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눈을 따다 (허문정 시집)

꽃눈을 따다 (허문정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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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허문정 시인의 시적 흐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듯하다. 첫째 이름의 시학, 즉 ‘허문 정’에서 이르는바, 흩어지는 낱알의 시대에 따뜻한 합일의 밥그릇으로 이끄는 그 ‘정’에의 도달을 꿈꾸고 있는 점, 둘째 전생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이승 새의 고달픔을 빌어와 자아 극기의 정서를 구현하고자 하는 점, 셋째 사회나 가정의 평화를 깨고 도망하는 말, 또는 총질하는 언어를 순치해 안정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점 등이다.
저자

허문정

ㆍ충북괴산출생
ㆍ2009년《월간문학》수필신인상
ㆍ2011년《시와사람》신인상으로시등단
ㆍ대표에세이문학상수상
ㆍ한국문인협회,광주문인협회,죽란시사회회원
ㆍ시와사람시학회,대표에세이문학회회원
ㆍ시집『어린애인』,『꽃눈을따다』
ㆍ수필집『눈썹을밀며』

목차

꽃눈을따다/차례

시인의말·9

제1부엎드려물먹는나무

엎드려물먹는나무
무소유
순수
그여자가깔고앉은계절
부부의진화
칠백원
지폐의안부
빈손
불면2
황룡강
쉿,우리침묵하자
어떤연금계산법
산이된여자
쓸쓸한욕망
개밥바라기별
불꽃정념
안개
물의분노
절교선언
까마귀떼

제2부한쪽날개는내가그려넣을게

거미줄
V자계곡
새의날
꽃눈을따다
한쪽날개는내가그려넣을게
허문정
축제장에서영정사진을찍다
넉넉한밤
세치혀
보리차를끓이다
정착하지못한시간때문에
스물네살
아버지의유산
강의길
망고
고스톱치는날
고추무침
고집센늙은호박
환하다
지상낙원

제3부누가피리좀불어줄래?

죽은새의깃털
누가피리좀불어줄래?
오래오래
원점
감자꽃병
5월
그만총을버려요
장미꽃병풍
광주의불빛
김나는밥상
다시피는해바라기
주인공
공생
황토범벅
항복

제4부꽃귀라도열렸으면

꽃귀라도열렸으면
낮은자리
요리의달인
심장을찌르다
내기도발인줄알았더니
무죄
너희가내꽃이다
옛집
아름다운노숙
빈집
관절염을앓다
가난을지우는밤
닭의눈
대상포진
육남매
촉새의귀환

작품론
날개를부딪치며쓴새의문장文章또는타투의문장紋章/노창수

출판사 서평

|작품론|


날개를부딪치며쓴새의문장文章
또는타투의문장紋章


노창수
(시인·문학평론가)


1.
허문정시인으로부터시집을기획한다는소식을들은지한달후였다.그가펴낼작품집중의몇편을내메일에부쳐와그출간의도는비로소실제화되었다.그무렵은연일33도를넘을만큼의무더위가덮치고있었다.그렇게힘겹게견뎌내던그힘은그늘을찾듯또다른가장자리로몰리기일쑤였다.이빨조차다빠지는듯한무기력이무겁고뜨거운무기질로변해흐물흐물물러지는판국이었다.그는좀시원해진때를기다려늦게써도된다는,그특유의배려심으로편안한평설의과제를필자에언뜻주었더랬다.
그와나는‘죽란시사회’에서같은동인으로만나무릇시에대해논의하기도하고,문단에대한저간의소식들을나누며꽤오래교우해오고있는터이다.그가우리동인회를위해묵묵히견뎌오며자신의소임을다한,말하자면진짜배기시인이자실무형업무타입인사람그자체였다.처음에그는수필쓰기로문학의길을들어섰지만,우리와활동하면서시로재등단한이른바양수겸장의문인이다.한데,사실필자는시쪽이더좋이읽혀져,모신문‘아침을여는시’에소개하기도했고,문예지계간평때그의시를인용해긴평을쓰기도했더랬다.또대학에서‘작문’시간이나,평생교육원‘시창작강의’에도그의시를두세편씩골라텍스트로삼은적도있다.그는수필또한꾸준히쓰고있는바우수작품으로선정되어수필문단에잘알려진바도있다.또한가지,우리동인회가문화재단지원금을받은일,그응모과정과결과처리를요령껏잘해모임의살림을부쩍키운공력또한이자리를빌려서이야기하지않을수없다.하여,한때우린그를칭찬의상단(賞單)에올려‘허문정만세’를외칠때도있었다.이런그의숨은공때문에아마도최장수사무총장으로고생만하지않았나하는생각이다.

