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 사랑

인동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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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86년에 등단하여 원로 여성 작가의 5번째 수필집이다.
46편의 수필작품을 4부로 나누어 묶었다.
저자의 말과 최원현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곁들였다.
1. 문학이 주는 위로(12편)
2. 다시 시작하자(13편)
3. 행복 만들기(11편)
4. 주막에 앉아(10편)
저자

한동희

〈한국수필〉로 등단(1986)
(사)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사)한국문인협회 고양시 회장
제12대 한국수필작가회 회장, 미리내 수필문학회 초대회장
(사)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사)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역임
한국수필작가회 창립회원
(사)대한주부클럽연합회 여성의 집 수필반 강사
일산문학학교 수필반 강사 역임

브라질한인회(회장 신수현) 초청, 방문하여
〈브라질 한인이민역사 30주년기념 사업〉
교민 60여 명 인터뷰 취재 겸 수필 강의
(브라질 한인회관 1991~1992)
파독 간호사회 초청, 방문하여 수필 강의(2009)

현) 한국문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회원
(사)한국수필가협회 자문위원

수상
제17회 한국수필문학상(1999)
고양시 예술문화상 문학부문 (1999)
수필집 ≪사람, 그 한사람≫(1991)
≪느낌표처럼 사랑했다≫(1996)
≪소금꽃≫(2005)
≪숙제, 그리고 축제≫(2012)
≪인동초 사랑≫(2026)
6인 공저 ≪여섯 빛깔 숲으로의 초대≫(2026)
수필선집 ≪퀼트와 인생≫(2014)

목차

저자의 말 | 사랑, 회복중이다 ㆍ 4
해설 | 최원현 ㆍ 223
인동(忍冬)을 넘어 향기로 다시 피어나는 삶의 서사

1. 문학이 주는 위로
삼상사(三上思) ㆍ 10
나를 짓궂게 놀리는 운명 ㆍ 13
액세서리 ㆍ 17
해 질 녘 ㆍ 21
문학이 주는 위로 ㆍ 26
멘토에 대하여 ㆍ 30
다섯 살 즈음 ㆍ 34
존재의 의미 ㆍ 38
나의 초상화 ㆍ 42
인동초 사랑 ㆍ 46
거리의 악사 ㆍ 50
내가 받은 황금알 ㆍ 55

2. 다시 시작하자
깃발 ㆍ 60
두 번째 키스 ㆍ 67
풍경이 있는 찻집 ㆍ 73
감추기 힘든 비밀 ㆍ 78
보고 싶지만 보이지 않는 것 ㆍ 83
환상 여행 ㆍ 87
스쳐간 인연 ㆍ 93
다시 시작하자 ㆍ 98
삶의 변주곡을 찾아서 ㆍ 102
내 옆구리를 찔러 줘 ㆍ 107
두 여자 ㆍ 111
그녀 ㆍ 117
다시, 언니 ㆍ 122

3. 행복 만들기
살고 싶어요 ㆍ 130
텃밭 이야기 1 ㆍ 134
텃밭 이야기 2 ㆍ 138
텃밭 이야기 3 ㆍ 142
모촌 선생의 삶과 문학 ㆍ 146
열정과 끈기의 만년 청년 ㆍ 150
추억 속의 연가 ㆍ 154
우리들의 찬란한 시절 ㆍ 158
파도타기 ㆍ 163
지지(知止) ㆍ 167
리더십 부재 ㆍ 170

4. 주막에 앉아
주막에 앉아 ㆍ 176
손의 역사 ㆍ 179
여행 가방에 대한 소회 ㆍ 183
나에게 주고 싶은 선물 ㆍ 187
감회가 새롭다 ㆍ 191
나도 행복한 국민이 되고 싶다 ㆍ 193
정신이 아프다 ㆍ 197
마음에 작은 방울 하나 ㆍ 207
문학인으로 살아가는 즐거움 ㆍ 213
나의 수필 쓰기 ㆍ 218

