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응시와시간의기록일지
-정영숙시집『이제숲은점등을시작한다』
강나루
(시인,문학평론가)
1.
정영숙의시집『이제숲은점등을시작한다』는시인이세계를바라보는태도와사유의방향을분명하게드러낸다.시인이사유하는시간은존재와존재를이어주는매개로작용하는또하나의존재이다.꽃이피고지는순간,동물의숨소리,인간이남긴기억과흔적은모두시간속에서의미를가진다.그렇기에시인은꽃과동물,인간을관찰하고알고자탐구하듯,시간또한관찰하고탐구하려시도한다.시간의앞에서함부로말하지않고,세심하게듣고바라보며,마치의례에참여하듯공손하게태도를유지하는근간이그러하다.그러나시인의시간에관한사유는무례하게빤히쳐다보는것이아니라,그것이매개하고자하는여러대상을관찰함으로써이뤄진다.
자연은살아있는생명의장으로나타난다.직박구리,목련,민들레,여우,멸치,나무와꽃들은시간을품고존재를드러내는증언자이다.시인은그증언을받아적으며,작은생명까지도존엄한존재로대우한다.그렇게자연은시속에서생명의경이와탄생과소멸의질서를보여준다.
시간은또한인간의기억을매개한다.어린시절의놀이터,잃어버린가족과이웃,고단한생계의풍경은모두시간이지나면서도사라지지않는흔적이다.시인은그흔적을다시불러내어삶의의미를확인한다.기억은단절되지않고현재와이어지며,미래를구성하는자원이된다.그래서이시집은개인의삶을넘어세대와공동체의시간을함께안아낸다.
시인은현실의풍경을그대로받아들이는데서멈추지않는다.여우를마주치는순간,멸치똥을고르는노동,이국의풍경과우주의상상은모두현실과허상을잇는통로가된다.시간은이통로를열어주는힘이다.현실은시간속에서환상으로이어지고,상상은다시현실을새롭게보게만든다.
『이제숲은점등을시작한다』는자연과인간,실제와허상을모두시간이라는축으로엮어낸다.그과정에서시인은시간을두려워하거나회피하지않고,존중하며맞이한다.그래서이시집은결국시간을향한경건한태도의기록이라할수있다.
2.
정영숙시인의시선은자연의미세한생명과풍경을포착하고그속에서존재의의미를탐구하는데,시인은직박구리,목련,심해의생물등하찮게보이는것이라도시간을품은존재로서존중하며,생명의경이와내밀성을기록한다.그과정에서생명자체가지닌질서를존중하는태도를드러낸다.
목련이터지고
직박구리한쌍
새하얀침구에
신방차렸다
햇볕도눈부시게
그들을비추고
하얀드레스입은
신부처럼단아한모습
발길멈추고예식을본다
봄바람에축가가흐르고
셔터터지는소리
부케한다발날아간다
-「직박구리」전문
화자는자연의짝짓기를혼례로치환하고있다.목련의꽃잎은“새하얀침구”가되고,가지위의둥지는“신방”이된다.이장면은생물학적번식의기록이아니라,삶이새로운질서로이어지는성스러운의례로격상된다.흰목련의색채는순결의표상일뿐아니라,겨울의공백을지나온봄의강렬한빛을상징한다.눈부신빛이“그들을비추”는순간,화자는오래응시하지못하고“발길을멈”춘다.그멈춤은곧자연앞에서취해야할겸허의태도이다.
인간의결혼식은주인공들을비추는조명과음악이필수요소인데,“햇볕도눈부시게/그들을비추”며조명이되고,“봄바람에축가가흐”른다.자연의사건에화자의인간적인식이덧입혀지면서,생명은하나의합주속에서숭고하게드러난다.또한이어지는“셔터터지는소리”는인간적개입의흔적이지만,방해가아니라기록의행위로서,의례의순간을장면으로간직하게하는장치이다.“한다발날아”가는부케는이혼례가단발성이아닐것이라는화자의확신으로보인다.이렇듯자연의번식과인간의의례가겹친자리에서시인은시간의바통은다음존재에게전해지는연속성과반복성을가짐을확인한다.