2.
그의말마따나드디어9월로접어들었다.아직좀덥긴했으나견딜만하여메일을열고송고된작품들을출력했다.나는그의귀중한원고에대하여사전보안이걱정된나머지,본격평설을쓰기전그러해왔듯,‘복사방지용지’NoCopyPaper를이번에도사용했다.왜냐하면이글의초고를여러번고쳐나가다수의파지를만들거란지례의그생각때문이다.이런과정에서그의작품을찬찬히읽다가,번쩍자신의이름을패러디한「허문정」에첫눈길이멈추었다.이‘허물어버린정’이란게전라도식으로말한다면너와나,그범절같은걸로쨈매진관계를그만끌러버리는그‘무장해제법’이아니던가.뭐,다들제잘난멋으로무게와권위만잡는세상에‘허문정’이란이름을가지고이만한변辨을구사한다는건조금은특별한일이자,일견독자의관심거리를제대로불러들일만하다고여긴것이다.또이같은‘이름시名詩’로깊어진시문법이최근핍진해지고있는당신삶에하나의전환적동기는되지않을까도추측해보았다.해서,이름에대한재구再構로서의이시는살아온삶의보상이기도하리라생각해보았다.사실요즘은,한아파트같은엘리베이터안에서도출퇴근때만나면서로외면한채멀뚱멀뚱딴벽만보아오는판국에,혹이웃간의마음을트는이름값이지않을까도싶었다.아마그의선친께서는오늘날이런사회의불통을예견하며마음을허물어넓은소통에다가가라며이명명을해주셨는지도모르겠다.제무참을함부로남에게끼치는이익명성의도시에서,이웃이나가족간에서로의체면과무장과꺼끄러움등을다해제해버릴수있는이름이라니,새삼참‘허허’그‘허문다’는말이,결빙처럼굳어진사회와가정을향한한경계儆戒의교훈으로집약된메시지일터이다.

끝까지뜨겁자했다
인연의탑높이쌓자했다
우리가지금하는일이의미있는일이라서
견고하게성을쌓으며
헛되지않길바랐다

간절해서조바심이컸나
도원결의는거북등처럼벌어지고
깊게패인밤의웅덩이에
발이빠지고말았다
가슴에바윗돌만올려놓은채
우르르무너지는탑
오늘은늘아쉬움뿐인게인생이지만
어금니를깨물며
너를삭제한다

