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짓는 집 (강현옥 시집)

하늘에 짓는 집 (강현옥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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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는 찰나의 예술이다. 픽션의 세계에서 노니는 감성의 파노라마, 이를 이미지 구현으로 그림을 그리는 장르이다. 매번 관찰하는 각도와 시야와 시선을 바꿔,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해석하길 즐긴다. 기시감을 최대한 피해, 매번 신선한 옹달샘을 찾는다. 느낌이 식상하지 않도록, 새로운 오솔길을 개척한다. 할 수 있다면, 오묘한 정서의 세계, 감성의 동산으로 들어가, 섬세한 감촉으로 대화를 나눈다.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감성과 담소 나누며, 무한한 느낌의 향기를 서로 전달한다. 그 순간 전해져 오는 전율, 감동의 전율과 손잡고 너울너울 춤춘다. 그 춤을 추며, 새로운 시야를 열어, 보다 폭넓은 세상을 받아들인다. 매번 시는 머리의 시가 아니라, 가슴의 시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되도록 가슴에 시심의 꽃이 피도록 안내하고 가꾼다. 직설적인 주제 노출을 가급적 피하고, 최대한 에둘러 표현하며, 가능한 한 상징의 통로를 통해 의미를 전달한다. 반복되지 않는 표현기법들을 동원하여 징검다리 놓듯 각 연에 이미지를 깔아 놓는다. 그래야 물 흐르듯 시적 형상화와 이미저리가 펼쳐진다.
강현옥 시인의 시들은 이러한 시의 특질들을 고루 갖추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특히 이미지 구현의 솜씨가 세련되어 있다. 시 곳곳에 번뜩이는 낯설게 하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시 전편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독자의 눈이 즐겁다. 탄탄한 실력과 한결같은 성실성이 시의 우아함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건 아닐까. - 박덕은(문학박사, 전 전남대 교수)
저자

강현옥

ㆍ전북 완주 출생
ㆍ군산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졸업
ㆍ《문학공간》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ㆍ국시원 주최 체험 수기 공모전 시 부문 수상
ㆍ빛창 문학상, 향촌 문학상 대상 수상
ㆍ독도문학상, 이준 열사 문학상 수상
ㆍ남명문화제 시화문학상 포랜컬쳐상 수상
ㆍ전주기령당 충효 문학상 수상
ㆍ부산 문화글판, 충주문학관 문학상 수상
ㆍ한민족 통일문예제전 문학상 수상
ㆍ수원 문학상 시 부문 수상
ㆍ지구사랑 문학상 수상
ㆍ나주시 소통글판 우수상 수상
ㆍ한국예총 신진예술가상 수상
ㆍ나주문화원 문화공로상 수상
ㆍ전남시인협회 사무국장
ㆍ나주문인협회 회원
ㆍ한실문예창작 부드런문학회 회원
ㆍ저서 그림동화집 『나주 향교를 지킨 김대남』

