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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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주나 은하계의 크기를 상정해보면 지구는 밤톨처럼 작지만 평생 여행만 다녀도 세상 구경을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다. 정애경 시인은 생활 주변의 화초와 나무를 보면서 생명체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한다. 주변에 있는 온갖 잡풀과 벌레들까지도 사실은 인간과 공존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뭇 존재들에 값어치를 매길 수 있는 사람은 시인이다. 대상이 생명체이든 사물이든지 간에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 정감있는 언어로 말을 건네는 시인의 작업은 이 세상이 비정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정치상황이나 경제상황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지만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시편을 읽으면 독자는 많은 위안을 받을 것이다. 힘을 낼 것이다.
- 이승하(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집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는 생명성을 모색하는 시편들이 주류를 이룬다. 원초적인 생명성 탐구와 더불어 위기에 처한 생명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제시하기도 하고,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시집의 한켠에는 존재의 실존방식을 통해 보다 나은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른바 견인시 형식의 시편들은 매우 값져보인다. 서정시의 본질이 절망에서 희망을, 불화에서 화해를, 그리고 유토피아를 향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면, 실존방식을 드러내는 정애경 시인의 성찰과 통찰의 치열성은 ‘왜 시를 쓰는가?’에 대한 진중한 질문이 될 것이다. - 강경호(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저자

정애경

ㆍ전남순천출생.
ㆍ2022년《시와사람》신인상수상.
ㆍ시집으로『향기나는입술』,『도둑고양이가물고간신발두짝』,『발칙한봄』,『내몸엔모서리가없다』등이있다.
ㆍ〈시나무〉동인.
ㆍ〈시와사람시학회시목〉회원으로활동하고있으며,현재광양시에거주하고있다.

목차

내몸엔모서리가없다/차례



시인의말

제1부벚나무모텔

벚나무모텔
매미는부재중
색맹의남자
위로가필요해
해체중
꽃시에만나요
겹벚꽃
상가앞가로수등걸에선
감정나무
희망택배
봄길
밤에하나님이오줌을누는이유
꽃살내음
봄,블루스
돌,등에핀멍
반려伴侶
재회
빈집
연꽃
더부살이


제2부흰꽃이필때

흰꽃이필때
문득
사랑
그대생각

오후11시
눈속에갇힌달
데이다
폭설
복숭아
사랑을줍다
이른안부
무지개꽃
남자인척하는남자
완벽한선물
밤나무골아랫동네경로당
태양초고추
콩나물
발칙한홍매화
홍매화


제3부내몸엔모서리가없다

내몸엔모서리가없다
아홉수끝
新築
재건축공가
줍다
내입에선가끔삑사리가났다
사막모래뼈
종의기원
섬돌
가을을깎다
압축되어가는중
십자가
이젠자유
버거운하루칼춤을춘다
배탈난냉장고
폐선로위에선명한바람자국
동백
그숲엔목어가산다
수면내시경
꽃같네


제4부추억부자

추억부자
운명교향곡
그숲,이별준비중입니다
낙조를바라보며
아이스아메리카노
11월가을비
비의속성
흰독말풀
새벽의사람들
엄마의장독
선물
수면마취
쑥대밭
눈송이
물의집
가을저격

평설
생명성탐구와존재의실존방식/강경호

출판사 서평

작품론

생명성탐구와존재의실존방식
-정애경시집『내몸엔모서리가없다』


강경호
(시인,한국문인협회평론분과회장)


