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의 사랑 (김예린 시집)

건반 위의 사랑 (김예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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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예린 시인의 시들은 모두 시의 특질을 잘 보유하고 있다. 시의 특질 중 하나는 이미지 구현이다. 사물을 생경하게 서술에만 의존하여 꾸려 가서는 안 된다. 주제 노출을 피하고, 그 대신 이미지로 감각의 피부에 와 닿게 그려내야 한다. 늘 새로운 해석으로 독자들을 감동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삶의 의미와 손잡고 감동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되도록 리듬을 지켜 주고, 최소한 내재율이라도 지켜내어 시의 읽는 맛을 도와 주어야 한다. 이왕이면, 상징의 고리를 물고 늘어져, 다채로운 해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일곱 가지 이상의 의미하는 바가 어우러져, 상징의 빛을 발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감성을 만날 수 있고, 그 감성이 인간의 삶을 보다 섬세하게 보다 성숙하게 보다 폭넓게 바라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한다. 어느 순간, 감동의 전율이 등줄기를 훑고 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어렵지 않는 평이한 시어들을 동원했는데도, 심오한 의미가 미적 가치의 그릇에 담기도록 배려해야 한다. 시어는 되도록 싱그럽고 신선하게 배치하여, 감탄을 자아내야 한다. 김예린 시인의 시들은 이런 시의 특질들을 두루 갖추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를 읽게 만드는 매력을 갖추고 있다. 텐션을 유지하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솜씨가 세련되어 있다.
- 박덕은(문학평론가, 전 전남대 교수)
저자

김예린

ㆍ본명 김애숙
ㆍ충남 논산 출생
ㆍ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ㆍ2022년 《강원시조》 시조 등단
ㆍ2023년 《문학공간》 시 등단
ㆍ2023년 《신춘문예》 샘문학상 신인문학상 동시 등단
ㆍ남명문학상, 석정문학상 수상
ㆍ영남일보 달구벌 문예대전, 샘문학상 시조부문 수상
ㆍ현대시문학 커피문학상·삼행시 문학상 수상
ㆍ한국문학상, 청백리 최만리 시조문학상 수상
ㆍ한용운문학상 수상
ㆍ광주문인협회, 광주시인협회 회원
ㆍ한용운문학, 한국문학, 샘문시선 회원
ㆍ(사)문학그룹샘문 운영위원

목차

건반 위의 사랑/ 차례

시집을 내면서 4
축시/ 박덕은 7

제1부 빨간 등대
철없는 사랑 16
기다리는 마음 18
사랑비 19
차마 뱉어내지 못하는 이유 20
상사화 22
사랑한다는 것은 23
사랑·1 24
사랑·2 25
사랑·3 26
가을이 바쁘다·1 28
가을이 바쁘다·2 29
사랑인가 30
파도 31
바위 사랑 32
황혼의 사랑 33
크리스마스섬 34
겨울 향기 38
제2부 겨울 향기

40 상흔·2
41 공허
42 外동백
43 거울 속 장미
44 겨울 연가
46 나의 가을
48 자작나무숲
50 국화
52 나무가 운다
53 출근길
54 무위사의 봄
56 해녀의 노래
58 외로움
60 붉은 잎새의 노래
62 그림 같은 집

제3부 들길 따라
들길 따라 64
노을에서 바라보는 추억 65
쌀밥나무 66
그리운 친구 68
고향 70
달빛 내리는 가을밤 71
마음에 발이 되어 72
행복 아파트 73
흔들리는 촛불 74
이사 76
물의 여정 77
3월이 오면 78
춘삼월 80
꿈의 낙원 82
코스모스 83
순천만 84

제4부 시장통 카페
88 시장통 카페·1
90 시장통 카페·2
91 비 오는 날의 수채화
92 렌즈와 피사체
93 남미륵사
94 바람의 딸
96 한글 사랑
98 독서
99 사이버 폭언
100 건반 위의 사랑
102 모기
104 11윌 도심의 거리
106 무등산
108 여름 연가
109 사비궁 뜨락의 국화
110 일탈

평설
132 김예린 시인의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 박덕은

출판사 서평

▣ 작품론

김예린 시인의 시집 발간을 축하하며

박 덕 은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김예린 시인은 충남 논산에서 아버지 김이태 씨와 어머니 김효순 씨 사이에서 1958년 7월 17일 2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김예린 시인은 2022년 《강원시조》에 시조, 《문학공간》에 시로, 샘문학상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했다.
김예린 시인은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광주문협회원, 광주시협회원, 문학그룹 샘문 운영위원, 한용운문학 회원, 한국문학 회원, 샘문시선 회원, 한실문예창작 회원, 성스런 문학회 회장 등으로 문단 활동을 하고 있다.
문학상으로는 강원시조 시조 장원, 글나라백일장 시 우수상, 남명문학상 동시 우수상, 석정문학상 동시 우수상, 영남일보 달구벌 문예대전 수필 장려상, 포랜컬쳐 선면시화전 작품상, 샘문학상 본상 시조 우수상, 현대시문학 커피문학상 은상, 현대시문학 삼행시 문학상 동상, 신정문학상 동시 우수상, 한국 문학상 본상 시 최우수상, 산해정 문학상 수필 베스트상, 청백리 최만리 시조 문학상 장려상, 사충신 문학상 동시 우수상, 한용운 문학상 특별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자, 지금부터 김예린 시인의 시 세계로 들어가 탐구해 보기로 하자.

