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성 시인의 디카시들은 짧고 응축된 형식으로 자연 현상, 감정, 사색적인 순간들을 포착하며, 일상 속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다. 때로는 은행나무의 권면을 통해 자연의 넉넉한 황금빛이 소외된 곳에 따스함을 전하는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동장군의 차가운 열정을 통해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조각하는 모습을 그려놓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정이성 시인의 디카시들은 만남, 배려, 땀방울의 의미와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은유적이고 감각적인 시어로 표현하며, 독자에게 깊은 정서적 울림과 사유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디카시는 사진의 도움을 받아, 다채로운 인간의 감성을 시적 형상화하고 있다. 그 속으로 나 있는 시심의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인생이 보이고 감동의 전율을 만나게 되고, 울컥 치밀어 올라오는 미묘한 감성의 향기를 맛보게 된다. 디카시의 특질을 고루 갖추고 있는 정이성 시인의 디카시들이 보다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기를 바란다.
- 박덕은(문학박사, 전 전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정이성 시인의 첫 디카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 박덕은(문학박사, 전 전남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정이성 시인은 전남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한 뒤, (사)한국영록협회 광주.전남지회장, (사)한국농업경영인 곡성군회장, 전남도회장, 중앙회부회장, PBC광주평화방송 칼럼리스트, 전남일보 고객자문위원, 한국농산물유통공사 고객자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농림부장관상, 산업 포장 등을 수상했다.
2020년 월간지 《문학공간》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문단 데뷔한 이후, 봉황대 마타리꽃 문학상 동시 본상, 왕비 용녀문학상 수필 본상, 남명문화제 시화문학상 포랜컬쳐상, 삼행시 문학상 동상, 김해예총 시화전 문학상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문단에서는 온스런 문학회 회장, 싱그런 문학회 회장, 한실문예창작 회원, 광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약하면서, 창작의 길을 성실하게 걷고 있다.
정이성 시인은 어느 날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날 작은도서관 관장으로부터 독서 강의가 있으니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자리를 채워줄 겸 갔다가 열강에 푹 빠져 한실문예창작 문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게 수강 동기가 되어 글을 접하게 되었다. 곡성에서의 수업은 수강생이 적어 몇 개월 안 되어 폐강을 맞았다. 쉬던 차에 순창에 문학회가 있으니 공부하려면 참석하라는 권유를 받고, 간 곳이 장류박물관에서 공부하는 싱그런 문학회였다. 습작을 수업 시간에 제출하며 시, 동시, 수필을 접하게 되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당신만의 책을 펴낼 수 있다는 권유와 칭찬과 훈계를 주워 삼키며 수업을 듣다 보니 조금씩 글이 되고 말이 되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정이성 시인의 디카시 문학 세계로 향긋한 탐험을 떠나보기로 하자.
황금 지폐가 넉넉하다
찬 바람소리 흉흉할 때면
소외된 사각지대 두드리며
구수한 맛으로 다가선다.
- 「은행나무의 권면」 전문
이 디카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가을철 은행잎의 아름다움과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과 소득의 양극화로 삶의 질이 결정된다. 하루 세끼와 교육과 주거는 소득의 높고 낮음에 따라 달라지기에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이 많은 사람에게 훨씬 이롭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생긴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자연의 시작과 끝은 금수저 흙수저 논리가 없다. 사람도 저 자연에서 나고 자라며 죽는데 왜 사람만 유독 자연을 거스르는 것일까. 남보다 더 갖고 싶은 욕심, 남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욕심이 부의 불평등을 낳고 급기야 기후 위기를 낳고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는데 만물의 파괴자가 되고 있다. 은행나무는 인간의 그런 탐욕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권면(勸勉)은 남을 알아듣도록 타일러서 어떤 일에 힘쓰게 함을 뜻하는 말이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기후 위기까지 불러들였는데도 은행나무는 호통이나 질타를 하지 않고 권면한단다. 그 권면 속에는 은행나무의 속성 아니, 자연의 속성이 들어있다. 삶을 대하는 은행나무의 부드러운 자세와 자연의 자세를 우리는 배워야 한다. 우리는 상대가 잘못하면 먼저 비판하고 꾸짖는다. 은행나무의 권면처럼 알아듣도록 타일러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면 상대방은 자존심이 덜 깎이면서 자신의 삶을 꾸려갈 것이다. “황금 지폐가 넉넉하다/ 찬 바람소리 흉흉할 때면/ 소외된 사각지대 두드”린다. 우리는 황금 지폐가 넉넉하면 그 지폐로 명품백을 사고 좋은 집을 사며 부를 과시할 텐데 은행나무는 소외된 사각지대를 두드리고 있다. 사진 속 은행잎이 바닥을 덮고 있다. 사진과의 연결성이 좋다. 이렇듯 디카시는 사진과 함께 서로 상호작용하며 빛을 발할수록 좋다. 은행나무의 순리 속에서 소외된 계층을 어루만지는 목소리를 듣고 있다. 이 시에서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황금지폐'에 비유하며, 넉넉하고 풍요로운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시적 화자는 찬바람이 불어 어려운 시기에 소외된 이들을 위로하고 돕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은행나무가 주변에 베푸는 따스한 영향력을 '구수한 맛'이라는 감각적인 표현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누가 먼저가 아닌
끌림과 만남이 이어져
매일 묵묵히
위로와 짜릿함으로
다정히 포옹한다.