출판사 서평

삼상사(三上思)
-나의 집필 공간

30여 년 전, 사촌 남동생이 대학에 입학하여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책 세일즈였다. 그때 36권에 이르는 ‘세계문학 대전집’을 주문하여 들여놓았다. 거기에는 귀에 익은 대문호의 작품들이 줄을 서서 내가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나 문고판으로 안면을 익힌 작품들이 있기는 했지만 두고두고 읽으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면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 여기며 흐뭇했다.
장정도 좋고 모처럼 큰돈 들여 구입한 책을 모셔둘 자리가 필요했다. 변변치 못한 글을 쓰면서 나만의 집필 공간을 원한다는 게 면구스러워 안방과 주방을 옮겨 다니며 글을 써 왔는데, 이참에 서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책에 둘러싸여 글을 읽고 쓰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부자가 된 듯 흡족했다.
그 후 몇 번의 이사를 하며 나의 집필 공간은 작은 방에서 가장 큰 방으로 확장되어 갔다. 서재와 연결된 베란다를 작은 쉼터로 만들어 호사를 부려보기도 했다.
책꽂이는 많은 부류의 책들로 채워져 갔다. 사서오경(四書五經)으로부터 현대수양전집(現代收養全集)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책이 나의 허기진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꽂이에서 제대로 숨도 못 쉬고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 글을 쓰려면 많이 읽고 사유하며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하는데, 나의 시선을 받아 읽힌 책보다는 임금님의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궁궐에 갇혀 사는 궁인의 신세 같은 책들이 더 많다. 그래도 그때그때 구미에 당겨 구입한 책은 미루지 않고 읽게 되는데, 한가할 때 벗하려고 미뤄두었던 고전(古典)들은 시력이 나빠지면서 장식품이 되어가니 책 안에 있는 현인군자(賢人君子)의 지혜를 고루 터득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수필을 쓰면서 S교수님의 연구실에 자주 가게 되었는데 테이블 위에 두서없이 쌓여 있는 책들이 눈에 거슬렸다. 한 번은 내가 정리를 해드리겠다고 했더니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셨다. 책과 자료들이 뒤섞여 있지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아신다고 했다. 이렇게 어수선한 집필실에서 명수필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이제 나의 서재 풍경도 교수님의 연구실을 닮아가고 있다. 여기저기 쌓여가는 책들이며 잡다한 물건들. 이곳이 집필 공간인지 쉼터인지 구분이 안 되면서 떠오르는 낱말이 있으니 삼상사( 三上思). 즉 마상(馬上), 측상(厠上), 침상(枕上)에서의 사유함이다. 수필과 사랑을 나눌 마음만 있다면, 자동차를 타고 갈 때나 측간에 앉아서나 침대에 누워서나 주제와 소재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길 수 있고, 이따금 영풍문고와 종로애(愛)서(書) ‘삼봉서랑’에 들러 필요한 책을 골라보며 작품을 구상하기도 한다. 그렇게 기억의 창고 속에 그려 넣은 것과 메모한 것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초안을 잡고 퇴고를 거듭하여 작품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천지 사방이 사유의 공간이고 집필 공간이 될 수 있으니, 영혼이 깃든 글은 잘 치장된 공간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중과 열정, 끈기와 고뇌에 있다는 것을 ‘삼상사’에서 느끼곤 한다.
(2013. 「한국수필」 11월호)



나를 짓궂게 놀리는 운명
-분실물에 관한 에피소드

‘겉에 걸친 옷만 바꿔 입어도 운명이 바뀐다.’라는 말은 소설이나 동화에서나 나오는 말일 뿐일까. 작가가 스토리 전개나 흥미 유발을 위해 지어낸 말이려니 하다가도 때깔 고운 거지가 밥도 먼저 얻어먹는 세상이고 보면 아주 현실성이 없는 말도 아닌 듯하다. 그래서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는 신분 위장이나 품격 유지를 위해 겉치장에 치중하는 습성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입은 옷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는 말을 얻어들은 후, 부쩍 50년 전의 황망하고 기막힌 두 가지 분실 사건이 되살아나 잠잠해진 가슴에 파문이 인다.

