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오르는 클라이머 (정순영 시집)

허공을 오르는 클라이머 (정순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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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집 『허공을 오르는 클라이머』는 〈회불사 가는 길〉, 〈닭 잡는 날〉, 〈노을〉 등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

정순영

ㆍ전남 화순 출생
ㆍ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교육방법 전공)
ㆍ인천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교육행정 전공)
ㆍ인천광역시교육청장학관 및 초등교장 역임
ㆍ황조근정훈장 수상. 경기·인천사도대상 수상
ㆍ《시와사람》 시 부문 당선
ㆍ《시조시학》 시조 부문 당선
ㆍ광주광역시문인협회 회원
ㆍ광주광역시시인협회 회원
ㆍ나주문인협회 회원
ㆍ화순문인협회회원

목차

허공을 오르는 클라이머 / 차례


시인의 말 · 6

제1부

꽃피는 소리를 스케치하다
세상은 Y
허공을 오르는 클라이머
모탕 아버지
바다는 투석 중이다
장맛비로 오시네
별의 눈물
이별은 야행성이다
얼음새꽃
나는 아직 사랑이 아니다
나무 시인
횡단보도
마당으로 스며드신 아버지
부재
밥상보
빗방울 외계인
푸른비 족장의 고인돌
팔월의 둥근 향연
둥근 식사


제2부

공주역 전봇대
부서지는 일
배롱나무 외숙모
눈동자 감옥
배롱나무꽃
망초 간이역
영산강 1
영산강 2
봄꽃대전의 전황 보고
도라지꽃 연서
한여름의 정염
구름
회불사 가는 길
나의 타인
멈춤
영산강변 억새
금목서


제3부

쏟아지는 별빛 한 바작
별
한 톨의 꿈
등받이
혼밥
겨울나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가슴에 별 하나
계절의 부고
우수雨水
집요에 관하여
닭 잡는 날
CCTV 사랑법
수평선
볼펜
시간은 늙지 않는다
신지해수욕장에서
잉걸불 타오르듯
입하立夏에 서서


제4부

돈오頓悟
숲
여기는 어디일까요
봄의 밀서
장구벌레의 꿈
꽃받침의 지문
노을
시파리
싸리비
하늘은 푹푹 찌고
리모컨
참깨가 운다
봉선화
운주사에 가면
뻐꾹나리 연서
담쟁이
지렁이
술보다 달빛
네비게이션


평설
그 푸른 문턱’에서 발견하는 ‘시’ / 김종

출판사 서평

정순영 시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시적 의문을 하나하나 이야기의 형식으로 흐름을 만들었고 시적 대상과의 내재된 의도에 맞춰 그려내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사물간의 통섭인데 이는 서로 다른 사물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세계를 그리거나 찾아내는 일이라 하겠다. 시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주제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언어적 흐름이고 시간과 공간의 이동과 반복을 통해 존재의 연대적 의미를 완결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정순영 시인이 펼친 이번의 시집은 첫사랑에 비견되는 자리인데도 그의 시적 표정과 언어가 이후의 더 많은 성과를 위한 여러 징후들을 너끈히 지시한다고 하겠다. 그만큼 정순영 시인의 시적 가능성과 완성도가 눈여겨진다는 점에서 아낌없는 격려를 드리는 것이다.
- 김종(시인, 화가)


평설

‘그 푸른 문턱’에서 발견하는 ‘시’
-“눈물의 냄새”와 “꽃 피는 소리”를 위하여


김 종
(시인, 화가)


