문임을압니다.가까운사람들의병고와사랑하는사람들이하나둘우리곁을떠나가는아픔속에서목숨의유한성을다시한번곱씹어봅니다.시련이있을때더간절히기도해야한다고하셨지요?

다시잠자리의춤을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