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목포의 눈물

새 목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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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 가요사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목포의 눈물’이 발표된 1935년, 이 음반은 무려 5만 장이나 팔려 나가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노래 한 곡으로 이난영은 단번에 가요계의 여왕 자리에 올랐고 이 한 곡의 유행가는 식민지 땅을 온통 흐느낌으로 잠기게 했고, 항구도시 목포를 애틋한 추억의 장소로 되살아나게 했다. 목포 곳곳에 산재돼있는 이난영의 흔적을 따라 한국 대중가요 100년사에 불후의 고전으로 내려오는 ‘목포의 눈물’이 품고 있는 80년 역사 마디마디에 서린 호남인의 한과 설움을 『새 목포의 눈물』을 통해 문학 작품으로 담아내었다.
저자

고규석

저자 고규석(필명: 고 결, 호: 유수)은 광주에서 태어나 서석고, 조선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와 1992년 <전남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또 1992년에는 「3학년 8반 교실」외 18편으로 <제2회 눈높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우리땅 우리 놀이』(신문예, 1994) 『해 뜨는 집은 안녕하다』(시와사람, 2001) 『구두의 충고』(시와사람, 2008), 『칼춤』(책나무, 2014)가 있다.
1988년 무등일보 편집부 기자로 출발해 광주매일 편집부 차장, 남도일보 편집부장과 문화부장을 거쳐 현재 광주일보 목포지역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제1막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새벽시장 19
삼학도 20
자드락 골목길 22
만호진에서 24
서산동 메뚜기 26
목마르트 거리 28
죽교동 비가 30
겨울, 아리랑 고개 32
유달산 소묘 34
송도마을 77계단에서 36
멜라콩다리를 추억하다 38
고하도 가는 길 41

제2막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
난영 공원에서 45
목포역에서 46
수협 위판장에서 48
목포문학관 단상 49
달성사에서 52
항아리에 빠지다 54
목포 오거리에서 56
유달산 둘레길 58
구름다리 길 60
북항 회 센터에서 62
국도 1호선 64
목포 우체국에서 66

제3막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조각공원에서 71
어민동산에서 73
갓바위에서 75
유달 경기장에서 77
편백나무 아래서 79
먹자골목 81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83
노을공원에서 85
산정동 성당 가는 길 87
마인계터에서 89
목포 근대역사문화관에서 91
장미의 거리 93

제4막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불멸의 가수, 이난영 97
달맞이 공원에서 100
사랑의 섬 외달도에서 102
영산강 하구둑에서 104
연인의 거리에서 106
대반동 인어바위에서 108
양동교회에서 110
뻥튀기하는 날 112
철도폐선부지 공원에서 114
나무 숲 거리에서 116
평화광장에서 118
목포의 노래 120


