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음에

살아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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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오늘의 시와사람 158권. 최혜령 시집. 최혜령 시인의 첫 시집 『그리운 금강산』(2021)은 자연을 질료로 시를 형상화하고 있다. 자연과 우주를 통해 시인의 심상을 그린 그의 작품들은 전통적 정서를 바탕으로 자연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이번 시집 역시 자연을 제재로 하여 상상력을 펼친 시가 대부분이다. 자연과의 교감을 시도하며 자연을 새롭게 해석하여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발견하여 시인의 정신과 하나되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자연과 하나되고자 하는 세계관을 오롯하게 드러낸다.

더불어 생태학적 상상력을 노래한 시편들에서는 시인 특유의 화법으로 생명성을 탐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편들에서 끊임없이 자연을 관찰하고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친화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이번 시집에서 특히 눈에 띄는 시적 경향은 전통음식에 대한 시인의 관심을 통해 ‘전통’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선이 새롭게 다가온다. 청국장, 젖산균, 효소, 묵은지, 무청시래기, 우거지 된장국, 누룽지, 숭늉, 수정과 등 전통음식의 숙성을 성장하는 인생으로 비유하여 삶의 깊이와 넓이로 시세계를 확장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저자

최혜령

ㆍ전북정읍출생
ㆍ원광대학교국어국문과졸업
ㆍ시집『그리운금강산』,『살아있음에』

목차

살아있음에/차례


시인의말·5


제1부내가너에게장미꽃을부친다
14오미자꽃필무렵
15꽃샘
16까치샘
17민들레홑씨되어
18그리울때
19등꽃
20제비꽃
21풀꽃품다
22텃밭에앉아
23달개비의꿈
24머위에게


제2부내장산에서보낸한철
26내장산에서보낸한철
십오야27
아궁이속으로28
소금29
덖음30
따개비연가31
쪽배연가32
별이되기위해33
수평선바라보기34
한그루소나무라면35
거꾸로본불꽃놀이36
한바퀴돌아37
구절초필무렵38


제3부징검다리건너
징검다리건너40
섬과섬사이달리다41
베풂42
발효43
사랑했던기억으로44
게발선인장핀겨울나기45
46개기월식보다가
47한편더
48석양그리다
49눈보라치다
50달무리진바다
51관매도바라보기


제4부맹물맛으로
54맹물맛으로
55대추
56겨울나무
57무등산1
58무등산2
59무등산3
60무등산4
61무등산5
62탈을벗고
63인간적인맛
64맨발로

제5부살아있음에
살아있음에66
질경이의꿈67
돌탑쌓기68
호흡맞추기69
댓잎차에적신하루70
오디의계절71
매실의계절72
오행초의하루73
하지너머텃밭에서74


제6부섬진강저편
섬진강저편76
바다77
은행줍다가78
상수리한알79
상강과입동사이거닐다80
눈발이휘날리듯81
그대안의우주82
83소등섬할매의꿈
84비움
85버드나무가서있는풍경


제7부봄이라는이름으로
88봄이라는이름으로
89냉이캐다가
90뽀리뱅이와춤을
91청국장띄우던날
92오월의첫째날숲을그리다
93젖산균살아있다
94묵은지부부
95한술더
96무지개로짠한끼


제8부매미의하루
98매미의하루
99장마끝자락
상사화필무렵100
바다가보이는찻집에서101
배롱나무꽃그늘아래102
감자의눈103
말바우장터가는길104
유서한장105
호젓한길106
연못으로가는길107


제9부우거지에된장풀고
우거지에된장풀고110
누룽지와숭늉111
수정과에적신겨울112
봄동에게햇살을113
욕지도에닿아114
해금강에가다115
사과를닮다116
봄,빗속에서117
죽음을위해118
오늘이라는하루119
제10부녹음속에잠기다
122녹음속에잠기다
123말바우떡집지날때
124다시시작하자,천년의사랑
125느티나무