목차

하늘에 짓는 집/ 차례

시집을 내면서
축시/ 박덕은

제1부 빨간 등대

섬진강가
산
잡초
은파호수공원
맷돌
빨간 등대
도서관
사색
숲길
꽃눈

제2부 매달려 피는 꽃

노인의 봄
신발·1
마늘처럼
모내기 전 정경
동치미
페이지 터너
호치켓
안녕
도시 텃밭
어머니의 섬, 독도
그날의 함성

제3부 눈뜨지 못한 새벽

눈뜨지 못한 새벽
감
드라이플라워
애도艾島
끝없는 유랑
등수리 노인
안과 겉
이파리·1
1과 2 사이
매달려 피는 꽃

제4부 쑥의 계절

자작나무
쑥의 계절
복숭아
시골병원 앞 신호등
오빠의 하루
나팔꽃
믿음
어머니의 기차
울 엄마
어머니

제5부 하늘에 짓는 집

하늘에 짓는 집
교복 노동자
구의역 9-4 승강장
할아버지 엄마
오월증후군
박종태
목포 신항에서
실업·2
우리도 사람이다
노원구 경비원의 죽음

제6부 여기 나주

그날
나주극장
석당간
영산강
금성관
나주 향교에서
어느 봄밤
백호 임제
나주 영모정에서
나주 계은 고택

평설
강현옥 시인의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 박덕은

출판사 서평

강현옥 시인의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강현옥 시인은 1968년 5월 16일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에서 아버지 강철수 씨와 어머니 김엽비 씨 사이에서 1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전주로 이사를 온 그녀는 어릴 적에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욕심 많고, 고집 센 아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개신교 신앙생활을 하게 됐고, 지금까지 그녀의 마음을 지탱해 주는 중심이 되고 있다. 본인이 직접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평등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고등학교 때 대학을 갈까 말까 갈등을 많이 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생선장사를 하면서 5남매를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큰 수술도 했고, 평생 손에서 물기 마를 날 없이 살아오던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대학을 진학한 해가 1987년이었다. 막상 대학에 들어갔는데, 시대가 시대인지라 하루가 멀다 하고 데모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우리 사회의 구조가 우리 부모가 나쁘고 게을러서가 아니라,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선배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런 나라를 물려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데모를 하기 시작했다. 대학 4년 내내 사회운동은 계속되었고, 문예 동아리를 하면서 풍물, 탈춤, 행사 기획 등을 두루두루 섭렵하며 문화활동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학 4학년 때 전주에 있는 예수병원 노동조합 노래패 강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1995년 1월 운동권 출신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2010년 그녀의 남편이 나주에서 무소속 도의원으로 출마를 하게 되자, 그녀는 20년 노동운동을 정리하고 나주로 활동의 근거지를 옮겼다. 병원에 취업해서 간호조무사로서의 새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간호조무사로 사는 삶은 그녀에게 잘 맞지 않았다. 생명을 살리는 가치는 좋았지만, 중소병원의 비조직적인 환경과 수동적인 시스템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그러던 어느 우연히 ‘나주향교 이야기꾼 강좌’를 신청하게 되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2014년부터 문화재청 나주향교 활용프로그램 담당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 향교 문화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하여 사람들이 보호하고 바라보는 문화재가 아니라, 만져보고 참여하는 친숙한 문화재가 되게 하는 활용사업이었다. 2017년 나주향교 활용사업이 문화재청 3년 연속 우수프로그램으로 선정되면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영광까지 안게 되었다.
하루는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몸은 힘들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실천이 있는 문화기획자의 삶을 사랑합니다.”
그녀는 2010년 남편 선거운동을 위해 지역의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우연히 큰 아이의 5학년 담임 선생님인 김영순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굉장히 곱고 단아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년퇴직 기념 시집을 발간했고, 시 공부하는 모임이 있으니 한 번 와보라고 했다. 중학교 때 품었던 시인의 꿈이 생각났다. 이때를 그녀는 이렇게 회상했다.
“하루는 지금의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박덕은 교수님의 수업 방식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선거 준비 기간이라 얼른 일어나야 하는데 수업이 끝날 때까지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회원님들도 너무 자상하셨고 따스했습니다. 아마도 나주에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로웠는데 사람 냄새 나서 좋았나 봅니다. 어쨌든 딱 한 번만 가리라 다짐했던 곳에 지금까지 13년을 다니고 있으니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 공부는 그때 당시 힘들고 지쳤던 제 마음을 표현하는 도화지였고 고해성사의 자리였습니다. 아마 그때 시를 쓰지 않았다면 제 삶이 긴 시간 외롭고 쓸쓸했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2011년 10월 월간지 《문학공간》 시 부문 수상을 통해 등단하게 되었다. 그녀가 처음 문학상 수상을 한 곳은 2011년 국시원에서 주최한 체험 수기 공모전이었다. 이후 2015년 빛창 문학상, 2017년 향촌 문학상 대상 수상, 2018년 독도문학상, 2019년 이준 열사 문학상, 2020년 나주시장상, 2024년 한국예총 신진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남명문화제 시화문학상 포랜컬쳐상, 전주기령당 충효 문학상, 부산 문화글판, 충주문학관 문학상, 한민족 통일 문예제전 문학상, 수원 문학상(시 부문), 지구사랑 문학상, 나주시 소통글판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 현재 나주문화원 이사와 나주예총 감사, 전남시인협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 그러면 이제 강현옥 시인의 우아한 시 세계 속으로 탐험을 떠나보자.

까만 안경 너머로
여름이 졸고 있다

치맛자락 펄럭임에 둥근 실눈 떠 보지만
흐릿한 눈동자는 주름진 허리 펴지 못하고
이빨 빠진 세월 떨군다

고여 있던 음성들이
낙화의 무게로 흩어진다

한낮이 부끄러워
캄캄한 연서로 대신하는
붉은 고백
죽음 넘나들며
젊음 저당 잡힌
꽃잎 몇 장

짊어진 수북한 가시줄 마디마디
반백斑白의 통로에 일일이 방점 찍고 있다

때로는 철장 사다리에
때로는 외줄에
목숨 친친 감고 구불구불 물음 피워놓는다

아침이 길게 울자
칼칼하던 입술이 하얀 침묵으로 말아진다

빗장 사이로 금 간 하루가 후두둑 떨어지고
등 굽은 상흔은
빗물 젖은 나팔 꺼내
돋보기 안으로 푸른 기억 연주한다
느리게 느리게.
- 「나팔꽃」 전문