홍매화 향이 산사의 봄 재촉하면
지난겨울 흔적 지우려
산초 자락 깊이 파고드는 목탁 소리

가람 지키는 단청
승복에 새겨진 법구 읊고
노스님 합장에
삼라만상 혼이 깃든다

향기는 어제와 오늘의 간극
조금씩 메꾸며
시간의 길목 벗어나려 하고
매화에 감정은
삼월에 보관된 기억들
자꾸만 끄집어낸다

곁가지 세월에
잿빛으로 일그러진 허허로움
법당에 두 손 모아
참선 기도 올리면

동안거 마친 풍경 소리
잘그랑 잘그랑
허공의 암자에서 걸어 나와
수행일지 같은 둥근 소리의 파문
오후의 사슬 풀고 담장 넘는다

마른나무 뚫고 돋아나는
연록의 청아한 깨우침
낭창한 봄빛으로 낚아채
법어의 진리 새기면
내리치는 죽비소리에
겹겹 걸친 탐욕의 수피 벗는다

해질녘의 자리마다
붉은 말씀 쏟아내는
저녁의 화법이 피안으로 들어서는
어느 스님의 눈물겨운 몸짓 같아
숙연해지는 저 서녘의 자세

단조의 여운에 연꽃차 피어나듯
번뇌의 불꽃 지혜로 사그라들고
불심으로 피어나는 만다라
애기동백 여밈에 살포시 안긴다.
- 「무위사의 봄」 전문

한용운 문학상 특별작품상 수상작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무위사의 봄을 그려내고 있다. 무위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월출산 동남쪽에 있는 절이다. 그 절에 동안거를 마친 봄이 오고 있다. 가장 먼저 홍매화 향이 동안거를 마치고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것인지, 첫 연에서 그 향이 그윽하게 느껴진다. 눈보라에도 허공의 벽을 앞에 두고 좌선했을 홍매화가 산사의 봄을 재촉하고 있다. 스스로의 등짝을 후려치며 깨우침을 향해 한 잎 한 잎 꽃을 피웠을 것이다. 추위에 몸을 웅크리면서도 절절한 아우성 같은 꽃을 홍매화는 피웠을 것이다. 그 간절함 같은 홍매화 향이 산사의 봄을, 어떤 깨달음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동안거를 마친 홍매화 향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목탁 소리가 들린다. 목탁 소리는 지난겨울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 그 흔적은 무엇일까. 첫사랑에 대한 어떤 그리움일까,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일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깨달음을 방해하는 어떤 미련일 것이다. 그 미련들을 목탁 소리 두드리며 지우고 있다. 깨달음을 향한 시적 화자의 마음을 “향기는 어제와 오늘의 간극/ 조금씩 메꾸며/ 시간의 길목 벗어나려 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참 멋진 표현이다. 간극을 메꾸며 동시에 시간의 길목을 벗어나려고 한다에서 깨달음을 향한 어떤 간절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법당에는 참선 기도, 암자에선 동안거 마친 풍경소리, 연록의 청아한 깨우침과 낭창한 봄빛, 죽비소리는 탐욕의 수피 벗긴다. 해질녘의 풍경을 “붉은 말씀 쏟아내는/ 저녁의 화법이 피안으로 들어”서고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멋지다. 신선한 표현과 이미지 구현이 눈길을 끈다.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 새로운 해석이 시 전체의 생동감과 어우러져, 시의 맛을 한층 높여 주고 있다.