하나
내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여자들의 혼수 품목에는 네댓 벌의 한복이 들어 있었다. 나는 월급날이면 동대문 광장시장의 포목점을 돌아다니며 새색시의 꿈을 안고 한복감을 고르곤 했다.
그 당시 내 얼굴형과 어울리는 뒤통수 아래로 주먹만 한 똬리를 틀어 붙이는 고전스타일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새색시 모습이 내가 꿈꿔온 롤모델이었다. 한복감을 새로 장만할 때마다 옷감의 질과 색상을 조합해 가며 쪽머리를 한 새색시의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을 그려보았다.
결혼 날짜를 잡아놓고 그동안 장만해 온 옷감을 바느질집에 맡겼다. 그리고 약속한 날짜에 기대를 안고 설레는 마음으로 맞춤옷을 찾으러 갔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한복집 주인의 말인즉, 내가 옷감을 맡기고 나간 얼마 후 누군가 내가 맡긴 한복감을 도루 찾아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내 뒤를 쫓아와 그런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인가. 한복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혼숫감만을 노리는 전문 털이범에게 내가 걸려든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섬뜩하고 허망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누구인지 확인도 안 하고 물건을 내준 한복집 주인이 자신의 불찰을 인정하면서 자기 집에 있는 옷감으로 내 한복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 앞에 내민 옷감이 탐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마음에 드는 옷감을 찾아 나설 시간적 여유도 없어서 한복집 주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부모님 곁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결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정쩡하게 한복을 입고 찍은 신혼여행지에서의 사진을 보니, 마치 영혼은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두르고 앉아 있는 듯한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에 내가 장만한 옷감으로 한복을 지어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보았지만, 사진 속의 나는 씁쓰름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둘
첫아이가 돌을 지내고 얼마 후 집안에 도둑이 들었다. 그때 우리 가족은 남편의 직장 관계로 부산에서 살고 있었다. 이사한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그 유명한 자갈치 시장을 구경하고 싶어서 갔다가 돌아와 보니 친정아버지가 사업자금으로 내게 맡겨놓은 현금과 아이의 돌 반지와 팔찌, 그리고 나의 패물이 몽땅 없어졌는데 유독 결혼반지만 남아있었다. 결혼 전에 예비 신랑이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며 결혼 예물로 준비해 온 다이아몬드 반지로 세팅은 한국에서 했다.
그런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 반지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사파이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자세히 살펴보니 남편 될 사람이 처음 내게 보여줄 때 푸른색이 섞여 빛나던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무채색의 유리알 같은 사파이어가 내 방 장롱 안에 숨어서 반지 알이 바뀐 것도 모르고 사는 나를 짓궂게 놀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넌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고….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보석상에서 다이아몬드라는 것을 확인한 후 세팅해 주겠다고 했고, 나도 그 집의 간판만 믿고 세팅을 맡겼는데 반지 알까지 맡긴 것이 불찰이었다. 그때는 다이아몬드라는 보석보다도 그것을 선물해 준 사람이 더 좋았던 때라 보석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반지를 세팅할 때는 눈을 똑바로 뜨고 옆에서 반지 알을 박는 것을 직접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도 모르던 어리석고 순진한 때였다. 보석상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의 한복판 그 자리에서 여전히 같은 이름의 간판을 달고 버젓이 영업하고 있다.
이렇게 두 번씩이나 눈뜨고 코를 베이고 말았다. 그것도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며 축복 속에 주고받아야 할 결혼 예물이 두 번씩이나 바뀌고 보니 우연치고는 너무 얄궂은 일이어서, 이것도 운명인가 하는 회의에 젖게 되었다. 마치 거지와 왕자의 뒤바뀐 운명처럼, 나는 졸지에 꿈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거지 왕자가 된 심정이었다.
내 결혼의 꿈이 담긴 한복감으로 옷을 만들어 나 대신 입고 다니는 사람은 누구일까? 누가 내 남편의 사랑이 담긴 다이아몬드를 차지했을까? 그들은 행복할까, 불행할까? 그간 살아오며 안타깝고 괴로운 일들을 겪을 때마다 내 인생에는 없어야 할 일들이 일어나는 것만 같아 내 인생은 도둑맞고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혼 혼수품의 분실은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겨주었고 그 상처의 흔적은 한동안 나를 혼란케 했다.
어쩌면 잃어버린 물건들은 애당초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들로 액땜하여 힘든 일들도 잘 견뎌냈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을 바꿔보니 ’돌고 도는 인생’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행복과 불행도 돌고 도는 것이 아닌가 싶다. 화(禍)가 복(福)이 되고 복이 화가 돼서 돌아올 수도 있으니,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의 것에 눈독 들이는 잔망스러운 인간이 되지는 말아야겠다.
어쨌거나 그간 나는 어떤 형태로든 남의 인생을 도둑질하지는 않았는지, 지난날을 되짚어 본다.
(『그린에세이』 2018. 3~4월호)


〈문학이 주는 위로〉

‘다른 직업을 택했다면 지금의 나는…’이라는 제목의 원고 청탁서를 뒤적여 본다. 다른 직업을 택하여 지금의 내가 이렇다 하고 내놓을 정도가 되었다면 아마 그 직업은 스무 살 즈음부터 뿌리내린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나이와 상관없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서슴없이 자리를 옮기는 다변화 시대이지만, 60년대의 젊은이들은 처음 택한 직업으로 정년을 맞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나 역시 학창 시절에는 문학이나 연극, 춤사위에 관심이 있었고 그 방면의 교내 활동에 적극적이었지만 설사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키워줄 가정적 여건과 인식의 부족, 꿈을 향해 나아갈 사회적 통로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봄날의 몽환처럼 잠시 ‘춤꾼’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춤이 예술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천대받던 시대였다. 큰오빠는 춤꾼이 되겠다는 나에게 눈총을 주어 주저앉혔지만, 최은희 주연의 영화 〈검사와 여선생〉을 보고 난 후 여검사가 되겠다고 천방지축 나대는 나에게 작은오빠는 자기의 고려대학 법학과 뱃지를 내 가슴에 달아주며 기를 살려 주었다.
스무 살 무렵, 가정 형편이 좋거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세 친구가 의상디자이너를 꿈꾸며 일본으로 유학 떠나는 것을 보며 부러워했다. 1년 후 그 친구들이 베레모를 쓰고 한국에 돌아왔다. 마중 나간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