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숲은 점등을 시작한다

이제 숲은 점등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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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정영숙 시집 『이제 숲은 점등을 시작한다』의 의의는, 시인이 개별적 체험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세계·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시간의 총체적 의미를 탐구했다는 점이다. 시 속에서 직박구리와 목련, 멸치 똥이나 여우, 남국의 바다와 명자꽃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시간을 매개로 인간과 세계가 서로의 존재를 증언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곧 시적 상상력이 시간과 존재의 경계에서 발휘되는 방식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시간의 새로운 감각을 체득하게 한다.
따라서 『이제 숲은 점등을 시작한다』는 개별적인 서정시집을 넘어, 시간의 윤리와 미학을 동시에 사유한 성취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작은 생명의 기록에서부터 이국의 장대한 풍광, 공동체적 기억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며, 그 모든 순간을 경건한 증언으로 길어 올린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빠른 속도로 소모되는 시간 감각에 대한 비판적 대안이자, 우리가 다시금 존재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환기하는 힘을 가진다. 결국 이 시집은 시간과 존재를 잇는 시적 사유의 귀중한 증언록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강나루 (시인, 문학평론가)
저자

정영숙

ㆍ2011년 《시와사람》으로 재등단
ㆍ시집 『아찔한 길』
『이제 숲은 점등을 시작한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직박구리

직박구리
봄
사월
거미
숲길에 앉아서
목련
생존전략
까치
소리
도라지꽃
구슬나무
심해
알비노
백로
동백
행복이의 여행
호접란


제2부 여우를 보았다

여우를 보았다
민들레 꽃씨
가을볕 따끔따끔 살갗을 쏘는데
봄비
본양에서
은 고사리 언덕
분꽃
더덕을 캐다가
4월에
방죽
가을 풍경
꽃비
숨
맹그로브
알맞게 천천히
멸치 똥을 따면서

스페이스 푸프 챌린지

제3부 타우랑가

타우랑가
타우랑가
타우랑가
타우랑가
남국의 바다
정글
바람 불어 좋은 날
결혼 했어요
아스가르디아ASGARDIA
폭우
장마철
소낙비는 내리고
갯바람
신시도
흰 섬
함평역에서
잠의 비명
영산역
생선 가게
밤의 분자들
바람 부는 날


제4부 놀이터

놀이터
토끼
장미와 소년
택시는 날아간다
아이는 꿈을 꾼다
토요일 오후
접영蝶泳
10월에
명자꽃
대기점도 홀아비
남자는 사랑이다
노인
고요가 찾아올 때
보름달·1
보름달·2
포도밭
눈 오는 날


| 작품론 |
경건한 응시와 시간의 기록일지 / 강나루

출판사 서평

경건한 응시와 시간의 기록일지
- 정영숙 시집 『이제 숲은 점등을 시작한다』


강 나 루
(시인, 문학평론가)


1.
정영숙의 시집 『이제 숲은 점등을 시작한다』는 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와 사유의 방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시인이 사유하는 시간은 존재와 존재를 이어 주는 매개로 작용하는 또 하나의 존재이다. 꽃이 피고 지는 순간, 동물의 숨소리, 인간이 남긴 기억과 흔적은 모두 시간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에 시인은 꽃과 동물, 인간을 관찰하고 알고자 탐구하듯, 시간 또한 관찰하고 탐구하려 시도한다. 시간의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고, 세심하게 듣고 바라보며, 마치 의례에 참여하듯 공손하게 태도를 유지하는 근간이 그러하다. 그러나 시인의 시간에 관한 사유는 무례하게 빤히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매개하고자 하는 여러 대상을 관찰함으로써 이뤄진다.
자연은 살아 있는 생명의 장으로 나타난다. 직박구리, 목련, 민들레, 여우, 멸치, 나무와 꽃들은 시간을 품고 존재를 드러내는 증언자이다. 시인은 그 증언을 받아 적으며, 작은 생명까지도 존엄한 존재로 대우한다. 그렇게 자연은 시 속에서 생명의 경이와 탄생과 소멸의 질서를 보여준다.
시간은 또한 인간의 기억을 매개한다. 어린 시절의 놀이터, 잃어버린 가족과 이웃, 고단한 생계의 풍경은 모두 시간이 지나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흔적이다. 시인은 그 흔적을 다시 불러내어 삶의 의미를 확인한다. 기억은 단절되지 않고 현재와 이어지며, 미래를 구성하는 자원이 된다. 그래서 이 시집은 개인의 삶을 넘어 세대와 공동체의 시간을 함께 안아낸다.
시인은 현실의 풍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여우를 마주치는 순간, 멸치 똥을 고르는 노동, 이국의 풍경과 우주의 상상은 모두 현실과 허상을 잇는 통로가 된다. 시간은 이 통로를 열어 주는 힘이다. 현실은 시간 속에서 환상으로 이어지고, 상상은 다시 현실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
『이제 숲은 점등을 시작한다』는 자연과 인간, 실제와 허상을 모두 시간이라는 축으로 엮어낸다. 그 과정에서 시인은 시간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존중하며 맞이한다. 그래서 이 시집은 결국 시간을 향한 경건한 태도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2.
정영숙 시인의 시선은 자연의 미세한 생명과 풍경을 포착하고 그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데, 시인은 직박구리, 목련, 심해의 생물 등 하찮게 보이는 것이라도 시간을 품은 존재로서 존중하며, 생명의 경이와 내밀성을 기록한다. 그 과정에서 생명 자체가 지닌 질서를 존중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목련이 터지고
직박구리 한 쌍
새하얀 침구에
신방 차렸다
햇볕도 눈부시게
그들을 비추고
하얀 드레스 입은
신부처럼 단아한 모습
발길 멈추고 예식을 본다
봄바람에 축가가 흐르고
셔터 터지는 소리
부케 한 다발 날아간다
- 「직박구리」 전문