이시에서가장중요한것은화자의위치다.그는주례도,주인공도아닌‘증인’이다.“발길멈추고예식을본다”는진술은관찰을넘어선증언의태도다.자연을소유하거나지배하지않고,다만그존엄한순간을경건하게목격한다.이증인의자리가바로시인이시간을대하는태도를정의하는지점이다.
한편,시인은다음의「심해」에서인간적감각과사고가닿을수없는세계를무대로삼아,존재의또다른양식을드러낸다.
몇백억년의물질을
어둠의세계에가두고
단한줄의빛도허락하지않는곳
눈도귀도필요하지않아
오직감각의더듬이로
일밀리움직일때십년쯤
그렇게수억년을살아가는생물은
그곳이세상의전부일거야
복잡한생각과일머리같은건없어도
수압에익숙한존재로
진화해온은밀한곳
비밀을털지마
그깊고깊은속은세상의전부
때론,혼자이고싶어
-「심해」전문
화자는까마득한시간과깊이로인해인간의생애나역사적척도가전혀작동하지않는심연을제시한다.이세계는“눈도귀도필요하지않아”서“오직감각의더듬이”만이감각기관으로써사용되는,인간이전적으로의존하는감각이무가치하다.생명은촉각적감각을통해세계를탐지하며,빛과소리대신진동과접촉으로자신을연명한다.“일밀리움직일때십년쯤”이라는과장된표현은인간적시간체계와다른리듬을상기시키며,지연과정지가오히려삶의방식으로작동하는질서를환기한다.
이러한세계를화자는외부에서함부로해명하려하지않는다.“그곳이세상의전부일거”라는화자의감상은이세계가그내부에서완결되는독립적생존의질서를가졌음을강조한다.이어서“비밀을털지”말라는부탁은화자의것인지심해생물의것인지모호하다.이모호함은이독백이독백이아닌군집의권위를갖는듯하여심해의은밀함은폭로하거나해체해야할대상이아니라,보존하고존중해야할질서로여겨진다.“때론,혼자이고싶”다는독백또한발화자의모호함에의해심해라는공간의진술을넘어,인간내면의깊은고독을드러내는고백으로여겨지고,나아가자연의은밀한심연은인간의내면적심연과겹쳐지며,서로의거울이된다.
지금까지살펴본바와같이「심해」는빛이닿지않는바다의깊은공간에서살아가는존재의방식을기록하면서,동시에인간내면의고독과내밀함을비추는은유적장치로기능한다.시인은그세계를폭로하지않고,존중하며,경건하게응시한다.
지금까지다룬두편의시는자연을하나의증언자로불러내는데,정영숙의시선은그증언을받아적는태도,즉공손함에서비롯된다.사소해보이는생명과풍경을존엄한기록으로남기는일,그것이바로이시집의출발점이다.그렇기에『이제숲은점등을시작한다』의1부는존재앞에서멈추고듣고기록하는법,곧시간과생명앞에서공손히서는방법을독자에게일깨워준다.
3.
2부에서는일상의사소한풍경속에서신비를발견하고,현실과환상의경계를드나드는체험을보여준다.시인이응시하는사건들은하나같이평범한순간들이지만시간을매개로하여낯설고새로운차원으로확장하는데,그과정에서일상은평범한기록의차원을벗어나,환상과성찰이교차하는무대로변모한다.이처럼2부는일상이라는틀을통해세계의내밀한차원을열어보인다.
똘망한눈동자는여시가아니다
브이라인확실한턱과주둥이
웅크린작은몸
멀지않은숲에서마실나온강아지처럼
자동차불빛에반짝이는눈과
한참동안숨죽이고대화를나눴다
여우꼬랑지가풀밭에
그림을그린다
크리스탈호수위에붉은물감을풀어놓고
슬그머니멀어져가는노을과
붓칠한여우꼬리는숲으로멀어져갔다
-「여우를보았다」전문
「여우를보았다」는일상의순간을환상으로바꿔내는시적전환의방식을잘보여준다.여우의외양은처음에는세밀하게묘사된다.“브이라인확실한턱과주둥이/웅크린작은몸”이라는구체적이미지속에서여우는현실의한장면으로다가온다.그러나곧화자는그것을“강아지처럼”이라고치환하며경계선을흔든다.일련의관찰에서여우와강아지,야생과가축사이의분명해야할구분은점차희미해지고,이내“자동차불빛에반짝이는눈”을통해서인간세계와자연세계의빛을동시에반사한다.화자는“한참동안숨죽이고대화를나눴다”고말하는데,이대화는실제로존재하지않지만,응시와응시가교차하는순간이마치교감의언어가된듯묘사된다.이어서“여우꼬랑지가풀밭에/그림을그리”면서현실의사건을미학적형상으로끌어올린다.이러한화자의미학적시점의관찰은“붉은물감을풀어놓”은노을과“붓칠한여우꼬리”가겹치면서,자연과환영이회화적장면으로완결된다.이로써여우는결국숲으로사라지지만,화자의시선속에서그흔적은그림처럼남는다.이시에서화자는환영과현실을오가며,순간을시간의회화로기록하는태도를보여주는데,여우를붙잡거나해명하려시도하지않고,다만증언하듯그장면을남긴다.