언어적 조건에서 시인은 행복한 관찰자다. 시인은 관찰된 사물들을 언어라는 소쿠리에 담아서 목표 삼은 감동을 독자에게 노래의 형식으로 제공하는 사람이다. 시인의 눈길이 닿는 곳은 언어도 생각도 푸른 서정으로 이내 몸을 바꾼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사물을 끌어들여 언어를 통한 마법의 권능을 행사하는 자이다. 시인의 언어에 오르면 사물은 지금까지의 모습을 새롭고도 특이하게 드러내며 시의 대기권에서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정순영 시인은 사물에의 눈빛과 표정을 모아 구름 위에서 군무하듯 시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정순영 시인에게는 더없이 간절한 천석고황의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이 세월을 뗏목 삼아 과거를 흘러가다보면 거기에는 여전히 줄지 않는 그리움과 기다림의 시간이 숨 쉬고 있다. 정순영 시인의 머리 위에도 그리움과 기다림의 시간이 월계관처럼 올려져서 노래된 것이리라. 이럴 때면 정순영 시인을 포함한 뭇 시인에게 그리움이란 에너지가 없었다면 이날껏 줄지 않는 시적 서정이 어찌 존재했을까를 생각하게 되고 그리움을 곡조 삼아 시인은 더없이 행복한 노래를 부르게 된다. 퍼내도 퍼내도 줄지 않는 그리움, 마셔도 마셔도 다하지 않는 그리움, 이 같은 것을 일용할 양식 삼아 정순영 시인이 찾아간 기다림의 끝자리에는 과연 어떤 그리움이 숨 쉬고 있을까.
‘시의 푸른 문턱’에서 1일 1작을 즐기는 시인, 나이 70에 등단한 늦깎이 시인, 그럼에도 누군가를 위해 가슴 시리게 젖을 수 있는 뜨거운 한 편의 시가 소망인 시인, 이 사람이 바로 이 자리의 주인공 정순영(1949~) 시인의 초상이다. 이 많은 세월을 일기를 쓰듯 하루 여덟 시간 이상을 독서하고 시를 창작하면서 책장을 넘기듯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의 일상에 경의를 표한다. ‘나이 70’은 성인 공자의 시대에는 바라보기도 힘겹던 ‘고래희古來稀’라는 나이였고 공자 자신도 거기에서 3년을 더 살았을 뿐이다.

1일 1작으로 ‘시의 푸른 문턱’을 넘으며
공자 당대의 평균수명이 30-35살인 것을 감안하면 성인의 말씀에 새삼 공감하는 바가 크고 공자 또한 엄청 장수하셨다고 하겠다.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는 하지만 이 나이는 정순영 시인에겐 작품 창작을 시작하는 초입의 나이에 불과하다. 다시금 반복하지만 그가 시단에 소개되고 가꾸기 시작한 시인에의 꿈은 1일 1작으로 ‘시의 푸른 문턱’을 넘나드는 일이었고 이것이 그가 요량한 하루 일과의 고지였다. 그러면서 욕심을 하나 더 보탠 것이 “누군가를 위해 가슴 시리게 젖을 수 있는 한 편의 뜨거운 시”에의 소망이었던 것이다. 누구든 인생 후반기를 앞두고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데 정순영 시인이 우리에게 밝힌 포부는 당차면서도 싱싱하기 이를 데 없다.
이력 상의 정순영 시인은 조선대학교와 인천대학교 등의 교육대학원에서 ‘교육방법론’과 ‘교육행정론’을 전공한 교육자이다. 그 분야에서 그는 인천광역시교육청장학관과 초등교장 등을 역임하였고 그로 하여 경기ㆍ인천사도대상과 황조근정훈장 등을 수상한 분이다. 그러던 그가 문학 분야에다 몸을 던져 인생후반기를 어찌 하면 의미 있게 놀아볼까를 요량(?)하면서 《시와사람》에서 시, 《시조시학》에서 시조로 소개를 받아 우뚝한 시인이 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투입하고 있다.
더러 인용하는 말이지만 미국의 시인 사뮤엘 울만이 자신의 시 「청춘」에서 “청춘은 인생의 어느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고 노래한다. 그러면서 ”세월은 우리들의 이마에 주름살을 만들지만 열정의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라는 시구를 고스란히 정순영 시인에게 돌려드리고 싶다. 이제 우리는 그의 시적 포부인 ‘시의 푸른 문턱’에서 그가 펼쳐낸 시적 오지랖이 얼마나 볼만한가를 독서할 차례다. 정말이지 그의 작품들 하나하나의 표정과 눈빛과 언어적 감도가 얼마나 정순영 다운가를 살펴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펼친 시작품들은 첫눈에 든 작품부터가 언어의 ‘푸른 문턱’을 넘나드는 바람일 수도 있고 파도일 수도 있고 아침저녁으로 뜨고 지는 ‘일월日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무슨 췌언贅言이 필요할 것인가. 우리네 속담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라고 했는데 정순영 시인은 자연 연령은 ‘고래희’지만 그가 시단에 던진 작품들의 야심은 연둣빛 ‘떡잎’이 연상되는 새파란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언어적 표정과 눈빛에 바짝 긴장하면서 의자를 끌어당겼고 유의하여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우리는 그만큼 독자를 향한 그의 다부진 시적 포부로 세상 사물의 구석구석을 뒤지면서 늘품 있는 대화를 어떻게 시작하는 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무엇을 볼까. 어디에 리듬을 올릴까. 편 편의 자리마다 무슨 말을 들려줄까. 생각해 보면 시작품을 포함한 이 지상의 문학은 편 편을 넘길 때마다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할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이미 본격문학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의 사물 모두가 시인의 시적 소재이고 관심거리인 것을 감안하면 추상적인 사물 하나에도 시인의 눈길은 자별하기가 이를 데 없다. 정순영 시인은 자신만의 언어로 상상을 통한 사물의 감각화를 도모하고 독자적 의미를 담아내는 데까지 강물 같은 눈길을 이어가고 있다.

