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꽃 물들다 (김영자 시집)

시꽃 물들다 (김영자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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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메리카 쪽에서는 시의 이미지를 매우 중요시한다. 시는 이미저리다. 이렇게 단정할 정도로, 시에서의 이미지 구현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사실 시는 주제 노출할수록 시의 특질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시는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건들지 않고 에둘러 표현할수록 감칠맛이 있다. 주제를 건들지 않고 이미지로 그림을 그려 감성에 호소하는 장르가 바로 시이다. 따라서 시는 머리의 장르가 아니라, 가슴의 장르이다. 가슴을 감동시키고 전율케 해야 시는 빛을 발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시적 형상화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아야 한다. 사물과 사색과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 놓아야, 신선미가 있다. 기시감에서 벗어나 감탄을 자아내는 새로운 해석과 착상이 함께할 때, 시는 독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러면서 그 안에 감동의 전율까지, 매끄러운 리듬까지 보탤 수 있다면, 더욱 더 완성도 높은 시가 될 것이다. 김영자 시인의 시들은 이러한 시의 특질을 고루 구비하고 있어서, 한층 돋보인다. - 박덕은(문학박사, 전 전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저자

김영자

ㆍ《현대문예》 추천신인상 수상
ㆍ제3회 박덕은 전국백일장 동상
ㆍ한국 여성 문학대전 최우수상
ㆍ모산 문학상 최우수상
ㆍ코로나 문학상 시조 부문 은상
ㆍ독도 문학상
ㆍ남명문화제 시화문학상 산해정인성문화진흥회상
ㆍ이준열사 문학상 우수상
ㆍ빛창 문학상 우수상
ㆍ제1회 김해예총 시화전 문학상 문예상
ㆍ광주문인협회 이사
ㆍ광주시인협회 이사
ㆍ한실문예창작 회원
ㆍ둥그런 문학회 회장

목차

시꽃 물들다 / 차례



작가의 말 ·
축시/ 박덕은 ·


제1부

3월 바람꽃
모란
봄빛
4월의 노래
백목련
홍매화
진달래
찔레꽃
어느 봄날
4월 등꽃
벚꽃
4월, 꽃 진 자리
봄밤
민들레
오월
오월의 노래
봄나들이
꽃잔치
봄 길목
오월의 시


제2부

버드나무
느티나무·1
느티나무·2
가을
담쟁이넝쿨
맨드라미
장미 넝쿨
6월의 장미
해바라기
장맛비
가을 속으로
나팔꽃
7월 산책길
초가을
단풍숲
억새
늦가을
시월의 어느 멋진 날
옥수수·1
옥수수·2


제3부

새해 아침에
설날
호수와 목련
겨울 빈 숲에는
그 겨울 파편 속에서
펑펑 눈 내리는 날
눈 오는 강둑에서
그 겨울 끝자락
독감
등대·1
등대·2
등대·3
이준 열사
그대에게 가는 길
그리움
노무현
치과에서
화실
꽃차 마시며
복숭아
그날이 오면
윷놀이
모산 품자락


제4부

목포 대교
여수 요양 병원
완도숲
시꽃 물들다
촛불 행진
나와 강아지
허공에 젖지 않는 새
영랑생가
하나되는 봄날, 딸에게
달려간다
추억의 양동시장
계절의 길목에서
제암산 휴양림에서
가을 피정
이끼


평설/ 박덕은

출판사 서평

▣ 작품론



김영자 시인의 시집 발간을 축하하며



김영자 시인은 전남 송정리 원동에서 아버지 김휘병 씨와 어머니 이옥임 사이에서 1955년 3월 15일에 4남 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 광주로 유학 와서 학교에 다녔다.
1979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취미는 노래 부르기, 시 낭송 등이고, 인생관은 세 가지, 즉 까르페 디엠(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살아라), 아모르 파티(행복하게 즐기며 살아라),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이다.
문학상으로는, 제3회 박덕은 전국백일장 동상, 한국 여성 문학대전 최우수상, 모산 문학상 최우수상, 코로나 문학상 시조 부문 은상, 독도문학상, 남명문화제 시화문학상 산해정인성문화진흥회상, 이준열사 문학상 우수상, 빛창 문학상 우수상, 제1회 김해예총 시화전 문학상 문예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문단 활동으로는, 《현대문예》추천신인상 수상으로 문단 데뷔한 이래, 광주문인협회 이사, 광주시인협회 이사, 한실문예창작 회원, 둥그런 문학회 회장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지금부터, 김영자 시인의 시 세계를 탐구하기로 하자.