작품론
126자연과생명의관조와죽음에관한사색/강경호

출판사 서평

자연과생명의관조와죽음에관한사색
-최혜령시집『살아있음에』


1.들어가며
최혜령시인의첫시집『그리운금강산』(2021)은자연을질료로시를형상화하고있다.자연과우주를통해시인의심상을그린그의작품들은전통적정서를바탕으로자연을새롭게해석하였다.이번시집역시자연을제재로하여상상력을펼친시가대부분이다.자연과의교감을시도하며자연을새롭게해석하여다양한자연의모습을발견하여시인의정신과하나되고자하는시도를보여준다.이러한모습을통해자연과하나되고자하는세계관을오롯하게드러낸다.
더불어생태학적상상력을노래한시편들에서는시인특유의화법으로생명성을탐구하고있다.이러한시편들에서끊임없이자연을관찰하고보다가까이다가가려는친화력이돋보인다.그리고이번시집에서특히눈에띄는시적경향은전통음식에대한시인의관심을통해‘전통’을새롭게이해하려는시선이새롭게다가온다.청국장,젖산균,효소,묵은지,무청시래기,우거지된장국,누룽지,숭늉,수정과등전통음식의숙성을성장하는인생으로비유하여삶의깊이와넓이로시세계를확장하는노력이돋보인다.
그가몹쓸병마와싸우면서병상에서쓴것으로짐작되는삶과죽음에관한사색들은죽음앞에선인간의정신성이어떠한가를말해주는듯하여눈시울을적시게한다.
필자는그의운명소식을듣고가슴이메어왔다.그러므로이글은최혜령시인의영전에바치는헌사가아닐수없다.

2.자연을바라보는시선
첫시집『그리운금강산』에서자연을바라보는최혜령시인은사대부들이자연을바라보는시선을닮았다.절벽위의소나무를“묵향깊은/삶의여백”(「여백을위해」)처럼기품을지닌선비의모습을드러낸다.그러면서도현대적인한국화의모습으로해석하고있어시인만의새로운시선을보였다.이번시집에서도피지배계급과시인자신의모습으로의오버랩,우주와함께숨쉬는초자연적인모습,영혼의투사,설화적상상력등작품마다현대적인의미와정서로시인의개성있는시선으로응시하고있다.

마음속에연못을담는다

싸리꽃의흰핏줄을타고
조릿대휘적신손끝으로두드리면

연둣빛잎새의현(絃)을켜는숲이열린다

천년묵은옹이도
한(恨)풀어팔뻗는솔

수액떨군양수(羊水)속
잉태된수련은
봉우리의달을품는다.
-「그리울때」전문

화자는연못을마음속에담는다.이때연못은자연으로서의성격을지닌것으로자신의마음이연못에흡수됨을뜻한다.연못과같은성질을닮고자하는화자의마음이연못에기운다는의미이다.이어서“싸리꽃의흰핏줄을타고/조릿대휘적신손끝으로두드”린다고하는데이역시싸리꽃의핏줄을통해조릿대같은손끝에이입됨으로써화자가자연에동화되었음을말한다.그러자“연둣빛잎새의현(絃)을켜는숲이열린다”고한다.‘잎새’를현악기의줄로인식하는화자의태도가신선하다.이로인해“숲이열린다”고하니,화자의손끝에숲이열린다고말하는시인의상상력이마법같다.빼어난상상력은소나무의성처이기도한옹이가“한풀어팔뻗는”다고한다.그뿐만아니라수련이“봉우리의달을품”음으로써자연과자연이일체감을갖는다.자연과인간,자연과자연이서로하나가되는인식태도가놀랍다.
「맨발로」는공룡이살았던백악기의시간을만나는놀라운경험을들려준다.