시적 화자는 나팔꽃을 소재로 낯설게 하기와 이미지 구현의 진수를 보여 준다. 7~8월에 피는 나팔꽃을 시적 화자는 “까만 안경 너머로/ 여름이 졸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더위에 지친 8월을 졸고 있는 여름으로 낯설게 하기를 하니 멋지다. 나팔꽃은 해가 진 후 꽃망울이 열리기 시작하여 다음날 정오 무렵에 시든다. 꽃이 피는 순간을 치맛자락 펄럭임으로 해석하면서 “둥근 실눈 떠 보지만/ 흐릿한 눈동자는 주름진 허리 펴지 못하고/ 이빨 빠진 세월 떨군”다고 말하고 있다. 나팔꽃을 대변하고 있는 시적 화자가 노인인 듯하다. 뒤이어 낙화의 무게로 흩어지는 음성이 있다. 그 음성은 오늘의 입술을 떠난 순간의 음성이 아니라, 고여 있던 음성이다. 그 음성은 가슴에 꼭꼭 담아두었던 어떤 슬픔일 수도 있고, 사랑에 대한 미련일 수도 있다. 그 음성이 낙화의 무게로 흩어진 것이다. 마음을 비우겠다는 의지일까, 어쩔 수 없이 흘려보내겠다는 체념일까, 그게 무엇이든간에 내려놓음으로 향하는 시적 화자의 발걸음이 느껴진다. 캄캄한 연서로 대신하는 붉은 고백, 젊음 저당 잡힌 꽃잎, 일일이 방점 찍고 있는 줄기가 나팔꽃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때로는 철장 사다리에/ 때로는 외줄에/ 목숨 친친 감고 구불구불 물음 피워놓”고 있다. ‘외줄’, ‘목숨 친친 감고’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한생이 엿보인다. 안간힘으로 버틴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어떤 질문 같은 ‘구불구불 물음’을 피워놓는다. 사색적인 삶을 나타내는 멋진 표현이다. 삶의 고비 때마다 그 삶이라는 벽을 넘어서기 위해 아등바등 발돋움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며 방향과 의미를 찾아나섰던 처절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하얀 침묵으로 말아지는 입술, 빗장 사이로 금 간 하루, 푸른 기억 연주하는 등 굽은 상흔 등의 표현이 새롭다. 신선하다. 시의 맛이 살아 있다. 시를 어떻게 써야 할까에 대한 물음에 정답을 내놓은 듯하여, 눈길을 끈다.
가고자 하는 곳 저 어디쯤
각인된 길 위의 지문들이 희미해진다
앞서가던 그림자는
생기 잃고 휴지통으로 버려진다
겨우내 지독한 고통 품어 온 매화향조차
어깨 한번 펴보지 못한 채 코끝에서 쓰러진다
털어낼 새 없이 뒷굽에 쌓인 곰팡내 시간을
가끔 뜨겁게 말려서 없앤다
어느 돌 틈에서 죽지 않고
뿌리내린 일상을 찾게 되면
손끝에 올려놓고 고백한다

하루를 달려온
그 안에 점점이 박혀진 발자국이
왜 그리도 빛나 보이는지.
- 「실업·2」 전문

시적 화자는 실업에 대해 잠시 탐구하고 있다. 해질녘이 지나고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하면 하룻길을 걸었던 햇살의 지문이 희미해진다. 햇살의 실업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실업의 저녁을 어둠은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닌다. 자정을 건너 까마득한 침묵을 움켜쥐고 새벽이 올 때까지 견뎌야 한다. 이렇듯 햇살의 실업도 아득한 두려움을 버텨야 한다. 햇살의 실업보다 더 아득한 현실에서의 실업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까마득하게 먼 내일의 희망에 가닿을 때까지 실업을 견뎌야 한다. 시적 화자는 그런 실업의 막막함을 “가고자 하는 곳 저 어디쯤/ 각인된 길 위의 지문들이 희미해진다”고 표현하고 있다. 취업해서 원하는 삶을 살아갈 꿈을 꾸었을 텐데 그 꿈의 지문들이 희미해지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각인된 길 위의 지문”이라는 표현이 멋지다. 시는 이렇듯 에둘러 표현해야 한다. ‘각인된 길 위의 지문’에서 취업을 위해 내달렸던 노력과 열정이 느껴져 아프다. 실업의 잔상들은 생기 잃고 휴지통에 버려지는 그림자, 겨우내 지독한 고통 품어온 매화향, 털어낼 새 없이 뒷굽에 쌓인 곰팡내 시간, 돌 틈에서 뿌리내린 일상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실업에서 탈출하기 위해 “털어낼 새 없이 뒷굽에 쌓인 곰팡내 시간을/ 가끔 뜨겁게 말려서 없”애고 있다. 실업으로 인한 서러움과 아픔을 “뒷굽에 쌓인 곰팡내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실업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멋진 표현이다. 이 지점에서 시적 화자의 어떤 의지가 보인다. 반드시 실업을 탈출하겠다는 다짐이 보인다. 다짐이 있다고 해서 실업을 탈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다짐들이 모이면 취업의 문이라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그 희망을 시적 화자는 “하루를 달려온/ 그 안에 점점이 박혀진 발자국이 왜 그리도 빛나 보이는지”로 표현하고 있다. 희미한 지문에서 빛나는 발자국으로 나아가는 시적 화자의 방향에 박수를 보낸다. 자연스런 시어 배치, 순조롭게 흐르는 시적 형상화 등이 좋은 상징의 요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