오는 듯 가 버리는 봄날
창가에 요염한 자태 뽐내며
고요히 꽃잎 펼친다

모서리 없는 향기처럼
아침 수건을 망각이라 부르며
함박웃음으로 너울 너울

고독이 눈빛으로 흘러
누군가의 사랑 애타게 기다리다
포효하는 치맛자락 쓸어안고
둥글게 녹아 내린다

수줍은 옹알이 문턱 넘고
꽃입술의 결백 물기로만 남아
더 고요 깊은 곳
별처럼 아슬히 푸른 울음소리

핏빛 노을 속으로 걸어가는
그리움 잉태하고도
더 이상 절규하지 않아

홀연히 춤추다 지는
저 황홀한 절망의 꽃.
- 「모란 」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창가의 모란을 관찰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봄날에 어떤 아쉬움이 있다. 사랑과 인연이 머물지도 못하고 떠나버려서 아쉬운 것일까, 첫사랑만 그리워하다 떠나버린 봄날이 서운해서일까,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아쉽다. 아쉬움 때문인지 화자는 '오는 듯 가 버리는 봄날/ 창가에 요염한 자태 뽐내며/ 고요히 꽃잎 펼친' 모란에 눈길이 간다. 시적 화자는 '아침 수건을 망각이라 부르며/ 함박웃음으로 너울 너울'거린다. 망각은 어떤 일이나 사실을 잊어 버림을 뜻하는데 함박웃음과 맞물려 있다. 화자는 무언가를 잊고 싶은 것일까. 그 잊음으로 인해 함박웃음을 불러오고 싶은 것일까. 그러고 보니 '모서리 없는 향기처럼/ 아침 수건을 망각이라 부'른다. 향기에 모서리가 없으니 찔리지는 않겠다. 역설적으로 화자는 어떤 아픔에 심장이, 가슴이, 어제가 수도 없이 찔림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찔림까지 내려놓고 함박웃음으로 비우고 싶은 것이다. 허나 내려놓겠다고 방향을 세운다 한들 마음처럼 쉽게 되지는 않는다. 애써 웃음을 지어 보지만 '고독이 눈빛으로 흘러/ 누군가의 사랑 애타게 기다리다/ 포효하는 치맛자락 쓸어안고/ 둥글게 녹아 내린'다. 시적 화자는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한 것일까. 이별하고도 사랑을 잊지 못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적막으로 깊어진 불면의 밤을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먼먼 훗날까지 버텨야 하나. 한때는 사랑과 함께 달빛 영토 안에서 달달하고 하얀 속엣말이 서로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었을 텐데, 이제는 그 밤을 홀로 건너야 한다. '꽃입술의 결백 물기로만 남아/ 더 고요 깊은 곳/ 별처럼 아슬히 푸른 울음소리' 내는 모란. 여기서 별은 환한 이미지가 아니다. 푸른 울음소리의 별이다. 모란에게도 어떤 아픔이 있었던 거다. '핏빛 노을 속으로 걸어가는/ 그리움 잉태하고도/ 더 이상 절규하지 않'는 아픔이 있었던 거다. 그리움을 잉태했으면 그 그리움을 끝까지 밀고 가면 될 텐데 그리움을 붙잡을 수 없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어쩔 수 없이 놓아줘야만 할 이유가 있었던 걸까.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홀연히 춤추다 지는/ 저 황홀한 절망의 꽃'이 시적 화자이며 모란인 것이다. 요염한 자태로 고요히 꽃잎 펼치는 모란, 모서리 없는 향기처럼 함박웃음으로 너울거리는 모란, 포효하는 치맛자락 끌어안고 있는 모란, 아슬히 푸른 울음소리 내고 있는 모란, 노을 속 그리움 잉태하고도 더 이상 절규하지 않는 모란, 홀연히 춤추다 지는 저 황홀한 절망의 꽃 모란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낯설게 하기 기법을 바탕에 깔아 싱그런 표현들이 눈길을 끈다. 시의 맛이 살아 있어, 읽어 가는 재미가 솔솔하다.

1
먼동 트이는 아침
눈부신 햇살 주워담은 개천가
물비늘의 눈빛 반짝거린다

왁자한 소문 울컥이는 어둠 닦고
너스레한 노점 아지매들의 혈색 좋은 웃음소리
삼백육십오 일 좌판 깔고 흥정한다

줄줄이 엮은 부양가족 품기 위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시커멓게 멍든 주먹 가슴으로
애환의 물살 건넌다

생채기로 찢긴 날카로운 비수
아린 침묵 꿰매며
도마 위에 납작 엎드린 오후
삐걱거리는 허리 통증 할퀴고 간
파닥이는 은빛 나래짓
황금빛 노을 떨이한다.