차근차근쌓지못하고벽을
허문

-「허문정」전문

그런데,아뿔싸!필자의지레짐작도얼핏그만삭제키로눌러질즈음다시허물리고야만다.화자가“아쉬움뿐”인자신의“인생”에대하여“어금니를깨물며”삭제한다는걸통고하고있는이유에서이다.그가허물어뜨리는사유를“차근차근쌓지못”했다는,그러니까겸허한자기탓을아무렇지도않은듯내려놓는뉘우침으로맺고있음에결국독자는반전을맞는다.그는이렇듯애초부터잘못놓았던벽돌을빼내고자그것의“삭제”를서둘러마지않고있다.시가이리깊어진건한없이양보해온그의미덕과같은,아니그품안과같은,이른바열려진뜰을상징하는한집안의‘문정門庭’일지모른다.어쨌든이시대로라면지금껏쌓아올린공력을곧허물어야할마당이겠다.그걸허문다는건,정精誠들여문과뜰을다시닦자고시작하는일이지않은가.하면,참으로지난한작업을감수한다는각오이기도할것이다.
화자는살아오는동안일견‘잘해보자’는그마음만“간절해서조바심”이더심했지않았나하고반성하기도한다.한때,잘살자고굳게약속하던“도원결의”같은맹세는“거북등처럼벌어져”수습이어렵다.그리고그게어느결에,자신도모르게“깊게패인밤의웅덩이”로그만“빠지”게되었음을알아차린다.잔뜩기대를걸던서로는그무거운생의“바윗돌”하나씩을짐짓올려왔다며자책혹은타책을한다.한데,지금은그마저바벨탑처럼“우르르무너지고”있는것만같다.이제야뉘우치고다시쌓으려하지만,뭐애초에쌓을때보다더힘이들건뻔한일이다.필자는이시를읽으며,허물고허물리며다가가는게또한이루어지는정분이란걸깨닫는다.언필칭“허문정”이란,허물어다시쌓으려는정성으로대변되는일일진대,설사다허물더라도바닥에는결코그‘정情’이란게남아있음에서그러하다.살다무너진이들은다들‘다시시작하자’는말로스스로를위무한다.허무는일끝에다시쌓을힘이란곧‘정’이받쳐있음으로써분명해진다는사실이다.그러니,‘허무는정’은한종구終句로서역할을하지만,그‘정’에점지되는바는자못반전적反轉的이다.결국은다허물어지더라도‘정’은끝까지그를받치는아름다운기초석이니,해서참으로‘허문정!’답다고여긴다.

3.
다음화자는정원에서사과나무의꽃눈을따고있다.물론이꽃눈을따는것은차후튼실한과일을얻기위함이다.그런데화자는눈을따려는순간꽃봉오리가무슨말인가하려는눈치를읽는데이른바그게‘기미機微’의시학이겠다.곧눈치가필에닿자꽃눈은미세히떠는참을맞는다.하지만화자는성큼꽃눈으로그가다가선다.“미안하고큼큼한”화자의눈빛을이꽃눈이벌써알아챘을것이겠지만,장차“명품과일”을기대해마지않기에그는꽃눈을가차없이“솎아”낸다.그러다가화자는문득이솎는작업이무서워지기시작한다.꽃눈에게뻗치는제짓처럼누군가의검은손이자신의눈도그만똑따내버릴지모른다는그압박감이온때문이다.해서,그는아찔한생각속에따내버린꽃눈에그만얼굴을부비고우는것이다.
이처럼정치精緻한생명성의기미機微로씌워진이시는,허울이나욕심으로애먼꽃눈을따던지는인간의이기주의에대해비판한다.즉작다고희생시키는현실에대해안타까운적자생존,그자본주의적행태를비꼬는바를시의작용점에두고있다.과일나무의앳된꽃눈에까지달려드는인간탐욕에대해,나무와화자의입장을바꾼알레고리를보여주는시이다.즉“얼굴부비며”우는화자의그연대를통해나무와소통하고생명의식의정분을공유한다.

입술꼭다문꽃봉오리가
무슨말을하려고한다
살포시눈뜨려한다
연한입술이
봄바람기침소리에놀라
터질것만같다

성큼다가선
나의미안하고큼큼한눈빛을눈치챘을까
갑자기사과나무의
마음이캄캄해진다

여린입술을
똑똑따내며
생은피기도전에마칠수도있는거라며
구차한변명앞세워보지만
실은
튼실한명품과일을얻기위한욕망으로솎아내는것
먼발치눈치빠른감나무살구나무낯빛이파랗게질린다

