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외침

조용한 외침

$16.05
Description
이 책은 〈seed, 마음에 피어나는 봄〉, 〈꽃에 찔리다〉, 〈봄 마중〉 등의 작품이 수록된 에세이집이다.
저자

김민정

청주 출신
2008년 수필 등단, 2018년 시 등단
수필집 《여백에 핀 꽃》(2018)《다시, 봄》(2020)
《내가 만난 세상》(2023)
시화집 《그리움이 피어나는 시간》(2021)
여백문학회 회장 역임
중부매일 ‘아침뜨락’ 고정필진
여백문학회, 청주문학회, 충북수필, 뒷목 문학회,
푸른솔 문학회, 충북시인협회 회원
제26회 청주문학상, 제8회 여백문학상 수상

목차

서문 12

1. 계절의 숨결
seed, 마음에 피어나는 봄 12
꽃에 찔리다 16
봄 마중 23
꿀 복숭아 한 상자 28
바람개비 33
무 시간 36
딸기 39
그해 겨울 이야기 44
백일홍 연가 48
종소리 여정 53

2. 풍경 너머 이야기
터널 58
루이봉 별곡 62
시간의 문턱에서 66
설경 69
눈부시게 물들던 날 73
센강을 무릎에 앉히다 78
6월의 단상 82
알프스 미봉(美峯)에서 86
옻빛을 담다 92
세계에서 개방된 가장 큰 감옥 96

3. 삶, 그리고 틈
진국 102
보이지 않는 것들 106
통영에서 만난 숨결 110
인생을 도둑질하는 자들 115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121
다림질 125
수필과 인간미 130
나는 작은 돛단배 134
다시, 한국의 봄을 기대하며 139
성적표 144

4. 존재의 그림자
홍운탁월(烘雲托月) 150
이끼처럼, 조용히 머무는 삶 154
운칠기삼, 그 운명과 실력 사이에서 158
Last Concert 165
흐르는 물 위에 멈춘 사연 169
나의 버킷리스트 175
맹지(盲地) 178
적의(赤衣)와 적의(敵意)의 사이 182
날벼락 186
현애살수(懸崖撒手) 191

5. 시간의 문을 열며
잠자는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198
시간의 문을 열다 205
기억의 창고에 담은 로마 208
조각가의 길 213
조각칼 219
장가계 스케치 225
탈춤 232
고라니 밥상 237
조용한 외침 242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seed,마음에피어나는봄〉

“봄방이추우면맏사위달아난다.”“봄바람에죽은노인”“봄바람에여우가눈물흘린다.”
꽃샘추위에얽힌속담들만보아도,예나지금이나봄바람이얼마나추웠는지짐작할수있다.봄의시샘도지쳤는지오늘은소리도없이온종일비가내렸다.봄비는짙게깔린황사와남은겨울의찬기운을씻어내며,대지에생기를불어넣었다.
3월,봄은약동의씨앗이다.
겨울잠에서깨어난봄은다시태어날채비를하고,비를머금은땅은이제싹을틔울준비하느라분주하다.적당히젖은흙은모종을옮겨심기에도알맞은자리를내어준다.봄은내안으로도스며들어굳었던몸을풀어주고잠들어있는영혼을흔들어깨운다.

어릴적,대청마루찬장안에는봉지마다제각각의향기와맛을지닌씨앗들이주렁주렁매달려있었다.그속엔부모님의땀방울과지나간계절이고스란히담겨있다.녹두에는아이들속을달래던약효가,붉은팥에는액운을막아내는믿음이,하얀콩에는고소한생명의맛이깃들어있었다.
선비잡이콩이라불리던그작고단단한콩에는,부모님이자식들에게걸던조용한소망이숨어있었다.그밖에도찰기장,고추,배추,골파,대파씨앗도빼곡히걸려있었다.부모님은그씨앗들을보물처럼소중히다루셨다.씨앗은단순히곡식의시작이아니었다.고향의역사였고,부모세대의이야기가깃든서사였다.한톨의종자가한되가되고,한말이되고,마침내한가마니가되기까지,
그생명이깨어나는순간,농부의기다림은결실이라는이름으로돌아왔다.내기억속가장깊은맛은가을옥수수였다.여름이끝나갈무렵이면어머니는콩밭머리에옥수수를심으셨다.바람이불면콩잎은살랑살랑흔들렸고,그곁에서옥수수는묵묵히키를키웠다.
초록잎새사이로수줍게고개를내밀던분홍빛옥수수수염은햇살을받으며보석처럼반짝였다.그수염이왜그렇게아름다웠을까.아마도,오랜기다림이깃들어있어서였을것이다.나는설렘을품고옥수수밭을드나들었다.맨살에스치는거친잎사귀조차도향긋하게느껴졌다.수염이갈색으로변할즈음,기다림은더욱간절해졌고,추석무렵이되어서야비로소속이꽉찬삶은옥수수를입에넣을수있었다.
그맛은마치밀크캔디처럼달콤하고깊고부드러웠다.
지금은그맛을느끼고싶어많은지역의옥수수를먹어보지만,그맛을찾을수가없었다.아마도그토종씨앗은이미세월속으로사라진것같다.씨앗은사는것이아니라,이어받는것이라했다.
농부는단순히농사를짓는일이아니라,누군가의시간을이어심는일이다.씨앗은단지식물을키우는출발점이아니라,기억과손길과계절이켜켜이쌓인시간의결정체다.땅과사람,그리고세월이함께엮어낸유산이다.

사람의마음도씨앗과닮았다.마음속에무엇을심느냐에따라삶의풍경도달라진다.살다보면기쁨도,상처도,질투와분노같은감정도마음속에흘러든다.그모든감정을품고살아가야하지만,그중어떤감정의싹을틔울지는결국스스로선택해야한다.
마음에심는씨앗은보이지않는다.하지만자라고,뿌리를내리고,꽃을피운다.누군가에게건넨따뜻한말한마디,양보의손짓,조용한미소하나가씨앗이되어마음한편에자리잡는다.그뿌리는언젠가행동이되어,또다른마음으로전해진다.반면,미움이나오해도씨앗이된다.무심코방치한나쁜감정은어느새마음한구석을까맣게물들인다.그래서마음을자주들여다보아야한다.잡초는뽑고,내가진심으로심고싶은감정만남겨두어야한다.
사람의말도씨앗이다.
무심코던진말한마디가누군가의마음에깊숙이박혀,오래도록뿌리를내리기도한다.따뜻한말은희망을,날선말은상처를키운다.그래서누군가에게말을건넬때,생각하게된다.이말이어떤꽃이되어그사람의마음에피어날지아니면,차가운벽에부딪혀부서진채사라질까하는망설임에저절로말수가적어질때가있다.
누군가를판단하기전한걸음물러설수있는마음,지금당장은보이지않아도언젠가열매맺을것을믿고기다릴줄아는여유를갖고자노력한다.
눈에보이지않는자리에서조용히자라는씨앗도있다.용서의씨앗,기다림의씨앗,믿음의씨앗이다.그것들은시간이지나면,눈빛이나걸음걸이,혹은침묵속에서도자라난흔적으로남는다.이것은마치오래된나무의나이테처럼조용히자란다.
내마음밭에‘이해’와‘믿음’의씨앗을심는다.이두씨앗이있다면,마음에도꽃이피고,누군가에게그늘이되어줄수있을것같다.
오늘도,이밭에햇볕을드리고,촉촉이물을주며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