2
세느강이라 불리는 양동 다리 옆
역사 깊은 광주의 푸른 기상 안고
무등의 젖줄기로 태어난
화이트칼라 미모와 흰 베레모 뽐내는
중앙여고

양동 다리 밑
떡볶이와 오징어 튀김도
덩달아 튀어올라
발랄한 안색으로 무더기 수다 떤다

철썩이던 광주천 계곡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버들강아지 빛으로 남아 있다.
- 「추억의 양동시장 」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양동시장 정경을 스케치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먼동 트이는 아침, 양동시장 옆 개천가에서 눈빛 반짝거리는 물비늘을 만난다. 양동시장은 '왁자한 소문 울컥이는 어둠 닦고/ 너스레한 노점 아지매들의 혈색 좋은 웃음소리/ 삼백육십오 일 좌판 깔고 흥정하'는 곳이다. 그 시절 양동시장은 광주의 중심이며 정(情)의 중심이었다. 사람 냄새 나고 인정이 살아 있어 마음이 외로울 때면 양동시장에 가서 그 허기진 마음을 채우기도 한 곳이었다. 시장의 상인들은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시커멓게 멍든 주먹 가슴으로/ 애환의 물살 건'너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 숭고한 희생과 헌신 덕분에 자식들은 공부하고 내일을 꿈꾸었다. 양동시장에 가면 겨울에도 바닥에 깔아놓은 양동이가 손님들을 가장 먼저 반겨주었다. 이보다 더 낮고 추운 바닥은 없다며 양동이에 담긴 미역, 파래, 바다의 말씀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삶의 바닥으로 떨어진 사람도 양동시장에서 힘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 무릎 웅크린 양동시장이 추위를 견디며 하루를 살아내는 그 성실함과 안간힘이 가슴을 울렸다. 양동시장의 한낮은 기울고 '도마 위에 납작 엎드린 오후/ 삐걱거리는 허리 통증 할퀴고 간/ 파닥이는 은빛 나래짓/ 황금빛 노을 떨이'하면 시장의 문을 닫을 시간이 다가온다. '도마 위에 납작 엎드린 오후'라는 표현이 멋지다. 생선을 손질하는 지친 상인의 손길과 하루일을 마치고 해 질 녘으로 가는 오후의 걸음으로 읽힌다. 양동 다리 옆에는 '역사 깊은 광주의 푸른 기상 안고/ 무등의 젖줄기로 태어난/ 화이트칼라 미모와 흰 베레모 뽐내는/ 중앙여고'가 있다. 시적 화자가 그 학교를 다녔을 법한 추억이 그려져 있다. 화자는 학창 시절에 '떡볶이와 오징어 튀김도/ 덩달아 튀어올라/ 발랄한 안색으로 무더기 수다' 떠는 즐거운 시절을 보냈다. '떡볶이와 오징어 튀김도 덩달아 튀어'오른다는 표현이 재밌다. 깔깔대며 즐거웠을 그 시절의 추억이 잘 그려져 있다. 시간이 흘러 먼 훗날이 되어도 그 시절의 추억은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버들강아지 빛으로' 남아 있다. 눈부신 햇살 주워 담은 개천, 반짝거리는 물비늘의 눈빛, 왁자한 소문 울컥이는 어둠 닦고, 혈색 좋은 아지매 웃음소리, 시커멓게 멍든 주먹 가슴, 아린 침묵 꿰매어 도마 위에 납작 엎드린 오후, 황금빛 노을 떨이하는 은빛 나래짓, 무더기 수다 떠는 발랄한 안색, 버들강아지 빛으로 남아 있는 광주천 계곡 등등 표현 하나 하나가 싱그럽다. 신선한 표현 발굴이 시인의 가장 소중한 임무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독자에게 던져 주고 있다.

시린 눈발 날리는 날
외로운 사시나무 되어
송송 뚫린 빈 가슴
빛 잃은 낮달 된다

순백의 그림자
잠재울 수 없어
강둑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다

내면에 흐르는 풀씨의 노래
적막 강산에 뿌리 내리는
맑은 시어의 집
은빛 출렁 출렁

허공에 못질하는
칼바람 속에서도
고요의 여백으로
파릇 파릇 살아 숨쉬며

천사의 나래짓으로
생명 불러오는 불씨
하얀 묵시록 말씀이 된다

세월의 굴레 소용돌이치듯
얼킨 실타래처럼 풀어헤친
흰 상념들

아무 생각 없이
홀로 도는 바람개비처럼
왜 거기 서 있는지도 모른 채
무얼 찾고 있는 걸까.
- 「눈 오는 강둑에서 」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눈발 날리는 날 강둑에 서 있다. 날씨도 추운데 왜 홀로 강둑에 있을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걸까. 시적 화자는 '외로운 사시나무 되어/ 송송 뚫린 빈 가슴/ 빛 잃은 낮달' 되어 강둑에 있다. 아무도 없이 쓸쓸함을 견디며 눈발을 헤쳐 나가는 시적 화자가 안쓰럽다. 외로운 사시나무, 송송 뚫린 빈 가슴, 빛 잃은 낮달이 모두 화자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어 외로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눈발이 더 날릴 수도 있을 텐데, 어서 따스한 집으로 가야 할 텐데 시적 화자는 무슨 일인지 '강둑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다. '순백의 그림자/ 잠재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