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묻지 않는다 (김귀례 시집)

꽃들은 묻지 않는다 (김귀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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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 사람이 어둠 속을 걸어간다. 한 손에 횃불,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 세계의 골목길을 헤쳐가며 그는 인간의 마음속 고통을 확인하고 그들이 지닌 슬픔을 계측하고자 한다. 그의 길이 거칠고 험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외면할 자유는 우리에게 없을 것이다. 김귀례의 시는 인간과 세계의 모순 그 아픔 앞에 예민하고 진지하다. 산 너머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꿈꾸는 것보다 눈 앞에 펼쳐진 마을의 슬픔을 선택하는 것은 불편하고 어리석은 일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선택한 ‘미럭곰차두’ 같은 고통의 자유는 소중하다. 자신이 존재하는 아쉬움 많은 이승의 시간을 두려움 없이 사랑하는 것! 그의 시가 든 횃불과 저울을 우리가 듬직하게 바라보는 이유다. 꽃과 시는 모든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영역에 핀다 - 곽재구(시인)

여전히 시대의 한 가운데를 복무하는 열혈 청년의 시가 여기에 있다. 천수천안의 몸짓과도 같이 자신의 시를 태어나게 하는 비극의 현장을 검색해 내고 놓치지 않고 있다. 운명처럼 그 자리에 앉고 눕는다. 그렇게 시의 계절들이 지나가고 나무들이 자라는 동안, 시인의 의식 속으로는 세월호와 용산과 이태원의 내면들이 김귀례 시의 시행들로 뭉쳐져 같은 위도 위에 출몰한다. 한편으로 시인은 오월 광주와 통일 한반도의 대지 위에 녹색의 꿈을 심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를 향한 자본과 국가 폭력의 현장을 고발하는 목소리들 역시 강과 산을 닮은 모습이다.
이들 시에는 이유가 있다. 인권과 평화와 통일 의지에 관한 투철한 신념과 의지이다. 외롭고 높고 뜨거운 시의 현장이 아니겠는가. - 정윤천(시인)

김귀례 시인의 詩는 기도다. 사회의 고통과 아픔을 직시直視와 직관直觀으로 바라보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길어 올린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빌리자면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붓는 구절과도 같다. 한편 가족을 향한 사랑이 숨을 쉬고 이웃의 아픔을 위무하는 내밀한 기도이다. 그의 詩에 나타난 언어적 통찰과 깨달음 또한 고통을 희망의 정수리에 옮겨 붓는 일과 같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방언과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의 노래가 이번 시집의 특징으로 올곧게 자리하고 있는 중이다. - 강대선(시인)
저자

김귀례

광주광역시에서태어나조선대학교교육대학원을졸업했다.
전남중학교국어교사로퇴직하였다.
《시와사람》을통해등단했으며,시집『촛불』,『꽃들은묻지않는다』가있다.
시빚기동인,진선미동인으로활동하고있으며한국문인협회회원이다.

목차

꽃들은묻지않는다/차례

시인의말·9

제1부산수유에게말걸기

산수유에게말걸기
당신에게
오독
매일김용균이있었다
입동경고는봄부터시작되었다
원시림에서걸어나온그녀
난민
해가지지않는배달의나라
엉겅퀴
이동권은아줌마의이름이아니다
꽃들은묻지않는다
그날그곳의온도
다음에
울컥
저기압
바람에게붙잡힌바람
내가라면을먹을때
미럭곰차두2
불쏘시개
아스퍼거증후군
오토바이
폭설
역전국밥
쌍둥이의이름은
골목길이부활할수있을까

제2부두루말이화장지를위하여

아다지오미소
두루말이화장지를위하여
미얀마양곤항에서
영혼의건축가
그많던그들은어디갔을까
우리가우리에게회초리를들면안될까요
시의눈동자
아직도
가을에는영혼을수선하게하소서
길위에서길을가르치다
정전
저울속에피는꽃
깃발
녹내장나무
상처난사과에는아버지가살아요
스무살봄을불러들여
기대어사는일은

제3부한수제배롱나무앞에서

겨울들판은나체로눕는다
약령시장을서성이는처방전
풍경
달맞이꽃
애기단풍
강아지로오셨을까
하얗고가벼운옷한벌입혀
스쿨존
돌림노래
체중계
나이아가라폭포
동백꽃두송이기도인줄아시나요
짱뚱어가춤을춘다
한수제배롱나무앞에서
다만내가아니었을뿐
은행잎의마음
무안사거리반점에서
오랜눈부심