뽀얀
아기 속살 같은
목련꽃 속에
말간 그리움 들어 있다

유리알
반짝이는 개울가
개나리 톡톡 터지면
까르르 깔깔대던 너

산골짜기
옹달샘 같은 너의 노래

나물 씻는
아낙네 손가락 사이로
너와 나의 유년이 흐르고

단발머리
찰랑대며 강가
조약돌에 새긴 너의 이름

어느 사잇길에서
놓쳐버린 손
다시 잡을 수 없구나

함께 부르던
봄날의 교향곡
귓가에 맴돈다

너를 생각하며
홀로 부르는 노래
가슴이 먹먹하고
시야가 흐려진다

언제일까
꼭 다시 만나
아득한 그리움
덜어내고 싶다.
- 「그리운 친구」 전문

글나라 백일장 우수상 수상작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그리운 친구를 떠올리고 있다. 시적 화자는 친구를 향한 그리움을 목련꽃을 보며 회상하고 있다. 친구와 함께 골목을 왁자하게 달리며 수다떨었을 그 시절이 달싹이며 피어나는 목련꽃에서 들리는 듯하다. 봄의 속삭임처럼 피어나는 목련을 보며 시적 화자는 친구와 함께 어떤 이야기꽃을 피웠을까. 겁없이 제 몸을 열어 봄날로 들어서는 목련꽃처럼 그렇게 멋진 시절을 보내자고 다짐했을까. “뽀얀/ 아기 속살 같은/ 목련”에서 시적 화자의 생기발랄한 유년이 보이는 듯하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시적 화자도 친구와 함께 미래의 어떤 다짐들을 했을 것이다. 두렵지만 목련처럼 함께 꽃을 피우자며 굳게 약속했을 것이다. 그 약속이 이루어졌던지 이루어지지 않았던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봄을 향한 목련의 과감한 외침처럼 우리는 모두 생의 환호를 먼저 쏘아올릴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을 재고 계산했다면 목련꽃은 결코 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또 개울가에서 개나리 톡톡 터지면 친구는 까르르 웃었다. 친구는 봄의 입꼬리 같은 개나리처럼 노랗게 활짝 웃었다. 양볼 가득 봄향을 물고 까르르 웃으며 서로의 귀에 속엣말을 담았을 것이다. 노랗게 색을 켜고 환해지는 개나리처럼 친구와 함께 즐거움을 나누었을 것이다. 또 산골짜기엔 옹달샘 같은 노래가 흐르고, 아낙네 손가락 사이엔 너와 나의 유년이 흐르고 있다. 그런데 어느 생의 사잇길에서 놓쳐 버린 친구의 손을 다시 잡을 수 없어 슬프다. 홀로 부르는 노래에 가슴이 먹먹하다. 다시 만나고픈 그리움이 휘몰려오고 있다. 아주 자연스러운 시적 흐름과 시적 형상화가 이미지와 손잡고 그리움의 공간을 창출해 내고 있다. 그리하여, 유년시절의 모습을 한 폭의 그림으로 빚어내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만개한 벚꽃이
하늘문 열면
성난 파도는 온순해지고
바다는 푸르고 은밀한 언어로
그 여인을 껴안는다

혈육이 어찌 자식뿐일까
징글징글하게 서러운 수십 년 동안
서로의 체온과 피와 울음을 나눈
바다와 떨어진 적이 없다
해조음과 과장된 물새들의 노래가
비 오는 날이면
자꾸만 몸에서 흘러나온다

테왁에 꿰어 맨 삶
닳고 닳도록
세월 발라먹고
파도 살라먹고

저 윤슬처럼 죽음의 안쪽에서도
반짝이는 그 무엇이 있다는 건지
붉은 심장 쏟아내는 해질녘은
날마다 죽음을 연습한다는데
내가 나를 조문하듯
칠성판 등에 메고
서럽게 쪼아대는
처연한 몸짓으로

의혹과 궁금과 질문으로 살아가는
그 생과 사의 경계 지운
깊은 심연에서 끌어올린
사랑의 흔적
망사리에 담길 때마다
수평선 가르는 저 숨비소리

못다 한 사랑
모래톱에 숨겨두고
시리게 가슴에 새겨논 이야기
불턱에 달궈 녹여내고 있다.
- 「해녀의 노래」 전문

2023년 한국문학상 본상 시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해녀에 대해 관찰하고 있다. 해녀는 자신의 숨소리를 물질과 함께 바다에서 건져올린다.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이 숨비소리일까, 비명 같은 어떤 절절함이 숨비소리일까. 그만큼 고독해야 하고 그만큼 간절해야 바다에서 숨비소리를 멀리 깊게 내보낼 수가 있는 것이다. 때로는 전사처럼 죽음을 몰고 오는 파도를 넘고 넘어야 다시 뭍으로 오를 수 있다. 자식을 먹여 살리고 내일을 길어올리는 그 숨비소리가 제목에서 들리는 듯하다. 시적 화자는 “바다는 푸르고 은밀한 언어로/ 그 여인을 껴안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 언어는 숨비소리일까, 물질로 채취한 해산물일까, 둘 다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 언어가 더 신비롭고 두렵다. 시적 화자는 바다를 “징글징글하게 서러운 수십 년 동안/ 서로의 체온과 피와 울음을 나”누었다고 말하고 있다. 멋진 표현 속에서 아픔이 느껴진다. 얼마나 바다와의 인연이 깊었으면 “해조음과 과장된 물새들의 노래가/ 비 오는 날이면/ 자꾸만 몸에서 흘러나”올까. 시적 화자의 고단한 삶이 보이는 듯해 먹먹하다. 테왁에 꿰어 맨 채 세월 발라먹고 파도 살라먹는 여인, 칠성판 등에 메고 서럽게 살아가는 여인, 사랑의 흔적 망사리에 담고 사는 여인, 못다 한 사랑 모래톱에 숨겨 두고 사는 여인, 시리게 가슴에 새겨논 이야기를 불턱에 달궈 녹여내는 여인. 해녀에 대한 묘사가 기시감에서 벗어나 신선한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새로운 해석이 빛을 발하고 있다. 독자들이 해녀의 모습을 그리다가 해녀의 삶과 애환 속으로 소르르 빨려들도록 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철썩철썩 이야기 풀어놓는
파도의 입술을
먼 먼 기억의 배경으로 깔아놓고
가쁜 숨 가라앉힌다

입에 붙은 말을 손끝으로 집어
서로에게 건네면
향 깊은 말맛에 침이 고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