화자는 자연의 짝짓기를 혼례로 치환하고 있다. 목련의 꽃잎은 “새하얀 침구”가 되고, 가지 위의 둥지는 “신방”이 된다. 이 장면은 생물학적 번식의 기록이 아니라, 삶이 새로운 질서로 이어지는 성스러운 의례로 격상된다. 흰 목련의 색채는 순결의 표상일 뿐 아니라, 겨울의 공백을 지나온 봄의 강렬한 빛을 상징한다. 눈부신 빛이 “그들을 비추”는 순간, 화자는 오래 응시하지 못하고 “발길을 멈”춘다. 그 멈춤은 곧 자연 앞에서 취해야 할 겸허의 태도이다.
인간의 결혼식은 주인공들을 비추는 조명과 음악이 필수 요소인데, “햇볕도 눈부시게/ 그들을 비추”며 조명이 되고, “봄바람에 축가가 흐”른다. 자연의 사건에 화자의 인간적 인식이 덧입혀지면서, 생명은 하나의 합주 속에서 숭고하게 드러난다. 또한 이어지는 “셔터 터지는 소리”는 인간적 개입의 흔적이지만, 방해가 아니라 기록의 행위로서, 의례의 순간을 장면으로 간직하게 하는 장치이다. “한 다발 날아”가는 부케는 이 혼례가 단발성이 아닐 것이라는 화자의 확신으로 보인다. 이렇듯 자연의 번식과 인간의 의례가 겹친 자리에서 시인은 시간의 바통은 다음 존재에게 전해지는 연속성과 반복성을 가짐을 확인한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자의 위치다. 그는 주례도, 주인공도 아닌 ‘증인’이다. “발길 멈추고 예식을 본다”는 진술은 관찰을 넘어선 증언의 태도다. 자연을 소유하거나 지배하지 않고, 다만 그 존엄한 순간을 경건하게 목격한다. 이 증인의 자리가 바로 시인이 시간을 대하는 태도를 정의하는 지점이다.
한편, 시인은 다음의 「심해」에서 인간적 감각과 사고가 닿을 수 없는 세계를 무대로 삼아, 존재의 또 다른 양식을 드러낸다.

몇백억 년의 물질을
어둠의 세계에 가두고
단 한 줄의 빛도 허락하지 않는 곳
눈도 귀도 필요하지 않아
오직 감각의 더듬이로
일 밀리 움직일 때 십 년쯤
그렇게 수억 년을 살아가는 생물은
그곳이 세상의 전부일거야
복잡한 생각과 일머리 같은 건 없어도
수압에 익숙한 존재로
진화해 온 은밀한 곳
비밀을 털지 마
그 깊고 깊은 속은 세상의 전부
때론, 혼자이고 싶어
- 「심해」 전문