즉,화자는일상의풍경에서환상을목격하는순간을기록한다.화자가본여우는뚜렷한형체로확정되지않는다.“똘망한눈동자”는강아지같기도하고숲의그림자같기도하다.이모호함속에서화자는여우의눈빛과“숨죽이고대화”를나눈다.말이아닌응시의교감이현실과환상의경계를흔들어놓는다.여우꼬리가풀밭에남긴흔적은단순한움직임이아니라숲에새겨진상징적도상이되고,마지막에노을과꼬리가겹쳐지면서자연현상은환상적이미지로변모한다.현실속동물이면서동시에환영인여우는,시간을통해서만드러나는존재의이면을상징한다.
마른멸치한포를풀자
은빛바다가파도를타고밀려온다
새끼손가락보다작은물고기
렌틸콩알만한머리에딸려나온내장
까만똥에바짝눌러붙어보이지않는
위,대장,간,쓸개와그밖의장기를상상하며
등줄기에실선처럼가는핏줄
두근두근한심장소리가들리는듯
작은목숨들이띠를만들며
깊고푸른긴터널을
좁쌀보다작은눈알반짝이며
生의문장을읽어나갔을거친바다의숨
똥,똥,소화덜된똥찌꺼기를
손으로만진다,비릿한똥의질감
멸치똥만큼의하루를따면서
바다의심장속으로유영하는
한마리작은물고기를꿈꾼다
-「멸치똥을따면서」전문
「멸치똥을따면서」는사소한노동을우주적상상으로전환한다.멸치한포를푸는순간“은빛바다가파도를타고”밀려오는이미지는노동과풍경을겹치게한다.시인은멸치의내장을상상하며“위,대장,간,쓸개”와같은장기를구체적으로나열한다.이상상은단순한해부학적호기심이아니라,작은생명에내재된세계의질서를존중하는태도로읽힌다.“두근두근한심장소리가들리는듯”이라는구절은이미죽은멸치를살아있는존재로다시불러내는증언의언어이다.이어지는장면에서는작은눈들이반짝이며“生의문장을읽어나갔을거친바다의숨”으로확장된다.멸치가개체의삶을넘어바다전체의호흡과맞닿는방식으로재구성되는것이다.그러나시는환상에만머물지않는다.“똥,똥”이라는의성어와“비릿한똥의질감”같은직접적인감각묘사는환상과현실을동시에붙잡는다.결국화자는“멸치똥만큼의하루를따면서”라는문장에서노동과시간을등가로겹친다.하루의삶이멸치똥만큼작아보일수있으나,그것은바다의심장과연결된시간의일부라는사실을강조한다.마지막에“한마리작은물고기를꿈꾼다”는대목은노동을넘어선환상적상상으로이어진다.현실적촉각과환상적꿈이교차하는이결말은,노동조차시간의매개속에서신비로운성찰로변모할수있음을드러낸다.
이번에읽은2부의시는서로다른대상을다루지만,공통적으로사소한일상이시간속에서환상과신비로변모하는과정을보여준다.여우와의조우는현실속환영의경험으로,멸치손질은노동에서의례로변환되는경험으로드러난다.두시에서시간은현실을환상으로,일상을의례로바꾸는힘이다.따라서2부의시들은일상적현실을존엄한증언으로확장하는과정을보여주며,시집전체의주제의식인시간앞의경건한태도를또다른층위에서드러낸다.2부는이렇게일상의순간을환상과신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