제4부볼레로와골덴바지

볼레로와골덴바지
“예”입속말로녹아드는그녀
대답은낙엽이되어그집에도달하지못한다
그대를한줄도읽지못했네
아버지의식사
그믐달을켜다
엄마는아장아장
압력밥솥
그배는안동역에서
더도말고덜도말고
출항

작품론
슬픔을견디는두가지방법/황정산

출판사 서평

|작품론|

슬픔을견디는두가지방법

황정산
(시인·문학평론가)


1.들어가며
슬픔은인간에게아주근원적인감정이다.채울수없는욕망의빈자리에의해생기는것이바로슬픔이라는감정이다.인간의욕망은결코채울수없는결핍에의해생기는것이므로인간은이슬픔에서벗어날수없다.다만끝없는욕망의충족을통해그결핍을채울수있다는환상속에서그슬픔을잠시잊고있을뿐이다.현대사회에서인간의욕망이더욱확대되고그것을채우고자하는욕망충족수단이상품의형태로무한히확대되는것은지금이시대가그만큼더슬픔이많아지고있다는것을말해주는것이기도하다.
김귀례의시들은이슬픔을다루고있다.그가다루는슬픔은한개인의내면의슬픔에서부터가족이나사회적관계에서오는슬픔까지다양한스펙트럼을보여준다.그런점에서그의시들에나타난슬픔은복합적이고중층적이다.그가보여준슬픔에자세히다가가보자.
2.슬픔의근원
김귀례의시를읽으면슬프다.이시집의거의모든시에는슬픔이배어있다.그렇다고해서그의시들은시인내면에서우러나오는슬픔을과장하거나독자로하여금감상적으로그슬픔에빠지게하지않는다.그의시들은슬픔의근원에가닿아있다.그래서무엇이우리를슬프게하는지다시생각하게만든다.다음시는김귀례시인의시들이어떤지향을보여줄지예감하게만든다.

비밀의방에입실했어
어둠이깃을치기시작하는시간이었지

우리는시의눈동자를만나고싶어했지

누구는꽃만이세상의멍을지울수있다며
맨드라미와씨름하다가달려오고
누구는노점상할머니의추위가눈에밟혀
가슴한편에눈발을대신싸들고나타나고
누구는스승의봉분앞에서
양은도시락추억을울먹였지

돌아가서
다른문을열었어
불빛은희미했어
불법주차차량처럼일상이견인된채
그녀는밥도국도뎁히지못하고저녁을포기했지
누르지못한버튼은
누군가와함께가야만하는두려움이었던거야

인생을스스로뎁히기힘든
어두운거실속식어버린그녀를위해
별들이잠들때에야저녁밥상을차렸지

그날그녀의눈속에
젖은시의눈동자가있었어.
-「시의눈동자」전문

시를공부하기위해어둑해지는저녁시간에사람들이모여든다.모두시의눈동자,즉시안詩眼을찾고자한다.그런데거기모인시인들이시의요체인그시안을“세상의멍”이나“노점상할머니”,“스승의봉분”등슬픈것들로부터찾는다.우리의정서중가장근원적인정서가바로슬픔이기에이슬픔을말하지않고는시의눈동자를들여다볼수없었기때문이리라.시인은이시모임을끝내고들어와자신이돌봐야할가족-아마도병든노모로보이는-을위해늦은저녁을준비한다.그리고자신을기다리고있었을그노모의슬픈눈속에서시를만난다.이렇듯김귀례시인에게시는슬픔을만나는일이고슬픔을찾아가는길이다.
시인에게슬픔은우선가족으로부터기인한다.

집이기울고있다
똑같은물음이반복되며빨라진다
물음만이초가의서까래를지탱하고
물음이다시서까래를무너뜨린다

처마의윗니두개가없어진집이다
물컵에게행방을물어도알지못한다
혹한에도끄떡없던
아랫니떠난지반년이지났다

물음마저버리지않으면들어갈수없는
맨몸으로만입국이가능한그곳
...(중략)...