- 「동반자」 전문
이 디카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누가 앞서거나 뒤처지는 것 없이 이끌림과 만남이 지속되는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사진 속 털신이 현관문 바닥에 놓여 있다. 오랜 세월 신었는지 묵은 때가 끼어 있고 닳아져 있다. 저 신발의 왼쪽과 오른쪽은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나아갔을 것이다. 나란한 신발을 통해 시인은 삶의 동반자를 떠올린다. 동반자와의 첫 만남을 시적 화자는 “누가 먼저가 아닌/ 끌림과 만남이 이어져”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자연스런 만남 속에서 서로에 대한 이끌림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고백한다. 적당한 조건을 보고 적당한 만족으로 결혼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시적 화자는 서로에 대한 이끌림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현명하다. 이끌림이 있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따스한 관심과 지속적인 배려가 있다는 뜻이다. 부부는 일상의 수많은 시간을 함께해야 하기에 서로를 향한 따스한 시선이 있어야 한다. 그 따스한 시선으로 시적 화자는 “매일 묵묵히/ 위로와 짜릿함으로/ 다정히 포옹”하고 있다. 삶을 아름답게 함께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시다. 사진 속 털신은 새 신발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세월에 닳아지며 낮과 밤을 함께한 흔적이 엿보인다. 저 털신처럼 시적 화자는 동반자와 함께 봄을 걷고 여름을 건너며 가을의 벤치에서 쉼을 하며 겨울의 눈보라를 헤쳐나갔을 것이다. 그 사이에 뒷굽이 닳고 바닥은 닳아져 시간은 훌쩍 흘러갔을 것이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저 털신처럼 어디든 함께 가며 어떤 아픔이든 함께 이겨내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여야 한다. 그리하여 끝내는 “위로와 짜릿함으로/ 다정히 포옹”해야 한다. 동반자라는 이름으로 매일 묵묵히 이어지는 이 관계는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어 삶의 위로처가 되어준다. 궁극적으로 이 시는 나란히 놓인 털신과 다정하게 포옹하는 모습을 통해 동반자와의 관계의 친밀함과 지속성을 감각적이고도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호기심이
갈 곳 여의치 않자
하나 둘씩 슬쩍 와서
상념 태워 날리는 곳.
- 「배려」 전문
이 디카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호기심'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주변의 존재들이 하나둘씩 슬며시 다가와 그 호기심이나 걱정거리 같은 '상념'을 함께 태워 날려주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진 속 장소는 흡연구역이다. 담배를 피우면 몸에 안 좋으니 끊으면 좋겠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흡연구역이 따로 없었다. 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도 담배 연기를 억지로 맡아야 했다. 담배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면서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담배 애호가는 있다. 담배 애호가의 입장에서는 불법을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따가온 눈초리를 받으며 담배를 피우는 것도 여간 불편할 일이 아니다. 서로의 이익이 충돌하지 않게 흡연구역을 만드는 것은 사회적 배려이다. 이 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흡연구역이라는 사회적 배려를 통해 '배려'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나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으면 적으로 돌리고 적대시한다.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고 상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인다. 너의 말은 틀렸으니 나의 말을 들어야 한다며 강요한다.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와 너를 가른다면 그 끝은 싸움이며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시인은 흡연구역과 배려를 통해서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설 자리를 존중해 주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이유도 팔레스타인을 인정할 수 없으니 모든 땅을 이스라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스라엘의 논리만 맞다며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배려가 없다. 배려가 없으니 전쟁으로 치닫게 된 것이고 그 끝에는 이스라엘의 욕심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호기심이/ 갈 곳 여의치 않자” 당황해 한다. 만약 그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곳이 없다면 그 호기심 때문에 아무곳에서나 필 수밖에 없다. 다행히 흡연구역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곳으로 애연가들은 “하나 둘씩 슬쩍 와서/ 상념 태워 날리”고 있다. 이 시는 타인의 복잡한 생각이나 감정을 조용히 보듬어 주는 행위를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착하여 시각화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시의 짧은 형식 안에 깊은 정서적 공감과 위로의 의미를 응축해 놓고 있다.
추위 몰아 더 차갑게
칼바람 날 세워 짜릿하게
오묘한 작품 조각하는
저 동장군의 열정.
- 「예술가」 전문
이 디카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겨울 동장군을 예술가로 의인화하고 있다. 태초의 예술가는 자연이다. 우리는 그 자연을 모방하고 학습하며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 나간다