진달래꽃비적신남파랑길한모퉁이
공룡발자국찾아
맨발로걷는다

켜켜이쌓아올린암벽틈새로묻힌
뼈,지층의책장을펼치는
상족암기슭에닿아
파도치는
돌웅덩이움푹팬발자취따라간다

순간에서영원으로
파묻히고싹튼화성의씨앗들과만나
백악기로접어들즈음

해식동굴뚫는태초의빛이다가와
그대영혼깨운다.
-「맨발로」전문

‘상족암’은경남고성군하이면에있으며바닷물로깎인해식동굴이있다.화자는이곳에서맨발로공룡발자국을찾아걷는다.자신의몸으로백악기의공룡들과온몸으로만나고자한다.“돌웅덩이움푹팬발자취”는공룡들이살았던시간과만날수있는흔적으로“순간에서영원으로/파묻히고싹튼화석의씨앗들과만나”고자한다.공룡이살았던1억년전후의시간은인간의시간으로는헬수없는영원과같은시간이어서공룡들의흔적을통해영원을만나고자하는행위는영원을꿈꾸는인간의꿈을느껴보고싶은것이다.이곳에서만난‘해식동굴’또한영원처럼오랜시간의결과이므로화자는“해식동굴뚫는태초의빛이다가와/그대영혼깨운다”고함으로써영원과같은시간과의조우로도저히다가갈수없는영원을체험하고자한다.그럼으로써“그대영혼깨운다”고하는것이다.
이작품에서시인은자연에새겨진백악기의생명이남긴흔적인‘화석의씨앗’과오랜시간이만든‘해식동굴’과의만나는행위를잠든자신의영혼을깨우는것이라고한다.그럼으로써이작품에서의자연은신성하고영원한불멸의존재로인식되고있다.
최혜령시인의자연을바라보는시선은「질경이의꿈」에서“밟히고또짓밟혀도/이땅위에시린발자취로남아”있다며시련을극복하면서살아가는민초의모습으로노래하고있다.「매실의결실」에서“내삐친탯줄로연결된모성의은하계”라고노래하며‘매실’을‘모성의은하계’라고한다.그리고시큼한맛이‘숙성’시키는힘이되어보다성숙한존재로인식하게하는계절이「매실의계절」이라고한다.「연못으로가는길」에서‘연못’을“찰나에서영원으로멈춘듯/동심원을그리는물결”이라하여연못의파문을‘영원’으로형상화하고있다.자연을보이는대로바라보지않고높은차원의형이상학적인정신으로인식하는시선이예사롭지않다.

3.생명성탐구
이번시집에서특히눈에띄는작품경향은생명성탐구의시편들이다.첫시집에서는거의보이지않던생태학적상상력이유독이번시집에서도드라진것은시인의의식변화때문이다.이를테면시인의생명에대한의식이어떤계기를통해싹텄거나.생명성과가장밀접한자연을시적으로형상화하는과정에서자연스럽게생명의식이유발되었다고볼수있다.생명성은존재를규명하는기본적인요소이다.생명이있음으로해서자연과우주,그리고인간존재에대한의식을가질수있다.
최혜령시인의생명의식은자연을통해드러난다.특히‘봄’이라는계절의변화에다시생명활동하는모습에서발견한생명성은시인의상상력을통해자신만의목소리로현현한다.

봄동이깨어나고있다

눈발삼킨겨우내,
언땅의가슴팍을두드려뿌리를곧추고살다
잎사귀의실핏줄틈새로
도랑물풀리듯
맥박이뛰는소리,
잎샘이켜는
바람소리와뒤섞여굽이치다

헐벗은배롱나무의뿔솟은가지끝햇살한잎틔운
입춘의한나절,
텃밭가득
날개돋친푸른수액을흔들어기지개켠다.
-「봄동에게햇살을」전문

생명의계절이라고하는봄날,날이따스해지자“언땅의가슴팍을두드려”“잎사귀의실핏줄틈새로”“백박이뛰는소리”가들리고“봄동이깨어나고있다”고노래한다.이렇듯새싹이새순을피워올리는모습을“도랑물풀리듯”“바람소리와뒤섞여굽이”친다고한다.때는입춘,아직날씨가쌀쌀하지만,“헐벗은배롱나무의뿔솟은가지끝햇살한잎틔운”한나절,“텃밭가득/날개돋친푸른수액을흔들어기지개켠다.”만물이깨어나는약동의계절봄의환희를매우힘차게노래한이작품은단순하게날이풀려새싹이피어나고있다는가시적인계절의변화만을보여주는것이아니다.‘춘하추동’이라는자연법칙의순환속존재의뜻을되새겨본다는의미를지닌다.
「등꽃」은보다생명성에대한구체적이고깊은사색을형상화하고있다.