매화나무 아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

웃음소리일 거란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어미 닭을 따라가는 병아리들일까요

동그라미를 그리다가 그만, 둥글고 물렁한 엄마 얼굴을 그렸습니다

제 살을 찢고 나오는 아픔의 굵기는 얼마나 될까요

아릿한 눈물의 냄새를 스케치합니다

그리움이 들숨으로 스며듭니다

당신을

꽃 피는 소리를 스케치하고 있습니다
- 「꽃피는 소리를 스케치하다」

매화나무 아래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를 듣는 화자는 그 소리의 내력을 “그리움이 들숨으로 스며”드는 일이라 생각하고 ‘꽃 피는 소리’와 ‘당신’을 스케치하는 중이라고 했다. 화자가 꽃피는 소리를 스케치하기까지는 웃음소리일 거라는 짐작도 해봤지만 빗나갔었고 어미 닭을 따라가는 병아리가 아닐까에 이르렀지만 그 역시도 빗나갔다는 것으로 독자의 예상을 여지없이 비틀어버리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가지고도 정순영 시인의 시적 재치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감 잡게 된다. 들리는 소리가 혹시 동그란 것은 아닐까도 생각했으나 ‘그만’ ‘둥글고 물렁한 엄마 얼굴만을 그’리고 말았다는 거였다. 화자는 엄마가 ‘나를’ 낳을 때를 생각한다. “살을 찢고” 분만할 때의 아픔이 얼마나 굵었던가를 생각한 화자의 이야기는 더 이어지면서 눈물의 아릿한 냄새를 스케치하고 스미듯이 그리움을 들이키는 쪽으로 물 흐르고 있다. 여기까지에 이르러 ‘생각’의 미세하고도 미묘한 부분까지를 독자의 예상 밖으로 되돌리는 그의 시적 순발력 또한 돋보인다고 하겠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부분을 천연덕스럽게 끌어내어 자신의 어법대로 상 차려내는 비밀함이 있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꽃피는 소리를 스케치한 정순영 시인은 자신을 엄위 하는 주변의 사물들과 사소한 표정 하나까지도 새롭고도 특이하게 끌어내는 언어적 명민함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펼쳐내고 있다.


“나무의 생각은 하늘에 뿌리를 내린다”

작품에서 말하는 ‘꽃피는 소리’란 기실 현실에서는 들을 수 없는, 화자 마음에만 존재하는 한 줄기 바람 같은 느낌일 것이다. 일상에선 그저 그러려니 한 사소한 것들도 이들이 보인 사물적 현상들이 심봉사의 안맹을 틔울 만큼의 언어적 사실이자 묘미를 만들어간다는 의미이다. 꽃피는 소리에 걸어 웃음소리와 어미닭 따라다니는 병아리를 견인하여 무심코 그리던 동그라미에서 어머니의 둥글고 물렁한 얼굴을 그리고 말았다는 센스도 이 작품의 표정을 입체화 시키는데 상당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무심코 떠올린 엄마의 얼굴에서 살을 찢고 자식을 꺼낼 때의 아픔의 굵기를 생각하는 화자가 시작품에서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언어적 수완이자 오지랖이 이쯤이라면 대단하다는 생각 또한 감출 수 없다. 이나저나 시인은 꽃피는 소리로 하여 ‘그리움의 들숨’을 스케치하게 되고 그 결과 어머니 ‘당신’을 소환하였던 것이다.

생각이 나무를 자라게 한다
나무는 Y , Y는 Yes
햇빛이 목을 간지럽혀도
별빛이 허리를 감아도
바람이 입맞춤해도
그래, 하면서 나무는 Y로 산다
긍정은 무슨 빛깔일까
달빛 무성할 때, 햇살 다정할 때면
나무의 생각은 하늘에 올라 뿌리를 내린다
하늘이 푸르게 나부낀다
문득 길 가던 사람이 나무 그늘에 들면 금방 푸른 빛에 젖는다
나무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Y,Y,Y,
내뿜는 날숨이 싱싱하다
들숨에 허공이 흔들린다
세상은 Y
가지가 푸르다
- 「세상은 Y」

「세상은 Y」라 하고 하늘 향한 나무가 Y자로 팔 벌린 모습에서 위의 작품이 시작되고 있다. 나무가 자라는 모습은 햇빛과 별빛과 바람을 한 묶음으로 다듬어내는 일에 다름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