기울어져가는집을
버티고있는한마디
“나는다먹었다.너먹어라”
생선한토막살코기몇점남은밥상에서
미리써놓은유언장처럼
메아리되어물음위를맴돌고있다.
-「대답은낙엽이되어그집에도달하지못한다」부분

집이기울고있다는말은낡은집이허물어지고있다는말만을의미하는것은아니다.그것은가족구성원들이죽거나떠나가족이해체되고있다는말이기도하다.시인은그것을고향집에돌아와느낀다.그느낌을시인은“처마의윗니두개가없어진”모습으로비유적으로보여주고있다.결국,그기울고있는집은“물음마저버리지않으면들어갈수없는/맨몸으로만입국이가능한그곳”즉죽음으로귀결된다.그낡은집에서이제부모님중한분만남아가족간의사랑을마지막으로확인하려애쓰고있다.
그런데시인은왜시의제목을“대답은낙엽이되어그집에도달하지못한다”고길게달았을까?물음은가장쉬운관심의표현이다.그리고사람사이에물음이필요하다는것은그사이가점점멀어지고있다는것을의미하기도한다.노모는물음을통해끝없이가족간의관계를되돌리고과거의안온했던집을되살리고자한다.하지만시인은그런노모의물음에답을할수없다.낙엽이되어나뭇잎이나무를떠나듯이미이별은예정되어있기때문이다.
김귀례시인의또다른시들에서이슬픔은가족에서사회로확대된다.

썰물같은사람들만모여살까요.서해만조수위같은사람들만고시원에모여들까요조선시대걸인들의보금자리였던청계천이있는이곳종로구에희망을걸었던것일까요

다닥다닥붙은방문닫아건칠흑같은사람들한줌재를택했을까요행운의숫자일곱에희망을걸었을까요일곱이서함께손잡고고통의강넘으려했을까요
조개로바닷물퍼내는듯,외줄타기로오지탐험가로살아온그들죽음은9시뉴스에잠시회자되고말면그뿐인가요.그들앞에따뜻한숙면이부끄러운불면의밤은하루쯤이면되는건가요

...(하략)...
-「우리가우리에게회초리를들면안될까요」부분

시인은고시원화재사건으로희생된일곱사람들을생각하며이시를썼다.그것은슬프고도안타까운사건이다.특히그들의죽음은단순한사고가아니라사회가만든재난이기도하다.가난때문에고시원에모여들고결국그열악한환경때문에그들이희생되었기때문이다.하지만“그들죽음은9시뉴스에잠시회자되고말”뿐우리의뇌리에서금방사라질것이다.시인은회초리를드는심정으로그슬픔을기록한다.자신의몸에고통을각인하여그슬픔을쉽게잊지않기위해서이다.
다음시는좀더사실적이다.

그날
신문의1면에는
또다른김용균1,200명을
위패처럼나란히세워놓았다

활자처럼살아난이들이무언의말을하고있다
입사3일만에
명복을누리려고일한것이아니었노라고

“한달에이틀쉬고.급여는150만원보다조금높아.6개월에서1년정도부사수하다가사수달면300만원부터시작한대”

...(중략)...

베테랑선원의몸이
어선원들의산재박물관이되어가는지금

오늘도
3명이퇴근하지못했다
-「매일김용균이있었다」부분

김용균은2018년태안화력발전소에서산재로사망한노동자이다.시인은그사건을알린그당시신문기사의표제를그대로시의제목으로삼아현장감을강조하고그사건의슬픔을더욱생생하게전달해주고있다.그런데이사건의핵심은한사람의죽음에있지않고매일매일수많은노동자가김용균과같은위험과죽음에내몰리고있다는것에있다.이렇게많은사람에게슬픔과고통을강요하는사회가바람직한사회인가시인은우리에게통렬하게묻고있다.“오늘도/3명이퇴근하지못했다”는마지막구절은우리의가슴을저미게만든다.

3.슬픔을기억하기
슬픔에괴로워하는사람을보면사람들은빨리그슬픈일을잊으라고한다.하지만슬픔은쉽게잊히지않고,또잊는다고슬픔이사라지는것은아니다.마음깊은곳에내재하여더큰트라우마로작용한다.그렇게마음속에넣어둔슬픔은화가되어폭력적인방식으로우리의정신을파괴한다.반대로슬픔을견디는가장좋은방법은그것을기억하는것이다.기억하여우리의의식으로끌어내제어할수있는것으로만들때슬픔은비통함이되지않고삶을풍요롭게하는또다른에너지로변화된다.다음시가그것을보여준다.