화자는 까마득한 시간과 깊이로 인해 인간의 생애나 역사적 척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심연을 제시한다. 이 세계는 “눈도 귀도 필요하지 않아”서 “오직 감각의 더듬이”만이 감각기관으로써 사용되는, 인간이 전적으로 의존하는 감각이 무가치하다. 생명은 촉각적 감각을 통해 세계를 탐지하며, 빛과 소리 대신 진동과 접촉으로 자신을 연명한다. “일 밀리 움직일 때 십 년쯤”이라는 과장된 표현은 인간적 시간 체계와 다른 리듬을 상기시키며, 지연과 정지가 오히려 삶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질서를 환기한다.
이러한 세계를 화자는 외부에서 함부로 해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곳이 세상의 전부일거”라는 화자의 감상은 이 세계가 그 내부에서 완결되는 독립적 생존의 질서를 가졌음을 강조한다. 이어서 “비밀을 털지” 말라는 부탁은 화자의 것인지 심해생물의 것인지 모호하다. 이 모호함은 이 독백이 독백이 아닌 군집의 권위를 갖는 듯하여 심해의 은밀함은 폭로하거나 해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보존하고 존중해야 할 질서로 여겨진다. “때론, 혼자이고 싶”다는 독백 또한 발화자의 모호함에 의해 심해라는 공간의 진술을 넘어, 인간 내면의 깊은 고독을 드러내는 고백으로 여겨지고, 나아가 자연의 은밀한 심연은 인간의 내면적 심연과 겹쳐지며, 서로의 거울이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심해」는 빛이 닿지 않는 바다의 깊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방식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인간 내면의 고독과 내밀함을 비추는 은유적 장치로 기능한다. 시인은 그 세계를 폭로하지 않고, 존중하며, 경건하게 응시한다.
지금까지 다룬 두 편의 시는 자연을 하나의 증언자로 불러내는데, 정영숙의 시선은 그 증언을 받아 적는 태도, 즉 공손함에서 비롯된다. 사소해 보이는 생명과 풍경을 존엄한 기록으로 남기는 일, 그것이 바로 이 시집의 출발점이다. 그렇기에 『이제 숲은 점등을 시작한다』의 1부는 존재 앞에서 멈추고 듣고 기록하는 법, 곧 시간과 생명 앞에서 공손히 서는 방법을 독자에게 일깨워 준다.

3.
2부에서는 일상의 사소한 풍경 속에서 신비를 발견하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드나드는 체험을 보여준다. 시인이 응시하는 사건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순간들이지만 시간을 매개로 하여 낯설고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하는데, 그 과정에서 일상은 평범한 기록의 차원을 벗어나, 환상과 성찰이 교차하는 무대로 변모한다. 이처럼 2부는 일상이라는 틀을 통해 세계의 내밀한 차원을 열어 보인다.

똘망한 눈동자는 여시가 아니다
브이 라인 확실한 턱과 주둥이
웅크린 작은 몸

멀지 않은 숲에서 마실 나온 강아지처럼
자동차 불빛에 반짝이는 눈과
한참 동안 숨죽이고 대화를 나눴다
여우 꼬랑지가 풀밭에
그림을 그린다

크리스탈 호수위에 붉은 물감을 풀어 놓고
슬그머니 멀어져가는 노을과
붓칠한 여우 꼬리는 숲으로 멀어져 갔다
- 「여우를 보았다」 전문

「여우를 보았다」는 일상의 순간을 환상으로 바꿔내는 시적 전환의 방식을 잘 보여준다. 여우의 외양은 처음에는 세밀하게 묘사된다. “브이 라인 확실한 턱과 주둥이/ 웅크린 작은 몸”이라는 구체적 이미지 속에서 여우는 현실의 한 장면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곧 화자는 그것을 “강아지처럼”이라고 치환하며 경계선을 흔든다. 일련의 관찰에서 여우와 강아지, 야생과 가축 사이의 분명해야 할 구분은 점차 희미해지고, 이내 “자동차 불빛에 반짝이는 눈”을 통해서 인간 세계와 자연 세계의 빛을 동시에 반사한다. 화자는 “한참 동안 숨죽이고 대화를 나눴다”고 말하는데, 이 대화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응시와 응시가 교차하는 순간이 마치 교감의 언어가 된 듯 묘사된다. 이어서 “여우 꼬랑지가 풀밭에/ 그림을 그리”면서 현실의 사건을 미학적 형상으로 끌어올린다. 이러한 화자의 미학적 시점의 관찰은 “붉은 물감을 풀어 놓”은 노을과 “붓칠한 여우 꼬리”가 겹치면서, 자연과 환영이 회화적 장면으로 완결된다. 이로써 여우는 결국 숲으로 사라지지만, 화자의 시선 속에서 그 흔적은 그림처럼 남는다. 이 시에서 화자는 환영과 현실을 오가며, 순간을 시간의 회화로 기록하는 태도를 보여주는데, 여우를 붙잡거나 해명하려 시도하지 않고, 다만 증언하듯 그 장면을 남긴다.
즉, 화자는 일상의 풍경에서 환상을 목격하는 순간을 기록한다. 화자가 본 여우는 뚜렷한 형체로 확정되지 않는다. “똘망한 눈동자”는 강아지 같기도 하고 숲의 그림자 같기도 하다. 이 모호함 속에서 화자는 여우의 눈빛과 “숨죽이고 대화”를 나눈다. 말이 아닌 응시의 교감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흔들어 놓는다. 여우 꼬리가 풀밭에 남긴 흔적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숲에 새겨진 상징적 도상이 되고, 마지막에 노을과 꼬리가 겹쳐지면서 자연현상은 환상적 이미지로 변모한다. 현실 속 동물이면서 동시에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