문득
솎아낸다는말이무섭게나를휘감는다
사람과사람그리고AI
어디선가검은손이내꽃눈을똑똑따내고있는건아닌지

아찔한현기증으로노랗게주저앉으며
떨어진꽃봉오리들과함께서로얼굴부비며울었다.
-「꽃눈을따다」전문

이「꽃눈을따다」라는작품은그구성이다음의‘기승전결’의수순을밟고있다.
즉,①기〈꽃봉오리의말〉:봄바람기침소리에놀란다②승〈꽃봉오리의겁〉:나무도앞이캄캄해진다③전〈파랗게질린나무〉:피기도전에생을마친다④결〈솎아내는검은손〉:현기증으로주저앉는다.
이렇듯4단점층구성에‘꽃봉오리’와‘나무’의이미지를차례로입혀보이는게그것이다.결국꽃눈의생채기에눈을부비고우는화자의안타까운정이란,거기꽃눈과상처사이에한울음을끼침으로써둘을교접해간다.사람들이무심코따버리는꽃눈작업,그것에대한경고적고지서를발부하는이시는,경제적가치만따지는현대인들이쓸모가적은걸함부로버리는그무지에더지불할화폐가많아진다는바를들뜨지않고한발한발눈을따가듯일깨운다.

나는전생에새였을까
슬픈날에는하이힐로보도블록을콕콕쪼아먹지
집에는부리없이도먹을게많지만
뾰족한부리로구름을쪼아대지
날고싶은욕망이
새의본능을따라하지

쿵!하고떨어지는
착한구름
부풀어
빵이되는구름

떨어진구름조각이
내하이힐굽에달라붙지
새의발이하이힐굽을닮은거알아?
하이힐굽은
새가되려는나를
터트리고말지

하이힐내부리다닳아지면
전생을살까

흰색하이힐찾아신고
새의길나선다.
-「새의날」전문

이화자가말하는“전생”은“새”를강조한다.허문정의시에자주등장하는새는이른바‘갇힌새’로서의존재이거나밖을동경하는새,그리고자유로운비상을꿈꾸는새등으로상징된다.이작품도밖으로나가지못하고갇혀슬퍼하는날,그의혼자된멜랑콜리를호소한작품이다.그는거리의보도블록에하이힐로자신이콕콕쪼며걸어가는상상을한다.즉자유롭게모이를쪼는새의모습과자신을대비해그린다.여성의하이힐은외출의상징물이다.그에게이외출이란멀리“구름을쪼아대”며날아가는“새의본능을따라”하는일이기도하다.현재이지상에서살지만,이곳을걷다가하이힐굽이닳아지면곧바로전생인‘새’로돌아가리란걸알고있다.해서,오늘도그는새의길을밟는다.흰색하이힐로“보도블록”을쪼다가우쭐우쭐날갯짓을일으켜날고자하는것이다.화자는새의본능을현재자신의역할에대입하며극기심을북돋우는데,그힘을“전생”에가져온어떤기氣로써보충한다.상상속에“부풀어빵이되는구름”을쪼아먹듯,이답답하고먹먹한자신의처지를벗어나고자한다.새가될환상을빌어와꿈틀거리는가슴에잠을재우며장차날아갈날을기다리는것이다.

역시다음작품도한쪽날개를잃은새의아픔을그리고있다.잃어버린새의날개를화자가그려넣겠단의지를표출함에그아픔을참는힘이실렸다.자신의처지를빗댄솜씨조차상실된그현재를초월하는결의같은게투명하게내비치는시이다.

아득한앵무의날개를파득거려보지만
앙다문입술만날아갈뿐
고요를업고저녁을건너는능선에
넘지못한구름만걸터앉아요

날아올라야하는데

또글또글블루베리알갱이빛깔처럼
깊어진수심
누가나를달달끓여잼이라도만들어주길

식어가는석달열흘치의힘을모아
또한번파득거려보지만
또다시내려앉는
냉각의노래

이대로는안돼
솜사탕처럼부풀어야돼

애절한부름에도
기어이멈춘너의노래
편히
쉬어

바람에찢긴한쪽날개는
내가그려넣을게.
-「한쪽날개는내가그려넣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