두달째사과를사와요
상처난사과만사와요
이유를묻는어머니에게대답하지않아요

사과파는할머니에게서아버지를만나요
상처난사과에는아버지가살아요
팔지못한사과밥대신쌀밥을달라고떼를썼던
어린시절이불쑥가로등처럼켜져요

...(중략)...

오늘도상처난사과를사와요
아버지가우리의저녁밥이었듯이
상처난사과도밥이될수있어요.
-「상처난사과에는아버지가살아요」부분

시인은상처난사과에서아버지를떠올린다.가난때문에상처난사과로끼니를대신했던어린날의기억때문이다.그러기에상처난사과에는가난과그가난의시절을견디려는아버지의노동의고통이고스란히새겨져있다.아버지에대한슬픈기억을시인은상처난사과에간직하여잊지않으려노력한다.그노력으로돌아가신아버지는시인에게든든한삶의뒷배로아직살아계시고있다고생각된다.
김귀례시인은슬픔을기억하기위해꽃의이미지를사용하기도한다.슬픔을아름다운꽃으로기억하기위해서이다.

정원에핀꽃만이꽃이아니다
하루에서너번씩고물상저울속에
숫자로피어나는꽃

눈발흩날리는새벽골목길로출근을한다
어제저녁모아둔폐지40kg에
이천원

가슴에철심박은수술을한후에도
칼바람부는저녁까지인사하듯굽은허리를숙인다

암으로누운아들을건사하며아흔을향해가는
저울속에피는꽃

오지않는계절은없다며
꽃을피우기위해
폐지처럼버려지며폐지를줍는다

어둔골목가로등아래
아들에게봄햇살가득채워주고싶은
붉게녹슨

한송이.
-「저울속에피는꽃」전문

폐지를줍는노인의모습을보는것은슬픈일이다.아니그존재자체가슬픔이다.생활고의슬픔과노년의쓸쓸함으로견디기힘든시간을노인은보내고있을것이다.시인은그것을“눈발흩날리는새벽”과“칼바람부는저녁”이라는시간적배경으로함축하고있다.하지만시인은그슬픔을“저울속의피는꽃”으로바꾸는마술을부리고있다.폐지의무게를알리는저울속의숫자가노인에게는꽃처럼아름다운형상으로나타나고그꽃으로노인은슬픔을견디고있다.
다음시의소금꽃도이와비슷하다.

오지않는사람들은소금꽃으로피어난다

하얀결정으로부신사연들이
침몰하거나수장되거나부유하다가
이곳
아직도에도달한다

저녁이있는삶이아니라
저녁만있는삶이모여드는섬
고통없는섬이존재하지않듯이
아픔없는배는정박하지않는섬
아직도

오십년이
다시하얀기다림으로부서지고
갈등을구워야하는오늘이닳아가고
박음질당하는기다림은잠을잊는다

텅빈우편함은먼지바람이오가고
소금꽃이된아들을기다리는
등굽은제주도할망
밀려오는파도에하얗게부서진다

희망버스는아직도에아직오지않고
서해끝
격렬비열도가울음을운다.
-「아직도」전문

“아직도”는채우지못한욕망을강조해주는부사어이다.그것은끊임없이연기되는욕망충족을표현하는가장간단한말이기도하다.어쩌면우리는모두이“아직도”에서살고있는지모른다.아직도가야할곳에도달하지못한사람들이사는곳이“아직도”이다.과거의슬픔을위로하고치유하고자한“희망버스”마저아직도달하지못한그곳이또한“아직도”이다.그곳이우리역사의아주큰비극을경험한제주임을짐작할수있다.시인은그아직도의이미지를하얀소금으로보여주고있다.그하얀소금은슬픔의결정이다.슬픔이꽃으로피어바로그소금결정이된것이다.시인은우리와우리사회가겪은슬픔을아름답고햐얀결정으로만들어우리의기억속에영원히남겨두고자한다.

4.또다른슬픔과의연대
슬픔을견디는또하나의방법은다른슬픈존재들과연대하는방법이다.

구제의류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