1.
시인은사물과세계를있는그대로바라보지않고자신의총체성을통해육화된언어로시를형상화시키는사람이다.총체성은시인이살아온과정에서형성된정서와사상으로이루어진것으로시인만의개성있는목소리를낼수있는단초가된다.
정애경시인의언어는매우감각적이다.도발적이기도하고원초적감각을보여주기도한다.정애경시인의이전시집『발칙한봄』에서‘입술’‘매혹’‘장미여관’‘구애’‘숨결’‘절정’등의시어가말해주듯에로티즘을통해생명성을드러낸다.시집『내몸엔모서리가없다』에서는생명성을모색하는시편들이주류를이룬다.원초적인생명성탐구와더불어위기에처한생명들의안타까운상황제시,생명의아름다움을노래하는작품들로구성되어있다.
시집한켠에는존재의실존방식을통해보다나은삶을지향하는,이른바견인시형식의시편들은매우값져보인다.서정시의본질이절망에서희망을,불화에서화해를,그리고유토피아를향한목소리를내는것이라면,실존방식을드러내는정애경시인의성찰과통찰에관한치열성은‘왜시를쓰는가?’에대한진중한질문이될것이다.
정애경시인이지금까지천착해온‘사랑’을주제로한시편들은보다시적완성도가높고‘말하는방식의새로움’이라는시적형식의성숙함이엿보인다.전통적인‘사랑’을노래한시편들과는거리를두고있기때문이다.

2.
생명성은존재의근본이다.존재는생명을가졌을때비로소자신의삶을영위할수있다.예로부터생명은신적존재만이부여할수있다고여겨왔다.정애경의생명성탐구는원초적감각을통해생명성의본질을묘파하고,생명의아름다움과환희,그리고생명의상처와강인함을일깨우는데초점이맞춰져있다.「콩나물」에서‘콘돔’‘발기’‘귀두’등성애와관련된에로티즘적상상력과「발칙한홍매화」에서‘자궁’‘홍조띤볼’‘엷은입술’‘불지핀가슴’에서보듯‘홍매화’가꽃을피우는것을“앞섶풀어헤치는”여성으로의인화함으로써도발적인언술을하고있다.다음의「밤나무골아랫동네경로당」은원초적생명성을감각적으로형상화하고있다.

뻐꾸기우는유월이면울울창창
뒷산밤나무밭은한창신혼이다
후끈달아오른
물오른잎과잎을밀착,꽃잎비벼들추면
질펀히녹아흐물거리는바밤바맛,
그남자거친압력에뿜어낸비릿한양물에
코를처박고헤어나오지못하는신생꿀벌떼,
아랫마을경로당마당에은은히실어나르는
눈치코치없는마파람
가을이돼서야열린자궁을빠져나온알밤
한광주리
반질반질윤기나게실한귀두를매만지는손길
풋밤이익어가던한창시절도
이젠,
까맣게잊어버린흐린기억
수컷향진하게풍겨오는유월밤나무골백발노인,
주책없이화장실만들락거리고
-「밤나무골아랫동네경로당」전문

이작품은‘밤나무’와‘신생꿀벌떼’라는자연의구성원들을통해음양의섭리를보여줌으로써생명성을고양시키고있다.일년중유월은모든생명들이생기발양하게약동하는계절이다.그러므로“뻐꾸기우는유월이면울울창창”이고,“뒷산밤나무밭은한창신혼이다”라고하는것이다.여기에서시적화자가주목하는것은“밤나무”이다.“후끈달아오른/물오른잎과잎을밀착,꽃잎비벼들추면/질펀히녹아흐물거리는바밤바맛,”이느껴진다.건강한‘밤나무잎과잎을밀착,꽃잎비벼’라고성애를연상시키는모습을통해‘질펀히녹아흐물거리는바밤바맛’이라고함으로써생명성을극대화시킨다.특히‘바밤바’아이스크림의달콤한미각적이미지를구사하여성애의황홀함과즐거움을원초적생명성의본질로묘사하고있음은매우탁월한비유이다.“그남자거친압력에뿜어낸비릿한양물”을통해생명의단초를열기때문이다.뿐만아니라“비릿한양물”은또다른생명의양식이되고있다.꿀벌들이몰려와양물,즉꿀을먹기위해코를처박고있는모습을절정에이른봄날의환희를보여주기에부족함이없다.
이렇듯뒷산밤나무밭에서밤나무와꿀벌들이한창생명운동을하고있을때마파람이“아랫마을경로당마당에”밤나무밭의생명활동의정서적사건들을실어나른다.그러나‘경로당’은인생의봄날이지나간노인들이모이는공간이어서“눈치코치없는마파람”이라고하는것이다.즉,“풋밤이익어가던한창시절도/이젠,/까맣게잊어버린흐린기억”만남아있기때문이다.
이작품은“수컷향진하게풍겨오는유월밤나무골”과“백발노인”을대비시켜우주적질서에놓여있는생명성을구체적인자연현상을통해명쾌하게노래하고있다.
정애경시인의생명성시편작품세계는생명성을고양시키는것만이아니다.「벚나무모텔」은벚꽃이피는이른봄날,“벚나무모텔은만석이었다”고하듯벚꽃이만발한벚나무를‘모텔’로비유하여손님이많은것으로의인화하였다.그러나재개발공사기계음과벚나무모텔을가지치기로베어내어모텔의손님이었던벌과새가어디로갈것인지를통해생명의위기를모색하고있다.「해체중」에서도재개발로사라지는아파트들과함께아름드리소나무,벚나무가전기톱에“어깨가싹둑잘려나”가는폭력성을형상화시켰다.「상가앞가로수등걸에선」에서는“팔목이잘린채외다리로버티고있는가로수”등생명성모색시편의한켠에서는인간의탐욕에의해자연의상징이랄수있는나무들이잘려나가고있는모습을고발하고있다.「매미는부재중」에서는이러한비극성과폭력성을구체적으로보여주고있다.