|해설| 새롭게 쓰는 ‘목포의 눈물’ /강경호 122

출판사 서평

[시집을 펴내면서]
목포는 유달리 예술가들이 많아 예로부터 예향으로서 명성을 떨쳐왔다. 소설가 박화성, 천승세가 있고, 문학평론가인 김현, 우리 시대의 시인 김지하, 극작가 차범석, 동양화가 허건도 목포 출신이다. 특히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가수 이난영도 빼놓을 수 없다. ‘이난영’하면 마치 등식처럼 ‘목포의 눈물’이 떠오른다.
‘목포의 눈물’의 탄생은 1935년 1월 오케 레코드에서 ‘조선 10대 도시 찬가’ 노래를 현상 모집한 데에서 시작됐다.
이 노래는 목포 출신 문인 문일석(본명 윤재희)이 지은 시에 손목인이 곡을 붙여, 데뷔 3년 차였던 그저 그런 이난영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한국 대중 가요사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이 ‘목포의 눈물’의 가사가 윤재희 시인이 쓴 시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 점에 착안해 지난 2016년 이난영 탄생 100주년(1916년 6월 6일 출생)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시집을 발간해야겠다는 의도로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7개월여에 걸쳐 창작 작업을 벌였다.
무엇보다 목포시는 지난 2016년 가수 이난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사업비 1억 5000만원을 들여 기념식을 비롯해 기획전시, 전국 경연대회, 시립민간단체 공연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또 ‘가수 이난영 전시회’라는 주제로 ‘유품 전시’를 비롯한 ‘일제 강점기 목포 문화전’ 과 역사 문화 투어인 ‘목포의 눈물 역사의 거리 공연 여행’, 이난영과 목포의 눈물을 주제로 한 학술 세미나, 난영 생가 터 잔치 한마당, 난영 유년기 연극 공연, 유가족인 ‘김시스터즈’ 토크 콘서트 등 크고 작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하지만 문학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이나 행사는 없어 아쉬움이 많았고 이에 이번 시집을 출간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됐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이란 첫 소절만 들어도 곧바로 가락을 맞출 수 있을 만큼, ‘목포의 눈물’은 80년이 지난 지금도 전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가요사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목포의 눈물’이 발표된 1935년, 이 음반은 무려 5만 장이나 팔려 나가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노래 한 곡으로 이난영은 단번에 가요계의 여왕 자리에 올랐고 이 한 곡의 유행가는 식민지 땅을 온통 흐느낌으로 잠기게 했고, 항구도시 목포를 애틋한 추억의 장소로 되살아나게 했다.
‘목포의 눈물’은 전체적으로 한 여인이 임을 그리워하고 임에 대한 절개를 맹세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1절에서는 임을 잃고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는 여인의 모습을 그리고, 2절에서는 임은 떠났으나 노적봉 밑에는 여전히 임의 자취가 완연하여서 그에 따라 더해만 가는 여인의 애달픈 정조를 읊고 있다. 마지막 3절은 1절과 달리 시적 화자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임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시적화자가 임에 대한 절개를 맹세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작곡자인 손목인 선생은 자서전에서 “목포의 눈물이 우리 민족의 설움과 일제에 대한 ‘겨레의 분노’를 노래한 것이고, 이 노래가 유행하면서 경찰서에까지 끌려갔었는데,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노래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고 썼다.
사실상 ‘임’이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용운의 시에서 엿 볼 수 있듯이, ‘목포의 눈물’에서의 임도 단지 한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 오히려 ‘목포의 눈물’에서의 임은 ‘조국’으로 읽힐 가능성이 더 높다. 2절에서 이런 사실은 더 확연해진다. ‘삼백연 원안풍은 노적봉 밑에’는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라고 읽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다.
손목인 선생은 “가사지에 한문까지 병기(倂記)한 ‘삼백연 원안풍은’은 단지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 ‘삼백년 원한품은’을 고친 것에 불과하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이난영이 당시에 녹음한 음반을 들어보아도 ‘삼백 년 원한 품은’으로 들린다.
결국, ‘목포의 눈물’은 조국을 강탈한 일본에 대한 원한을 드러낸 노래다.
따라서 ‘삼백 년의 원한을 품었다’는 것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상실감과 일본에 대한 원한을 말하며 ‘노적봉 밑에는 여전히 임의 자취가 완연하다’는 구절은 비록 국권은 강탈당했으나 여전히 노적봉 밑에는 이순신 장군의 정기 내지는 더 나아가 조국의 정기가 서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목포의 눈물’은 고도의 상징을 사용해 조국애를 노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고도의 상징을 통해서 ‘민족의 설움’을 표현하고 ‘조국에 대한 절개’를 맹세한 작품인 것이다.
이동순 영남대 교수는 “마치 꽁꽁 앓는 듯한 이난영 특유의 콧소리에다 흐느끼는 듯 잔잔하게 애간장을 토막토막 끊어내는 느낌의 창법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노래이자 이난영의 창법에는 남도 판소리 가락의 오묘한 효과가 그대로 배어난다”면서 “사실 이 노래는 가사에도 반영돼 있듯 일제에 대한 한과 저항의 혼이 표현된 민족의 노래”라고 평가했다.
장유정 단국대 교수가 지난 2014년 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난영의 대표곡을 묻는 질문에 전원이 ‘목포의 눈물’이라 답했고 ‘이난영’ 하면 연상되는 것을 세 가지 정도 적으라는 질문에 ‘목포’와 ‘목포의 눈물’이 가장 많았다.
‘목포의 눈물’이 지닌 의미를 간략히 쓰시오? 라는 주관식 질문에는 ‘애국가, 민족의 노래, 한의 노래’가 14명으로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위로의 노래, 고향의 노래’(9명)였고 ‘언제나 부르고 싶은 노래, 목포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역사의 노래’(6명), 이별의 노래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목포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고향의 노래이자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역사의 노래로 인식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처럼 ‘목포의 눈물’은 60~70년대 당시 고향을 등지고 낯선 땅을 헤매야 했던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줬다. 전라도 사람들의 한을 대변하며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도 했다. 1980년대 프로야구 해태타이거즈의 응원가로 애창되면서 ‘전라도 애국가’라는 말까지 생겨났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애창곡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목포 곳곳에는 살아있는 ‘엘레지의 여왕’과 관련된 명소들이 많이 산재돼 있다. ‘목포의 딸’ 이난영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로는 양동의 생가 터, 유달산 중턱의 노래비, 대삼학도에 자리 잡은 난영 공원 등이 꼽힌다.

이처럼 목포 곳곳에 산재돼있는 이난영의 흔적을 따라 한국 대중가요 100년사에 불후의 고전으로 내려오는 ‘목포의 눈물’이 품고 있는 80년 역사 마디마디에 서린 호남인의 한과 설움을 시라는 문학 장르를 통해 작품에 담는 것이 이번 시집을 출간하는 목적이다.
이번 시집을 통해 이난영 탄생 100주년 기념하는 것은 물론 ‘목포의 눈물’의 음악사적 가치에 문학사적 가치를 더해 예향 목포의 명성을 드높이겠다는 것이 이번 시집 출간의 기획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