등나무그늘아래
봄비

어깨를감싼덩굴손의감촉
호롱불켜듯
눈뜨는꽃망울로하늘빛창을밝힌다

얽히고설킨둥치에서길뻗쳐올라
구름의둥지튼꽃무리속

새벽깨친새소리에온숲이나부낀다.
-「등꽃」전문

이작품의시간적배경또한봄이다.봄비가내리자“어깨를감싼덩굴손의감촉/호롱불을켜듯/눈뜨는꽃망울로하늘빛창을밝힌다”며시인만의감각을선보인다.“어깨를감싼덩굴손의감촉”이특히감각을통해봄을맞는등나무의생태를그려낸다.그리고‘호롱불’을‘꽃망울’로비유한시각적이미지가더욱등나무꽃의모습을환하게하여이작품의정서를활달하고생기발양하게한다.특히“얼키고설킨둥치에서길뻗쳐올라/구름의둥지튼꽃무리”에이르면사물을형상화하는시인의상상력은현상적인등나무의모습을‘구름의둥지’,등나무꽃을비유적으로시각화하여매우생명성을강조하고있다.그리고마지막연에서“새벽깨친새소리에온숲이나부낀다”하여등나무의꽃무리와새소리가대비되어환호작약하는생명성으로변화시켜버린다.
앞에서살펴본작품들은모두봄날생명의환희를노래하였다.최혜령시인의생명시는봄날을시적배경으로한작품들이대부분이다.“침샘가득고인쌉싸름한맛에/해묵은세포를깨우는모성의생명력”(「인간적인맛」)으로해석한봄의방가지똥을노래하였고,“목련의솜털난귓불이붉어지는입춘”(「맹물맛으로」)이라고노래한목련꽃의자태가봄의정취를돋군다.「보리뱅이와춤을」에서는온갖봄비에웃자란것들과함께춤을추듯생명의계절을환호하는모습을“순간의향연을위해/청록의숨구멍을열어”두었다고한다.「냉이를캐다가」에서어린시절냉이를캐던봄날을추억하는화자는“좁쌀냉이의꽃대올리던시절”을그리워한다.
이번시집의시제인「살아있음에」는각별하다.시인이타계하기전에부를나누고작품을배치한시집의제목을「살아있음에」라고붙였기때문이다.이작품은‘왜시집의제목으로정했을까?’를묻게된다.삶과죽음이서로대척점에있으면서도삶과죽음은늘등을함께대고있기때문이다.“흙과내몸의체온도뜨겁게맞춘다”는인간과자연이하나였고동일성을이루던때이다.그러므로자연으로돌아갈것을시인은짐작하고있었는가싶은생각이든다.“새순의푸른지느러미로유동하는은어떼”로의미화된‘나무이파리’혹은‘생명의약동이가장활발한때’.그래서“들숨날숨의피리소리듣는날”“별무리무성한/태초의하늘숲은열린다”고한다.가장원시와가까운날자연과만날수있다는화자의소망이투사되어있다.바로그런날“살아있음”에충만하다고한다.자연과의합일이진정한살아있음이라는시인의해석을통해자연과인간이나누어진것이아니라인간도자연됨이진정한살아있음이라는것이다.

4.음식의감각
한국시사에서100여가지가넘는음식을시속에등장시킨시인으로는단연백석을들수있다.백석의음식들은그의고향평안도의토속음식으로향토적인정서와전통성을투사하고있다.평안도방언으로버무린그의작품들은평안도만의고유한지역성을잘발효시켰다는평가를받고있다.
최헤령시인의이번시편에서도수많은음식이등장하고있다.그의작품들은향토성과전통의정서보다는음식이갖고있는특성을통해인간의삶을노래하고있다는측면에서최혜령시인만의시적세계를발현하고있다.

노란살갗에와닿는
햇살과바람으로익혀거둔알콩이네
텃밭가득
메주콩들,볏짚속둥지틀어
서로몸을맞대고뜨거운체온으로발효될
즈음

내맘속에묻어둔구수함의원천은
흙내음뒤섞인온돌방의체취닮은그대,
수천년뿌리내린
생의그루터기에걸쳐둔구름실타래같은
효소의진을뽑아낸
고초균인가.
-「청국장띄우던날」전문

“텃밭가득”콩이자라고있다.“햇살과바람으로익혀거둔알콩이네”는자연이키운콩들로햇살과바람그자체라고할수있다.“볏짚속둥지”에서“서로몸을맞대고뜨거운체온으로발효”된다.이렇게발효된콩으로만든청국장을먹고살아온화자는“내맘속에묻어둔구수함의원천은/흙내음뒤섞인온돌방의체취닮은”청국장,즉콩이다.우리민족을인정(人情)이많은민족이라고한다.이인정을꾸미는정서의하나가‘구수함’이다.각지역사람들이구사하는언어마다나름대로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