울음이메말라버틴손톱을놓아버렸다
여름이끝나갈무렵
한번은천둥으로울고
한번은장대비로기울고

살아있다는방증을서로의울대를높이는일

나의나무가잘렸다
비통할슬픔의진물을닦을시간도없이
이제천둥의외침도쩌렁쩌렁했던울대의각도,
흡수되지못하고고공행진이다

허공에소음이직진하는결따라
나의나무는풀썩,드러눕는다사지가절단난채
어제날던새가종적을찾아왔건만휑한허공을
날개로긁고있다

허물어진헐린바닥을포크레인이긁고있는가장자리
소처럼덩치큰,나무가뼈만앙상히말라가고있다
톱날에마른상흔만흥건한채
-「매미는부재중」전문

‘만물유생萬物有生’이라하여모든생명체를인격적으로대했던동양사상의핵심은자연과인간의조화로운상생이다.그러나자본주의와함께해온서구의근대近代는인간중심의휴머니즘으로자연을재화적가치,그리고개발의대상으로인식해왔다.그러므로오늘날자연과인간의조화로운상생을지향하는탈근대는성찰을배경으로하고있다.
「매미는부재중」이라는시제가암시하듯자연의구성원인‘매미’의부재는근대의폐해,즉인간의탐욕에의해사라지는생명의상징이다.시적화자에게‘나무’는자신의자아이기도하다.그런까닭에‘나의나무’라고한다.그런데“나의나무가잘렸다”.한때는매미가울었던나무이다.‘울음’은존재를드러내는방식이다.그러므로매미가“살아있다는방증을서로의울대를높이는일”이라고하는것이다.매미의생존의현장인‘나무’가잘려나감으로써“비통할슬픔의진물을닦을시간도없이/이제천둥의외침도쩌렁쩌렁했던울대”를흡수하지못한다.“허물어진헐린바닥을포크레인이긁고있는가장자리/소처럼덩치큰,나무가뼈만앙상히말라가”는중이다.나무는“톱날에마른상흔만흥건한채”버려져있다.생태학적인측면에서나무들의생명을위협하는인간의행위를문명비판적시각으로응시하고있다.‘나무’로상징되는자연을지키고자하는시적화자의절실함은‘나의나무’라고나무에대한각별한마음이엿보인다.그런데나무가톱날에사지가절단나풀썩드러눕는모습에얼마나비통하고고통스럽겠는가.“어제날던새가종적을찾아왔건만휑한허공을/날개로긁고있”을뿐이다.시적화자의상처와슬픔을통해인간의잣대로재단되어사라지는생명의울음임을강조하고있다.

3.
인간은끊임없이보다나은세계를지향한다.유토피아를꿈꾸는것이다.그러기위해서는삶의환경뿐만아니라먼저수행과성찰을통해인간다움을지켜나가는노력이반드시동반되어야한다.인간다움이란,공자가말한‘이립而立’,불혹不惑,지천명知天命,이순耳順은단순히현상적이고생물학적인시간개념이아니다.삿됨이없는삶을살아가고자하는인간의높은정신적경지를말한다.자신의삶을후회하지않기위해서이다.그러기위해서마음수행은물론성찰하는삶을살아야한다.
정애경시인의시적경향에서돋보이는것은실존방식에대한시인의성찰의태도이다.이러한시편에서특히눈에띄는중심시어는‘모서리’이다.주지하다시피모서리는모가나있다.‘모’는쑥틔어나온귀퉁이로정신적으로성숙하지못한사람을일컫기도한다.‘모’를시속에끌어들인「가을을깎다」에서“아직깎아내지못한나를”“모나지않게,돌려깎아/모서리를”깎는다고한다.깎아내는행위의대상을모서리로인식하고있어,깎음으로써모나지않게한다고한다.「버거운하루칼춤을춘다」에서도“밤을깎으면밤이되고/사과를깎으면사과가된다”고하여,‘깎음’이라는행위의대상을모나지않게함으로써모서리를버린다고한다.‘깎음’이수행하는과정으로인식되고있다.
다음의「내몸엔모서리가없다」는‘모서리’의의미를통해시인이지향하는실존방식을오롯하게보여준다.

나는모서리가없다
손톱발톱머리카락까지도
둥근기둥을따라더듬어가면
부드러운곡선에선찰랑거리는소리
그속엔
해,달한줄기둥글게말아져혈관에고여
붉은혈맥뿜어올린나만의꽃,피웠다
가끔덜여문언어가튀어나와모서리가된말,
이젠다듬어져야하는저무는나이,
둥글게밀어올린허공에둥글어져버석해진
모서리없는고목의휘어진척추처럼
내몸엔모서리가없다
-「내몸엔모서리가없다」전문

이작품은이번시집의표제작이다.흔히시인들이시적지향을대표하는시를시집의표제작으로사용하는경우처럼정애경시인의시집『내몸엔모서리가없다』에서시인의시적무게를어디에두고있는지를짐작하게하는작품이다.
“나는모서리가없다”고시의첫행에서매우간결하게시적화자가지향하는삶의방향을말하고있다.‘모서리’는앞에서밝힌것처럼돌출된,원만하지못한사람의성품을말한다.그런데시적화자는“손톱발톱머리카락까지도/둥근기둥을따라더듬어가면/부드러운곡선에선찰랑거리는소리”를들을수있다.신체의모든부분이둥글어부드러운곡선을하고있음으로찰랑거리는소리를내는존재가되기위해서는‘부드러운곡선’과‘찰랑거리는소리’가의미하는것처럼성품이원만할때가능하다.
그러나시적화자는“가끔덜여문언어가튀어나와모서리가된말,”이있다고진술한다.그러기때문에더욱부드러워져야한다.시인의고백처럼“이젠다듬어져야하는저무는나이,”인까닭이다.젊은시절튀는피처럼모서리가된말들을내뱉어내기도하였지만이제는내적성숙을위해“둥글게밀어올린허공에둥글어져버석해진/모서리없는고목의휘어진척추처럼/내몸엔모서리가없”기를소망하는것이다.
다음의「내입에선가끔삑사리가났다」는‘삑사리같은말’,즉잘못된허튼말에대해성찰하고있다.

살아오면서얼마나많은말을했는가
그러나얼마나많은할말이남았는가

내입은피아노같아서
때론조율되지않은건반에서
삑사리같이
말이쏟아져나오기도하였다

두들기고씹고지져대고나면
후련했던적도있었으나

입속이따가웠다
입천장이헐어있던날도있었다

음이탈로고막을막아야했던
피아노앞에서
내입의삑사리를떠올려보았다

오늘은꽃을보러가기로한다
꽃을보아야꽃을말할수있음이었으니

조율사는지금얼크러진피아노의입안에서
삑사리를찾아내어
입을조율하고있는중이다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